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매장에 등장한 '청동12지신상' 중국 전쟁 중 약탈한 우리 유물 돌려줘
[오마이뉴스] 2009년 02월 19일(목) 오전 09:46
▲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 침략과 약탈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로 꼽히는 위안밍위안의 서양루 폐허.ⓒ 모종혁
"위안밍위안(圓明園)의 청동 12지신상은 전쟁 중 불법 약탈당한 유물로 이를 경매에 부치는 것은 중국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국제법에도 위배된다. 해당 유물은 중국에 반환되어야 마땅하다." -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
"이번 사건은 중국인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하고 있다. 위안밍위안을 불 지른 것만 해도 중국인에게 깊은 재난성의 기억을 남겨주었는데, 청동 12지신상을 경매에 부쳐 중국인에게 더욱 깊은 상처를 입혔다." - 장홍(張鴻) CCTV '금일관찰' 진행자
지난 1860년 약탈당했던 한 유물로 인해 중국인들이 분노하고 있다. 오는 23~25일 세계적인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프랑스 파리에서 위안밍위안에서 유실된 청동 12지신상 중 쥐머리상과 토끼머리상을 경매에 부치겠다고 공표하면서 중국이 떠들썩하다.
중국정부는 외교부 공식 성명을 잇달아 내면서, 위안밍위안에서 약탈된 유물의 소유권이 명백히 중국에게 있다며 청동상 반환을 촉구했다. 류양(劉洋), 리싱펑(李興鋒) 등 변호사 81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경매를 취소시키고 반환 소송에 나섰다. 경매 저지를 위해 프랑스에 있는 중국 유학생들도 항의 시위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 경매에 나온 청동 12지신상은 지난해 사망한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소장했던 것이다. 청동 12지신상은 청나라 건륭제 때 위안밍위안에 설치됐었다. 현재 12지신상 중 소머리상, 호랑이머리상, 원숭이머리상, 돼지머리상, 말머리상은 중국에 있고 용머리상, 뱀머리상, 양머리상, 닭머리상, 개머리상은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브 생 로랑 가문은 쥐머리상과 토끼머리상을 팔아 판매 수입금 전액을 이브 생 로랑이 생전에 세운 에이즈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크리스티 측은 두 청동상의 최초 경매가를 2억 위안(한화 약 420억원)으로 책정해 놓은 상태다.
그동안 중국은 이브 생 로랑이 소장한 쥐머리상과 토끼머리상의 반환을 여러 차례 요구해왔다. 이에 대해 프랑스는 정부가 나서서 약탈 유물의 무상 반환은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 해왔다. 약탈 문화재의 대국인 프랑스 입장에서 유물을 반환하면 자국 내 다른 외국 문화재에 대해서도 같은 요구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도 약탈된 문화재를 경매로 구매하면 약탈 행위를 인정한 꼴이라며 경매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중국 언론과 변호인단은 중국정부가 반환 소송의 원고로 나서고 소송비용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위안밍위안의 정문. 위안밍위안은 중국 최대의 황실 정원이었다ⓒ 모종혁
▲ 폐허가 된 서양루 해기취의 전경. 1860년에 영·불 연합군의 방화로 파괴된 뒤 20세기 내내 크고 작은 약탈을 당하여 지금의 모습처럼 초라해졌다.ⓒ 모종혁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청동 12지신상... 중국 "약탈 유물 반환해라"
위안밍위안은 청나라 황실의 정원이었다. 1709년 강희제(康熙帝)가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서북쪽으로 10여㎞ 떨어진 곳에 여름 별장으로 처음 조성했다. 본래 강희제는 넷째 아들인 윤진(胤?)을 위해 위안밍위안을 지었는데, 윤진이 뒷날 옹정제(雍正帝)로 즉위하면서 황실 정원으로 자리 잡았다.
옹정제를 이은 건륭제(乾隆帝)는 위안밍위안을 더욱 크게 확충했다. 위안밍위안 동쪽에 창춘위안(長春園)과 치춘위안(綺春園)을 새로 지었다. 치춘위안은 나중에 완춘위안(萬春園)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처럼 면적 320㏊에 달하는 위안밍·창춘·치춘 등 위안밍위안 3원 구조를 갖추게 됐다.
