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새로 발굴했다는 충무공 리순신의 또 다른 시에서 九陌은?

한부울 2009. 3. 22. 19:07
 

새로 발굴했다는 충무공 리순신의 또 다른 시에서 九陌은? 

[아시아문화사연구소]09.03.22 08:33


서울의 고서수집가가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한시와 충무공의 수결(手決·자필 서명)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 사실을 공개했다고 한다.[조선일보, 2009. 3. 21]


희귀한 문헌은 어떤 "공식기관"에서 라는 말은 없고, 언제나 "고서수집가"라는 말로 얼버무린다. 그 "고서수집가"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일까?


어쨌거나 그런 시에서 충무공의 어떤 생각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진정 충무공의 작품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거기에 나오는 낱말을 보고, 그 진실의 단편을 짚어볼 수도 없지 않다. 한번 보자.


이 3편의 시 가운데 두 번째 시라는 글에는 "九陌黃塵前去路"가 구절이 있다. 이것을 "도성의 누런 티끌 속을 헤쳐 나아갈 길에"라고 번역되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九陌=도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이다. 한반도에서는 분명 그냥 "서울"이면 될 것을.


옛날 진(秦)나라가 도읍한 섬서의 장안(長安) 일대는 동쪽은 함곡관(函谷關), 남쪽은 무관(武關), 서쪽은 산관(散關), 북쪽은 소관(蕭關)의 이름을 가진 4개 관문에 둘러쌓여 있어 관중(關中) 혹은 관내(關內)라 불렀다. 조선에서 늘 "관내도(關內道"라고 물렀으며, "경기도"라고 한다.


또 한(漢)나라가 도읍한 서울 장안(長安)의 성 안에 있던 동남서북에 통하는 아홉 큰 거리를 구맥(九陌)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리순신이 썼다는 그 시의 풍경은 애시 당초 그 "장안"을 말한 것이 아닐까? 중국대륙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九陌"[구맥]이란 말로 글을 많이도 지었다.


세 번째 시라는 글에는 "居鄕何必異京華"가 있다. 이 문장을 "시골에 산다 해서 어찌 반드시 서울과 다르랴"라고 새겼는데, "京華=서울"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京華"[경화]는 "서울의 번화한 거리" 또는 "번화한 서울"로 새기는 말이긴 하지만, 중국 베이징에서 발간되는 일간 "경화시보(京華時報)"가 있듯이, 이 "경화"는 역시 옛 "장안"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古調峨洋山水外"이라는 글을 "옛 곡조 높고 출렁거리는 산수 밖에서"라고 번역을 시도했는데, 여기서 "峨洋山"은 "峨山+洋山"으로 봐야 하며, "峨山"[아산]은 같은 소리의 "鵝山"이며, 그곳에서 "아주(峨州)"라는 지명도 생겨나며, "洋山"[양산]은 같은 소리의 "羊山"이며, 그곳에서 "洋州"[양주]니, "洋山縣"[양산현]이란 지명이 있고, "洋水"[양수]니, "洋川"[양천]이란 강도 있다.


또 "滄浪一曲爲君歌"이란 글을 "창랑의 한 가락을 그대들을 위해 노래하네"라고 새겼는데, 그래도 될까? 여기서 "滄浪"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큼은 꼭 닮아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인용하는 것인데, 전국시대의 시인 굴원(屈原: b.c. 339-278?)의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 다른 말로 "창랑가(滄浪歌)"니, "유자가(孺子歌)"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擧世皆濁我獨淸 [온 세상이 다 흐려도 오직 나만은 맑고]

衆人皆醉我獨醒 [뭇사람이 다 취해있어도 오직 나만은 깨어있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


이 정도의 자신의 태도로 본다면 참으로 인용할만도 할 것이다. 그래서 충무공 "자신이 처한 세상의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하는 몸가짐에 대해 읊고 있다."는 해석이 제대로 되려면, 그 "창랑"이 "夏水"[하수]니, "漢水"[한수]라고도 하는 강이라야 마땅하며, 이 강은 동쪽으로 흐른다.[東流爲漢] 이 강이 한반도 중부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한강"일까?

그래서 이런 시의 글들을 보면 몇몇 낱말에서 그 지리적 성격을 찾을 수 있고, 그곳이 중국대륙으로 비정됨을 알 수 있다. 본디의 그 지명을 별도의 문제다.

이렇게 지명을 고찰하고서 발굴되었다는 시를 다시 내가 번역해본다.


(1)

窮通只在彼蒼天 [궁하거나 잘됨은 오직 저 하늘에 달렸으니]

萬事聊須任自然 [모든 일은 모름지기 자연에 맡겨야지]

富貴有時難獨擅 [부귀해도 어떤 때는 홀로 차지하기 어려우니]

功名無主遞相傳 [공명에는 임자가 없어 번갈아 서로 전한다네]

終當遠到宜徐步 [마침내 먼 길을 가려면 천천히 걸어야 하고]

初若先登恐 顚 [처음으로 먼저 오른다면 넘어질 것을 생각하라]

九陌黃塵前去路 [서울 넓은 거리에 꽉 찬 티끌 속에서 길을 가면서]

且隧人後莫加鞭 [남을 뒤따라가되 걸음을 더 재촉하지 말라]


(2)

居鄕何必異京華 [시골에 산다 하여 반드시 번화한 서울과 다르랴]

隨處和平在自家 [곳에 따라 화평함도 제 집마다 있구나]

所遇如今心火動 [만나는 곳엔 이제 마음의 불이 움직이는 것 같으니]

其方莫若耳風過 [그곳에선 귓전에 바람이 스치듯 하는 게 제일이지]

惡將除無非草去 [모진 악을 없애려면 반드시 잡초 뽑듯이 하여]

好取看來摠是花 [좋은 점만을 가져다 보면 모두가 꽃이로세]

古調峨洋山水外 [옛 노래를 아산(峨山)과 양산(洋山)에서 흐르는 강가에서]

滄浪一曲爲君歌 [동쪽으로 흐르는 한수(漢水) 한 가락을 그대 위해 노래하네]


그래도 충무공 리순신을 한반도로 묶어두려 하겠는가? 그는 만력의 란, 즉 임진왜란 때에 황하와 장강 사이[江淮]에서 싸웠다고 선조 임금이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풍신수길과 그 일당을 체포하기 위하여 강소성·절강성·복건성·광동성 등을 비롯한 중국대륙 동부 해안 지역 곳곳에다가 현상수배를 내리지 않았던가?


[아시아문화사연구소]최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