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병(砲兵), 새로운 발견(1)
[한국일보]2005-11-17 10:04:24
대포가 큰 북이 되어
1812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 대군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를 점령했다. 그러나 그 도시는 러시아가 작전상 텅텅 비워 놓고 프랑스에게 내 준 죽음의 도시였다. 병사들의 배를 따뜻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만 점령하면 배불리 먹고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진군해왔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은 절망 속에 숨을 거뒀고 나폴레옹은 눈물을 삼키며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멀고 먼 프랑스로 뼈를 깎는 비참한 패배를 안고 돌아갔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는 이 1812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작품 <1812 서곡 op.49>에서 전쟁과 평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모스크바에서 처음 이 작품이 연주될 때, 포병부대의 대포가 큰 북 대신 사용됐다. 음악에 대포가 악기로 등장한 흥미로운 사건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아마도 칼을 쳐서 낫을 만드는 마음으로 대포를 음악 연주에 동원했을 것이다.
광장을 울리던 그 대포,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러나 축포의 대포가 아니다. 연주회 악기로써의 대포가 아니라 새롭게 그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는 화력으로써 대포, 그리고 포병전력을 살펴보려 한다.
포병
포병은 주로 활동하는 지역에 따라 야전포병과 포대(砲臺)포병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주로 야전포병을 다루겠다.
포병의 화력체계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 표와 같다.
지상군에는 여러 가지 전력이 있다. 보병과 기갑은 적진을 돌파하고 목표를 점령하기 위해 직접 전선에 투입된다. 그러나 포병은 이와 달리 보병과 기갑을 지원하는 전선 후방 간접화력(Indirect Fire)으로만 기능했다.
역사적으로 포병의 등장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었다. 그 이전의 전쟁은 서로 눈에 보이는 거리(可視線)에 대치하면서 활과 총을 쏘아댔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전력 요소는 병력의 숫자였다. 압도적인 숫자로 적을 밀어 부치고 포위, 섬멸하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었다. 평면 지상에서 벌이던 2차원적 전쟁이라 부를 수 있다.
그러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적뿐만 아니라 언덕이나 산 너머에 숨어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포물선(곡사 曲射) 탄도 무기를 고안했다. 3차원의 공간 개념이 전쟁에 도입된 것이다. 직접 목표물을 겨눠 발사하던 방식을 벗어나 눈으로 볼 수 없는 비가시선(非可視線. Non-Line of Sight) 표적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적을 공격하려니 적의 위치, 분포, 적 전력의 구성, 적의 행동과 의도를 파악하는 정보전력과 표적획득능력이 필요해졌다. 대(對) 포병 레이더, 전방관측정보, UAV 운영 획득정보, 기상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적에 대한 최적의 대응 수단을 선택한다.
유럽, 특히 독일 포병의 경우 우리와 달리 포병이 전술 무인항공기를 직접 운영하면서 표적획득, 사격유도 그리고 전장피해확인(BDA. Battle Damage Assessment)에 사용한다.
목표물의 종류에 따라 인마(人馬)살상용 고폭탄, 장갑파괴와 인마살상을 동시에 달성하는 이중목적 개량형 재래식 탄(DPICM. Dual Purpose Improved Conventional Munitions), 감응신관식 지능탄(SFM. Sensor-Fuzed Munitions) 등 다양한 종류의 탄이 등장했다. ,
또한 눈으로 볼 수 없는 적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탄을 유도하고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정밀유도포탄이 필요해졌다. 이런 탄을 지능탄(Intelligent Munitions)이라고 부른다. 감응신관식 탄(SFM)은 목표지점 상공에서 자기 스스로 표적을 탐지하여 공격하는 지능탄의 일종이다.
현대전은 새로운 포병화력을 요구하고 있다. 사정거리를 늘림과 동시에 목표지점까지 정확하게 포탄을 유도해야 한다. 또한 고정표적뿐만 아니라 이동표적도 대응하여야 한다. 요즈음의 표적들은 대부분 기만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러한 표적을 정확하게 탐지하여 결정적으로 파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중요한 기술만도 탄도기술, 유도기술, 표적 탐지기술 그리고 탄두기술 등 첨단의 과학기술이 동원돼야 한다. 인류는 인류문명을 파괴하고 인간의 생명을 끊는 일에 애써서 이룩한 과학과 기술을 사용하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사거리 연장
30 킬로미터 내외의 사정거리에 사용하는 정밀지능탄은 이미 개발되어 실전에 배치됐다. 그러나 40 킬로미터 사정거리에서 정확하게 표적만 탐지하여 타격하는 정밀지능탄약은 여러 나라가 앞 다투어 개발 중이다. 50킬로미터, 60 킬로미터로 사정거리를 연장하기 위한 연구도 한창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막대한 돈을 이 부문에 투자하고 있다.
