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ankai 가 부산(釜山)의 지명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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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Ostl. Theil), Korea Und Japan
독일인 본 패터만(Von A. Petermann)
Bearbeitet von Ernst Debes. Gestochen v. H. Eberhardt, Terrain v. C. Jungmann. Gotha: Justus Perthes 1872. Stieler's Atlas에 특별하게 취급된 이 지도는 철저한 검사와 세세하게 확대하여 크게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많은 것에서 특징을 보여 준다. 이 지도 업데이트된 시기가 1871-1875 년이다.
자세하다고 평이 나 있는 유명 지도에서 부산(Fusankai)을 아무리 찾고 눈을 까집어 보아도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한반도 조선에서 일본과 연결되는 가장 중요한 항구임에도 지도에 표기 조차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지명 비중으로 보아도 부산을 표기 해야 함에도 부산은 표기 되지 않고 동래만 표기 했다.
밑에 김해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산(Fusankai)은 없다.
이것은 한반도에 분명코 존재했어야 할 부산(釜山, Fusankai, Fusan, pusan, Busan등)이란 어떠한 표기의 지명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만약 부산(Fusankai)이란 지명이 1857년 당시 있어 수채화를 그렸다면 한반도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부산을 그렸을 것이다. 영국은 이러한 역사사실을 감추지 말고 지금 당장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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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외국인이 그린 원화 2점 공개
[조선일보]2003.11.26 02:10
공방대에 부채…이방인이 그린 '조선 멋쟁이'
사진술이 본격 발달하기 전인 19세기 말~20세기 초, 서구 열강이 파견한 배를 타고 온 외국 화가들은 이국 풍경을 경쟁적으로 그려 발표했다.
당시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그린 원화가 발견됐다. 고서지 수집상인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는 최근 영국 런던의 한 고서점에서 구입해 들여온 100년 전 그림 2점을 25일 공개했다. 부산항을 그린 듯한 수채화 한 점과 거리에서 마주친 한국인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연필 스케치다. 이 원화들을 판화 기법으로 제작, 신문에 찍은 ‘삽화 버전’은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에 등장했다.
▲ 1857년에 영국인이 부산항의 모습을 그린 수채화
코리아, 1909
정통 화가의 본격 작품, 혹은 아마추어의 취미 활동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진을 대신한 기록용 스케치다. 곰방대를 빨며 한 손에 부채를 든 사내 그림 옆에는 ‘멋쟁이(Dandy)’라고 적혀 있다. 봇짐 진 장사치도 등장하고 머리를 싸맨 일꾼들, 더벅머리 남정네의 표정도 생생히 잡아냈다.
길바닥에 자리잡고 앉아 슥슥 스케치한 듯한 그림은 오늘로 치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인 영국인 톰 브라운(Tom Browne)의 작품. 인물의 표정과 특징을 부각시키며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생생하고 재미있게 그렸다.
옥스퍼드대가 출간한 인명사전에는 브라운(1870~1910)이 로열 아카데미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열었던 화가 겸 삽화가로 각종 신문에 그림을 게재하며 이름을 날린 것으로 돼 있다.
인쇄소 견습공 출신인 브라운은 영국 ‘태틀러’ ‘펀치’ ‘스케치’, 또 미국 ‘뉴욕 타임스’ ‘뉴욕 헤럴드’ ‘시카고 트리뷴’ 등에 스케치와 만화를 발표했으며 위트 넘치고 유연한 선으로 각광받았다. 그는 1909년 중국과 일본을 여행했는데 아마도 당시 한국에도 들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윤형원 대표가 이번에 발견한 그림은 ‘그래픽’지 1909년 12월 4일자와 1910년 1월 29일자에 실렸다.
제목은 ‘은둔의 왕국을 찾은 기행 작가-톰 브라운이 본 기묘한 한국 사람들’. 그의 다양한 ‘코리아 스케치’가 등장한 당시 신문에는 ‘한국은 이상한 머리장식의 나라다. 뻣뻣하고 투명한 모자는 섬세한 말털로 짠 것인데 보통 결혼한 남자들이 쓴다…아주 탁월한 우산의 기능을 하는 모자도 있다’고 돼 있다.
▲ 영국인이 100년전 '만화풍'으로 그린 한국사람 스케치.
부산(?), 코리아
갓 쓰고 하얀 도포를 차려입은 남자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뒤로는 성벽과 초가집이 보인다. 세필로 꼼꼼하게 그려진 수채화다. 화가의 휴대용 스케치북 크기(가로 21.5㎝ 세로 13㎝)만한 그림 뒤에는 펜으로 ‘Fusankai city Tschaosien Corea’라 적혀 있다.
윤형원씨는 ‘부산 풍경 같다’고 말했다. 그 옆에 적힌 ‘Clarke’는 화가 혹은 소장자의 이름, ‘Greenwich Hospital’은 그림이 처음 발견된, 혹은 소장됐던 ‘그리니치 병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런던 화보 뉴스’ 1858년 4월 24일자에는 이 수채화와 똑같은 구도의 도판이 실렸다. 같은 면에 한국인을 그린 그림과 일본 나가사키 풍경도 등장한다.
기사 제목은 ‘일본과 한국 스케치’. ‘해안가는 마치 중국처럼 산이 많고 불모지를 연상케 하는 지형이었다. 그러나 마을은 잘 가꿔진 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과일나무와 소나무가 보였다. 언덕은 푸르고 나무도 많았는데 주위에 나무를 독특하게 심어놓은 봉분이 곳곳에 보였다…사람들은 아래로 흘러내리는 헐렁한 가운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바지는 발목쯤에서 잡아맸고 발에는 면 스타킹과 신기하게 생긴 짚신을 신었다…품위 있는 자태와 우호적인 표정이 인상적이었다…그러나 주민들이 허락하지 않아 땅을 밟지 못했다. 그들은 우리 배에 타고 있던 중국인 통역관과도 대화를 거부했다….”(신문기사 일부)
원화를 살펴본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한국이 서구에 노출되기 시작한 개화기 무렵의 지도와 신문은 많이 공개되고 있으나 원화 발견은 드물다”며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재연기자[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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