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朝鮮軍은 왜 淸道旗를 들었는가?

한부울 2009. 2. 22. 18:10
 

朝鮮軍은 왜 淸道旗를 들었는가?

[시대소리뉴스-백제사] 2008/02/04 [02:18]


“女眞”이 “朝鮮”이며 “金”이자 “淸”

 

자 드디어 조선제국입니다. 조선제국을 다루기에 앞서 저의 연재 일반에 대해 집고 넘어 갈 것이 있습니다.


저 의 이야기는 기존의 상식을 뒤집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독자들께서 계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태도를 존중합니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자세를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세 없이 기존에 누가 이랬는데 넌 왜 그러냐하는 투로 말을 하는 것은 최소한 시대소리에서 만큼은 몰상식인 것입니다. 시대소리는 기존의 틀에 얽매이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학회에 논문 내면 이런 글은 쓰지 않습니다. 기존 학문의 이론 틀 내에서 저의 논리를 전개할 뿐입니다. 저는 그런 틀이 왜 그렇게 형성되었는지에 의문을 갖지만 일단은 그 틀 내에서 논리를 전개합니다. 누가 지금의 학문의 틀을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그런 틀에 얽매이지 말고 기존의 상식을 뛰어 넘어 진정한 상식으로 문제를 볼 필요도 있습니다. 어떤 독자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朝鮮에서 高麗는 국호로 쓰일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러한 증거로 제시한 것이 바로 대진국(大震國)에서 고려(高麗)를 국호로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발해(渤海)로 널리 알려진 대진국에서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제가 연재 1편에서 다룬 사실입니다.


나중에 대진국을 조금 다룰 것이지만 일단 이것만 집고 넘어 가겠습니다. 우리가 기존 상식으로 아는 조선은 역성혁명으로 왕씨의 나라 고려를 쳐 죽이고 세워진 나라입니다. 반면에 대진국의 대조영(大祚榮)은 태왕 고려(太王 高麗)를 없애고 대진국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당(唐)과 투쟁하며 태왕 고려(太王 高麗) 세력들을 규합해서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건국의 주체가 다릅니다.


그 러하기에 우리가 기존 상식으로 아는 “왕조국가 조선”에서 “고려”를 운운한다는 것은 바로 반역이며 열도에서 고려를 숭상한다는 것은 전쟁선포인 것입니다. 그런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 家康)는 열도 전역에 고려개(高麗犬)를 세웁니다. 다음에 다룰 것이지만 그는 반도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대마도(對馬島)에 고려문(高麗門)도 세웁니다. 조선에서 손님이 오는데 이를 환영하기 위해 고려문을 세웠다는 것이지요.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에 화해의 손짓을 내밀면서 고려문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정말 서로 잘 지내자고 하는 행동일까요? 그런데 에도시대(江戸時代)에 반도와 열도는 그야말로 평온했습니다.


그런데 대진국은 어떠했습니까? 대진국은 태왕 고려(太王 高麗)세력, 즉 부여계(夫餘系)를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나라를 열었습니다. 그러하기에 고려를 국호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세력간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고려”는 문명적·민족적 정체성이었기에 언제나 국호로 쓰일 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와 정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지금 남북이 통일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국호는 무엇이 될까요? 문명적·민족적 정체성만 가지고 국호가 결정될 것 같습니까? 어느 세력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국호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과연 대한민국이 국호가 될까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호가 될까요? 아니면 고려공화국? 그것도 아니면 신라민국?


예 전에도 글을 썼지만 우리는 지금 “역사 찾기”라는 퍼즐 맞추기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해경 시대소리 발행인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배우는 전 세계 역사라는 것이 1911년에 정립된 역사라고 합니다. 당시 서양과 동양의 맹주였던 영국과 일본은 공동으로 1911년에 세계대백과사전을 발간하였는데, 바로 그것이 역사왜곡의 최종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조작해 놓은 역사에서 새로운 하나의 단서를 추가해 가며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역사 찾기 게임 선수들은 서로 간에 격려해 줄 필요가 있는데 우리에게 이것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필자는 예전에 고구려연구회 서길수(徐吉洙) 교수님과 같이 만주(滿洲)에 있는 태왕 고려(太王 高麗) 유적을 답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에게 본 받을 점이 많았지만 제일 본 받을 점은 남을 인정하고 예를 갖추는 태도였습니다. 그분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예를 갖추어 대하고 그들이 발간하는 책도 꼭 돈을 주고 사 오십니다. 물론 토론장에서는 거침없는 토론을 하시지만 어디까지나 예를 갖추십니다. 그런 태도가 소위 민족사학을 추구한다는 분들에게서 없어 보임이 참 아쉽습니다.