▲엑스칼리버(Excalibur)
전설 속에 나오는 영국 아더(Author) 왕의 칼 이름을 딴 엑스칼리버(Excalibur), 그리고 사거리연장유도포탄(ERGM. Extended Range Guided Munitions)을 개발하고 있다.
ERGM (Extended-Range Guided Munition)사거리연장유도포탄
그런 탄들은 더 이상 탄도비행만 하지는 않는다. 탄도포물선의 꼭대기 점(Apogee라 한다)을 통과한 다음 공기 역학을 이용하여 활강(gliding)을 하면서 목표지점으로 유도된다. 이제는 포병탄약이라기 보다 포병화포에서 발사한 미사일이라고 부를 만하다.
탄의 사정거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추진제의 성능을 높여 더 높은 탄속(彈速. Muzzle Velocity)을 얻는 것이다. 즉, 같은 양의 추진제를 연소시키고도 더 많은 연소가스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추진제의 연소속도나 압력특성이 조절 가능한 범위 안에 들어야 한다. 연소 특성이 균일하고 연소온도가 높지 않은 추진제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포의 성능을 개량한다. 포신의 길이가 길어지면 사거리가 늘어난다. 현재 155mm 포에는 39 구경장, 52 구경장 등이 있다. 구경장(口徑長. Caliber)이란 길이가 지름의 몇 배냐 하는 것을 숫자로 표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52 구경장 155mm 포는 탄약의 구경 155mm의 52배 길이를 가졌다는 뜻이니 곧 포신의 길이가 8,060 mm(155 mm x 52)라는 뜻이다.
셋째, 포탄의 형상을 개선하여 무게를 가볍게 한다. 또한 탄에 대한 공기 저항을 감소시킬 수 있는 형상을 채택한다. 탄에 로켓(RAP. Rocket Assisted Projectile)을 장착하거나 항력감소장치(BBU. Base-Bleed Unit)를 부착하던지 또는 그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Hybrid)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문제는 포와 탄의 최적화이다. 엄청난 발사 압력(20,000g 정도)을 견딜 수 있도록 탄체와 부품, 특히 정밀전자 부품들을 설계해야 한다. 52 구경장의 경우 탄두성능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별도의 유도장치 없이 탄착 정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론상 최대 사거리는 28 ~ 30 킬로미터가 한계이다.
따라서 이보다 사정거리가 긴 탄은 탄두 효과가 감소됐거나, 탄착 정밀성이 떨어지는 등 어떤 부분에서든 부정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사정거리 30킬로미터가 넘는 탄약에 스스로 탄도를 수정(Trajectory Correction)하는 신관을 결합하는 기술은 아직 세계 어느 곳에서도 실용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장사정 탄약 기술은 점 표적이 아닌 지역표적 공격용 탄 즉 DPICM탄이나 고폭탄에만 적용한다.
시나리오1
안개 짙은 그믐 밤 9시 36분.
OO 155 미리 자주포대, 북방 20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사격 준비 중인 적 자주포 4대를 격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동시에 서 북방 25 킬로미터 지점에 1.500 미터 X 1,500 미터에 전개한 3대의 전차와 9대의 장갑전투차량을 대응하라는 임무도 하달됐다. 그 동안에 아군의 무인 정찰비행기(UAV)는 포대 동북 쪽 15킬로미터 지점에서 개활지에 산개하여 이동중인 적 보병 및 장갑차량을 발견했다. 예전 같으면 1개 포대로는 어림도 없는 사격 임무가 계속 할당된다.
[한국일보]윤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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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砲兵), 새로운 발견(2)
[한국일보]2005-11-23 14:19:44
<컴퓨터>가 된 <사람>
FDC. 포병 사격지휘반(Fire Direction Center)을 말한다.
거기에 컴퓨터라는 직책이 있다. 요즈음 우리가 사용하는 그런 컴퓨터가 아니다. 포(砲)를 사용해서 포탄을 발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계산하고 선정하고 사격명령을 내리는 병사를 컴퓨터라고 부른다.
