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돌궐(突厥)과 서돌궐(西突厥) The Gokturks

한부울 2009. 5. 25. 22:06
무쿠리칸(고구려 한)들의 계보와 영역 http://blog.daum.net/han0114/17045482

아발스(Avars) 서양에 알려진 고국려 국명 http://blog.daum.net/han0114/1704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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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突厥)  The Gokturks ("Sky Turks")

 

확언하건데 고구려영역을 돌궐로 둔갑시켜 놓은 것일뿐 돌궐은 고구려이다.

유연도 고구려다. (西)로는 쿠만 킾차크 까지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반도사관에는 고구려가 망한 시점을 668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역사가 분명치 않다.

백제 신라 당 고려 송 을 마구 섞어 놓은 것이다.

서기전 199년을 고구려 건국시원이라고 하지만 반도사관은 기원전 37년이라고 줄여놓고 있다.

근 160년 이상차이가 난다. 건국시점과 망한시점을 무슨 이유인지모르지만 짤라 버린 것이다.

"무쿠리칸들의 계보와 영역"을 보면 고구려는 시베리아 전역과 유라시아까지 광대한 영역을 가진 나라라고 하고 있다. 몽고 영웅 징기스칸 보다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였다고 하고 있다.

수많은 줄기 가지의 그렇고 그런 나라가 있었지만 늘 고려의 후예라고 하였다.

그와같은 사실은 한반도 안에서만 존재한 역사하고는 내용과는 천양지차이 이다.

그 후 큰 전쟁없이 고구려 법통을 이어 받을 수 있는 고려태조에게 신라 경순왕은 스스로 양위하고 고려귀족이 된다.

고려(918~1392)는 고구려가 차지한 영역을 신라가 차지 하였고 신라가 차지한 영역을 고려가 맡아 연합형태의 국가체제를 만들어 중원을 다스린 것이다.

때문에 고려도 고구려의 후신 인 것이다.

 

 

돌궐(突厥, 불가리아어: Гоктюрки 고크튜르키, 터키어: GökTürk İmparatorluğu 괴크 튀르크 임파라토르루유, 551년-747년)은 튀르크(투르크)의 가차(假借) 표기이며 알타이 산맥에서 발원한 철륵의 하위 부족이다.‘주서(周書)’ 이역(異域) 돌궐(突厥) 열전은 “돌궐은 대개 흉노의 별종이다”라며 흉노의 후손이라고도 하였다.  


개요


당시 강자로 군림하던 유목 제국 유연을 멸망시키고 중앙아시아에서 만주 지방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세력 확장을 펼쳤다. 그러나 동, 서로 분열되어 동돌궐은 당에 복속하게 되었고, 서돌궐은 이슬람화 되었는데 그 중 오구즈 투르크멘 부족이 셀주크 제국의 기원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99년 튀르크 족은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였다.


고구려와의 대외 관계는 6세기에는 대립 관계였다가 7세기에는 동맹체제로 전환된다.


중원제국과의 관계


수나라, 당나라시기에 북방 초원의 강자로 등장한 세력은 돌궐이었다.


중국이 오랜 분열기를 마감하고 589년 수나라가 중원을 통일했을 때, 당시 북방의 돌궐과 수나라가 대치하게 되었다. 북방의 강자 유연을 멸망시킨 새로운 패자 돌궐은, 중국과 대립관계가 된다.


7세기 후반, 돌궐이 동돌궐과 서돌궐로 분열되었을 때 수나라는 서돌궐이 동돌궐을 공격하도록 부추겨 동돌궐을 굴복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동돌궐은 수나라에 신속하고 둘 사이는 군신관계가 성립되었다.


수나라와 돌궐 사이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이어서 고구려 침략에 실패한 수나라는 멸망하고, 새롭게 당나라가 건국되는데, 당나라가 건국될 당시, 돌궐은 다시 세력을 회복해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였다.


