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변절

유대인의 마사다와 우리네 국민토성

한부울 2008. 6. 25. 12:01
 

유대인의 마사다와 우리네 국민토성

[데일리안] 2008년 06월 24일(화) 오전 08:06


[박재목 칼럼]그들은 항상 외친다. 6.25 남침은 독재자 이승만이 북진통일을 잠꼬대처럼 나불대다가 터졌으며, 그 근원은 이승만이 저지른 김구 살해에서 촉발된 것이다. 또한 패전으로 빌빌거리던 일본경제를 초고속으로 부흥시킨 이승만과 맥아더는 6․25 뒷구멍으로 떼돈을 챙긴 친일의 1등공신이었다.


맥아더는 이승만과 야합, 친일매국자들을 이용하여 이승만 개인의 수십만 정적들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다. 그래서 친일파 집단의 실질적인 원흉은 맥아더이며, 인천상륙작전도 모두 뻥튀기다.


21세기 대한민국 정신과 가치는 건국 60년 동안 세뇌되어 된장인지 뭔지조차 구분 못하는 영혼 없는 인간들의 망발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해방 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역사는 걸레 같은 친일파 난도질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은 또 외친다. “이제 대한민국 역사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왜냐하면 좌파정부 10년 뒤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과거의 불순한 암세포 덩어리들의 부활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또한 절대로 앞뒤가 안 맞는 시대정신이며, 532만 표차는 현실적으로 잘못되어도 뭔가 확실히 잘못된 것이므로 ´MB OUT´이 맞는 것이다.


기어이 ‘존재의 충돌’은 다시 와야 하는가?


인류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가장 큰 참극 6․25! 이런 비극적 의미에서 왜 남침으로부터 이 땅과 대한민국의 국가이념, 그리고 자유민주의 가치와 정신을 목숨으로 지켜낸 6.25 전사자와 국군포로, 강제납북과 대량학살 희생자들의 호곡(號哭)을 진혼하는 참회와 성찰의 ‘충혼촛불’과 ‘호국토성’은 없을까?


아둔한 국민토성 집단광기 이전에 오늘의 자유와 민주, 평화와 인권을 지켜낸 ‘호국보훈’의 구호와 촛불 잔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왜 그러한 구호는 단 한 번도 나타나지도 않는 것일까?


벌써 남침 발발 58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우리 모두는 공산침략의 위협과 난동으로부터 세계 최강 미군의 우방국 보호벽 안에서 어렵게 조그마한 ‘한국호’라는 경제발전을 일구어 한강의 기적으로 출항했다. 그러나 지금 국내외 경제여건 악화, 국가파탄을 획책하는 민심교란, 정권 다우너 준동과 골수에 박힌 거지근성의 잠재된 빙산(氷山)에 부딪혀 이 배는 졸지에 좌초되거나 가라앉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그런데 국민들 반은 산성(山城)과 토성(土城)의 미친 촛불광기를 드러내며, “대통령 물러나라.”를 외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더 한심한 것은 나머지 반까지도 이제는 일하기 싫으니 빚이라도 내서 샴페인 터트리며 자빠져 놀자고 야단이다.


6.25 유해와 국군포로 등 희생자 호곡을 위무하는 촛불은?


무슨 목적인지 모르지만, 그들은 공권력 저지선에 맞서 모래주머니를 이용한 ´국민토성´을 쌓고 국가이미지를 파탄시키는 중독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가 산성과 토성의 이른바 ‘한밤의 혈투’에 재미 들어 헤롱헤롱거리고 있는 동안에도 지구촌 승자독식의 생존경쟁은 요동치고 있다.


화려하고 멋진 ‘일본호’와 거대한 블랙홀 ‘중국호’는 이미 거센 노도와 풍랑지역을 벗어나 저 멀리 대양의 먹을거리를 찾아 우리의 시야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미국과 EU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인도, 브라질, 멕시코, 동남아도 이미 추월했거나 바싹 추격하는 형국이다.