컴퓨터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1973년 8월 말. 필자는 컴퓨터가 됐다. <사람>에서 <컴퓨터>가 됐다.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다는 기계화 사단, 바로 수도기계화보병사단(맹호 부대)의 포병여단, 60대대, 브라보(B)포대, FDC 컴퓨터로 배치된 것이다. 먼저 미 야전교범을 그대로 번역한 아주 두꺼운 교범 (육 다시 넷 공으로 불렀다)을 달달 외우고 자유자재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숙달 훈련을 받았다. 그래야 포병 FDC 컴퓨터로 행세할 수 있었다.
군 복무 중, 군단 포술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자랑거리 추억이다. 전포대에서 수고하던 동료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포병 야간사격 장면
그들이 얼마나 사격지휘반을 부러워했던가? 사격지휘반은 늘 차량에 탑승한 채 훈련하지만 전포대는 추우나 더우나 벌판에서 그 육중한 포와 씨름을 했다. 포를 포차에 연결했다 뗐다 끊임없는 훈련. 추운 겨울이면 포신이나 가신(포 다리)에 손이 쩍쩍 늘어붙었다. 그들은 늘 덜덜 떨며 차디차게 식은 국에 밥을 말아먹곤 했다.
브라보, 긴급임무
1974년 2월 추운 겨울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우리 브라보 포대는 알파(A) 브라보(B) 챨리(C) 3개포대로 구성된 대대 화력의 기준 포대이다. 포대는 보병으로 치면 중대다. 이등병을 달고 FDC 컴퓨터로써 처음 훈련을 나갔다. 포대 이동 중에 긴급임무가 하달됐다. 이동 중 긴급임무에서는 그 임무를 받고 3분 이내에 첫 포탄을 발사해야 했다.
우리 브라보(B) 포대 FDC에는 사격지휘 장교가 없었다. 수평통제병, 수직통제병 무전병 등 모두 사병이었다. 그들은 모두 필자보다 고참이었다.
포대장(대위)은 포대 전체의 훈련을 지휘하고 전포대장(중위)은 6문(포는 문이라고 숫자를 센다)의 포를 지휘하여 실제 사격을 한다. 사격지휘는 포병에서 매우 독특한 분야다. 따라서 사격지휘 경험과 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서는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첫 포대 사격지휘 기억은 훈련소에서 처음 소총 사격을 할 때 받았던 손가락의 느낌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런데 그 느낌이 결코 무섭거나 나쁘지 않다. 군대 체질이라고 할까?
30년도 넘은 그 날이 눈앞에 영화처럼 펼쳐진다.
“긴급임무!”
사격지휘반 무전기에서 전방 관측 장교의 다급한 사격 요청이 들려온다. 무전기를 통해 표적의 위치가 좌표로 통지되고, 표적의 종류와 규모, 이동 방향, 산개(흩어진 정도)등의 정보가 숨가쁘게 속속 FDC에 들어온다.
수평통제병은 포대의 현 위치 좌표를 지도에서 산출하기에 바쁘다.
그리고 도판 위에 포대와 표적 위치에 핀을 꼽는다.
두 지점의 ‘거리’, 그리고 포대를 기준으로 표적 위치에 대한 각도를 산출한다. 그 각도는 ‘편각’이라고 부른다. ‘거리’와 ‘편각’ 두 가지 데이터를 컴퓨터에게 통보한다. 그리고 혹시 우군의 다른 부대가 포대 사격 방향과 사정거리 안에 있는지 확인한다.
다음 수정 사격을 위해 전방관측자의 위치와 그가 바라보는 표적의 각을 변환할 수 있는 방안지 형태의 둥근 판지를 도판에 설치한다.
수직통제병은 포대와 표적의 좌표를 지도에서 확인한 후 등고선을 읽어 그 위치의 높이를 해발로 계산한다. 그리고 표적과 포대 위치간의 해발 높이 차이를 산출하고 거리를 적용하여 사각을 보정할 수 있는 수치를 컴퓨터에게 불러준다. 우리는 그 데이터를 ‘에스 아이(Si. Site)’라고 불렀다.
‘거리’ ‘편각’ ‘에스 아이’가 산출됐다. 이제 남은 것은 모두 컴퓨터와 전포대의 몫이다.
