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하멜의 제주도 기행을 믿을 수가 없다.

한부울 2009. 3. 21. 17:01
 

하멜의 제주도 기행을 믿을 수가 없다.


하멜은 과연 한반도 제주도에 표류한 것이 맞는가?

하지만 “아니다”란 대답이 더 정확하다.

이러한 문제는 보편적 상식적인 이치로 따져야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대사 역사왜곡은 18세기~19세기에 들어 서구인들이 산업혁명동력을 바탕으로 하여 해양시대를 맞이하면서부터 경쟁적으로 식민지 확보에 나섰고 東으로 西로 단맛을 찾아 벌떼처럼 달려들 때부터 발생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서구인들이 먼저 발명한 동력을 이용하여 이동수단인 함선을 만들고 공격할 수 있는 대포를 장착한 후 온갖 무기와 군인을 태우고 출항을 하게 되면 그런 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불특정한 미지의 적을 대상으로 언제든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전함인 것이다.

그 당시 모든 이동수단이 이러했다.

동인도회사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그들의 독점무역전초기지이고, 공동의 군수물자 저장창고역할을 하는 진지였으며 또한 산업자본을 총괄하는 회사였다.

그러한 기지에서 출발하여 언제든지 닻을 내리면 그 땅을 차지 할 수 있는 권한이 자연스럽게 생성되었고 깃대를 꽂으면 식민지가 되는 것이며 그것도 부족 할 때는 더 깊숙하게 침범하여 무력으로 금은보화를 탈취 할 수 있는 준비된 함선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모든 과정이 그들에겐 상업적 수단이며 또 다른 산업자본의 축적행위인 것이다.

미개척지 여행이라는 것은 일단 모험이고 위험한 것이다.

최악에 경우 생명까지 담보하고 위태롭게 할 행위이기 때문에 담대하다 하더라도 막연한 불안감이 없을 수가 없다. 그 당시 서구의 해양시대는 국가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교일치가 되어 종교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교세확장의 선교를 최우선시하고 중요시했다고 볼 때 그러한 심리적 보호위안도 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종교가 선교에 주안점을 두면서 식민지시대, 해양시대를 열었다고도 불 수 있다.

문화적 우월감에 젖어있는 서구여론은 식민지란 폭압적 개념보단 미개척지에 반드시 적용하여야 할 서구종교융합과 계몽사상(啓蒙思想:enlightenment)이란 헤게모니의 당위성이 표면적으로 더 강했을 것이란 판단이다.

계몽사상은 칸트가 1784년“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후부터 파생된 용어인데 아직 미자각상태(未自覺狀態)에서 잠들고 있는 인간에게 이성(理性)의 빛을 던져주고 편견이나 미망(迷妄)에서 빠져나오게 한다는 철학이다.

그러한 철학은 그들에게 동양에 비해 문화적 우월감을 상승시켜 무차별적인 식민지에 대한 비판여론을 누그러뜨리고 정당성을 비등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중들에겐 미지의 나라, 미개척지에 대하여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을 모험가들에게 의존하고 여행가들의 입을 빌어 궁금증을 해소하면서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은 그들이 집필한 daily 즉 紀行日記에서 접하고 습득했던 것이다. 때문에 기행일지는 영웅담으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모우며 일확천금 돈방석에 앉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어느 모험가나 여행가라도 이러한 기대심리가 없을 수가 없기 때문에 때론 위험도 수반되겠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용기만으로 미지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경비 즉 자본조달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수요는 많다 하지만 기대심리에 공급이 점점 더 늘었다면서 경쟁도 심했다고 보여 지고 어떤 기행일기라도 무조건 다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는 것이기에 과욕만 앞세워 잘못하면 빗 더미에 앉을 수도 있는 투기와 같은 것이다.

때문에 모험가나 여행가가 기대하는 상업적 노림수는 대단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 당시 많은 모험가들은 여행이 목적일 수 있었겠지만 큰 재산을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행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고 한몫 잡기 식 한탕주의심리에 사로잡혀 부정한 짓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배를 타고 여행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한 모험심을 가지고 미개척지를 방문 하거나 본의가 아니게 불의에 사고로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면 우연히 맞닥뜨린 미지의 영토에서 체류 또는 억류하였던 일상을 일기형식을 빌어 기록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기록은 없어도 귀환 후 기억을 더듬어 소급하여 기록하는 경우가 있을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책으로 출간하기 전 반드시 상업적 판단이 존재했을 것이며 그에 따라 편집 또는 수정(왜곡의 가능성)을 통하여 흥미를 유발시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순수한 작가의 의도는 무시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작가는 순수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정 왜곡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개척지의 정보는 여행자들의 기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정보를 노려 상업적인 욕심을 가지고 처음부터 기획하고 도모하였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한몫 잡으려 하는 불손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상업적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중에게 놀라운 사실에 접하게 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게 하고 독자들의 흥미를 극대화 하면서 사실보다는 흥미위주 호기심을 자극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서는 시대여론에 맞게끔 윤색, 각색 가필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한 과정에서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기행일기가 진실을 말 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만약 불손한 목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제국적관념으로 국가나 종교에 지시를 받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부정을 획책하였다면 얼마든지 그러한 모험가들의 불손한 심리가 이용될 수 있는 것이고 엄청난 역사음모를 파생, 양상하게 하는 시대적 상황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피식민지의 진실성이라는 것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취급되었을 것이고 단지 계몽차원의 대상으로서 사실성이 무시 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객관성을 기대 할 순 없다 할 것이다.

때문에 18세기~19세기 여행기 즉 기행일기는 거의 다 그러한 모순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것들이고 순수한 목적이 아닌 국가적 종교적 지시 의하여 수정 또는 가필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물론 모든 사실이 전부다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하겠지만 대다수가 그럴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신뢰적인 문제가 분명하게 존재하기에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한 현대사에서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제국의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제국의 역사란 모순과 음모 속에 아시아고려, 대륙조선이 존재 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헨드리크 하멜은 동인도 회사에 고용되어 일한 선원이었다.

하멜의 제주도기행 기록은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절대로 사실이 될 수 없으며 우리입장에서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중대한 결점이고 의문점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기록에서 해적질을 하던 왜구를 조선인보다 더 근대화된 종족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런 언질을 한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케 하는 것이고 부정하게 보지 않을 수 없다.

물욕에서 결코 벗어 날 수 없는 인간이기에 하는 말이다.[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