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변절

일본 우익잡지의 한국 독자들

한부울 2009. 3. 12. 12:06
 

일본 우익잡지의 한국 독자들

[한겨레신문] 2009년 03월 06일(금) 오후 07:05


“(미국 해군) 제7함대만으로도 미국의 극동에서의 프레즌스(주둔)는 충분하다.”


얼마 전 알쏭달쏭한 이 한마디를 했다가, 그렇다면 주일 미 공군과 해병대는 모두 철수하라고 요구할 참이냐는 반론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일자 오자와 이치로 일본 민주당 대표는 나중에 설명을 덧붙였다. “일본의 방위를 될 수 있는 한 일본이 맡게 된다면 미군의 부담은 적어진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제1야당 당수인 오자와는 늦어도 올 초가을쯤 일본의 새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오자와 발언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자위대를 증강해서 (미군의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얘긴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회담할 때 강조한 ‘대등’한 미-일 동맹이란 얘기와 같은 맥락에서 한 것인가?” 하고 사설을 통해 물었다.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우파 월간지 <문예춘추>에서 매년 연말연초에 내는 <일본의 논점>이라는 책 2009년판에 일본 보수우익의 단골 브레인 나카니시 데루마사 교토대 대학원 교수의 글이 실렸다. 요지는 미국 일극 패권은 무너졌다는 것, 미국은 침체와 재흥이 20년 주기로 되풀이돼왔다는 것, 따라서 2020년까지 미국은 바닥을 길 것이라는 것, 따라서 세계는 다극화로 갈 것이고 그 한 극을 일본이 차지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적 군사강국이 돼야 한다는 것, 그럼에도 아직 패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은 준비(‘장기적 전략문화’)가 돼 있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홀로 설 준비가 될 때까지만 미-일 동맹에 기대며 ‘시간 벌기’를 하자는 것이다.


오자와의 생각은 나카니시의 생각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민당 주류 역시 그렇다.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일본을 강화해서 동아시아의 영국으로 만들고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의 복사판으로 만들자는 조지프 나이 전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장이 새 주일 미국대사로 내정돼 있고, 최근 동아시아를 순방한 클린턴 국무장관의 행보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일 동맹이 강화되면 주한미군에 종속된 한국군의 지위를 좌우하는 것은 장차 극동에서 미군의 역할을 대폭 떠맡을 일본 자위대가 될지도 모른다. 자위대가 지휘하는 동아시아 미일동맹군의 하위부대로 최전선에서 분단된 동족에 총칼을 겨누는 국군의 미래상은 모골이 송연하지 않은가?


<일본의 논점>엔 일본 극우 식민사관의 대변자로 출세한, 제주도 출신 여성 오선화(53) 다쿠쇼쿠대학 국제학부 교수의 글도 실렸다. 일본의 위험한 우익 민족주의로 향해야 할 비판의 화살을 거꾸로 그 피해자인 한국의 민족주의로 돌려 마구 쏘아댄 이 가련한 여인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까지 들먹이며 ‘반일을 하면 떡고물을 얻을 수 있다는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선한 이웃 일본이 부당한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적반하장식 단호 대처를 권고하고 있다. 오선화의 머리는 전후좌우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다. 문제는 오선화가 아니라 그를 부추기고 박수쳐주는 자민당 수뇌그룹을 비롯한 우익이다. 알량한 선민의식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그들이 건재하는 한 동아시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없다. 일본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 우익의 세계관을 설파하는 <문예춘추>의 해외 최대 구독자는 일본어를 해독하는 한국 보수장년층들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