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키르기스스탄 레몬혁명 불길

한부울 2009. 1. 22. 20:12
 

키르기스스탄 레몬혁명 불길

[한겨레]2005.03.21(월) 17:58

 

 

총선 부정의혹 수만명 시위

야권, 대통령 즉각사임등 요구


중앙아시아의 작은 산악국가 키르기스스탄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관공서 점거에 나서면서 유혈충돌이 벌어지는 등 총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인한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에이피통신>은 21일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이날 남부에 위치한 제2의 도시인 오슈의 지방정부 청사에 난입했다”며 “곤봉 등으로 무장한 1천여명의 시위대가 몰려들면서 청사를 지키고 있던 군 병력은 물러가고 시위대가 청사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앞서 20일에는 남부 잘랄라바드에서 적어도 1만여명의 시위대가 20일 경찰서와 시장 공관 등 관공서에 난입하는 등 지난달 치러진 총선 뒤 최대 규모의 항의시위를 벌였다. <모스크바타임스>는 현지 경찰 당국자의 말을 따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10명 가량이 숨졌다”며 “이날 시위로 도심 경찰서 건물 3개동 가운데 2개가 불에 탔으며, 경찰 대부분이 피신해버려 치안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가운데 시위대가 시장 공관 등 주요 관공서를 장악했다”고 전했다.

 

△  20일 키르기스스탄 중서부 도시 잘랄라바드의 한 경찰서 앞에서 한 떼의 반정부 시위대들이 경찰차를 뒤집어엎고 있다. 사진은 <로이터 텔레비전> 화면 촬영. 잘랄라바드/로이터 연합


지난달 27일 실시된 총선에 이어 지난 13일 치러진 결선투표에서도 광범위한 선거부정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은 지금까지 당선자가 확정된 69석(전체 의석 75석) 가운데 겨우 6석을 얻는데 그친 반면, 여당에선 아카예프 대통령의 자녀들까지 의회에 진출하는 등 압승했다. 이 때문에 총선 실시 이전부터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통한 ‘레몬혁명’을 예고해 온 야권에선 15년째 집권하고 있는 아카예프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임과 새로운 대선 및 총선 실시를 요구하고 있다. 키르기스 정부는 이날 시위대 및 야당 진영과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으나, 야당지도자 쿠르만벡 바키예프는 “아카예프 대통령이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고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아시아 최빈국인 키르기스스탄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데다, 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교두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군부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등 전략적 중요성이 큰 나라다. 총선 부정선거 의혹으로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은 21일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이나 그루지야의 ‘장미혁명’처럼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통한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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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시민혁명: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

2005-03-31 21:24


1. 시민혁명의 상징: 꽃과 과일

지난 2월 19일 영국의 한 일간지인 ꡔ더 타임tm(The Times)ꡕ는 과거 소연방에 속했던 국가들의 선거과정에서 나타나는 시민들의 부정선거 항위시위 및 이에 따른 민주화 과정을 꽃이나 과일로 표현하며, 이른바 시민혁명의 바람을 부추기고 있다.


꽃이나 과일을 민주화의 상징물로 이용한 원조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카프카즈 지역의 그루지아이다. 그루지아에서는 재작년인 2003년 11월 고르바쵸프 소련 대통령과 더불어 1980년대 중반이후 국제사회의 냉전종식에 특별한 기여를 했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면서, 수도인 트빌리시에서 장미를 들고 거리행진을 하여 결국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이른바 ‘장미혁명’이 발생하였다. 또한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에서는 빅토르 유센코 후보와 그의 지지자들이 야누코비치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선거결과에 불복해 재선거를 이끌어내었고, 결국 재선거에서 승리하여 시민혁명을 완수하였다. 이 당시 국민들이 오렌지색 깃발에 오렌지색 모자와 스카프를 착용하고 대규모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여 정권 교체를 이뤄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시민혁명은 ‘오렌지 혁명’으로 불리며, 노란색은 변화의 상징으로 부각되었다.


이밖에도 몰도바의 경우는 몰도바가 소련 전체 포도주 생산량의 3분의 1을 차지했던 점을 감안하여 ‘포도혁명’으로, 내년 1월 대선을 치르는 카자흐스탄의 경우, 튤립의 원산지를 감안해 ‘튤립혁명’으로, 살구 생산이 많은 아르메니아의 경우, 2007년 총선을 겨냥해 ‘살구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 부정선거 항위시위가 촉발한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에서 이미 예견되었듯이, 변화의 상징인 동일한 노란색을 사용하여 ‘레몬혁명’이라 부르고 있다.