돌궐의 막강한 군사력에 눌린 당나라는 돌궐에게 신하로써 복종하고 양국의 군신관계가 성립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돌궐에 내분이 일어나고 자연재해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당과 돌궐의 관계는 역전된다. 당은 이이제이 정책을 써서 돌궐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하고, 돌궐의 힐리 가한은 당나라에 신속하면서 당과 돌궐사이에 군신관계가 성립한다.


중국과 돌궐의 관계를 보면 주도권 관계가 서로 교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이 분열되면 중국이 돌궐에 복속되고, 돌궐이 분열되면 돌궐이 중국에 복속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돌궐이 우위인 상태는 오래 가지 못했는데 이는 돌궐 자체가 내부 결속력이 약해 늘 내분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고,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중원 왕조는 이이제이 정책을 써서 돌궐의 분열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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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가한


伊利可汗 트멘 552년 - 553년 유연에서 독립하여 돌궐을 열었다.

乙息記可汗  553년 - 554년

木杆可汗무칸 554년 - 572년 유연을 멸망시킴. 중앙아시아의 에프탈을 공략하고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佗鉢可汗 572년 - 581년

沙鉢略可汗 581년 - 587년

葉護可汗 587년 - 588년

都藍可汗 588년 - 599년


동돌궐


啓民可汗 센간 587년 - 609년

始畢可汗 609년 - 619년 수나라를 침공하여 조공을 중단한다.

處羅可汗 619년 - 621년

頡利可汗 621년 - 630년 당에 항복하여 한 때 동돌궐이 멸망한다.

쿠테르크 682년 - 694년 당에서 독립해 동돌궐을 부흥시킴

카파간 694년 - 716년

비르게 716년 - 734년

伊然可汗

毘伽骨咄禄可汗

登利可汗

骨咄葉護

頡跌伊施可汗

烏蘇米施可汗

白眉可汗


(744년, 동돌궐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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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돌궐(西突厥)


서돌궐(西突厥)은 583년에 수나라의 이간책으로 독립한 돌궐의 한 세력이다.

개요


돌궐제국의 서쪽 가한이 분열 후 서역에 자리를 잡고, 실크로드를 통치하며 세력을 떨쳤다. 정식으로 동돌궐을 ‘돌궐’이라고 하고, 서돌궐은 10개의 큰 부족의 족장이 하나의 화살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십전’(十箭)이라고도 불렀다.


돌궐이 부흥한 후 토문가한(土門可汗)의 아우 실점밀(室点密)이 서역을 정벌하여, 서역 철륵의 각 부족과 카를룩(葛逻禄), 바스밀(拔悉密) 등 여러 부족을 복속한다. 실점밀은 먼저 파사(波斯 페르시아)와 연합하여 에프탈을 공략하고 이후 또 비잔틴(拜占庭)과 결맹하여 페르시아를 공격한다.


583년, 수나라의 이간책으로 서역을 정벌하면서 공을 세워 돌궐이 동서로 분열했다. 그 중의 서역 세력이 서돌궐이라고 칭해졌다. 당 태종에게 일단은 복속했지만, 태종의 사후에 독립해 세력 회복을 완수했다. 그러나 3대 고종이 본격적인 토벌군을 파견해, 657년에 멸망 했다.


역대가한


돌궐은 유연과 같이 최고 지도자에게 가한(可汗, 후일 몽고의 ‘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서돌궐의 역대 가한은 다음과 같다.


葉護可汗(이스테미, 室点蜜, 시르지브로스, 디자브로스) 552년 - 575년

達頭可汗  575년 - 602년

泥利可汗  587년

泥厥處羅可汗  603년 - 611년

射櫃可汗  611년 - 619년

統葉護可汗  619년 - 628년

莫賀咄可汗  628년

肆葉護可汗  628년 - 632년

咄陸可汗  642년

乙毘射櫃可汗  642년 - 651년

沙鉢羅可汗  651년 - 657년 당나라의 공격을 받아 사로잡힌다.


739년, 서돌궐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