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조선황제에게 받친 日本國 獻土物

한부울 2009. 3. 10. 22:19
 

조선황제에게 받친 日本國, 유구,  獻土物


世宗 1卷, 卽位年(1418 戊戌 /영락(永樂) 16年) 10月 29日(乙巳) 1번째기사

일본 비전주 중·일향주 태수·관서도 축전주 석성 관부가 칼·향 등을 바치다


○乙巳/ 日本國 肥前州 沙彌 吉見昌淸 遣人獻劍六把, 求布及虎皮等物, 賜苧麻布各五匹、虎皮五領。 日向州 太守 源氏島津元久 遣人獻香十斤、黑木百斤、川芎十斤、鉛五十斤、桂心、丹木各百斤、漆壺甁一對、丁子香四箇, 賜紬布五匹、緜布百七十五匹。 關西道 筑前州 石城 官府 平滿景 遣人獻香三十斤、藤五百本、胡椒、丁香、檳榔各二斤、紫檀百本, 賜緜布百五十匹。


일본국 비전주(肥前州) 의 중[佛弟子] 길견창청(吉見昌淸) 이 사람을 보내어 칼 6자루를 바치고 베(布)와 호피 등의 물건을 요구하므로, 모시와 삼베 각각 5필과 호피 5장을 하사하였다. 일향주(日向州) 태수 원씨(源氏) 도진원구(島津元久) 가 사람을 보내어 향 10근, 흑목(黑木) 1백 근, 천궁(川芎) 10근, 납[鉛] 50근, 계심(桂心)단목(丹木) 각 1백 근, 심호병(深壺甁) 한 쌍, 정자향(丁子香) 4개를 바치니, 명주 5필, 무명 1백 75필을 하사하였다. 관서도(關西道) 축전주(筑前州) 석성 관부(石城官府) 평만경(平滿景) 이 사람을 보내어, 향 30근, 등(藤) 5백 본, 호초·정향(丁香)·빈랑(檳榔) 각 2근, 자단(紫檀) 1백본을 바치므로, 무명 1백 50필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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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3권, 3년(1421 신축 /영락(永樂) 19년) 8월 6일(병신) 3번째기사

일기주 만호 도영이 조공을 바치다


一岐州 萬戶 道永 遣人獻丹木一百斤、肉豆蔲二十斤、貝箱一介、麒麟血十兩、檳榔十五斤。 其子 宮內大郞 亦因使人獻書, 因獻土宜。


일기주 만호(一岐州萬戶) 도영(道永) 이 사람을 보내어, 단목(丹木) 1백 근과 육두구(肉豆蔲) 20근, 패상(貝箱) 1개, 기린혈(麒麟血) 10냥쭝, 빈랑(檳榔) 15근을 바치고, 그 아들 궁내대랑(宮內大郞) 이 또한 사람을 보내어 편지와 토산물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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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1권, 5년(1423 계묘 /영락(永樂) 21년) 9월 24일(임인) 4번째기사

일본 축전주 태수 등원만정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禮曹佐郞 成念祖 答書曰:

能從太守, 輸誠修好, 良用爲喜。 所獻禮物, 轉啓收納。 仍將土宜正布一百五十匹, 就付回价。

大郞 修書, 仍獻土物, 丹木三百斤、胡椒一百十斤、硫黃一千斤、檳榔子五十斤、鉛燒八斤。 禮曹佐郞 成念祖 答書曰:

所獻禮物, 轉啓收納。 前者回禮使處過海糧米三十石, 專人傳送, 喜喜。 今又將糧米一百石, 付貴价送去, 希回禮使處傳送。 土宜正布一百八十匹照領。


예조 좌랑 성염조(成念祖) 가 서신에 답했는데, 그 서신에,

“ 태수(太守) 를 따라 성심을 다하여 수호(修好)하니, 진실로 기쁘게 생각하오. 바친바 예물(禮物)은 위에 아뢰어 수납(收納)하도록 하였소. 인하여 토산물인 정포(正布) 1백 50필을 돌아가는 사신에게 부쳐 보내오.”