2.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약 20만㎢의 면적에, 인구 약 500만명, 국민소득 약 300달러의 작은 국가인 중앙아시아의 키르키스스탄 레몬혁명의 시발은 장기집권과 경제정책의 실패, 그리고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친 총선 부정선거에 따른 시민들의 불만 표출이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지난 2월 27일 1차 총선과 3월 13일 2차 결선투표가 진행되었고, 총선 결과 여당이 75석의 의석 중 59석을 차지하고 야당 의석은 6석에 그친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공식선언이 3월 14일 발표되자, 야당과 국제 선거감시단은 불법적인 투표권 매수와 언론매체 조작 등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선거부정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더욱이 이번 선거에서 아카예프 대통령의 32세인 딸과 29세인 아들이 의회에 진출하자,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였다.  


선관위의 공식발표가 있은 다음날인 3월 15일,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발발하였고, 이후 3월 21일에는 부정선거에 항위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지방 정부청사를 장악하는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다. 정부측도 야당지도자 및 인권지도자를 체포하는 등 강경대응으로 맞서고,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 역시 야당의 퇴진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강경한 시위진압을 선언하였었다.


그러나 3월 24일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인 비슈케크의 정부청사와 국영방송국을 점령하자, 사태는 급변하여 아카예프 대통령은 하야하고, 카자흐스탄으로 도주설이 퍼진 상태이며, 감금되었던 야당 지도자들이 석방되었다. 25일에는 야당을 중심으로  비상소집된 의회에서 야당 지도자인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전 총리를 대통령대행과 총리대행으로 선출했다. 바키예프 대통령 직무대행은 부정선거에 항위하다가 투옥되어 24일 시위대에 의해 석방된 펠릭스 쿨로프 전 부총리를 내무장관에 임명하는 등 비상내각을 구성하고 “새로운 정부수립을 위한 대통령선거를 올 6월에 실시하겠다”고 차기일정을 밝혔다.


3. 시민혁명 이후의 키르기스스탄


이렇듯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먼저 시민혁명을 성공한 그루지아, 우크라이나와 유사하게 키르기스스탄 역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앞선 두 국가와 비교해 보아 상대적으로 키르기스스탄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쟁점은 먼저, 치안부재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시민혁명이 성공한 이후 수도인 비슈케크를 비롯해서 전국적으로 약탈과 파괴, 방화 및 주민들의 유혈폭력 사태가 발생하여 수백명의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물론 일부 언론이 사태를 확대 보도할 수는 있으나, 전국적으로 경찰 및 행정력이 부재한 상태이기 때문에, 후세인 이후 이라크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무엇보다도 치안유지가 급선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치안공백 사태는 키르기스스탄의 경우, 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와는 다르게, 시민혁명이 명확한 대의명분과 정치적 구심점없이 이루어졌다는 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둘째, 6월의 대통령 선거에 누가 당선되는냐이다. 현 임시정부의 주요 지도자는 각각 남부와 북부지역을 대표하는 지도자이다. 그루지아의 사카슈빌리, 우크라이나의 유센코와 같이 국민들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없이 혁명주도 세력들이 뚜렷하게 지역별로 구분된다는 점이 앞선 두 국가의 경우와 다르다. 우선 대통령 직무대행인 바키예프는 키르기스스탄 시민혁명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남부지역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내무부장관으로 임명된 쿨로프는 상대적으로 북부지역에서 인기가 높다. 키르키스스탄의 경우, 남부지역에는 주로 우즈베키스탄인이 거주하고, 북부지역에는 주로 키르기스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올 6월 대통령선거에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지역적, 인종적 갈등이 노출되어 키르기스스탄의 정국이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내전의 가능성까지 예측가능하나 두 사람의 연합체제 구축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좀더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루지아나, 우크라이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주변국들의 반응 역시 중요하다. 키르기스스탄은 북쪽으로 카자흐스탄, 남서쪽으로 우즈베키스탄, 남쪽으로 타지크스탄, 동쪽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이 북부지역을, 반러 성향이 강한 우즈베키스탄이 남부지역을 지지하며, 자국의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 이 경우 우즈베키스탄을 미국이 지지하면서, 키르기스스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을 증대시킬 시나리오 역시 가능하다. 현재 키르기스스탄에는 비슈케크 인근의 마나스 공군기지에 미군이, 칸트 공군기지에 러시아군이 각각 주둔하고 있어 이 지역이 중앙아시아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세력이 교차하는 전략요충지이기 때문이다.