건륭제는 누구보다 위안밍위안을 사랑한 황제였다. 그는 한 해 중 적지 않은 시간을 위안밍위안에서 기거하면서 정무를 보았다. 서구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건륭제는 환갑을 기념하여 창춘위안 북쪽에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서양루'(西洋樓)를 지었다.
서양루는 특별 초빙한 이탈리아 선교사 카스틸리오니와 프랑스 건축가 베노아가 힘을 합쳐 설계했다. 나한상에 서양 꽃인 달리아를 새겨 넣는 등 유럽 로코코 양식과 중국 전통양식을 훌륭하게 혼합한 건축물이었다. 서양루 중 해기취(諧奇趣)에는 멋들어진 대형 분수대도 있어 건륭제가 밤놀이를 즐겨했다.
위안밍위안과 치춘위안에는 중국 강남 지방의 이름난 정원과 역대 왕조의 특색 있는 정원을 모방하여 조성했다. 3원 중 가장 큰 위안밍위안에는 호수 위에 9개의 인공 섬을 만들고 황궁 기능의 건축물을 건립했다.
호수 중 푸하이(福海)에는 신선이 살고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펑라이(蓬萊), 팡장(方丈), 잉저우(瀛州) 등 작은 3개 섬이 있어 뛰어난 경치를 자랑했다. 중국인들은 위안밍위안을 '만 개 정원 중의 (최고) 정원'(萬園之園)이라 부를 만큼, 이허위안(?和園)과 더불어 중국 정원 예술의 최고봉으로 손꼽았다.
150년간 청나라 황제들의 사랑을 받던 위안밍위안이 오늘날과 같이 폐허로 변한 것은 19세기 중엽이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는 청나라가 불평등조약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최신무기로 무장한 영·불 연합군은 톈진(天津)을 점령한 뒤 베이징을 공략했다.
베이징에 입성한 영·불 연합군은 청 황제가 피신했다고 알려진 위안밍위안을 침입, 무자비한 약탈을 자행했다. 당시 위안밍위안은 청나라 황실의 금은보화, 골동품, 서화, 서적 등을 모아놓은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었다. 영·불 연합군은 나흘 동안 가져갈 수 있는 귀중품을 모두 탈취한 뒤, '대약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위안밍위안을 불 질러 잿더미로 만들었다.
▲ 원형에 맞추어 만든 청동 12지신상 모형. 이 중 소머리상, 호랑이머리상, 원숭이머리상, 돼지머리상, 말머리상 등 5개만 중국으로 되돌아왔다.ⓒ 위안밍위안관리처
'황실 정원' 위안밍위안의 수난… 프랑스가 가장 많이 약탈해
위안밍위안의 수난은 20세기에 계속 이어졌다. 청나라 황실은 19세기 후반 서태후의 주도로 위안밍위안의 일부를 복원했다. 하지만 1900년 의화단의 난을 빌미로 중국을 침략한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8개 제국주의 연합군은 위안밍위안을 또다시 약탈하고 방화했다.
위안밍위안 유물의 약탈에는 중국인도 나섰다. 신해혁명 후 군벌과 관료는 위안밍위안 건축물 자재를 몰래 훔쳐 개인 별장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은 옛 4구(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습관) 타파를 외치며 위안밍위안 유물을 파괴했다.
현재 위안밍위안 관리처는 국내외로 유출된 위안밍위안 유물이 수만 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해외에는 프랑스·영국·미국에 가장 많은데, 1860년 약탈을 주도했던 프랑스에 진귀하고 화려한 유물이 몰려있다.
청나라 황실의 보물창고였던 곳답게 풍텐블로 궁전박물관, 프랑스군사박물관, 프랑스국가도서관 등의 중국 유물 중 으뜸으로 꼽힌다. 풍텐블로 궁전박물관의 중국관 소장 유물 대부분은 위안밍위안에서 약탈해간 것이다. 중국 내에도 500여 점의 유물이 전국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의 품에 흩어져 있다.
중국 당국은 강성해진 외교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물 반환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1997년 이후 여러 경로로 중국에 되돌아온 각종 문화재는 3600여 점에 달한다.
청동 12지신상 중 돼지머리상과 말머리상은 금세기 들어 중국의 품에 돌아왔다. 마카오 도박왕인 스탠리 호(何鴻桑)가 2003년과 2007년에 각각 700만 홍콩달러(약 130억원)와 880만 홍콩달러(약 163억원)를 들여 구입해 중국정부에 헌납했다. 말머리상의 매매가는 청대 조각 매매가로는 최고액으로 추정가의 6배나 기록했었다.