라고 하였다. 대랑(大郞) 은 서신과 함께 토산물인 단목(丹木) 3백 근, 호초(胡椒) 1백 10근, 유황(硫黃) 1천 근, 빈랑자(檳榔子) 50근, 연소(鉛燒) 8근을 바쳤다. 예조 좌랑 성염조 가 이에 답서(答書)하기를,

“바친바 예물(禮物)은 위에 아뢰어 수납(收納)하도록 하였소. 전자에 회례사(回禮使)에게 과해량미(過海糧米) 30석을 전인(專人)으로 전해 보냈음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오. 지금 또 양미(糧米) 1백 석을 귀국 사신에게 부쳐 보내어 회례사(回禮使)에게 전해 주기를 희망하오. 토산물인 정포(正布) 1백 80필을 영수(領受)하기 바라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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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2권, 5년(1423 계묘 / 영락(永樂) 21년) 10월 4일(신해) 2번째기사

대마주 태수 종정성이 토산물을 바치다


○ 對馬州 太守 宗貞盛 使人來獻土物, 致書于禮曹曰:

貴國聖德神功太上 太宗 殿下去歲游雲之日, 以霄壤阻遠, 不致薦悼蕪辭, 今月專价至, 得審知。 以我先考執問, 故中腸不勝宿草之餘哀, 冀照。 香七斤, 麒麟血十三斤, 檳榔百二十六斤, 丹木三百七十斤。


대마주 태수(對馬州太守) 종정성(宗貞盛) 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고, 예조에 글을 보내기를,

“귀국의 성덕 신공 태상 태종 전하(聖德神功太上太宗殿下) 께옵서 지난해 승하 하옵신 날에는, 하늘과 땅이 막히고 멀어서 변변치 못한 말로 슬픈 뜻을 드리지 못하였더니, 금월에 보내신 사절이 이르러, 저의 선고(先考)775)가 죽은 것을 집문(執問)하심을 살펴서 알았으므로, 마음속으로 해가 묵은 남은 슬픔을 억제할 길이 없나이다. 보시고 살피시기 바랍니다. 향(香) 7근(斤), 기린혈(麒麟血) 13근, 빈랑(檳榔) 1백 26근, 단목(丹木) 3백 70근을 예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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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2권, 5년(1423 계묘 / 영락(永樂) 21년) 10월 25일(임신) 6번째기사

일본국 원의준·평만경 등이 토산물을 바치다


日本國 源義俊、 平滿景、 源省、 左衛門大郞 等使人獻土物。 義俊 進香一十斤、犀角四本、蘇膏油十二斤、硫黃三千斤、丹木一千斤、檳榔二十斤、胡椒一十斤、藤三百本, 回賜正布三百四十匹。 滿景 進犀角二本、獐腦〔樟腦〕一十斤、硫黃三千斤、大盆二箇、燄捷六斤、丹砂三斤、練緯二匹、蘇木一千斤、鉛四十斤、扇子一百把、小盆三十箇、胡椒一十斤, 回賜正布三百五十匹。 源省 進硫黃一萬斤、丹木一千斤、犀角五本, 回賜正布九百一十匹。 大郞 進沈香三片、丹木一千斤、硫黃六千斤、胡椒一百斤, 回賜正布二百九十匹。

일본국 의 원의준(源義俊) · 평만경(平滿景) · 원성(源省) · 좌위문대랑(左衛門大郞) 등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쳐 왔는데, 의준 은 향 10근, 서각 4본, 소고유(蘇膏油) 12근, 유황 3천 근, 단목 1천 근, 빈랑 20근, 호초 10근, 등(藤) 3백 본을 바쳤으므로, 정포 3백 40필을 회사하고, 만경 은 서각 2본, 장뇌 10근, 유황 3천 근, 대분(大盆) 2개, 염첩(燄捷)6근, 단사(丹砂) 3근, 연위(練緯) 2필, 소목 1천 근, 연 40근, 부채[扇子] 1백 자루[把], 소분 30개, 호초 10근을 바쳤으므로, 정포 3백 50필을 회사하고, 원성 은 유황 1만 근, 단목 1천 근, 서각 5본을 바쳤으므로, 정포 9백 10필을 회사하고, 대랑 은 침향 3편, 단목 1천 근, 유황 6천 근, 호초 1백 근을 바쳐 왔으므로, 정포 2백 90필을 회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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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4권, 6년(1424 갑진 /영락(永樂) 22년) 6월 16일(기미) 5번째기사

