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덤 속 ‘죽음의 천사’ 멩겔레를 처벌하다

한부울 2009. 1. 28. 17:24

 

금발 쌍둥이' 많은 브라질 독일인 마을의 비밀

[조선일보] 2009년 01월 22일(목) 오후 11:58


브라질 의 한 작은 국경 마을인 칸디도 고도이(Candido Godoi)에선 5명의 여성이 임신을 하면 그중 1명은 금발과 푸른 눈을 지닌 쌍둥이를 출산한다. 쌍둥이는 80명의 여성이 임신했을 때, 1명이 출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마을에서만 일어나는, 생물학적으로 '기이한' 이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운영하던 아우슈비츠 슈용소에서 유대인을 상대로 끔찍한 인체실험을 자행해 '죽음의 천사(Angel of Death)'라는 별명을 얻었던 의사 요제프 멩겔레(Mengele)의 실험 탓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멩겔레는 히틀러로부터 '제3제국(나치독일)'에 어울리는 '완벽한 인종(Master Race)'을 만들어 내라는 임무를 받았다. 그는 유전학적으로 쌍둥이를 출산하는 법을 연구해, 금발과 푸른 눈이 특징인 아리안족(순수 독일혈통)의 출생률을 인위적으로 높이려 했다.


21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멩겔레는 나치 패망 이후 남미로 도피했지만, 그곳에서도 계속 실험을 계속해 결국 칸디도 고도이에서 연구의 결실을 봤다는 것이다.


멩겔레는 남미 각지로 도피하면서도, 1960년대 초반 칸디도 고도이를 지속적으로 방문해 여성들을 상대로 의료행위를 했다. 이 마을엔 고향을 떠난 독일인들이 농장을 경영하며 함께 모여 살았다.


멩겔레가 방문하면서, 이곳의 쌍둥이 출생률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멩겔레는 여성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약품을 먹이는 등 실험을 했고, 인간의 인공수정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결국 "이 작은 마을은 푸른 눈과 금발의 아리안족을 생산하기 위한 멩겔레의 실험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원세일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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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 ‘죽음의 천사’ 멩겔레를 처벌하다

[중앙일보] 2009년 01월 21일(수) 오전 08:59

 

 

유대인뿐만이 아니다. 집시들을 비롯해 부랑자들을 태운 화물열차가 느릿느릿한 기적 소리를 내며 아우슈비츠 역에 도착하면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수십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수감자들 앞에 어김 없이 나타나는 나치 장교가 있었다.


깔끔하고 날씬한 외모에 지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장교는 파이프 담배를 연거푸 빨아대며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수용자들에게 싸늘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대단한 미남인데다 한눈에 상당한 교육을 받은 인텔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인체실험에 적합한 사람을 직접 골라


그는 수감자들을 노역과 가스실로 분류하는 부하들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부하들이 자기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지를 확인하고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다. 화물열차에 실려 짐짝처럼 내동댕이치고 두려움 속에 어리둥절해 있는 유태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나치 장교의 얼굴에는 내내 차디찬 냉소가 가시질 않았다.


그가 바로 ‘죽음의 천사’ 조셉 멩겔레 친위대 대위였다. 그러다가 종종 부하들의 작업을 제지할 때가 있었다. 인체실험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사람들일 경우다. 소위 실험용 쥐나 다름 없는 이 사람들을 특별 관리했다.


멩겔레는 수감자들의 생사를 분류하는 책임자였고 또한 인간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주도했다. 일본 관동군 731부대와 같은 생체실험을 주도한 실무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실험을 통한 연구결과는 주로 오늘날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로 보내졌다. 당시 이 연구소는 세계 최고 과학을 자랑하는 독일의 과학요람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뮌헨대학을 비롯해 유수 대학 연구소에서 주문하는 내용에 따라 인체실험을 실시했고 그 결과를 보냈다.