그 동안 전포대는 포차에서 포를 떼고, 측지병의 유도에 따라 6문의 포를 표적 지점을 향해 배치하는 데 이를 방열이라고 한다. 땅을 판 후 가신을 벌여 깊게 묻고, 뒤로 물러나지 못하도록 쇠말뚝을 박는다. 포차에 싣고 다니던 포탄과 장약 신관들을 내려 사격을 준비하고, 시한 신관의 경우 시간장입에 대비한다. 6~7명의 전포대원이 포 1문을 운용하는 포반이다.
유선 통신병은 그 무거운 케이블 꾸러미를 등에 메고 전포대와 사격지휘반 사이에 통신망을 설치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사격 임무가 부여되면 한 사람도 그냥 멍하고 서있는 사람이 없다. 포차 운전병들도 사격에 지장 없도록 포차를 분산하여 빼 놓고는 주변 경계에 들어간다. 그야말로 숨돌릴 새 없이 바쁜 몇 분간이다. 생각해 보면 맡은 일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병사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필자가 컴퓨터로써 직접 담당하는 첫 훈련이다. 컴퓨터라 부른다고 지금 그처럼 흔한 전자 계산기라도 하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로지 장약 별, 탄약 별 계산척 몇 개, 사표(射表. Firing Table) 몇 권뿐이다. 계산척은 사거리에 따라 장약을 선정하고 사각(射角)을 계산하는 데 필요하다. 모든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은 암산과 필산으로 한다.
컴퓨터는 표적의 종류와 거리에 맞추어 적절한 탄약, 신관 및 장약을 선정하고, 사각 및 시한신관에 장입할 시간을 산출한다. 사격할 포를 선정하고 그 포의 특성에 맞춘 사격 제원을 산출한다. 필요하면 방열된 각 포의 위치에 따라 사격 제원을 조정하며, 그 결과를 가지고 전포대에 사격명령을 내린다. 또 무전병을 통하여 전방관측 장교와 사격을 교신하는 등, 임무상 사격지휘반의 책임자가 된다.
사격지휘반의 다른 동료가 고참이라도 컴퓨터의 일은 대신해 줄 수 없다. 컴퓨터의 임무는 그들의 임무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고참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등병 컴퓨터를 지켜본다.
삽입 사격 임무도
전포대로부터 포 방열 끝 보고가 올라온다.
미안하게도 육군 이등병 컴퓨터가 중위인 전포대장에게 사격명령을 내릴 차례다.
난생처음 사격명령을 내린다.
침착 하려고 노력한다.
컴퓨터: 3포 사격 준비!
(3포는 3번째 포다. 포대의 기준 포다. 기준 포로 포탄을 발사하고 그 포탄의 탄착점을 보아가며 표적과의 사거리 및 좌 우 편각 오차를 수정한다. 수정이 끝나면 효력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계산한 결과대로 이어서 사격 명령을 내리지만 사실은 정신(?)이 없다. 침착해야 한다고 몇 번씩 마음 속으로 다짐한다.
전포대가 사격 준비를 하는 몇 초 동안에 사격 제원을 다시 점검한다.
전포대: 3포 사격 준비 끝!
컴퓨터: 3포 발사!
전포대: 3포 발사!
(포병 훈련에서는 야간 정숙 훈련 때를 제외하고는 사격 명령을 모두 복창해야 한다.)
따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첫발이 발사됐다. 컴퓨터는 전방관측자에게 발사를 통보한다.
컴퓨터:떴다. 이상!
전방관측자: 떴다. 이상!
포탄의 비행 시간 계산에 따라 탄착 몇 초 전에 다시 탄착을 알려준다.
컴퓨터: 보인다. 이상!
전방 관측자: 보인다. 이상!
전방 관측자: 봤다!
우리 모두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6문의 포반 대원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있다. 첫 발의 탄착 관측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몇 초가 우리 모두에게 마치 1시간쯤 걸린 것 같이 길게 느껴진다.
전방 관측 장교의 음성이 들린다. 떨리는 목소리다.
전방관측자: 와! 명중! 효력사!
컴퓨터는 드디어 신이 났다.
컴퓨터: 포대 사격 준비!
전포대: 포대 사격 준비!
사각, 편각 등 사격 제원을 수정 없이 동일하게 불러준다.
전포대장: 어! 컴퓨터! 들어간 거야?