일본국 구주 원의준이 토산물을 바치다


○ 九州 原義俊 使人獻土宜。 扇子一百把、蘇木二千斤、金襴一段、銅五百斤、犀角二本、朱折敷二十片、絹一十匹、砂金一裹、丹砂四斤、檳榔子一十斤, 回賜正布五百三十匹。

구주 원의준(原義俊) 이 사람을 시켜 토산물을 바쳤는데, 선자(扇子) 1백 자루, 소목(蘇木) 2천 근, 금란(金欄) 1단, 동(銅) 5백 근, 서각(犀角) 2본, 주절부(朱折敷) 20편(片), 견(絹) 10필, 사금(砂金) 1봉지, 단사(丹砂) 4근, 빈랑자(檳榔子) 10근이었다. 돌아가는 편에 정포(正布) 5백 30필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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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5권, 6년(1424 갑진 /영락(永樂) 22년) 8월 21일(계해) 11번째기사

축주 자사 등원만정이 금란·비단·광견 등을 바치다


○ 筑州 刺史 藤源滿貞 使人獻金襴一段、羅一段、光絹二匹、生綃十匹、摺扇一百把、檳榔子一十觔、土黃二十筒、胡椒一十觔、犀角二頭、朱盤大小四十片、銅五百觔、蘇枋一百五十觔、紅綃一段、大刀十把、黃丹五觔, 回賜正布五百五十匹。


축주자사(筑州刺史) 등원만정(藤源滿貞)이 사람을 보내어 금란(金欄) 1필, 비단[羅] 1필, 광견(光絹) 2필, 생초(生綃) 10필, 접는 부채[摺扇] 1백 자루, 빈랑자(檳榔子) 10근, 토황(土黃) 20통(筒), 호초 10근, 서각 2개, 주반(朱盤) 크고 작은 것 40편(片), 구리 5백 근, 소방(蘇枋) 1백 50근, 홍초(紅綃) 1필, 대도(大刀) 10자루, 황단(黃丹) 5근을 바쳤으므로, 정포(正布) 5백 50필을 회사(回賜)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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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35권, 9년(1427 정미 /선덕(宣德) 2년) 1월 13일(임인) 7번째기사

일본국 일기주의 지주 원조신중에게 《대반야경》 등을 회사하다


○ 日本國 一岐州 知主 源朝臣重 使人求 《般若經》 , 且請重字印, 仍獻土物硫黃二千斤、檀香一百斤、龍腦五兩、黃(岑)〔芩〕五斤、陳皮一十斤、檳榔三斤、赤銅五十斤、大刀五腰, 回賜 《大般若經》 一部、圖書一顆、正布八十三匹。


일본국 일기주(一岐州)의 지주(知主) 원조신중(源朝臣重) 이 사람을 시켜 《반야경(般若經)》 을 구하고, 또 중자인(重字印)을 청하며 인하여 토산물인 유황(硫黃) 2천 근, 단향(檀香) 1백 근, 용뇌(龍腦) 5냥쭝, 황금(黃芩) 5근, 진피(陣皮) 10근, 빈랑(檳榔) 3근, 적동(赤銅) 50근, 대도(大刀) 5자루를 바치므로, 《대반야경(大般若經)》 1부(部), 도서(圖書) 1과(顆), 정포(正布) 83필을 회사(回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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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52권, 14년(1483 계묘 /성화(成化) 19년) 3월 4일(병신) 1번째기사

대마 도주의 요청에 대하여 의논하다


○丙申/傳曰: “ 對馬島 主請銅錢一萬緡, 何以處之? 其議于領敦寧以上。” 鄭昌孫 議: “本國不用錢貨, 且所儲不多, 準數從請爲難。 半減給之, 何如?” 尹弼商 議: “ 宗貞國 , 今請兩事, 彼亦豈不知重且大也? 然而敢請者, 雖以丹木、檳榔、丁香爲之辭, 必有以也。 若不聽從, 藉此生釁, 亦未可知。 銅錢則答以。 我國不用久矣。 餘儲無有, 只以布貨量給, 且厚賜雜物, 以慰其心何如?” 李克培 議: “島主銅錢之請, 以求 胡 椒、丹木、丁香、檳榔之種於 南蠻 爲辭, 此亦因我國請 胡 椒種, 有是辭耳。 銅錢雖非我國所産, 所儲亦多。 臣以謂一萬緡, 雖難準給, 從優給之, 以副其意, 何如?” 尹壕 議: “銅錢非我國興用之物, 若有所儲, 量數從請, 何如?”