황성우(러시아연구소, 책임연구원) 국제지역정보 200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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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 그 이후의 변화

2005-05-09 13:17


2003년 말부터 그루지아를 시작으로 진행되고 있던 과거 소련지역 국가들의 민주화운동이 레몬혁명을 성공한 키르기스스탄에 이르러 위기를 맞고 있다. 올 2월과 3월에 치러진 총선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15년 장기집권의 아스카르 아카예프 정권을 무너뜨린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은 한달이 지난 지금,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채, 초기의 명분을 잃어가고 있다.


시민혁명 초기의 치안부재로 인해 나타났던 약탈과 파괴행위는 일단 정리되었다. 하지만 뚜렷한 대의명분과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로 인해 과연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을 시민혁명으로 부를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까지 나오고 있다.


먼저, 청산되지 못한 과거이다. 혁명을 주도한 핵심세력은 정작 뒷전으로 밀리고 기성 정치세력이 여전히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놀라운 일은 부정선거로 규정된 지난 총선에서 선출된 의원들로 의회가 구성되어 새로운 의회의 회기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의원중에는 사임한 전 아카예프 대통령의 딸인 베르메트 아카예바도 있다. 反아카예바 시위가 의사당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4월 14일 아카예바 의원은 의사당에 나왔다.


두 번째, 새로 권력을 장악한 쿠르만베크 바키예프 대통령 권한대행과 펠릭스 쿨로프 내무부장관 역시 전 아카예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친분과 혈연을 통해 사람들을 요직에 등용하고 있어,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방지라는 부정선거 규탄명분이 무색해지고 있다. 두 사람은 향후 대통령 선거에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였기 때문에, 대선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친인척들을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영방송도 신흥 권력층에 집착하는 현상이 나타나 언론의 공정성 여부도 문제시 되고 있다.


세 번째, 전임 아카예프 대통령 처리문제이다. 의회는 아카예프 대통령이 사임발표를 할 경우, 면책특권과 함께 귀국후 신분보장을 약속하였지만, 일부 의원들은 아카예프의 면책특권을 박탈하기 위해 사임대신에 탄핵을 요구하고 있어, ‘新․舊’ 대통령 문제로 키르기스스탄의 정국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국론분열과 더나가 내전 발발 가능성이다. 키르기스스탄 의회는 4월 11일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 대통령의 조기 사임 발표를 승인하고 오는 7월 10일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6월 26일로 잠정 예정되었던 대통령선거가 7월 10일로 확정됨에 따라 현 총리겸 대통령 권한대행인 바키예프와 내무부장관인 쿨로프의 대선경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부지역과 수도 비슈케크를 중심으로 한 북부지역 사이의 지역갈등과 주로 북부지역의 키르기스스탄 민족과 남부지역 우즈베키스탄 민족의 민족갈등이 대통령선거로 인해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바키예프 대통령 권한대행은 남부지역, 쿨로프 장관은 북부지역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행정부는 두 사람의 지지기반이 비슷하지만, 사법부는 바키예프의 영향력이 조금 우세하고, 반대로 의회에서는 쿨로프의 인기가 조금 높은 편이다. 팽팽한 2강구도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경우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국론분열과 함께 지역간, 민족간 갈등으로 인해 자칫 분열양상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로 인해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은 곤경에 처해 있다. 3주이상 지속되었던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과 비교해볼 때, 레몬혁명은 단 3일도 제대로 지속되지 못했다. 단순한 시간비교지만, 어쩌면 이 차이가 두 국가의 문화와 국민의식의 차이라고 볼 수 있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것이다.


황성우(러시아연구소 책임연구원) 국제지역정보 200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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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의 대통령 선거와 이후 전망


급변하는 국제사회 변화의 중심에 키르기스스탄의 운명이 놓여 있다. 어느 국가를 택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 키르기스스탄의 대외정책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는 것이다.


1.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선거


7월 10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 직무대행인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됨으로써, 키르기스스탄의 레몬혁명은 일단락되었다. 지난 2월 27일 1차 총선과 뒤이은 3월 13일의 2차 결선투표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여당의 압승을 선언하자, 남부지방을 시작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발발하여,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은 공직에서 물러났었다. 이로써 2003년 그루지아, 2004년 우크라이나에 이어 2005년 7월, CIS 국가중에서 세 번째로 시민혁명에 의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번 선거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 자체는 그다지 흥미거리를 제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키예프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이자, 북부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펠릭스 쿨로프 내무부장관이 지난 5월 바키예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며 두 지도자가 정치적 연합체제를 구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에 모두 6명의 후보가 등록하여 TV토론을 벌이는 등 선거과정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지만, 승패는 이미 결정나 있었다. 쿨로프 장관은 권한이 강화된 총리직을 약속받았기 때문에, 이번 대선의 결과 ‘바키예프-쿨로프’ 2인 지배체체가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고, 조만간 완성되는 새로운 헌법에 따라 두 사람의 권력구조가 완성될 것이다.

