세계삼한역사

호라즘 제국 (Khwarezm 花刺子模)과 남송의 최후

한부울 2009. 5. 25. 17:32

고려연방(Unite Corea)국가였다. http://blog.daum.net/han0114/17046399

호라즘 제국 (Khwarezm 花刺子模) http://blog.daum.net/han0114/17048059

송나라와 사만왕조 제왕 재위 연대가 겹쳐지는 이유?

http://blog.daum.net/han0114/1705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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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연방이라고 판단되는 호라즘제국은 결국 송나라 잔여세력 남송과 비교된다.

동양의 송나라와 서양의 사만제국, 가즈나왕조, 카라한제국이 연결되고 역시 징키스칸(최충헌)의 이은 오고타이가 파견한 이란 방면군의 추적을 받아 동부 아나톨리아의 디야르바키르(Diyarbakir)에서 살해되어 호라즘왕조 즉 남송은 결국 최후의 끝을 보고 만 것이다.

그곳이 여송이라고 하는 필리핀인가?

하는 문제는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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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연방(Unite Corea) 호라즘 제국 (Khwarezm 花刺子模)

 

                                                    1200년 경의 호라즘 제국


호라즘 제국(Khwarezm 페르시아어:خوارزمشاهی)


호라즘 제국은 아무다리야 강(江) 하류 유역, 지금의 히바에 있었던 국가(1077년~1231년)이다. 아라비아인은 호라즘이라 부르고, 원조(元朝)의 사서(史書)에는 화자자모(花刺子模)라 기록되어 있다.

 

              Great Seljuq Empire in its zenith in 1092, upon the death of Malik Shah I


페르시아어로 호라즘·샤라고 하는 왕호를 가지는 군주 호라즘왕국은 아랍인의 진입 이전부터 이슬람화의 변동을 거치면서도 호라즘의 지배자로서 흥망을 반복해 왔지만, 통례적으로 호라즘·샤 왕조 라로 불리게 된 것은 11세기에 Seljuq Empire부터 자립한 정권을 가리킨다.


건국으로부터 확대


호라즘·샤 朝는 셀주크朝을 섬기던 투르크Turk족의 맘루크(Mamluk 노예 군인), 아누슈테긴(Anush Tigin Gharchai)이, 1077년에 30년 정도 전까지는 가즈나 왕조(975 - 1187)의 영토에서 호라즘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된 것을 기원으로 한다. 아누슈테긴의 사후 그 아들 쿠트붓디·무하마드(Qutb ad-Din Muhammad I:1097-1127)가 1097년경 셀주크朝에 의하여 호라즘의 총독에게 임명되어 호라즘·샤를 자칭했다.


무하마드의 사후, 호라즘·샤의 위를 세습한 아지즈(Ala ad-Din Aziz:1127-1156)는 1135년경에 셀주크朝부터 자립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1138년 호라즘의 남쪽의 호라산 (Khorasan)를

 근거지로서 권세를 발한 셀주크朝의 산자르(Sanjar 재위 1097~1157)에 의해 점령되어 다시 셀주크朝에 굴복했다. 1141년 중앙아시아에 침입한 카라키타이(Kara-Khitan Khanate)에게 산자르(Sanjar 재위 1097~1157)가 지지만 다시 배반하여, 산쟈르와의 사이에 반항과 굴복을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1157년 산쟈르의 죽음으로 호라산 (Khorasan)의 셀주크朝 정권이 해체되면서 호라즘·샤는 다시 자립하지만, 이번은 셀주크朝가 변한 중앙아시아에 세력을 넓힌 카라키타이(kara kitai)에게 복속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호라산 (Khorasan)


1172년부터 호라즘·샤의 술탄·샤(Sultan Shah)와 그 이종사촌 테키슈(Tekish)의 사이에 왕위 분쟁이 일어나 형에게 대항하여 서부에서 자립한 테키슈(Ala al-Din Tekish 1172-1200)는 처음으로 술탄을 칭했다. 분쟁은 장기화되지만, 1189년에 테키슈가 술탄샤와 강화하여 마침내 왕위를 인정받고 1193년의 술탄·샤(Sultan Shah)의 죽음으로 샤는 호라즘·샤 朝의 최종적인 재통합을 완수한다. 테키슈의 치세에 호라즘·샤 朝는 이란으로 확대하여, 1194년에는 중앙 이란의 레이(Ray)로 이라크·셀주크朝의 토그릴 2세를 격파하고 셀주크朝을 멸하면서 서 이란까지 판도를 넓혔다. 1197년, 테키슈는 압바스朝(Abbasid750~1258)의 칼리프로부터 정식으로 이라크와 호라산(Khorasan)를 지배하는 술탄으로서 인정되어 대셀주크朝의 후계자로서 자타 모두 인정받게 되었다.