말머리상도 1세기 동안 종적이 묘연하다가 1989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 등장해 대만 골동품 수집가에게 팔렸었다. 이후 다시 경매에 나오게 된 것을 스탠리 호가 구입한 것이었다. 당시 스탠리 호는 "거액을 줄 만한 가치가 있다"며 "나라를 위해 그 정도 돈도 못쓰겠느냐"고 말해 모든 중국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쥐머리상과 토끼머리상에 중국인들이 강력히 대처하는 것도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위안밍위안은 아편전쟁 이후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게 시달린 뼈아픈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 서양루에는 미궁도 만들어져 왕자와 공주들의 놀이터로 사랑받았다ⓒ 모종혁
▲ 관광객의 놀이터와 같은 서양루 해연당(海晏堂). 서구 열강의 파괴 뒤에도 중국인의 무지와 몰지각으로 훼손된 것도 적지 않다.ⓒ 모종혁
헝띠엔에 들어설 새로운 위안밍위안… 짝퉁인가, 복원인가
유물 반환 문제와 더불어 위안밍위안 복원도 논란거리다. 작년 2월 중국 영화제작사 헝띠엔(橫店)그룹 쉬원융(徐文榮) 명예회장은 저장(浙江)성 헝뎬시 영화촬영센터 부근에 위안밍위안을 원형 그대로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밍위안 복원공사를 위해 헝띠엔그룹은 모두 400㏊의 부지를 확보하고 건설 예상자금 200억 위안(약 4조1000억원) 중 10%를 마련한 상태다. 헝띠엔그룹은 확보된 건설 자금 중 11억 위안(약 2310억원)을 투자 및 헌금을 통해 조달하고 나머지 자금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확보하기로 했다. 2013년 완공 예정인 새로운 위안밍위안은 옛 위안밍위안에 있던 수백 개의 동·서양식 건축물과 정원, 분수 등을 복원할 예정이다.
본래 작년 착공될 예정이었던 위안밍위안 복원공사는 각계의 반발로 늦어지고 있다. 쉬 회장은 "위안밍위안의 파괴와 소실은 중국의 치욕이었다"며 "새로운 위안밍위안의 건설은 중국 인민들의 마음에 새겨진 수치심을 지우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대하는 역사학계의 입장도 단호하다. 롼이싼(阮儀三) 퉁지(同濟)대 교수는 "영·불 연합군에 의해 폐허가 된 오늘날 위안밍위안은 이미 역사의 일부"라며 다른 지역에서 복원되는 위안밍위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쉬자루(許嘉?)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은 "위안밍위안 화재로 건축 설계도가 소실되어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위안밍위안관리처는 헝띠엔그룹의 복원사업을 반대하면서 "위안밍위안의 복원이 아닌 '짝퉁' 위안밍위안의 건립일 뿐"이라며 비난했다. 중톈량(宗天亮) 위안밍위안관리처 대변인은 "원래 자리가 아닌 헝띠엔시에서 위안밍위안을 복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위안밍위안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경우 법적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헝띠엔그룹의 복원사업에 자극받아 위안밍위안 관리처는 작년 7월 301년 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위안밍위안의 일부 지역을 일반에게 개방했다. 공개된 구역은 호수와 인공 섬 9개 및 그 주변 지역으로 위안밍위안 전체 면적의 4/5에 달한다. 나머지 1/5도 2010년 개방될 예정이다.
이번 위안밍위안의 청동 12지신상 유물 경매와 반환 문제는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중국만큼이나 서구 열강과 일본에게 문화재를 많이 약탈당한 나라다.
위안밍위안 유물 약탈의 주범인 프랑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를 지금까지 반환하지 않고 있다. 국제법상 전쟁 중 약탈한 문화재에 대해서는 반환할 의무가 있지만, 서구 열강과 일본은 힘의 논리를 앞세워 모른 채 하고 있다.
위안밍위안 복원문제도 수많은 문화재를 소실한 한국의 입장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한 번 우리 손을 떠난 우리 문화재는 다시 돌려받기 힘들다는 냉정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다시금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서양루 해연당의 대수법(大水法)을 장식했던 부조물. 외부로 유실됐다가 금세기 들어서야 위안밍위안으로 되돌아왔다.ⓒ 모종혁
[오마이뉴스 모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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