컴퓨터 : 예!
전포대장: 우와!
전포대장: HE탄, 순발신관 ------!
사격 명령을 포반에 하달하는 전포대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고 우렁차다. 드디어 여섯 발의 효력사가 이뤄진다.
따당!
6발이 거의 동시에 발사됐다. 부대에서 땀 흘리며 훈련한 결과다 따다다당 하고 시차가 있으면 안 된다. 여섯 발 중 맨 좌측의 6포가 쏜 탄만 표적에서 좌로 좀 벗어났고 나머지 5발 모두 표적 원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전방관측장교가 컴퓨터를 바꿔 달란다. 무전병으로부터 송수신 세트를 넘겨 받았다.
전방관측 장교: 컴퓨터! 기막히게 들어 간기라! 수고 많았고마!
학군장교(ROTC)인 그는 학교는 다르지만 학번이 필자보다 하나 위다.
대학 4학년 때, 늦깎이로 입대한 필자의 첫 포병 사격지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그 사격 임무를 마치고 사격지휘 차량에서 내렸을 때, 사격지휘반 동료 모두와, 포대장, 전포대장, 그리고 전포대 포반의 모든 대원들이 따뜻한 박수로 격려해줬다. 거수경례로 답례 인사를 할 때 코 끝이 찡해지며 해냈다는 안도감에 약간 현기증도 났다.
아마 그 때의 그 감격대로라면 장기복무를 지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 31년 9개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대부분의 105미리 곡사 견인포는 155미리 K-55(39 구경장)나 최신 K-9 자주포(52 구경장)로 바뀌었다.
포만 바뀐 것이 아니다. 큰 변화는 사격지휘에도 일어났다. 암산을 하거나 종이 위에 손으로 써가면서 계산하던 것은 옛말이고 지금은 표적 제원만 입력하면 컴퓨터(이름만이 아닌 진짜 컴퓨터)가 사격제원을 자동으로 계산한다. 기상 정보도 늘 실시간으로 입수한다. 그리고 사격제원도 통신망을 통해 디지털로 각 포반에 전송되어 자동으로 입력된다.
예전에는 HE탄, 조명탄, 연막탄만 사격했다. VT 신관과 함께 사용하는 개량된 재래식 탄(ICM. Improved Conventional Munitions)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군 복무 중 겨우 한 두 번 밖에 실제 사격을 못해봤다. 그 ICM탄이 이제는 DPICM으로 더욱 개량됐다.
다음에는 지난 회에서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른 임무 수행을 살펴보겠다. 참으로 포병의 변화가 실감 날 것이다.
그러나 포병은 더 변해야 한다. 지난 3월 중순, 필자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차세대 포병 세미나 2005 (Future Artillery 2005)’에 참석했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의 포병 사령관들, 장교들 그리고 전문가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해마다 미국에서 몇 번씩 열리는 ‘정밀타격 심포지움(Precision Strike Symposium)’에도 회원 자격으로 계속 참가했다.
그리고 우리 군의 전력 증강과 관련하여 기존 전력을 극대화하고 비대칭화하는 방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왔다. 이 연재를 통해 하나씩 풀어 가보려고 한다.
독특한 포병 숫자로 사격 제원을 불러주던 그날이 아름답고 그립다. 모든 지난날이 그렇듯이 …… 지금도 가끔 장난삼아 주민등록 번호나 전화번호를 포병 숫자로 불러준다. 상대방이 어리벙벙해 하는 것을 보며 유쾌하게 웃는다.
하나 둘 삼 넷 오 여섯 칠 팔 아홉 공.
[한국일보]윤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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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砲兵), 새로운 발견(3)
[한국일보]2005-12-01 14:25:27
전투 시나리오
영화에서라면 몰라도 시나리오대로 전투를 할 수는 없다. 예측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기도 하지만 그나마 그 예측을 벗어나는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애써 전투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컴퓨터 게임 하듯 자꾸 이리 돌려보고 저리 실행해 보는 걸까?
30여 년 전, 필자가 복무하던 105미리 견인 곡사포대에 신병들이 전입해 오면 우리는 전포대 선임하사의 다음 행사를 기다렸다. 무슨 큰 재미있는 일이나 되듯 신병들을 모아 놓고 그가 꼭 들려주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훈련을 나가서 기준포인 3포로 실제 포탄 사격을 했단다.
