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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인들 1864-2002 인구 동향 분석

한부울 2008. 11. 2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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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람(Koryo-saram) http://blog.daum.net/han0114/17045587

1937년 전후의 연해주 한인들에 대한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http://blog.daum.net/han0114/17050102

 

모두 171,781명의 한인을 송환 완료 했다고 보고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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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인들,1864-2002 한인의 인구 동향 분석

[세종정책연구 2007년 제3권 2호 230p] 정한구


스탈린 치하의 전체주의 시기: 한인의 강제이주

소련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를 거치면서 스탈린 치하에서 전체주의 체제로 변질되었고, 이 과정에서 혁명 초기에 내세웠던‘민족 자주’같은 구호는 뒷전으로 밀려났으며, 따라서 간간히 거론되던 한인 자치구(自治區)의 설치라는 것도 빈말이 되어버렸다. 한편 밖으로는 스탈린이 동아시아에서 영향권의 분할을 놓고 제국주의 일본과 신뢰의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게 됨에 따라 일본의 조선 지배에 반대하는 한인은 러시아의 동방정책에 걸림돌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를 배경으로 드디어 1937년 9-10월 극동지방에 거주하는 한인을 중앙아시아의 오지(奧地)로-주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공화국-추방하는 대대적인 강제이주(deportatsiya)가 자행되었다. 그때 죄수 취급을 받으며 추방당한 한인은 얼마나 되나?

당시 소련 비밀경찰 수장 예조프(N. Ezhov)내무인민위원은 몰로토프(B. Molotov) 인민위원회 위원장(총리)에게 보낸 같은해 10월 29일자 서한에서 모두 171,781명의 한인을 “송환” 완료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Bugai,159-160).


강제이주는 이 당시 자행된 스탈린의‘대(大) 테러’의 일환으로서 한인 희생자들의 운명에 관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너무나 많다 (Ku). 1936년에 극동지방에는 205,000여 명의 한인이 있었으며, 이주된 한인이 17-18만명 정도라고 하면, 나머지 2-3만 명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Pak, 1995,235).

이들은 만주나 조선반도로 도망했던가, 아니면 강제 추방되기 이전에 소련 내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거나, 강제노동수용소(GULAG)에 갇혔던가, 이것도 아니라면 강제이주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맞게 되었을까? (Pak,1995, 235).


아마도 당시 어떠한 형태로든 시련을 겪지 않은 한인은 드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소련의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Solzhenitsyn)은 수 십 만 명의 한인이 간첩의 누명을 쓰고 강제수용소에 갇히거나, 아니면“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었다”고 적고 있다 (Solzhenitsyn, 72, 247).


이들 한인 이주자들은 마치 죄수라도 된 듯‘거주지 제한’이라는 낙인이 찍힌 가운데 중앙아시아에 갇혀 지내다가 스탈린 사후 거주지 제한이 폐지된 뒤인 1950년대 중반 이후 일부가“자기들의 고향이었던 원동으로(극동지방) 이사”하기 시작했다7) (고송무, 35). <그림 2>에서 1959년도 러시아의 인구조사를 보면 한인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증가의 상당한 몫은 강제이주 되었던 한인 중 귀환자들이 차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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