 

The various de facto independent emirates after the Abbasids were shorn of his military dominance (c. 950).

              

원래 호라즘·샤는 맘루크(Mamluk:이슬람교로 개종한 노예부대)의 출신으로 부족적 연결이 없지만, 왕조의 군사력은 호라즘 주변의 투르크계 유목민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어, 테키슈(Tekish)의 패권에는 Aral해 북방의 투르크계 유목민 캔 구리나 킾쟈크(Kipchaks)의 힘이 큰 역할을 하였다. 테키슈의 아내는 캔 구리의 출신이며, 그녀가 낳은 왕자 무하마드(아라아디)가 1200년에 테키슈의 뒤를 이어 제7대 술탄에 즉위 한다.


대제국의 건설과 붕괴


테키슈의 아들 아라아디·무하마드의 치세에, 호라즘·샤 朝는 최성기를 맞이했다. 아라아디는 호라산(Khorasan)에 침입한 고르 왕조(Ghor王朝)을 격퇴한 뒤, 고르 왕조(Ghor王朝)의 호라산에 있는 거점 도시 헤라트를 오히려 빼앗았다. 1210년에는 시르다리야 강을 건너 키타이인을 멸하고, 1212년에 카라키타이의 종주권하에서 가까스로 존속하고 있던 서카라한王朝을 완전하게 멸해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의 사이에 펼쳐있는 트란스옥시아나를 세력 하에 두었다.

 


또 기야스알딘(Ghiyath al-Din Muhammad,)·시하브알딘(Shihab al-Din Muhammad)형제의 사후 급속히 분열하기 시작한 Ghor王朝을 쳐부수어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중앙부까지 대부분을 정복, 1215년에 Ghor王朝을 멸했다. 1217년에는 이라크에 원정하여 압바스朝(Abbasid750~1258)에 압박을 더해 발스(Vaals)나 아제르바이잔의 아타베그(atabeg) 정권을 점령 이란의 거의 전역을 굴복시키기에 이르렀고, 호라즘·샤 朝의 세력은 중앙아시아로부터 서아시아까지 퍼지는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호라즘·샤 朝의 몰락도 아라아드의 시대에 극적으로 진행되게 되었다. 호라즘·샤 朝가 최대 판도를 달성할 무렵, 몽고 제국이 카라키타이의 정권을 빼앗은 나이만(Naiman)부의 쿠츄르크(Kuchlug)를 멸하고, 호라즘·샤 朝는 중앙아시아에서 경계를 접하게 되었다. 아라아드는 몽고제국의 징기스칸과 언통은 있었지만, 1218년에 시르다리야 강 하반(河畔)의 오트랄(Otrar or Utrar)로, 호라즘·샤 朝의 오트랄 총독이 몽고에서 파견한 상업사절을 중앙아시아 침공을 위한 밀정이라고 혐의 붙여, 일행 450명을 살해하고 그들이 보관하는 상품을 빼앗는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부터 중앙아시아 침공의 기회를 살피고 있던 몽고 제국의 징기스칸은, 이 사건을 기회로 호라즘·샤에 복수를 결정하여, 1219년에 칸 스스로 인솔하는 몽고군의 대규모 침공을 개시했다. 아라아드는 어머니의 친가 캔 구리를 포함한, 유목민 제부족 사이에 내분과 반항의 위험성에 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몽고의 침공에 대해서 원활히 야전(野戰)에서 대처하지 못하고, 병력을 분산하여 사마르칸드, 부하라 등 중앙아시아의 각 도시에서 농성(籠城)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각 도시를 면밀하게 분석 침공 계획을 준비한 몽고측의 각개격파에 차례차례로 무너지고, 파괴되어 호라즘·샤朝의 방위선은 거의 허물어지고 단기간 사실상 붕괴되고 말았다. 아라아드·무하마드는 이란 방면으로 피해 도망간 카스피해상의 작은 섬에서 병사한다.