서설이 너무 길었습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동경 우에노공원(上野公園)에 동경국립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이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 이 박물관에서 도쿠카와(德川) 특별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저를 더욱 놀랍게 만든 것은 “도쿠가와(德川)” 앞에 “大”자를 붙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전의 정식 명칭은 “大德川展”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사람 이름 앞에 “大”자를 안 붙인다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대장금(大長今)” 드라마가 일본에서는 “궁정여관 장금의 맹세(宮廷女官チャングムの誓い)”라는 이름으로 상영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大”자를 사용했다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있어 도쿠가와 가문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가문을 연 고려 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저에게 고려제국사를 반드시 찾으라고 2가지 선물을 주었습니다. 실로 놀라운 경험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우리의 참 역사를 찾고자 한 저에게 이런 선물을 주다니... 하기야 장군도 편히 잠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왜곡된 역사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추구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말입니다. 저는 점심밥도 굶으면서 그 2가지 선물을 한동안 쳐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선물 보따리를 풀어 보이겠습니다.


아래 그림은 특별전에 있었던 조선통신사 행렬도 중 일부입니다.(물론 “조선통신사”라는 명칭은 당대에는 없었고 근래에 만들어진 용어임을 독자들께서는 아셔야 합니다.) 그림은 통신사 행렬의 맨 앞부분입니다. 깃발에 무엇이라고 써 있나요? 두 글자 “淸道”가 보일 것입니다. 저 깃발은 朝鮮軍의 淸道旗입니다.

 

                           ▲ 淸道旗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통신사 © 인터넷 검색

 

네 이버 검색에는 淸道旗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조선 시대에, 행군할 때 앞에서 길을 치우는 데에 쓰던 군기(軍旗). 파란색 사각기로 깃발에 ‘淸道’라는 글자가 쓰여 있으며 붉은색의 화염각이 달려 있다. 깃대 끝은 창인(槍刃)으로 되어 있으며, 영두(纓頭)와 주락(朱駱)이 달려 있다.”


저는 저 설명에서 朝鮮軍의 깃발이 淸道旗라는 사실만 취하려고 합니다. 통신사 행렬에는 淸道旗 외에도 形名旗, 巡視旗, 令旗가 있습니다. 이 세 깃발 중 形名旗는 용이 그려진 깃발로 황제를 상징한다고 할 것입니다. 巡視旗와 令旗는 한자가 의미하는 바대로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행렬에서 조선을 상징하는 깃발은 淸道旗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도 淸道를 단순히 “깨끗한 길”로 해석해서 淸道旗는 조선군이 행군할 때 길을 치우는데 쓰던 깃발이라고 봐야 할 까요?

 

                            ▲ 形名旗를 잘 모시면서 행진하는 통신사 ©인터넷 검색

 

어 느 시대에도 국가가 파견한 군대는 그 국가의 상징이 담긴 깃발을 앞장세우고 행군하기 마련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타국의 깃발을 꺽어 버리고 자국의 깃발을 세우는 것으로 종결될 만큼 깃발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에서 보낸 통신사에 조선을 상징하는 깃발이 하나도 없었다면 말이 됩니까? 그나마 있는 깃발이 겨우 행군할 때 길을 치우는데 쓰던 깃발이라면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길을 치우는데 쓰는 깃발도 있으면서 정작 조선을 상징하는 깃발이 없었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합니다.