 

전교(傳敎)하기를,

“대마 도주(對馬島主)가 동전(銅錢) 1만 민(緡)13254) 을 청구하는데, 이를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그것을 영돈녕(領敦寧) 이상의 관원에게 의논하도록 하라.”

하니, 정창손(鄭昌孫) 은 의논하기를,

“우리나라는 전화(錢貨)를 사용하지 않고 또 비축한 것도 많지 않으므로 수량에 준(準)하여 청구에 따르기는 어렵겠으니, 절반을 줄여서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윤필상(尹弼商) 은 의논하기를,

“ 종정국(宗貞國) 이 지금 두 가지 일을 청구했는데, 저들도 어찌 이 일이 중하고 큰 것임을 알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감히 청구하는 것은, 비록 단목(丹木)·빈랑(檳榔)· 정향(丁香) 을 핑계로 삼지마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를 빙자하여 흔단(釁端)을 일으킬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동전(銅錢)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고 대답하고, 나머지 비축된 것이 없으니 다만 포화(布貨)로써 헤아려 주며, 또 잡물(雜物)을 후하게 하사(下賜)하여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이극배(李克培) 는 의논하기를,

“대마도주(對馬島主)가 동전(銅錢)을 청구한 것은 호초(胡椒)·단목(丹木)· 정향(丁香) ·빈랑(檳榔)의 종자(種子)를 남만(南蠻)에서 구한다는 일을 가지고 핑계로 삼고 있는데, 이것도 우리나라가 호초(胡椒)의 종자를 청구하는 것으로 인하여 이런 핑계가 있는 것입니다. 동전(銅錢)은 비록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비축된 바가 또한 많으니, 신(臣)은 생각하건대, 1만 민(緡)은 비록 수량에 준(準)하여 지급하기가 어렵겠지마는 넉넉하게 지급하여 그들의 뜻에 응(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윤호(尹壕) 는 의논하기를,

“동전(銅錢)은 우리나라에서 생산해 사용하는 물건은 아니지마는, 만약 비축한 것이 있으면 수량을 헤아려 청구에 따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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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161권, 14년(1483 계묘 /성화(成化) 19년) 12월 18일(정축) 2번째기사

유구 국왕 상원이 신사랑을 보내어 내빙하고 서계를 올리다

 

○ 琉球國 王 尙圓 , 遣 新四郞 來聘。 其書契曰:

南北萬里, 海路險難, 舟船逞還, 不敢容易。 是以不克累年修聘禮, 而思慕盛德, 未嘗一日相忘, 高明所照, 必諒此心矣。 成化 十四年初秋, 護送漂流人兩三輩, 還着於貴國之次, 奉投不腆土宜, 聊表微忱, 辱報以件件之珍産, 所謂璚瑤之報也。 一一寶秘, 豈勝感愧乎? 方今以 新四郞 爲專使, 以 耶次郞 爲副使, 致塵露謝忱, 兼啓區區之願望也。 雖 新四郞 者, 非我國人, 嘗能盡皇華之美, 以達于殿下。 由是今亦以爲專使也, 亮察亮察。 我國累世, 推誠佛敎, 締緝伽藍, 設金像, 安毳徒, 專莊嚴福慧, 然三寶之內, 猶以未具法寶, 爲觖典也。 是故前此, 求(昆)〔毘〕盧法寶一藏, 報書諭曰: “因諸處求去已盡矣。” 今更切望以一藏, 付回介, 俾南極不毛之地, 永霑佛化。 仍求綿紬五千匹、緜布五千匹, 蓋成(昆)〔毘〕盧法寶殿創建之資者也。 希令我願滿足, 荷恩莫大焉。 瑣瑣方物若干, 具在別幅。 伏惟照領, 餘冀珍重。 不悉。

