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삼일운동과 5.4운동은 대륙에서 벌어진 운동이다.

한부울 2009. 2. 17. 01:08
 

삼일운동과 5.4운동은 대륙에서 벌어진 운동이다.


기미년 1919년 3월 3.1운동 발발지역이 한반도인가 아니면 대륙인가.

일본자료에서 보게 되면 중화민국 즉 국민당정부 연혁에서 1919년에 일어난 3.1일 운동의 영향으로 5.4운동이 일어났다고 명시하는 것을 보면 운동에 모태, 주(主)가 3.1운동인 것을 알 수 있다.

솔직히 19세기 때 서구세력들이 군침을 흘린 곳은 대륙이지 한반도가 아니다.

한반도는 대륙조선의 부속영토였을 뿐이다.

그들 눈에 한반도는 대륙을 비껴난 곳이라 관심밖에 있었고 산악지대만 있는 한지라 크게 가치성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가치가 있었다면 미래 아주 작게 축소한 대륙조선을 구겨 끼어 넣을 곳으로서 족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일본 열도도 대륙조선의 관할지고 지배 고유영토였으나 대륙조선이 서세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망하자 무주 빈 공간으로 남았고 그 때 대륙남쪽 하단부 해안에 자리 잡고 입지 상승을 노리며 호시탐탐하던 무도한 왜구 무사집단들이 서세도움으로 근대화를 이루고 1868년 명치유신을 거치면서 빠르게 제국으로 탈바꿈하자 무주공간으로 있는 열도를 차지하고자 서세의 암묵 하에 열도 내에 존재하는 기득권자와 수많은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대 정지 작업 끝에 비로소 신일본이란 나라를 만들고 들어앉게 된 것이다.

신일본 생성과정을 이치적으로 따져가며 나중에 기술할 것이다.

그 당시 서세들이 대륙에만 관심을 가지고 차지하려고 했던 반면에 한반도는 가치성을 두지 않았다는 것은 지역적 역학구도가 지금과 달랐다고 보아야 한다.

그  말은 한반도 동쪽에 있는 열도에 지금처럼 일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세와는 다르게 일본은 한반도를 다르게 인식했다.

떠돌이 신세로 역사도 없이 천대받던 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뜨여 동방에서 제일먼저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루며 명치유신을 거치고 무주공간인 열도를 당당하게 차지한 왜구무사집단 눈에는 한반도를 야망을 성취 할 수 있는 터전으로 보았던 것이다.

천하에 역사근원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해적, 도적질이나 일삼던 일천한 왜구역사를 일본역사로 꾸미어 새롭게 만들고 명색이 문화민족으로 변모하면서 대륙고려, 대륙조선이 이룩한 거대한 업적보다 더 큰 야망을 이룰 수 있다는 꿈이 한반도를 이용하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서세에 의하여 정지되고 왜구무사집단에 의하여 정리된 한반도는 왜구역사에서 신일본 역사로 탈바꿈 할 수 있는 터전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결과 열도에 신일본이 생성되었고 동양역사 뿐만 아니라 아시아역사가 온통 뒤 바뀌거나 새롭게 틀이 짜여 쓰여 지고 기록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역사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이고 반도사관이다.

1919년이라면 이러한 환경이 팽배되어 구체화되고 새로 만들어 진 사실이 고정되고  있었다면 철저한 계획아래 빈틈없는 정지작업과 정리 작업이 마무리 되었을 한반도에서 반일, 극일 소요가 대규모로 일어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거짓이고 역사를 호도한 것이고 억지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반도사관학자들이 5.4운동은 대륙에서 일어난 운동이고 3.1운동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것이라고 떼어 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운동의 목적과 중요성 그리고 동질성에서 부정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때문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운동이 대륙으로 전이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당시 열도를 차지한 왜구무사집단이 빠르게 근대화를 이루며 군사적 강대국으로 변모하였고 일본제국으로 행세했다.

그와 동시에 대륙조선을 발판으로 대륙 전역을 침탈하려고 하던 때였다.

1894 청일전쟁과 1905 러일전쟁 두 차례 대전을 치루면서 연이은 승전으로 한껏 고무되어 대내외적으로 강한일본이라는 의식이 강했고 서세와에 경쟁에서도 결코 질 수 없다는 자신감도 충만 할 때이다.

대륙에서 대륙조선인들을 상대로 자국민화 시키려고 탄압이 갈수록 가중되었고 일제압제가 무력통치 무단통치가 더욱 더 도를 넘어 심해짐에 따라 견디지 못한 조선인들이 다 함께 옥쇄하자고 나선 무저항 운동이다.

대륙을 떡 나누듯이 나눠 조차지하면서 관리하고 있던 서세, 즉 열강제국들에게도 일제의 무리한 탄압을 폭로하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조선인 스스로 자주 독립을 국제적으로 요구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자발적인 운동인 것이다.

지금의 티벳 운동과 같은 목적이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대신 티벳은 폭력을 동원했지만 조선인들은 무저항운동이 다르다.

특히 1919년1월21일 사망한 고종 독살설도 조선인들을 분노케 한 것도 있지만 일제 육군대장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조선총독부 총독이 되어 무단 통치를 일방적으로 시행함에 따라 광범위한 반발과 불만을 낳아 그것이 원인이 되어 3.1운동으로 촉발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륙 조선 땅을 청이 기득권을 주장하다가 일제에게 패하고 러시아가 주장하다가 일제에게 패하여 대륙조선 땅을 고스란히 독차지 하면서 영토가 대륙 동부지역 연안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곳에 옛 대륙조선인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살벌한 일제 경찰권과 사찰권이 때문에 괴로움을 당했을 것이며 결국 그러한 억압정치에 견디지 못한 대륙조선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들고 일어난 운동이 바로 3.1운동이란 것이다.

1919년 3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60일 동안 1214회에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 대륙전역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지나인들이 말하는 1919년 5.4운동은 같은 해 그러한 움직임에서 나온 연속적인 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