어떤 분들은 짐이 곧 국가인 왕조시대에 황제를 상징하는 깃발만 있으면 되었지 다른 깃발이 뭐가 필요했겠는가를 말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 위해서라도 자국의 깃발은 필요한 것입니다. 전쟁터에 황제를 상징하는 깃발을 언제나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저 그림을 아무런 선입관 없이 다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행렬의 맨 앞에는 당연히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이 등장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淸道는 “깨끗한 길”이라고 단순히 해석하기 보다는 “淸이 가는 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朝鮮이 바로 淸이라는 말이 됩니다.

 

                                       ▲ 다른 淸道旗 그림 1©일본 인터넷 검색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대륙 조선에 대해 연구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륙에 조선이 있었다면 淸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조선이  淸이라면 이러한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 동안 여러 사람들이 대륙 조선의 실체를 너무나 힘들게 찾았던 것이지요.


다시 한번 우리가 세뇌당한 朝鮮과 淸을 생각해 봅시다. 옛날에는 특히 글자 한자 한자를 중요하게 여겼던 시대인데 속국과 다름없는 조선에서 “淸”을 조선군이 지나가는데 길이나 치우는 깃발에 사용했다면 조선국왕은 바로 목이 달아나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朝鮮이 淸인데 그런 일이 있을 리 만무한 것입니다.


朝鮮과 淸. 그리고 金. 朝鮮은 옛 단군 조선(檀君 朝鮮) 시대에는 국가명이면서 민족명(종족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조선은 민족명으로 정착이 되고, 金과 淸이 국가명으로 쓰이게 됩니다. 우리는 대김제국(大金帝國, 大淸帝國)의 민족명을 흔히 女眞이라고 적으며 “여진”으로 발음합니다. 그러나 “여진”은 옳은 발음이 아닙니다. 당시에 女眞은 “주신(珠申)”으로 발음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외국의 포털사이트에서 “女眞”을 검색해 보기 바랍니다. 서양에서는 “女眞”을 “주신(Juchen, Jurchen, Ju-chen)”으로 발음했음을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 시대소리 독자들께서도 “숙신(肅愼), 식신(息愼), 직신(稷愼), 조신(鳥愼), 주신(珠申), 주신(州愼)” 등으로 기록되었고 발음되었던 실체가 바로 “조선(朝鮮)”임은 이미 신채호(申采浩), 정인보(鄭寅普), 안재홍(安在鴻) 선생 등이 밝혀 두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또한 독자들께서도 淸이 金을 이은 나라라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金"을 "금"(성씨로 쓰일 대는 “金”을 “김”으로 발음함)으로 "淸"을 "청"으로 발음합니다. 그러나 이도 옳지 않습니다. 金과 淸 모두 “김”으로 발음해야 옳습니다. 大金(淸)帝國을 서양에서는 언제나 “김(kin, jin, chin)”으로 발음했습니다.

 

                                       ▲ 다른 淸道旗 그림 2 ©일본 인터넷 검색

 

프 랑스는 大金帝國에 대한 알파벳 표기를 “kin, jin, chin”로 쓰다가 결국 “chin”으로 정합니다. 그런데 프랑스어를 아시는 분들께서는 프랑스어에는 명사를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며 여성 명사에는 보통 뒤에 “e"를 붙인다는 것은 상식으로 아실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chin”을 여성으로 파악하고 뒤에 “e”를 붙여 “chine”으로 표기하기로 최종 결정합니다. 결국 “chine”에 여성 정관사  “la”를 앞에 붙여 “La Chine”으로 大金帝國에 대한 표기를 공식화 합니다. 지금도 프랑스는 대륙에 있는 국가를 “La Chine”으로 표기합니다.