          

2. 키르기스스탄의 당면과제


대통령에 당선된 바키예프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최빈국인 키르기스스탄의 경제발전을 위해 전국토의 80%가 산악지대인 점을 착안하여 이시크 쿨(Ysyk Kol) 호수 등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청사진 제시와 더불어 바키예프 대통령은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의 15년 통치동안 국가기구와 사회조직내에 만연된 부패 역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 이미 바키예프는 아카예프의 해외재산을 추적하기 위해 국제변호사들을 고용하고 있고, 현 부총리인 다니야르 우세노프를 중심으로 아카예프 대통령의 사위와 가족들이 장악하고 있는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및 감찰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만약 이러한 과거청산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되지 못할 경우, 구세력에 의한 또다른 역공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쿨로프 총리예정자와 구축한 연합체제의 지속성 여부가 향후 키르기스스탄의 정국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쿨로프는 북부출신이고, 바키예프는 남부 잘라트 아바트(Zalal-Abad, 혹은 Dzhalal-Abad)州 출신이다. 이번 대선에서 바키예프는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았다. 남부출신으로 남부지역의 지지이외에 부인 따찌야나 여사가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국민의 11%를 차지하는 러시아계가 그를 지지해준 이유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북부지방에서 인기가 높은 쿨로프가 출마하지 않고, 그를 지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새로운 헌법구조하에서 바키예프와 쿨로프의 연합체제가 붕괴할 경우 정국의 앞날이 불투명할 것은 자명하다.  

   

3. 중앙아시아 세력갈등과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대외적으로 볼 때, 보다 중요한 점은 키르기스스탄이 현재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러시아와 미국의 세력확장 대상지역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앙아시아 국가에는 미국과 러시아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수도인 비슈케크 인근 마나스 공군기지에 미군이, 칸트 공군기지에는 러시아 군이 각각 주둔하고 있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국의 미 공군기지에 대해 상하이 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에서 논의했다면서 아프카니스탄의 상황이 변화하고, 중앙아시아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이러한 상하이협력기구의 주장에 대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무장관은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문제는 이 지역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세력확장이 시도되면서, 양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헤게모니 갈등이 발전하여 새로운 냉전의 발발 가능성도 예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신냉전이 과거와 같이 ‘자본주의 vs 사회주의’라는 이념대립 및 체제경쟁을 토대로 하는 범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러시아가 자국의 배타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 특히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하는 흑해와 카프카즈를 포함하는 카스피해 지역, 그리고 중앙아시아라면 문제의 성격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미국과 러시아의 신냉전 헤게모니 충돌지역에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아를 포함하여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옛 소련지역에 새로운 전진기지를 구축하여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는 미국이 반러 성향이 강한 몇몇 국가들을 규합하여 1999년 GUUAM(그루지아, 우크라이나, 우즈베케스탄, 아제르바이잔, 몰도바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만듬)을 조직하고, 이 기구를 바탕으로 CIS 지역에서 러시아를 고립시키고자 하였고, 이러한 미국의 의도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이 되어 중앙아시아의 몇몇 국가를 참여시켜 미국의 지구적 패권주의에 맞서는 상하이 협력기구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물론 상하이 협력기구는 1996년의 ‘상하이 5’가 모태가 되었고, 2001년 우즈베키스탄이 가입함으로써 6개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원래의 목적은 주로 반테러였다.


지금은 지난 5월 안디잔 유혈사태이후 우즈베키스탄이 GUUAM를 공식탈퇴하고 상하이 협력기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등 친러성향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상하이협력기구의 활동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이런 가운데 이 기구의 국가정상들이 지난 7월 초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 모여 미군철수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러시아는 자국이 중심이 되는 유라시아 경제공동체(EEC)를 창설하여 중국과 함께 미국의 지역 패권전략을 저지하겠다는 의도이다.


이러한 급변하는 국제사회 변화의 중심에 키르기스스탄의 운명이 놓여 있다. 키르기스스탄은 자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외국자본의 유치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외형상 러시아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러시아 이외에 중국과 미국도 키르기스스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느 국가와 가까워지느냐에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의 대외정책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는 것이다.


황성우(러시아연구소 책임연구원) 국제지역정보(2005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