인체실험결과는 카이저빌헬름 연구소로 보내


의학이나 화학적 목적뿐만이 아니다. 각종 실험에 동원됐다. 예를 들어 사람이 수압에 얼마나 견디는 지를 시험하기 위해 직접 물 속으로 보내는가 하면, 추위에 사람은 얼마나 견디는지를 알기 위해서도 동원됐다. 이렇게 각종 실험에 필요한 대상을 고르는 책임자가 바로 의사 출신의 멩겔레였다.


그는 병을 치료하러 온 의사가 아니다. 그는 수용소로 실려온 수감자들 가운데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강제노역에 동원할지를 결정했으며 생체실험을 직접 지휘하는가 하면 상부의 명령에 따라 실험 대상을 직접 고르는 그야말로 잔인한 악역을 떠 맡았다.


어떻게 보면 나치라는 역사의 희생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과 영화로 나온 <브라질에서 온 소년>이 바로 그를 소재로 한 허구의 이야기이다. 멩겔레 역으로 나온 그레고리 펙의 연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멩겔러는 학업이 대단히 우수했다. 또한 냉철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체조선수로도 활약한 그는 건장하고 날씬한 몸매를 갖고 있었으며 얼굴도 잘 생겨 그야말로 완벽한 청년이었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그리고 주위에서 ‘앞으로 크게 한몫 할 인물’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는 또 충성심이 강했다.


만약 전쟁이 없던 시절에 그가 태어났다면 ‘죽음의 천사’ 멩겔레는 훌륭한 유전공학자, 생명공학자가 돼 인류에 이바지한 학자로 평가 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노벨상을 받아 지금까지도 계속 존경을 받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없다. ‘죽음의 천사’ 멩겔레는 비인간적 파괴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독일 최고 명문 뮌헨대학 출신으로 미래가 촉망되는 멩겔레는 이차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잔혹한 살인자로 변하고 말았다.


대학시절 우생학 연구에 깊이 빠져


인텔리 가운데 인텔리인 멩겔레가 나치의 충성스러운 장교가 된 데에는 물론 그의 출세욕도 한몫 했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당시 독일의 학문의 최고의 요람인 뮌헨 대학에서 약학과 의학을 공부하면서 인류학에도 관심을 가지면서다. 여기에서 그는 우생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나치가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우생학이 자신의 생각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전 세계 대부분이 그렇지만 독일을 비롯해 유럽은 특히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강했다. 멩겔레의 이러한 학문적 성향과 당시 분위기가 맞아 떨어지면서 ‘죽음의 천사’라는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이다.


사실 혈통이 좋은 가축을 생산하기 위해 시작돼 인종간의 우열을 비교하는 유사과학으로 발전된 우생학은 나치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치의 우생학을 비난한 미국에서부터 시작됐고 온갖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뮌헨 대학에서 의학과 약학을 전공한 멩겔레는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옮겨 대학 부설기관인 ‘유전 생물학 및 인종 위생학 연구소’에서 자리를 잡았다. 여기에서 스승이자 동료인 폰 페르슈어 박사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멩겔레는 1938년 <갈라진 입술과 구개(口蓋)에 관한 가족사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종청소 과학자 페르슈어는 훗날 카이저 빌헬름 우생학 연구소(KWIfA) 소장이 된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있는 멩겔레에게 각종 주문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멩겔레는 유대인이나 수감자를 대상으로 충실하게 인체실험을 실시했고 그 결과를 보냈다.


페르슈어는 연구자료 다 없애서 살아나


미국을 비롯해 연합군은 인체실험 연구자료를 보관한 우생학연구소에 눈독을 들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날 무렵 페르슈어는 보복이 두려워 모든 자료를 불태워 없앴다. 따라서 인종청소 연구에 앞장섰던 그를 단죄하지 못했다. 그는 1969년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도 우생학연구소 설립을 다시 해달라고 정부에 계속 요구했다고 한다.