따아앙!!!!
포탄을 발사하자마자 웬 시커먼 덩어리가 3포 몇 십 미터 바로 앞에 떨어졌단다. 뭔가 일이 잘못돼 포탄이 날아가다 말고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모두 죽었구나 순간 정신이 아찔했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무로 만든 포구마개였다면서 그는 배꼽을 잡고 혼자 웃었다. 포구마개를 벗기지 않은 채 사격을 해서 그것이 포탄과 함께 날아가다 떨어졌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 전포대 선임하사가 옛날에 아마도 포구마개 벗기는 담당이었음이 틀림없다고 우리는 은밀한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구마개가 무언지도 잘 모르는 갓 들어온 신병들은 멀뚱멀뚱 선임하사를 바라보다가 어색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맞추곤 했다. 얘기를 끝낼 때면 선임하사의 위엄을 되찾은 그가 정색을 하며 꼭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알았나?”
엄중하면서도 칼칼한 마지막 그 몇 마디의 말이 전투 시나리오와 그에 따른 훈련의 의미를 간결하게 짚어 냈다는 생각이 든다.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상황에 따라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그에 대해 최선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무슨 일이 일어 날수 있는지를 아는 것, 그것이 훈련이고 준비이다. 전투 시나리오는 그래서 필요하다.
전투 시나리오, 군사기밀
시나리오를 보면 누구를 적으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라마다 나름대로 독특한 기법을 동원하여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수행한다. 그렇지만 적의 능력과 아군의 능력을 최대한 정확하게 자료화하여 입력하고 일어날 수 있는 변수들을 다 적용해 본다는 점에서는 어느 나라나 모두 같다.
적의 위협과 그 위협에 대한 대응계획은 어느 나라나 군사기밀로 다룬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시나리오를 이 글에서 직접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신 독일 포병학교로부터 입수한 시나리오를 살펴보려 한다. 특히 민감한 부분은 연결을 건너 뛸 수 밖에 없다.
(※주의. 이 기사에서 사용한 자료 중 *** 표시된 부분을 무단 전재하거나 인용하는 것을 금지한다. 다만 기사 출처와 필자를 명시하고 기사 전체를 게재하는 것은 무방하다.)
표적 시나리오
(자료1 ***)
대응해야 할 표적시나리오의 한 사례이다. 적군은 18개의 장갑표적(붉은 색), 14개의 준 장갑표적(주황색), 6개의 연성표적(초록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적에 따른 가장 합리적인 대응과 필요한 화력을 분석해 보자.
첫째, 장갑 표적에 대하여는 DPICM탄이 극히 제한적인 성능만 발휘한다. 그러나 적절한 다른 대응 수단이 없다는 전제하에 DPICM탄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자료2. ***)
도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8개의 장갑표적 즉 전차나 자주포의 경우20,304발의 DPICM탄을 사용하여야 파괴 가능하다. 여기에서 파괴했다는 개념은 국가마다 그 정의가 다르다. 독일에서는 (자료3 ***)처럼 30%의 적 전력이 파괴되면 임무를 완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자료3 ***)
둘째, 준 장갑표적에 대하여 DPICM탄과 로켓탄을 사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로켓탄은 1발에 644개의 DPICM 자탄을 내장한 M26 MLRS를 의미한다.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14개의 준 장갑 표적에 대해 7,872발의 DPICM 그리고 414발의 MLRS 로켓포탄을 발사하여 30 % 파괴를 달성했다.
(자료4 ***)
셋째, 유럽 국가들은 이동중인 자주포나 전차도 격파할 수 있는 감응신관식 지능탄(SFM)을 배치했다(미국은 비슷한 SARDAM탄 개발에 20억불 이상을 투입하고도 실패하여 포기했다. 그 탄의 개발과정 중에 확보한 성능미달 탄 300여 발을 2003년 이라크 전투에 투입했다. 미 육군 제3기계화보병사단의 AAR, 즉 전후 보고서에는 사전 훈련 없이 121발의 SARDAM탄을 발사하여 48대의 전차 및 장갑차량들을 파괴했다고 기록돼 있다.)
(자료5 ***)는 이 SFM으로 시나리오에 나오는 18개의 장갑표적을 타격한 결과이다. 즉 144발의 SFM을 발사하면 DPICM 20,304발이 달성한 결과를 이룰 수 있다.
