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태조 왕건묘 중국대륙에 있었다
[일요서울] 1997.4.6
왕건(王建)의 출생지는 구오대사(舊五代史)에서 밝힌 것을 보면 진주(陳州) 항성(項城)이다. 여기서 진주 항성이란 땅 이름 자체가 한국땅이 아니다. 그럼 진주 항성이 어디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진주는 춘추전국시대 때 진(陳)나라이다. 특히 북주(北周 AD.557∼581년) 나라가 있었던 곳이다.
진주는 현재 중국 대륙에 있는 하남성 항성현 동북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양현(陽縣)이다. 양현은 희양군이자 진주부(陳州府)라고 한다. 진주는 하남성 낙양에서 동쪽으로 산동성 접경지대에 있는 개봉(開封)시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왕건이 자랄 때 이름은 우충(于忠)이다. 왕건의 자는 약천(若天)이라고, 고려사(高麗史) 열전(列傳)에 기록돼 있다. 왕건은 송악군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왕건(王建)이 태어난 고향이 진주 항성현이고, 도읍한 곳은 송악군이다. 송악군은 오늘날 중국의 성도(成都)이다.
왕건은 옛날 진(秦 BC.221∼207년)나라 때 무군(武軍)의 권력을 가진 종가집 자손이다. 왕건의 조상은 진(秦)나라 때부터 군인 집안으로서 선조들은 채주(蔡州)에서 살았다고 되어있다. 지금의 채주는 중국고금지명대사전(中國古今地名大辭典) 본문 1195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한(漢 BC.206∼AD.220년)나라 때 여남군(汝南郡) 땅이다. 남조(南趙 AD.420∼589년)시 송(宋AD.
420∼479년)나라가 여주라 했다. 그러나 수(隋 AD.589∼618년)나라는 채주라 했으며 당(唐AD.
618∼907년)나라가 다시 찾아 여주라 했다가 다시 고쳐 채주라 했다. 금(金 AD.1115∼1234년)나라 때는 채주를 진남군이라 했는데, 원(元 AD.1206∼1368년)나라는 채주라 하다가 승격시켜서 여령부라고 했다. 이곳은 지금 하남성 여남현이다. 서위(西魏 AD.535∼556년) 때는 남옹주(南雍州)라 하여 두었으나 수나라가 폐지시켰다. 그곳은 옛날 호북성(湖北省) 조양현(棗陽縣) 서북이라고 적고 있다.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왕건의 조상들은 진(秦)나라 때부터 하남성(河南省) 등지에서 살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조상이 살았던 곳이 하남성 지방이라면 왕건의 고향 또한 하남성이다. 왕건의 고향이 대륙 하남성이라면 왕건은 한반도 한국에 있었던 사실조차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에 있던 왕건은 고려왕이었던 왕건이 아니라고 한다. 또는 왕건(王建)은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라고들 한다. 고려 왕건이 무엇 때문에 중국 대륙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들 우긴다.
모든 정사들은 고려 왕건의 기록을 똑똑히 기록하고 있다. 필자의 저서「고려사의 새발견」에서도 밝혔지만 한치윤의 저서「해동역사(海東繹史)」,「고려사(高麗史)」「명사(明史)」, 서긍(徐兢)이 지은「고려도경(高麗圖經)」그 외 많은 사서(史書)들은 왕건(王建)이 중국대륙에 있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고금동성명 대사전 제1권 62쪽 왕(王)자 편을 보면 왕건은 분명히 한 사람이다.
왕건이라는 왕은 역사적으로 한 사람으로 되어있다. 그런데 성명대사전에 보면 왕건중(王建中), 왕건급(王建及), 왕건방(王建方), 왕건립(王建立), 왕건봉(王建封), 왕건상(王建常), 왕건형(王建衡), 왕건극(王建極) 등이 있다. 그리고 중국인명대사전에는 당나라 때 문인(文人)으로 왕건(王建)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왕건이란 왕은 고려왕인 태조 왕건밖에 없음을 이 기회에 확실하게 밝혀두고자 한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22쪽에는 왕건이 전촉(前蜀) 왕이라 기록하고, 그곳은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2대에 걸쳐 후당(後唐 AD.923∼936년)에게 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고금 동성명 사전에는 당나라 장흥(AD.930∼933년) 때 고려국왕으로 책봉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하간 왕건은 한반도 한국에서 고려국을 건국한 사실이 없음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왕건의 혈통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왕건의 위치를 확인해 보기로 한다.