지금 우리가 잘못되면 과연 누가 가장 좋아할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눈앞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촛불광기의 혼란까지도 누군가 지난 시대에 이 땅과 이 민족을 수호하기 위해 애쓴 덕분의 소치이며, 험난했던 지난 역사 속에서 수없이 희생을 바친 이들의 ‘피의 대가’ 때문이라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그 모든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고 말았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형제를 품에 안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혈육의 아픔을 우리는 폐기했다.


6․25 남침으로 인한 억울한 전사자와 희생자, 그리고 국군포로들은 오늘날 우리의 촛불, 국민토성과 검역주권을 이 땅에 남기기 위해 목숨을 바쳐 공산침략에 저항했다. 그러나 58년이 지난 아직도 13만 순국영령 유해들은 조국의 산하에 무참히 버려져 국가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유해는 처참하게 이 땅의 구석구석에 어둡게 나뒹굴고 있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용약(勇躍)의 애국심, 죽음의 전선으로 달려


당신의 부모형제 유골이 그런 몰골로 계곡과 산중에 방치되고 있다고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그래서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는 그 유해들 하나하나의 고귀한 생명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서글픈 남침! 우리 역사상 가장 처참했고 가장 피해가 컸으며, 그 남침으로 슬픔 당하지 않는 자 이 땅에 없었다. 또한 상처 받지 않는 자도 없었다. 천지가 요동친 그 참담한 전화(戰禍) 속에서 나라사랑하지 않는 않은 자 누구이며, 구국의 대열에 나서지 않은 자 또 얼마가 되었는가?


모두가 군인이자 모두가 애국자였다. 또한 모두가 희생자이자 피해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조국과 겨레 앞에 진실로 떳떳하게 싸운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으면 당연히 국군과 더불어 어린 학도의용군이었다. 그들은 무조건적인 용약(勇躍)의 애국심으로 죽음의 전선으로 달려갔다.


조국의 품에서 태어나 조국과 더불어 살다가 조국을 위해 싸웠고, 끝내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외치며 숨져 간, 그 거룩한 산화의 자양분(滋養分)으로 대한민국은 오늘의 발전과 기쁨을 이룩했다.


13만 유해방치, 당신 부모형제가 이런 몰골로 58년이나 방치?


전쟁에서 군인이나 전투종사원이 국가의 부름과 조국의 명령으로 전투에 임할 때, 첫째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모두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두 가지 다 어려운 것이 전투작전 수행이다. 그래서 인명손실이 있을 경우 살아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과 부상병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귀환시켜 치료하고, 유해는 가족의 품으로 고이 안겨주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책무다.


이것은 전투수행 이전에 인간의 양심과 역사적 책임에 관한 문제다. 그러나 아직도 어딘지 모를 산하에 국군과 학도의용군의 13만 호국영령들의 유해는 방치되어 왔다. 여전히 가족 품에 안기지 못하고 고국산천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6.25 조공 하사품! 김일성의 비밀충성서약과 스탈린의 간계


1948년 4월 19일 김구는 김일성의 간계에 빠져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 정당사회단체에게 고함”이란 구소련 괴뢰집단 김일성의 허울 좋은 초청장을 들고 3․8선을 넘었다.


36살의 애송이 김일성은 만 72세의 노회한 김구를 평양에서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인격까지 유린했다. 결국 김구는 북한 김일성 괴뢰정권의 정당성만 부여해 준 회담성과(?)를 들고, 빈털터리로 돌아와 그 상심으로 칩거에 들어가야 했다. 그 여세를 몰아 김일성은 1948년 8월 25일에 총선거를 실시하고, 9월 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곧이어 1949년 3월 5일에 김일성은 박헌영을 대동하고 모스크바를 극비 방문했다.