전쟁 후 미국이 나치로부터 얻은 것은 20세기 첨단 물리학 양자물리학을 비롯해 첨단 과학기술을 전리품으로 얻었다. 그러나 의학분야에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은 특히 첨단무기와 우주과학의 기초가 된 미사일 과학 전체를 고스란히 접수했다. 우주과학의 개척자로 통하는 폰 브라운을 비롯해 미사일 기술자들 전부를 미국으로 불러들이는데 성공했다. 나치로부터 얻은 최대의 전리품이었다.


이처럼 멩겔레는 인종유전 생물학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이루었다. 그러면서 그의 믿음은 자동적으로 독일민족이 뛰어나다는 나치 우생학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또 충성심이 강한 그의 이러한 믿음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 정책과 일치했다.


나치의 주장처럼 유대인은 게르만 민족을 더럽히는 환경오염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영혼, 생명, 윤리를 기대하는 건 애당초부터 무리였다. 멩겔레가 몸담고 있던 뮌헨 대학과 프랑크푸르트 대학은 전쟁이 끝난 후 멩겔레가 계속 문제가 되자 1964년 그의 박사학위를 취소했다고 한다.


쌍둥이와 난장이 등 기형아에 관심 많아


그의 유전학과 인종학 연구대상에 한계가 없었다. 특히 쌍둥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이점에 있어서는 페르슈어도 마찬 가지였다. 멩겔레는 수용소에 있는 쌍둥이들을 선별하여 특별 병영에 따로 수용하면서 각종 실험을 했다.


이들 대상으로 생식기 교체시술을 하는가 하면 두 사람을 꿰매서 하나로 만들려는 접합수술도 시행했다. 물론 연구결과는 전부 페르슈어에게 보냈다. 영국 존 코넬 교수가 쓴 <히틀러의 과학자>에 따르면 무려 1천명에 가까운 쌍둥이를 실험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유전학을 공부한 멩겔레는 기형으로 생긴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 가운데는 오비츠(Ovitz) 가족이 있었다. 루마니아 출신의 예술단 가족으로 열명 가운데 7명이 난장이었다. 수용소에 끌려오기 전만해도 ‘릴리풋 곡예단(Lilliput Troupe)’이라는 이름으로 동유럽을 전전하며 공연을 한 꽤 유명한 예술단이었다. 멩겔레는 이들을 종종 ‘나의 난쟁이 가족’이라고 부르며 아꼈다. 그러나 난쟁이들을 대상으로 온갖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전쟁이라는 자유와 이성이 억압받는 시기에 인체실험은 어디에서나 존재했다. 그러나 멩겔레의 실험들 가운데는 과학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부분도 많았다. 아이들의 눈에 염색물질을 주사해 눈 색깔을 바꾸는 실험도 했다.


 

유전학과 인종학의 한계를 넘어


또 마취 없이 늑골을 적출하는 등 잔인한 외과 실험들을 자행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숨을 거둔 일부 실험 대상들은 표본이 돼 카이저빌헬름 연구소로 보내졌다. 당연히 페르슈어에게는 훌륭한 자료가 됐다.


그의 잔인한 생체실험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1943년 10월경 멩겔레는 여자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자궁을 도려내거나 약품을 사용한 불임수술을 실시했다. 그러나 대부분 실험도중이나 사후에 죽었다. 죽은 사람 일부는 해부용으로 사용했다.


멩겔레가 인종학과 유전학의 한계를 넘어 왜 이러한 잔인하고 비열한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의학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걸 수용한다 해도 쌍둥이를 꿰매 하나로 만드는 실험이나 성기교체, 눈 색깔을 바꾸려는 시도 등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실험들이다.


어쨌든 유대인을 대상으로 이런 만행을 저지른 나치 장교를 누가 용서하겠는가? 유대인은 물론 연합군의 눈으로 볼 때 처단대상 1호였다. 이러한 멩겔레를 추적한 것은 바로 DNA 과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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