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서역은 그곳인가?

한부울 2009. 2. 15. 20:09
 

서역은 그곳인가? 

[아시아문화사연구회]09.02.15 09:22

 

                                                     [1914 일본이 만든 세계지도]


서역(西域)!


우리는 서쪽의 나라들[西域)이라고 하면서 그런 나라들이 중앙아이사의 중앙, 파미르 고원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있다고들 한다.


그곳에 36개국이니, 뭐니 하면서 말이다.

그곳이 "서쪽"이 맞는가?


방위로서의 동, 남, 서, 북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중심/중앙[中]에서의 상대적 위치일 뿐이다. 이것은 중심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동쪽 끝이 동해(東海)라고 볼 때에 서쪽 끝은 분명 서해(西海)여야 한다.


그 서해가 어디냐? 가 관건이겠다.


사람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의 동쪽, 로프노르[羅蒲泊]가 있는 지금의 사막지대라고도 한다. 물론 <중국력사지도집>을 포함한 여러 지도책에 그런 표현이 있기도 하다. 이것은 역시 중앙아시아의 거의 중심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곳은 사실 내륙이지 상식적인 바다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들은 서해를 카스피해라고도 한다. 훨씬 서쪽에 있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것도 분명 바다니까.


그보다 진짜 바다는 흑해를 포함한 지중해가 서해일 수밖에 없다. 물론 대서양이 그 서쪽에 있으니, 대동양이 지금의 태평양 자리에 되돌려져야 력사적 제자리매김이 되겠지만, 우선 서해라는 개념은 대서양을 포함한 그 동쪽 지역의 바다여야 마땅하다. 그래야 상식이 통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미 나는 서해가 지중해라고 말한 바가 있다.[충무공 리순신 대한민국에 고함][조선통사]


그렇다면 "서역"이라는 나라들이 있을 곳은 어디이겠는가.


이것은 아무리 생각하고, 지리적 위치에서 찾더라도 아시아와 유럽의 어름이 되는 지역일 수밖에 없다. 그곳은 지금 흑해와 지중해를 있는 수로를 중심으로 그 부근의 나라여야 마땅하다. 그래서 서역 몇 나라라는 이름들은 왜곡된 것임에 분명하다.


본디 그곳에 있었던 나라도 있겠지만, 일부는  동경 30도 선상으로 옮겨져야 하며, 그런 지역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서역은 왜곡되었고, 그 이름은 동경 30도 선상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중국(中國)이라는 말의 화하(華夏)가 아시아의 중심, 천하의 중심이 되는 중앙아시아의 중앙, 중원, 즉 조선의 중심이 그 말과 그 뜻에 따라  있을 수 있게 된다.


중앙아시아의 중심에는 온통 불교의 생활이 터전을 잡았던 곳이다. 그것이 언제까지 존속되었는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1880년대까지는 그랬다고 본다. 천불동, 만불동의 부처의 조각상들이 곳곳에 화려[華]하게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지금은 위구르의 무슬림이 차지하고 있다. 이 회교도들은 불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기에 미사일로, 대포로, 불상이 있는 석굴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과연 언제부터 이 중앙아시아의 중심에 와서 신강성에 차지하고 있었을까?


나는 결단코 말하건대, 1880년대라고 본다.

서역은 왜곡되었다. 역시 신강성도 왜곡되었다.

조선의 중심지는 왜곡되지 않았겠는가?


아시아문화사연구회 최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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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지나에서 말하는 서역(西域)


[지나]서역(西域)은 전한때 한족들이 옥문관(돈황)과 양관 밖의 자신들의 경계를 벗어난 서쪽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전한 무제때의 장건의 서역 사행 이후에 생겨난 말로 이 지역은 월지, 오손, 대완, 강거, 안식, 조지, 대하 등의 나라들을 포함하는 지역을 일컫는 말로 본래에는 서북국이라고도 칭하였다.


후한의 반고는 한서의 서역전에서 서역의 나라들을 둘로 나누었는데, 거국(居國)과 행국(行國)으로 나누었다. 행국은 오아시스의 정주하는 민족이 사는 나라로서 성곽이 있기 때문에 성곽국이라고도 불렀다. 거국에는 누란, 대완, 고사, 대하, 안식, 조지 등이 있었다. 행국은 유목을 생업으로 하는 유목민으로 오손, 강거, 엄채, 대월지 등의 나라들이 이에 속한다. 한족은 서역의 사람들을 만이(蠻夷)라고 불렀다.


이후 국제적인 교류가 많아지면서 중국인들은 서역을 더 먼 거리의 나라에도 적용하여 현재 서방세계에까지 포함시켰다.


[일본]서역(西域, Xi-yu; Hsi-yu)은 고대 중국인이 중국의 서방에 있는 나라들을 부른 총칭이다. 본래는 동쪽 트르키스탄을 일렀지만, 확장되어 서트르키스탄 한층 더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서아시아도 말한다.


고대 중국에 있어 옥문관·양관이 서쪽의 경계에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서방나라들의 기록이 명확하게 나타난 것은 사기, 대완전이 최초이고 여기에는 서역이란 말은 없다.「한서」에 이르러 처음으로 서역이란 말이 나타나고 서방의 나라들을 기록한「서역전」이 만들어진다. 이 서역전에서는 서역의 지리에 대해 “남북으로 大山이있고 중앙에는 강이 있어, 동서6천 여리, 남북 천여리”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타림분지 즉 동쪽 트르키스탄 이외 별도로 칭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한서」서역전에는 동쪽 트르키스탄의 나라들뿐만이 아니라 서트르키스탄·인도·이란 등의 나라들에 대해서도 기록되고 있다. 그 후, 중국 역대의 正史의 몇 군데에서 서역전을 싣고 있지만 그 지리적 범위는 모두「한서」와 같다.


대략적으로 말해 서트르키스탄의 동남에는 간다라가 있어 동쪽 트르키스탄에는 호-탄·쿠체가 있으며 실크 로드의 분기점에 해당한다. 대항해시대 이전의 동서의 무역·문화는 이 지역을 경유해 행해지는 것이 많았다. 이 지역은 사막 등의 지리적 조건에 제약된 것이기는 하지만 제민족의 침입이 잇따랐기 때문에 오아시스에 도시국가가 건국된 적은 있어도 지역을 통일하는 국가는 출현하지 않았다.


도시 국가를 최초로 형성한 것은 아리안계의 사람들로 그들은 불교·경교·마니교 등의 여러 가지 신앙을 가졌다. 전한과 후한은 서역을 통괄하기 위해서 서역도호를 설치했다. 9 세기 이후 몽고 방면으로부터 이동한 위구르인이 이 땅에 거주해 위구르 문화를 쌓아 올렸다. 한편 이슬람교 카라한 왕조(터키어: Karahanlılar, 840년~1212년)도 서방으로부터 침입해 일부를 지배하에 두었다. 이윽고 13 세기에 지역전체가 몽고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점차 투르크계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어 이슬람 세계의 일각을 담당하게 되었다. [wiki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