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도부

이시하라의 막말과 한반도의 존재감

한부울 2009. 2. 8. 16:21
 

이시하라의 막말과 한반도의 존재감

[한겨레신문] 2009년 02월 06일(금) 오후 06:57


한승동의 동서횡단


정한론자의 후예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최근 북한을 중국에 넘겨주는 게 미국한테도 한국한테도 좋을 거라고 한 막말은, 남한은 일본 것이라는 일본 우익의 오랜 몽상의 연장인데, 중국과 미국한테 그걸 인정하라고 미리 못질해두는 것처럼 들렸다.


식민사관의 농간으로 과거 한반도가 줄곧 중국의 직접지배를 받아온 양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원이나 청 같은 이민족의 중국 통치시대까지 포함하더라도 한반도가 중국의 직접지배를 받은 역사는 의외로 길지 않다. 한반도에 자국 군대를 지금처럼 오래 주둔시키면서 절대적 영향력을 휘둘러온 외국은 일제까지 넣어도 미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게다가 한사군 이래 한반도를 자기 마음대로 싹둑 잘라서 분할통치해온 외부 세력은 미국 빼고는 없었다. 이시하라는 그런 미국에게 다짐이라도 받아두려 했나.


조반니 아리기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는 1990년대에 세 가지 인류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첫째가 미국이 지배하는 단일 세계제국. 두 번째는 일본이 이끄는 동아시아가 미국에 맞선 균형추 구실을 하면서 단일국가 헤게모니를 무산시키는 세계시장사회의 출현. 마지막은 말기적 혼란 속에 끝없이 전쟁을 계속하는 세상. 금융공황으로 드러났듯 21세기 들어 팍스아메리카나는 예상보다 일찍 무너졌다. 세 번째 대재앙의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대다수는 그래도 두 번째에 희망을 걸 것이다. 그런데 파라그 카나의 <제2세계>도 미래를 미국·유럽(EU)·중국 3극체제로 예상했지만, 동아시아의 리더는 이제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21세기는 어디로 가는가?’ <뉴레프트 리뷰> 편집위원 페리 앤더슨은 이 잡지 한국어판(길 펴냄)에 실린 이런 제목의 글에서 아리기를 인용한 뒤 “중국, 또는 더 일반적으로 동아시아가 수십 년 내로 세계경제의 중심이 될 공산이 크다”고 내다본다.


<황해문화> 2008년 겨울호에서 지만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이 인용한 ‘글로벌 인사이트’ 자료는 2013년께부터 중국이 세계 최대 수입시장이 되고, 2020년에는 세계 수입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2007년 세계 수입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한 비중은 14.8%였다. 지 팀장에 따르면 한국 최대 수출·수입국이 된 지 오래인 중국과의 교역에서 한국은 2007년에만 467억달러의 흑자를 봤다. 같은 해 중국의 총수출 1조2180억달러 중 57%인 6951억달러가 중국에 진출한 외자기업이 달성한 것이고, 2005년 중국 수출 100대 기업 중 10개가 한국 대기업 현지법인이었다. 2004~7년 대중국 투자국 순위에서 한국은 1, 2위를 다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호칭되는 ‘중국’에는 한국 등 동아시아 전체가 포함돼 있다고 봐도 된다. 페리 앤더슨이 “중국, 또는 더 일반적으로 동아시아”라고 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대동아공영식 일본 패권을 꿈꾸는 이시하라 눈에 이런 사태 전개가 얼마나 위험하게 비쳤을까.


동아시아 리더가 일본이 됐든 중국이 됐든 어차피 한국 또는 한반도는 존재감이 없다. 근대 이후 서구인들의 시야에서 한반도는 사라져버렸다. 그걸 뒤집고 자존하면서 동아시아 허브로 거듭나는 길은 남북한의 경제·문화 통합(정치통합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밖에 없다.


한승동 선임기자한겨레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