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중국 닝보서 통일신라시대 불상 발견

한부울 2009. 3. 3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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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닝보서 통일신라시대 불상 발견

[연합뉴스] 2009년 03월 31일(화) 오전 07:00

 

 

최응천 관장 "8세기 전ㆍ중반 작품"


중국에서 8세기 전ㆍ중반 무렵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발견됐다. 고대 한반도 불상이 중국에서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불교미술사 전공인 최응천 동국대박물관장은 "일본 도요타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ㆍ중ㆍ일 금속공예의 중세 교류를 연구하기 위해 지난 21-28일 중국 저장성 일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닝보시(寧波市)박물관 상설전시품에 포함된 통일신라시대 불상 1기를 확인했다"고 31일 밝혔다.


최 관장에 따르면 이 금동불 입상(높이 21cm)은 중국 당국이 1982년 닝보(寧波)시 천봉탑(天封塔) 지궁(地宮.탑의 지하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중국 남송시대 불상 여러 점, 은제 잔, 은제 향로 등과 함께 출토됐으며, 최근에서야 보존처리를 거쳐 지난 1월 개관한 닝보시박물관에 전시되기 시작했다.


이 불상은 함께 수습된 유물 중에 남송(南宋) 소흥(紹興) 14년(1144)에 제작했다는 명문이 있었던 데다, 발견 당시 전면에 걸쳐 푸른 녹이 끼어 있었고, 보존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남송시대 아미타불상으로 현지에 소개돼 있다.


출토 직후 최근까지 닝보시 소재 저명한 도서관인 천일각(天一閣)에 소장돼 있던 이 불상은 대좌(臺座)는 물론이고 불신과 광배까지 완전하게 갖춘 완형이며 "다른 무엇보다 보존상태가 완벽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에서나 볼 수 있는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최 관장은 평가했다.


정교한 눈매와 코 등의 얼굴 모습과 의습(옷 장식), 그리고 광배의 특징 등에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불상에서 부처는 오른손을 가슴 위로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린 자세지만 "아미타불의 수인(손 모양)을 취하지 않았으며 통견의 법의(法衣)는 목 앞에서 몇 번 접혀지고 가슴 앞에서 U자형 주름으로 흘러내리다 배 앞에서 양 Y자형으로 갈라져 흘러내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우드야나식(옷주름 양식의 하나) 불상"이라고 최 관장은 말했다.


대좌는 팔각 받침대에 투공 장식을 했으며 연꽃 이파리 8개로 만든 복련과 앙련으로 구성됐다.


광배는 두광(頭光.머리에서 나는 빛)과 신광(身光.몸에서 나는 빛)을 두른 뒤 가는 선으로 연결된 당초문을 투각했으며, 그 바깥 테두리를 따라 화염문(불꽃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나아가 광배에는 백색 진주를 군데군데 넣어 장식성을 더욱 높였다. 최 관장은 이 불상은 "당시로서도 최고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제작된 수작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은 8세기 전ㆍ중반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서 특히 닝보시 중앙에 있는 천봉탑의 지궁에서 다른 사리장엄구와 함께 매납됐다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당시 한ㆍ중 불교문화의 밀접한 교류 관계를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덧붙였다.


최 관장은 이어 "천봉탑 축조나 수리 등과 관련한 여러 문헌 자료나 출토 유물을 통해 볼 때 중국과 통일신라간 교류가 특히 많았던 장보고 시대 즈음에 중국 사찰에 봉안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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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주었다, 입증한 통일신라불상

연합뉴스2009.03.31 10:29

 

 

최성은 교수 "놀라운 발견, 8-9세기로 봐야"


중국 저장성(浙江省)의 유서 깊은 항구도시 닝보(寧波) 중앙에 있는 천봉탑(天封塔)이란 곳에서 출토품 형태로 확인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은 이 지역이 고대 한반도와 중국대륙 문화가 교섭하는 창구로 얼마나 중요했던 곳이었는지를 새삼 웅변하는 실물 증거로 평가된다.


이 불상은 한국 불교미술사(금속공예) 전공인 최응천 동국대박물관장이 최근 현지 조사를 통해 지난 1월 개관한 닝보시박물관의 상설 전시품 중에서 찾아냈다. 현지에서는 이 불상이 남송시대 중국 불상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최 관장이 촬영한 각종 사진 자료를 토대로 이 불상을 감정한 이 분야 전문 미술사학자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문화재위원)는 "언젠가는 나와야 할 유물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최 교수는 "중국의 다른 불상에 비해 광배가 유난히 크고, 불상의 입이 작고 어깨가 좁아지며, 옷 주름이 Y자형이라는 점 등으로 보아 이 불상이 통일신라에서 제작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다만 그 제작시기를 최 관장이 8세기 전ㆍ중반으로 추정한 대목을 나로서는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반으로 조정하고 싶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최 교수는 "이 천봉탑 지궁(地宮.탑의 지하실) 출토 불상에서 보이는 특징들이 신라에서는 8세기에 시작해 9세기 무렵에 꽃을 피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최 관장과 최 교수는 모두 이 불상 광배에 진주를 장식한 대목을 주시했다. 진주는 현재 10개가 박혀 있지만, 원래는 이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진주를 장식한 불상은 아직 국내에서는 확인된 적이 없다. 다만 최 교수는 "칠곡 송림사 전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습한 사리 장엄구에 원래는 진주가 달려 있었지만, 없어졌다는 보고가 있다"면서 "진주를 장식하는 금속공예기법에 대해서는 이 분야 전문가들의 심층적인 연구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닝보시박물관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임이 분명한 이 불상을 '유금 아미타불 동조상'(유<流 밑에金> 金阿彌陀佛銅造像) 즉 금을 입힌 청동 아미타불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최 관장은 전했다. 나아가 그 제작시기와 출토지에 대해서는 "남송 천봉탑 지궁 출토"(南宋 天封塔 地宮 出土)라고 적었다. 지궁이란 탑기단 밑에 각종 공양품을 안치하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지하 창고다.


박물관 측이 이렇게 설명하는 까닭은 1982년 천봉탑 지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불상을 포함해 140여 점에 이르는 각종 공양품을 수습했으며, 그 중 은제 불전(銀製佛殿)을 비롯한 일부 유물에서 남송 소흥(紹興) 14년(1144)에 제작했다는 명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닝보시박물관에서는 이 불상과 은제 불전을 나란히 전시 중이다.

이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발견이 갖는 의미에 대해 최 교수는 간단히 "우리도 (중국에) 주기도 했음을 증명한 데 있다"고 정리했다.


한ㆍ중 문화교류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이 분야 연구는 '일방적인 중국의 대(對) 한반도 문물 전파'라는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반도에서는 중국에서 직접 가져오거나, 그에서 짙은 영향을 받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는 반면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유물이 출토된 적은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 교수는 "이 불상은 한ㆍ중 문화교류사에서 놀라운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