別幅, 香五十斤, 胡椒五百斤, 桂心千斤, 鬱金百五十斤, 檳榔子百斤, 肉豆蔲百斤。

 

유구국왕(琉球國王) 상원(尙圓) 이 신사랑(新四郞) 을 보내어 내빙(來聘)하였는데,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남북(南北) 만리에 바닷길이 험난하여 배로 왕래하기가 쉽지 아니합니다. 이로 인하여 여러 해 동안 빙례(聘禮)를 닦지 못하였습니다만, 성덕(盛德)을 사모하여 일찍이 하루도 서로 잊을 수 없었으니, 고명(高明)하심으로써 환히 알고 계시는 바이므로 반드시 이러한 마음을 양해하실 것입니다. 성화(成化) 14년14508) 초가을에 표류(漂流)하는 두세 무리를 호송(護送)하여 귀국(貴國)에 돌려보내는 편(便)에 후하지 못한 토산물을 받들어 올려서 작은 정성을 표하였었는데, 물건마다 진귀한 생산품으로 보답하여 주셨으니, 이른바 훌륭한 선물로 보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보배롭게 간직하였으니, 어찌 감사하고 부끄러움을 이기겠습니까? 이제 신사랑(新四郞)을 전사(專使)로 삼고 야차랑(耶次郞)을 부사(副使)로 삼아 작은 예물을 바쳐서 정성을 나타내며 겸하여 구구한 소원을 아룁니다. 비록 신사랑 이란자는 우리나라 사람은 아닐지라도 일찍이 능히 황화(皇華)의 아름다움을 다하여 전하(殿下)에게 도달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번에도 전사(專使)로 삼았으니, 밝게 살피소서. 우리나라는 대대로 불교(佛敎)에 정성을 바쳐서 가람(伽藍)을 짓고 금상(金像)을 설치하고 취도(毳徒)를 두어 장엄(莊嚴)과 복혜(福慧)를 오로지 하였으나, 삼보(三寶)가운데 법보(法寶)를 갖추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여깁니다. 이 때문에 앞서 비로 법보(毘盧法寶) 1장(藏)을 구하였더니, 답서에 유시(諭示)하기를 ‘여러 곳에서 구해 갔기 때문에 이미 다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1장을 돌아오는 사신편에 부쳐 주어서 남극(南極)의 불모지(不毛地)가 불화(佛化)에 영구히 젖게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하여 면주(綿紬) 5천 필과 면포(綿布) 5천 필을 구하는데, 이는 대개 비로법보전(毘盧法寶殿)을 창건하는 자본입니다. 바라건대,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여 주신다면 은혜를 입음이 막대하겠습니다. 자질구레한 방물(方物) 약간이 별폭(別幅)에 갖추어 있으니, 살펴서 받으시기를 삼가 바랍니다. 끝으로 진중(珍重)하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하였다. 별폭은 향(香) 50근(斤), 호초(胡椒) 5백 근, 계심(桂心) 1천 근, 울금(鬱金) 1백 50근, 빈랑자(檳榔子) 1백 근, 육두구(肉豆蔲) 1백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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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토물(獻土物)목

흑목(黑木) 천궁(川芎) 납[鉛] 계심(桂心) 단목(丹木)심호병(深壺甁) 등(藤) 자단(紫檀) 육두구(肉豆蔲) 패상(貝箱) 기린혈(麒麟血) 호초(胡椒) 유황(硫黃) 연소(鉛燒) 과해량미(過海糧米) 소고유(蘇膏油) 대분(大盆) 염첩(燄捷) 단사(丹砂) 연위(練緯) 선자(扇子) 소목(蘇木) 사금(砂金) 빈랑자(檳榔子) 금란(金欄) 광견(光絹) 생초(生綃) 주반(朱盤) 소방(蘇枋) 홍초(紅綃) 황단(黃丹) 단향(檀香) 용뇌(龍腦) 황금(黃芩) 진피(陣皮) 적동(赤銅) 정향(丁香) 종자(種子) 울금(鬱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