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 창건 내력 알려주는 금제 사리 봉안기 발견
온고지신 2009/01/20 23:07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에서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장엄을 발견하였다. 지난 1월 14일 1층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금제사리호(金製舍利壺)와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 은제관식(銀製冠飾) 등 유물 500여점을 수습하였는데 이를 1월 19일 익산 미륵사지 현장에서 공개하였다.
아래 사진과 사리봉안기 번역 내용은 모두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도자료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해체 공사전의 미륵사지 석탑 모습
미륵사지 서탑의 심주(중심기둥) 해체 장면, 가운데 보이는 심주의 사리공에서 금제사리기 등 5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Canon | Canon EOS-1Ds Mark III | Manual | 1/60sec | F/16.0 | 0EV | 50mm | ISO-200 | No Flash | 2009:01:14 18:10:16
미륵사 서탑에서 나온 금제 사리봉안기(記)에는 석탑 자체는 물론 미륵사의 창건 내력을 알려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가로 15.5㎝, 세로 10.5㎝의 금판에 글자를 오목새김하고 주칠(朱漆)을 입혔다. 글씨는 앞면과 뒷면에서 모두 확인됐는데, 앞면에는 1행에 9글짜씩 모두 11행에 99자를 새겼고, 뒷면에는 11행에 94글자를 적어넣었다.
가만히 생각하건데, 法王(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따라 감응(感應)하시고, (중생들의) 바람에 맞추어 몸을 드러내심은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께서는) 왕궁(王宮)에 태어나셔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면서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겨 3천 대천세계를 이익되게 하셨다. (그러니) 마침내 오색(五色)으로 빛나는 사리(舍利)를 7번 요잡(오른쪽으로 돌면서 경의를 표함)하면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 할 것이다.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佐平) 沙(宅) 積德의 따님으로 지극히 오랜 세월[曠劫]에 선인(善因)을 심어 금생에 뛰어난 과보[勝報]를 받아 삼라만상을 어루만져 기르시고 불교[三寶]의 동량(棟梁)이 되셨기에 능히 정재(淨財)를 희사하여 가람(伽藍)을 세우시고, 기해년(己亥年) 정월 29일에 사리(舍利)를 받들어 맞이했다.
원하옵나니, 세세토록 공양하고 영원토록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을 자량(資糧)으로 하여 대왕폐하(大王陛下)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寶曆]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正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蒼生)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나니, 왕후(王后)의 신심(身心)은 수경(水鏡)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히시며, 금강 같은 몸은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칠세(七世)의 구원(久遠)까지도 함께 복리(福利)를 입게 하시고, 모든 중생들 함께 불도 이루게 하소서.[온고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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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사리호와 사리봉안기의 진실에 대하여
글쓴이: 최두환 09.01.21 22:04
서동요"가 거짓일 수 있다고? 그럴지 아닐지를 정말 조심스럽게 따져보자.
국보 제11호를 보수했다!
왜? 그렇게 해야지?
와 그렇게 훼손되었지?
1400년을 지내온 유물이 말이다.
정말로 1400년을 지내온 것이 맞는가?
그런데 왜 이 시점에 와서 해체, 보수를 대대적으로 해야할 만큼 훼손이 되었는가 말이다.
1400년 전의 타임캡슐을 꺼낸 것가 같다?
나는 단연코 아니다.
그 번역이 잘못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도 그렇게 번역한 바가 잇지만, "竊(절)"은 "가만히 생각하건대"로 해서는 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저는"이거나 "저의 생각으로는"이라야 옳다.
내가 죽으면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해시 어디"라고 적어야 할까보다. 그래야 "익산 미륵사지 사리봉안기"의 기록 "백제"라는 말과 같은 개념이 성립된다.
그리고 사리봉안기는 앞면과 뒷면의 두 면으로 적혀 있다.
아래 주소에서 잘 보자.
앞면의 글은 음각된 글씨에 음각된 부분에 붉은 색이 칠해져 있다.
그런데 뒷면의 음각된 글에는 하얀 색으로 되어 있다.
이 두 면의 글씨가 왜 그럴까?
그리고 앞면의 글씨와 뒷면의 글씨가 다르다.
앞면의 "世"와 뒷면의 "世"는 분명 글씨체가 다르다. 힘주는 위치가 다르고, 구부러진 부분도 다르다.
앞면의 "生"과 뒷면의 "生"이 다르다. 이것은 글 쓰는 획의 순서가 달라야 되는 모양이다. 한번 잘 살펴보자.
앞면의 "身"과 뒷면의 "身"이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잇다.
그것은 금제사리호의 녹쓴 부분이다. 이것은 직접 보고서 감정해야 옳겟지만, 천연색 사진으로 세밀하게 보이니 만큼 그 사진으로 본다면, 적어도 70년 이상 정도로 오래된 시간이면 저 정도의 부식된 모양을 만들 수 있고도 남는다.
아직도 푸른 녹이 많이 보인다. 아무리 금제사리호라고 하지만, 녹은 오래되면 될수록 금은빛을 띠며, 두꺼운 층이 생긴다.
그런데 익산 미륵사지 금제사리호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시간이 잛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라고 본다.
이런 나의 경험상의 지식으로 볼 때 매스컴에 나온 사실에서 보면, 거짓이다. 특히 금제사리봉안기의 앞면이 완전 조작이라고 본다.
그렇ㅈ디 않고서야 앞에서 지적한 것들이 왜 다르게 보이도록 되는가 이다.
나의 눈이 잘못되엇는지, 혹시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았는지 한번 다시 봅시다.
나는 일부러 흠집내려고 이런 글 쓰고 있지 않습니다. 현상만을 말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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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개
이태수
금제 사리함이라고 하는데, 푸른 녹이 슨 것으로 보아서 동이 섞인 것이거나, 전부 동(구리)일 수 있습니다. 공기와 차단되어 그만큼 녹이 덜 끼었을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돌을 보니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일제때에 허물었다가 다시 복원하면서 그 안에 저 유물을 넣어두었을 것입니다. 귀찮으므로 시멘트로 마무리한 것입니다. 09.01.22 01:41
김대준
저도 위 유물은 특히 의심이 많이 갑니다. 특히 최두환선생님 말씀처럼 1400년을 지내온 유물치고..산화된 흔적이 약한 듯 합니다. 사리함이 있던 탑의 골격이 대충 화감암계 인듯하고, 또한 내부 공간을 완벽히 실링하진 못했을 것이기에..내부 공기에서의 산소량이 금속과의 반응에 의해 차츰 줄어들 순 있으나 없어지진 않습니다. 더구나 1400년정도 지나게 되면 산화된 형상이 매우 대두될 터인데...아무리 많이 잡아보아도 100년이 넘는 유물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09.01.22 10:12
김대준
그런데, 저는 유물의 산화정도 및 글씨체 뿐만 아니라...사리봉안기의 내용 중 "..백제 왕후.."라는 대목이 매우 의심되고 거슬립니다. 통상 위와 같은 봉안기에 특별히 국명을 기입할 필요가 있는지...좀 어색합니다. 09.01.22 10:17
최두환
그래서 내가 죽으면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해시 ..." 아니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경상남도 진해시 ..."라고 써야 할 판이라고 한 것이죠. "백제"라는 "국명"이 왜 필요하죠? 의도적이지 않으면 들어갈 필요 없는 말이 바로 국명아닌가요? 09.01.2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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