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사건

동학과 湖西, 湖州

한부울 2009. 2. 10. 23:54

동학(東學) http://blog.daum.net/han0114/17045951

[全羅道]9.호주부(湖州府)는 장흥(長興) http://blog.daum.net/han0114/17050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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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과 호서 호주( 湖西,  州)

 

 

 

동학을 따져보다가 발견된 것이다.

바로 동학당 격문이다.

먼저 공주는 한반도지명으로 굳어져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湖西와 湖州가 어딘지는 아래 지도를 참고하면 분명하게 알 수가 있다.

둘째로 일제육군소위가 작성한 東學黨征討略記인데 동학당을 토벌하기 위하여 만주재중독립 제19대대와 교대한다는 내용으로서 11.26일 용산에 귀착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만주라고 하였다.

그 당시 만주는 구만주로서 몽고전역과 신강(동삼성은 만주국이후 파생된 명칭이고 신만주이다)을 말하였다. 한반도 전라도 장흥, 충청도 공주에서 발발한 동학당을 토벌하기 위하여 그 먼 곳인 만주(신강, 내몽고)에 러시아가 대륙남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배치한 일본군대를 부른다는 말이다.

동학이 봉기하였던 곳은 전라도 고부로서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 전라도이고 이어 제2차 운동이 발발한 때에는 충청도 공주까지 이르렀다.

임하필기에도 나타나듯이 대륙절강성 북부 호주가 바로 전라도 호주이고 현 오흥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그들(일제와 지나)이 별에 별짓을 다해가며 대륙조선을 그토록 감추려 했던것이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가 새삼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들이 뿌려놓은 자료에 의하여 이처럼 하나 둘씩 밝혀지는 것이다.

우리한반도 자료가 아니라 모두가 그 당시 일제자료이다.

어찌 이와 같음을 우리가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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湖西

 

 

湖西 旧地名,因位于南四湖西面而得名。1949年设湖西专区,专署驻单县。辖金乡、单县、鱼台、巨野、城武、嘉祥、复程(解放后由曹县、城武2县析置,驻青崮集)等7县及单县城关区。1950年撤销单县城关区,改设为镇。1952年湖西专区划归 山东省


南四湖(1952)

微山湖、昭阳湖、独山湖、南阳湖

等四个相连湖的总称

位于山东省西南部济宁市


湖西,位于河南省唐河县黑龙镇西8.5公里处,的名源于村东边的一个湖,湖东边村子名为湖东,西边名为湖西。

湖西北边与西边为唐河(河流),河对岸为郭滩镇领域的大树赵与杨庄。

不写了,不知道咋些,有时间好好酝酿一下,生活了那么多年,只得写的地方太多了。


湖州

湖州市地处浙江省北部,东邻上海,南接杭州,西依天目山,北濒太湖,与无锡、苏州隔湖相望,是环太湖地区唯一因湖而得名的城市。湖州是一座具有2300多年历史的江南古城,总人口257万,其中市区人口108万;总面积5818平方公里;城市化水平达到44.1%,中心城市建成区52.9平方公里。


중국(中國), 절강성(浙江省) 북부(北部), 태호(太湖) 남쪽 기슭에 있는 도시(都市). 강남(江南)에서 제일(第一) 먼저 개발(開發)된 오흥(吳興) (호주(湖州))ㆍ오강(吳江)ㆍ오현(吳縣) (소주(蘇州)) 의 삼오(三吳) 지방(地方)의 중심(中心)으로, 예로부터 쌀이 많이 나며, 또 양잠업(養蠶業)의 중심지(中心地)이기도 함. 호필(湖筆)이라고 불리는 붓은 유명(有名)함. 영항(寧杭) (남경(南京)~항주(杭州)) 공로(公路)를 끼고 있으며, 시내(市內)에는 수로(水路)가 있어 교통(交通)이 편리(便利)함. 오흥(吳興). 인구(人口) 15만


여남(汝南) = 현 하남성(河南省)..

광주(光州) = 현 하남성(河南省)의 황천(潢川) 옛 지명 또는 현 호북성(湖北省)의 광산(光山) 부근..

연평(延平) = 현 복건성(福建省)

남평(南平) = 현 복건성(福建省)

염주(廉州) = 현 광서성(廣西省)

영산(靈山) = 현 광서성(廣西省)

계림(桂林) = 현 광서성(廣西省)

전주(全州) = 현 광서성(廣西省)

호주(湖州) = 현 절강성(浙江省)

장흥(長興) = 현 절강성(浙江省)

 

 

[우리역사의 비밀]

 

임하필기 (林下筆記)


조선 말기 문신 이유원(李裕元)이 수의(隨意)·수록(隨錄)한 것을 모아서 엮은 잡저(雜著). 1871년(고종 8) 천마산 임하려(林下廬)에서 탈고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때 간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經)·사(史)·자(子)·집(集)·금석(金石)·전고(典故)·모(謨)·풍속·지리·서화·시문·정치·외교·산물·가사(歌辭)·궁중비사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백과사전식으로 기술하였다. 책머리에 정기세(鄭基世)의 서문, 책끝에 임하노인(林下老人)과 윤성진(尹成鎭)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사시향춘관편(四時香春館編), 권2는 경전화시편(瓊田花市編), 권3·4는 금석해석묵편, 권5·6은 괘검여화편(卦劍餘話編), 권7은 근열편(近悅編), 권8은 인일편(人一編), 권9·10은 전모편(典謨編), 권11∼24는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권25∼30은 춘명일사편(春明逸事編), 권31·32는 순일편(旬日編), 권33·34는 화동옥삼편, 권35는 설려신지편, 권36은 부상개황고편(扶桑開荒攷編), 권37은 봉래비서편(蓬萊秘書編), 권38은 해동악부편(海東樂府編), 권39는 이역죽지사편(異域竹技詞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시향춘관편>에서는 《대학》 《중용》을 제외한 사서오경의 진수를 밝히고 있으며, <경전화시편>에서는 유고(諭告)·조(詔)·책문(策文)·고시체(古詩體) 등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문헌지장편>에서는 단군조선에서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연혁·관제·정치·산업·경제·교육 등을 해설하였다. <봉래비서편>에서는 명승고적을 소개·설명하고, 그곳에 관련된 시가 등을 담았다. 39권 33책. 필사본. 규장각도서. [야후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