지금도 “La Chine”으로 표기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大金帝國을 이은 大淸帝國도 “La Chine”으로 표기했으며 또한 그렇게 발음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 중국에서도 淸을 “Ching”으로 공식 표기했던 바를 저는 확인했습니다.(자금성을 영어 알파벳으로 Imperial Palace of Ming and Ching dynasty로 표기한 것으로부터 확인한 것입니다.)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지요. 지금은 공식적으로 어떻게 표기가 되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大金帝國이 국호를 “金”에서 “淸”으로 바꾼 이유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숭상하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자는 바꾸었을지언정 “김(Chine)”이라는 음가는 이어 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大金帝國이던 大淸帝國이던 “김”으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김”을 고집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잘 아시겠지만 대김제국[大金(淸)帝國]은 신라(新羅)를 그 뿌리로 둔 “Gold(김)”의 나라이며 “Gold(김)[애신각라(愛新覺羅)]”를 성씨로 하는 황제(皇帝)가 통치하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신라의 서울이 원래 “김성(金城, Gold City)”이었던 점이나 신라의 건국에 관한 일련의 이야기를 통해 왜 신라가 “Gold(김)”의 나라인 가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곳에서 설명이 이루어지기에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金”을 언제부터 “성씨”는 “김”으로 “Gold”는 “금”나누어 발음하게 되었는가 입니다. “金”은 “김”으로 발음되어 성씨로도 쓰이며, 또한 “Gold”의 의미를 지니며, 국호로도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金(성씨로서의 김, 국호로서의 김, Gold로써의 김)”에서 “금(국호로서의 김, Gold로써의 김)을 분리시킨 것도 중요한 역사왜곡의 출발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大金帝國을 “대김제국”으로 발음했을 때와 “대금제국”으로 발음했을 때 우리가 우리와 연관시킬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왜 영국은 “Chine(김)”을 “China(차이나)”로 바꾸어 “김”의 음가를 없애버렸을까요? 영국 사람들도 “김”이 “차이나”로 들렸을 리 만무하고, 거의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는 프랑스가 만들어 놓은 알파벳 표기를 굳이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바로 역사왜곡을 하기 위한 사전작업 차원에서 이루어 진 것이라 보여 집니다. “김”을 “차이나”로 바꾸어 버림으로서 大金(淸)帝國의 역사는 갑자기 하늘로 붕 떠 버리게 됩니다. 현재에도 大金(淸)帝國의 알파벳 표기는 “Ching”으로도 쓰이지만 “Qing”, “Xing”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Qing”이나 “Xing”으로 표기되면 “김”의 음가는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 모릅니다.


大金(淸)帝國만 이런 알파벳 역사왜곡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高麗帝國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어는 지금도 高麗를 “Coree(고리)”로 발음해서 高麗의 음가를 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 알파벳은 어떠합니까? 영국 사람들에게 “고리(Coree)”가 “코리아(Korea)”로 과연 들렸을까요? “Coree”는 “Corea”를 거쳐 “Korea”로 바뀌게 됨에 따라 원래의 음가와 역사가 상실되었습니다. 한편 “지방(地方, Jipan)”은 “Japon”을 거쳐 “Japan”으로 바뀜에 따라 과거의 역사를 감출 수 있게 됩니다.


왜 영국은 이런 짓을 한 것일까요? 영국은 일본과 손을 잡고 20세기 초반 세계를 나누어 먹으려 했습니다. 두 맹주는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왜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사전 작업을 통해 알파벳 표기를 바꾸기로 한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일본은 언어를 바꿈으로써 역사왜곡을 아주 잘 하는 나라입니다. 어찌 보면 그런 행동의 시작이 알파벳 표기 조작에서 기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조선제국은 1편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2편으로 나누어 쓰겠습니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다음 글에서는 朝鮮과 金(淸), 新羅, 그리고 唐의 관계를 고찰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日本은 왜 朝鮮에서 金(淸)을 분리시키고 朝鮮을 반도의 역사로 뒤집어씌운 다음 朝鮮과 金(淸)이 갈등관계를 가진 것처럼 조작하였고, 아울러 皇帝 高麗의 역사를 줄여놨는지도 설명하겠습니다. 이번 글을 통해 대륙 조선의 실체를 독자들께서도 제대로 파악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高麗帝國을 계승한 大韓帝國이 淸道旗를 의장기(儀仗旗)로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大韓帝國이 高麗帝國뿐만 아니라 朝鮮帝國[大金(淸)帝國]도 모두 다 승계하여 명실상부한 대칸민족(大韓民族)의 중심 국가를 지향했다는 것을 보여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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