왕건의 자(字)는 광도(光圖)이며 허주(許州) 무양(舞陽) 사람이라 했다. 이곳은 전술된 바와 같이 진주(陳州) 항성(項城)과 가까운 거리이다. 여하간 고려 태조 왕건의 출생지는 하남성이 분명하다. 그런데 왕건의 뿌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고려 때 이승휴의「제왕운기(帝王韻紀)」에 있는 세계도(世系圖)를 살펴보기로 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은 성골장군(聖骨將軍)이다. 고려 시조는 사찬(沙粲)이다. 사찬의 후손이 원덕대왕(元德大王)이며, 당(唐)나라 숙종(肅宗 AD.756년)황제와 정화왕후(貞和王后)에게서 태어난 경강대왕(景康大王)에 이어 세조(世祖)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다.
당나라 숙종은 이형(李亨)이며 지덕(至德 AD.756∼758년)의 후손이 경강대왕이며, 경강대왕의 후손이 세조이다. 세조는 당(唐)나라 무종(武宗)이며, 무종(武宗)이 바로 세조이다. 숙종인 이형은 후당(後唐)시 토번(吐番)의 성(城)을 함락시키고 칠군(일곱의 군부대)을 거느리고 삼성(三城)을 장악한 명장이다.
고려 태조의 직계 조상은 당나라 무종인 회창(AD.841∼846년)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양서(梁書), 원사(元史), 명사(明史), 해동역사(海東繹史), 북사(北史), 송사(宋史), 책부원구(冊府元龜) 등 정사(正史)를 살펴보면 신라(新羅) 경순왕(AD.927∼935년)은 경습왕(敬襲王)으로서 당(唐)나라 무후(武后)인 무종(武宗) 회창(會昌)의 손자로 되어있다.
무후인 회창(AD.841∼846년)은 이신상(李紳相)가 장충무(張沖武)와 함께 떠돌이 도적들을 격파한 후당(後唐)의 26대 왕이다. 고려태조 왕건의 아버지는 후당(後唐)의 26대 왕인 무종 이전이며 회창이다.
이상과 같이 따져보면 고려태조 왕건은 신라 마지막 경순왕의 3촌뻘이 된다. 성씨가 다름으로 외삼촌뻘이 된다고 보아야한다. 왕건이 태어난 곳은 엄연히 대륙인 하남성 진주인 항성현 사람이며 직계 조상은 당(唐)나라 왕이다. 그러나 윗대 조상은 진(秦)나라로부터 한(漢)나라로 이어 내려왔다고 되어있다. 이상에서 대강 살펴본 왕건의 혈통은 엄연히 왕족의 자손이며 직계손이다.
왕건의 활동무대는 대단히 넓었다. 왕건은 기원후 890년에 전촉(前蜀) 왕으로 사천성 성도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왕건이 세운 전촉 나라는 후당(後唐)에 의해 등극한지 42년 후에 망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제10편에 있는 견훤전에서 왕건과의 활동무대가 어디인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견훤은 상주(尙州) 사람이다. 상주라면 경상도 상주가 아니다. 백제(百濟)가 망한 후에 후백제(後百濟)를 세워 등장한 인물이 견훤(甄萱)이다. 당나라 혈통인 왕건은 당당히 지금의 서안(西安)인 옛 서경(西京)이었던 개성(開城), 즉 송악군(松嶽郡)에서 다시 도읍했다. 고려는 신라에게서 항복을 받아 고려인 코리아로서 17대 인종 때 전 대륙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건(王建)의 묘(墓)는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 있다. 필자는 1993년 8월초 사천성 성도를 역사 탐방했다. 그러니까 1990년 여름부터 중국대륙을 직접 5번이나 답사한바 있다.
왕건의 묘 이름은 영릉(永陵)이다. 영릉은 왕건묘(王建墓)이다.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왕건의 묘는 사천성 성도에 분명히 있었다.
율곤 이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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