잘랄웃딘, 송 이종(宋理宗)의 저항과 재흥


몽고군의 침공에 즈음해 가까스로 저항을 계속할 수가 있던 것은, 아라아드의 아들 잘랄웃딘(Jalal ad-Din Mingburnu1220-1231)였다. 잘랄웃딘는 아프가니스탄 방면에서 몽고와 싸우면서 점차 남쪽으로 후퇴해, 한때는 인더스강을 건너 인도에 들어갔다. 징기스칸이 인더스로 추격을 그만두고 몽고 타카하라에 돌아온 후, 잘랄웃딘는 이란으로 돌아가 각지를 전전, 이라크를 거쳐 아제르바이잔에 들어가 1225년에 당지의 아타베크 정권 일·탭리즈朝(Tabriz)을 멸해 탭리즈(Tabriz)에 입성했다.


잘랄웃딘은 아제르바이잔을 근거로 그루지야를 정복하고 남 카프카스(Kavkaz)로부터 동쪽 아나톨리아(Anatolia)에 세력을 넓히지만, 아나톨리아중앙부를 지배하는  룸 셀주크 왕조(Sultanate of Rum), 시리아(Greater Syria)를 지배하는 아이유브왕조(Ayyubid dynasty1171–1341)와 동부 아나톨리아의 영토를 쟁탈분쟁이 일어났다. 1230년, 잘랄웃딘은 동부 아나톨리아의 에르즈잘 근교에서 룸 셀주크 왕조와 아이유브 왕조의 연합군에 져 그의 군대와 세력은 거의 붕괴했다.


1231년, 패잔의 잘랄웃딘는 징기스의 사후에 이은 오고타이가 파견한 이란 방면군의 추적을 받아 동부 아나톨리아의 디야르바키르(Diyarbakir)로 살해되어 호라즘·샤 朝은 멸망했다.


Khwarezm 통치자


Ma'munids

Abu Ali Mamun I 992-997

Abu al-Hasan Ali 997-1009

Abu al-Abbas Mamun II 1009-1017

Muhammad 1017


Altuntashids

Altun Tash 1017-1032

Harun 1032-1034

Ismail Khandan 1034-1041


Non-dynastic

Shah Malik 1041-1042


Anushtiginids

Anush Tigin Gharchai 1077-1097


Non-dynastic

Ekinchi 1097


Anushtiginids

Qutb ad-Din Muhammad I 1097-1127

Ala ad-Din Aziz 1127-1156

Il-Arslan 1156-1172

Sultan Shah 1172-1193

Ala ad-Din Takash 1172-1200

Ala ad-Din Muhammad II 1200-1220

Jalal ad-Din Mingburnu 1220-1231

 

남송 연대표(1127-1279)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제1대

송 고종(宋高宗)

受命中興全功至德聖神武文昭仁憲孝皇帝

조구(趙構)

건염(建炎) 1127-1130

소흥(紹興) 1131-1162

제2대

송 효종(宋孝宗)

紹統同道冠德昭功哲文神武明聖成孝皇帝

조선(趙昚)

융흥(隆興) 1163-1164

건도(乾道) 1165-1173

순희(淳熙) 1174-1189

제3대

송 광종(宋光宗)

循道憲仁明功茂德溫文順武聖哲慈孝皇帝

조돈(趙惇)

소희(紹熙) 1190-1194

제4대

송 영종(宋寧宗)

法天備道純德茂功仁文哲武聖睿恭孝皇帝

조확(趙擴)

경원(慶元) 1195-1201

가태(嘉泰) 1201-1205

개희(開禧) 1205-1208

가정(嘉定) 1208-1225

제5대

송 이종(宋理宗)

建道備德大功復興烈文仁武聖明安孝皇帝

조윤(趙昀)

보경(寶慶) 1225-1227

소정(紹定) 1228-1233

단평(端平) 1234-1236

가희(嘉熙) 1237-1240

순우(淳祐) 1241-1252

보우(寶祐) 1253-1258

개경(開慶) 1259

경정(景定) 1260-1264

 

Anushtiginids

Qutb ad-Din Muhammad I 1097-1127

Ala ad-Din Aziz 1127-1156
건염(建炎) 1127-1130
소흥(紹興) 1131-1162

 

Il-Arslan 1156-1172
융흥(隆興) 1163-1164
건도(乾道) 1165-1173

 

Sultan Shah 1172-1193
순희(淳熙) 1174-1189
소희(紹熙) 1190-1194

 

Ala ad-Din Takash 1172-1200
경원(慶元) 1195-1201

 

Ala ad-Din Muhammad II 1200-1220
가태(嘉泰) 1201-1205
개희(開禧) 1205-1208
가정(嘉定) 1208-1225

 

Jalal ad-Din Mingburnu 1220-1231
보경(寶慶) 1225-1227
소정(紹定) 1228-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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