김일성은 스탈린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산주의 맹주에게 비밀충성서약을 하고, 한반도 남침을 허락받았다. 2차 세계대전 후 적화도미노의 위력을 확인하고 싶었던 만 70세의 스탈린은 계속 남침을 부추기면서, 37세의 김일성을 떠오르는 공산주의 횃불이라며 모스크바 광장에서 붉은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가난하고 헐벗고 슬프고 힘없는 자들만 6․25 남침으로 죽어


그러나 그 영광(?)의 대가는 고스란히 슬프고 배고픈 이 땅의 민초들 몫이었다. 글이라도 알거나 먹을 양식이라도 좀 있으면 모두 다 군대징집을 회피했다. 대부분 가난하고 헐벗고 슬프고 힘없는 젊은이들만 영문도 모른 채 6․25 남침을 맞았고, 또한 죽어갔다.


갑작스러운 남침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다가 유엔군의 도움으로 9․15 인천상륙 작전과 9․28 서울수복을 성공시키자, UN총회는 3․8선 돌파를 ‘통일한국’의 안정된 상태 확보 차원에서 지지를 결의했다. 그러나 같은 날 1950년 10월 7일, 약 12만의 중공군은 벌써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고 있었다. 그리고 10월 9일 중공은 “3․8선 돌파를 허용한 UN총회 결의는 위법이며, 미군의 북조선 진입은 중국의 안전에 중대한 위협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중공은 항미원조보가위국(抗米援朝保家衛國)의 표어를 기치로 내세우며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왔다. 그러나 내막에는 티베트 침공의 비난을 한반도로 전가시키기 위한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었다.


인간말살의 ‘정신적 파괴’ 행위가 더 큰 상처이자 끔직한 상흔


6월 남침의 동족상잔은 금수강산 피바다, 혈육의 사이별과 생이별 등 겉으로 드러난 안타까운 상흔(傷痕)만 전부가 아니다. 피를 말린 아픔은 우리 동포끼리 죽창 들고 서로 산 사람 배를 갈라야 했던, 인간말살의 ‘정신적 파괴’ 행위가 더 큰 상처이자 끔직한 피해였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역사적 책망 앞에, 아직도 북한 정권의 6월 남침과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미제 앞잡이의 북침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낸 위대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선동하는 작태가 이 땅의 친북좌파들 입에서 횡횡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많은 국민들도 경험하지 못하고 왜곡된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역사왜곡을 들고, 6․25 남침의 참상을 아직도 남과 북 모두의 패배적 산물로 인식하는, 땅을 칠 억지가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300여만 명이 서로 죽고 죽이며, 부상당하고 고아가 되어


우리는 패배자가 아니라 피해자였고, 우리는 이 땅과 자유민주의 대한민국 정신과 가치를 공산괴뢰 독재체제로부터 목숨을 바쳐 지켜낸 자랑스러운 승리자임을 항상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이 숭고한 가치를 후손들에게 계속하여 역사적인 자랑과 교훈으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구소련 괴뢰집단의 남침으로 야기된 동족상잔으로 인해 국군, 유엔군, 민간인 등,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을 빼고도 약 300여만 명이 금수강산 이 땅에서 서로 죽고 죽이며, 부상당하고 고아가 되었다.


이제 민족의 비극인 6․25 남침이 발발한 지 58년이 지나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많이 아물었다. 하지만 아직도 이름 모를 산야 어딘가에는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해(遺骸)로 남겨진 13만 위의 순국호국 영령들이 분하고 원통하여 잠들지 못한 채, 여전히 허공을 떠도는 슬픔이 우리의 언저리에 남아 있다.


"전우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인간서약 배반한 반인륜


“나는 전우를 저버리지 않는다.”, “전우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결코 당신을 잊을 수 없다.”, “이 전투에서 내가 가장 마지막에 돌아갈 것이다.” 이 말은 모든 역사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국가와 국인들이 빠짐없이 한 서약이자 맹세였다.


