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구한말 공관, 일제가 고종 사인을 위조해 처분해 버려
[뉴시스] 2009년 03월 16일(월) 오전 10:32]
[워싱턴=뉴시스]구한말 최초의 워싱턴 공관을 일제가 매매했다고 작성한 계약서 사본이 재미한인동포에 의해 미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매매 당사자인 고종 이형의 친필 문서(오른쪽 문서 맨 위쪽의 한자 서명)이라고 쓰인 서명과 실제 고종이 밀서를 보내면서 서명한 친필 서명(왼쪽 문서의 옥쇄 옆의 서명) 진본과는 너무나 달라 매매계약서 자체가 일제에 의해 위조된 것임을 확연히 보여준다. 일제는 경술국치 이후 주미 공관을 미국인에게 단돈 5달러에 팔어치웠다.
최철호 특파원 뉴시스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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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조선 워싱턴 공관은, 일제의 고종 황제 사인 위조로 매매한 것
[뉴시스] 2009년 03월 16일(월) 오전 10:38
워싱턴 DC에 존재하는 구한말 한국의 외교공관 건물은 현재 미국인 소유로 돼있으나 이는 구한말 일제의 문서사기에 의해 단돈 5달러에 넘겨진 것이란 사실이 한 재미 동포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
워싱턴의 한국역사보전협회 윤기호 사무총장은 최근 미 문서보관소에서 워싱턴의 한국 최초 공관건물에 대한 매매계약서를 찾아내 대조해본 결과 매매 계약당사자인 고종 황제 이형의 사인과 왕실 관리 민병석 등의 사인이 모두 가짜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총장이 찾은 문서에 기재된 사인은 당시 공식적으로 쓰이던 고종 황제와 당시 왕실 재산관리담당 궁내부 관리 민병석의 실제 사인과 완전히 다른 필체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사인 자체가 조악하게 위조된 것임이 확연히 보여지고 있다. 이에 따라 윤씨는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을 근거로 미 법원에 당시의 일제가 강매했던 조선의 공관 매매가 사기임을 입증하기 위한 재판을 제기할 방침이다.
이 공관은 워싱턴 DC 내 아직 존재하지만 현재에는 티모시 젠킨스란 부동산 업자의 소유로 돼 있다. 이 건물은 지난 1882년 한미 수효조약에 의해 미국에 파견된 특명전권공사 박정양이 지난 1891년 11월 당시 조선왕실 예산 2만5000달러를 주고 사들여 태극기를 게양하고 고종의 어진을 걸고 자주 외교를 추진하던 공관이었다.
1905년까지 자주권을 갖던 조선은 이 공사관 건물에서 대미 외교를 벌이고 명실상부한 외교 활동을 펼쳤었다. 그러나 1905년 조선의 운명이 다하고 마침내 일제에 의해 외교권이 넘어가자 공관은 방치됐고, 이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서둘러 한국의 외교공관을 없애기 위해 매매자에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실명 이형과 당시 왕실재산을 관리하던 궁내부 민병석의 사인을 위조, 일단 일본정부 대표인 우치다 야스야(內田康哉)에 단 5달러를 받고 판매한 것으로 돼 있다.
이 서류를 발견한 윤 사무총장은 여기에 기재된 사인은 전부 가짜라는 것이 한눈에 알 수 있다면서 이를 근거로 미국인 젠킨스 등에 판매한 모든 공관 매매는 무효라는 지적이다.
윤씨는 이 공관이야 말로 한민족이 구한말 자주적인 외교를 실제 펼쳤던 역사적인 장소일뿐더러 근세 우리나라 역사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유적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이 같은 유적지는 반드시 되찾아 역사에 편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당시의 일본 정부 대표라는 자의 매매계약이 허위로 만들어진 것인란 점은 한반도 강제점탈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안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이 건물은 워싱턴 일대의 많은 한인단체들이 저마다 최초의 한국 공관으로서 이를 구입해 보전하겠다고 모금운동까지 벌였던 대상이지만 현재 주인은 부동산 붐을 타고 400만 달러를 주지 않으면 팔지 않겠다고 거부 자세를 보여오기도 했었다. 때문에 윤씨의 문서 발견과 함께 재판에서 승리할 경우 이는 역사를 바로잡는 것일뿐더러 역사적인 공관의 소유권을 넘겨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씨는 만일 재판에서 이겨 이 건물을 한국 왕실 소유로 인정받을 경우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인 의친왕의 딸이자 고종의 손녀인 이해경씨의 소유로 환원한 뒤 이를 한국 근세외교 박물관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해경씨는 현재 역사보전협회의 이사로 돼 있으며, 지난 1969년부터 뉴욕 컬럼비아대 동양학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1996년 정년퇴직한 뒤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최철호 특파원 뉴시스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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