(자료5 ***)
다음 (자료6 ***)은 전차를 탐색하는 센서의 기능과 탐지 범위를 나타내는 시뮬레이션 자료이다. 표적은 이동중인 전차 4대를 상정했다. 10개의 자탄(Sub-munitions)이 5발의 탄약에서 방출돼 공중으로부터 회전 하강하면서 표적을 탐지하는 패턴이다. 각각 다른 색으로 탐지 패턴을 표시했다.
이 탐지패턴(Foot Print)를 분석해보면 사실상 탐지범위 이내에 있는 표적은 파괴를 피할 수 없다.
(자료6 ***)
결국 전차는 SFM의 공격에 의한 상부 공격으로 파괴될 것이다.
(자료7)
(자료8)
넷째, 아래의 자료에서 보는 것처럼 6개의 연성표적에 대해 576발의 고폭탄
(HE. High Explosives)이 소요됐다.
(자료9 ***)
포병의 역할
시나리오처럼 이제 포병은 단순한 지원화력의 차원을 넘어 공세적 전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적의 전차부대와 자주포부대, 그리고 기동중인 장갑차량들을 파괴할 수 있는 유연하고 효과적이며 신속한 능력을 가진 훌륭한 지상군 전력으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화력전(對火力戰)의 1차 전력 역할을 포병이 충분하게 담당할 수 있다. 우리 지상군이 보유한 전력 중 북한 야전포병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입안된 대화력전 개념을 수정해야 할 시점이 됐다. 필자가 소개한 이 시나리오가 그런 주장의 정당성을 바쳐준다. 또한 FSCL(Fire Support Coordination Line)을 사격제한지역으로 보는 시각도 당연히 고쳐져야 한다. 이 부분은 필자가 이 연재를 통하여 앞에서 주장한 바가 있다. 포병 전력과 관련하여 사정거리, 정밀성, 즉응성 및 화력 그리고 경제성을 차례로 분석해 본다.
사정거리(射程距離)
포병에서 사정거리를 위한 사정거리는 뻥뻥 내지르는 동네축구 이상의 의미가 없다. 포병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만큼의 화력을 정확하게 표적에 도달시켜야 한다. 100킬로미터도 넘는 거리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도달시킨 화력과 이미 주위에 배치된 1문의 곡사포가 발사한 포탄 1발의 화력이 비슷하다면 지휘관이 선택할 전술은 명백하다.
과연 실제로 그럴까?
거함 거포의 유산을 물려받은 미국이 세계 중요 연안에 해군력을 투사하면서 추진하는 전술 중 하나가 바로 물음의 대상이다. 미국 해군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추진하는 ERGM(Extended Range Guided Munitions)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5”/62 MK45 MOD 4 함포로 사정거리 60해리(약110 킬로미터. 1해리는1,852 미터)까지 포탄을 날려보내겠다는 계획이다. 2000~2001년까지는 완성할 것이라던 그 포탄의 개발이 아직도 요원하다. 미국 GAO는 이 프로그램을 이미 실패한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나라 해군도 미국의 논리를 따라 KDX 프로그램에서 ERGM을 고려한 정책적 결정을 했다. 개발도 안된 그 포탄을 언젠가는 발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 부분은 해군 함포를 다룰 시점에 다시한번 살펴보겠다.
이처럼 사정거리는 포병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유혹이다. 아마도 북한 장사정(長射程) 포의 직접 위협 아래 지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사정거리는 화력(Fire Power. 즉 탄두의 성능)과 정밀성, 즉응성(卽應性) 그리고 경제성이 모두 동시에 고려된 균형을 갖춘 개념이어야 한다. 사정거리에 집착하는 한 새롭게 열린 다양성과 유연성, 즉응성에 대해 포병 스스로 문을 닫는 것이다. 전쟁의 패러다임(Paradigm)이 바뀌었다. 당연히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이미 앞에서 밝힌 것처럼 이론상 야전포병의 155미리 52 구경장 포가 정확하게 의미 있는 화력을 가장 경제적으로 도달시킬 수 있는 사거리는 28킬로미터이다. 그리고 지난 회에서는 사정거리를 늘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도 살펴봤다. 어느 방법을 따르던 탄의 정밀성이나 탄두효과를 약화시켜야만 가능하다는 점도 얘기했다. 따라서 다음 회에는 사정거리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정밀성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겨본다.
[한국일보]윤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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