유해발굴에 따른 무한책임의 명제를 뜨겁게 강조한 말이다. 북한 인민군과 중공군에 맞서 우리 국군과 학도병들이 목숨을 버릴 때, 그들은 조국과 전우들의 이런 약속이자 맹세를 믿고 돌격했다. 이처럼 어느 국가나 민족을 막론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의 유해와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듬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설 때,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전쟁발발 58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조국과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런 믿음과 약속을 외면하고 말았다. 숭고한 희생정신을 뒤로하고 우리 배만 채우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살아남은 우리 모두는 호국영령과 역사적 책임, 그리고 인간적 양심 앞에 “우리가 인간인가?”를 외쳐보아야 한다. 살아남은 우리가 조국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58년 동안이나 최소한의 유해조차도 발굴하지 않고 방치한 행위가 과연 인간도리 측면에서 어떤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반추해 보아야 한다.


유해는 죽어서도 자신의 증표를 남겨


유해는 죽었으나 항상 그 증표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죽은 자는 항상 말이 없다.”는 것을 빙자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 대해 그동안 너무 쉽게 잊고 보상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 땅과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 대해 이 땅에 살아남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끝까지 그 유해와 그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6월 호국보훈의 정신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와 ‘국가적 가치’로 추앙하는 것이 마땅하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은 단순히 전사자와 실종자의 유해를 발굴하는 정책 사업이 아니다. 반면에 미래가치를 창조하는 역사적 행위이자 국민통합을 위한 중요한 국가통치의 핵심영역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는 예산과 효용의 문제가 아니라, 애국애족의 가치, 인간적 양심과 역사적 책임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국민적 공감을 이루어내야 한다. 또한 오늘날 인간의 성찰과 각성 차원에서 초등학교부터 애국애족 및 순국보훈의 숭고한 가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국가번영은 조국에 대한 ‘신뢰-책임-자긍심’에서 촉발


고구려의 강건함도 있었지만, 중국 수나라가 망한 것은 100만이 넘는 전사자 유해를 수나라 집권층이 전장에 다 버리고 도망가자, 백성들이 더 이상 ‘개죽음’ 하지 말자는 반전 분위기로 인해 대부분의 수나라 군사가 탈영한 때문이었다.


이와 정반대로 고구려는 요하 근방에 수나라 전사자 유골을 모아, 그 위에 거대한 탑 ´경관(京觀)´을 지어 고구려의 ‘영광-정신-국력’을 과시했다. 거기다가 을지문덕 장군은 고구려의 노예군사 하나라도 더 유해를 찾아 고향에 묻어주려고 애썼다. 이를 본 당나라 ‘개원의 치’를 이룬 당태종 이세민은 심히 개탄하고, 당나라 개국 후부터 바로 수 많은 첩자와 사신을 보내 수나라 전사자 유해발굴과 포로들을 송환해 고향에 보내주고 백성들을 위무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치욕이었던 경관((고-수전승기념탑) 파괴공작에 돌입, 결국 아둔한 영류왕은 그 꾀에 넘어 가 경관을 파괴하고 말았다. 이로써 고구려 정신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연개소문이 이를 응징했다. 천년 제국 로마도 지금의 미국처럼 전쟁포로나 희생자에 대해서 끝까지 잊지 않고 로마군인의 유해를 발굴하고, 전사자와 희생자들에게 최고의 예우로 로마인의 자긍심과 국가정신을 일깨웠다.


2천 년 간 유랑민족이었던 이스라엘도 20세기 중반 국가를 건국하자 말자, 최초로 한 일이 바로 로마군의 침략에 끝까지 죽음으로 맞섰던 이스라엘 최후의 항전지 ‘마사다 유적지’의 유해 발굴사업이었다.


이처럼 개인의 희생에는 국가와 민족이 끝까지 영광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먼저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호국애족의 충성과 헌신이 나온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거세질 자원민족주의와 에너지국가주의에 맞서 나갈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6․25 역사의식과 국민적 관심 자꾸 왜곡되고 희미해져


앞으로 정부 여당은 이런 역사정신과 미래가치를 가지고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의 ‘예산-인력-장비-발굴’ 시스템 등에 획기적인 지원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그동안 전쟁발발 58년의 기간, 4계절 영향 등으로 인한 자연훼손, 동절기 발굴애로 등의 상당한 제약조건에도 불구하고,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적은 인력과 제약된 예산으로 벌써 2018구를 발굴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상당한 성과임에 틀림없다.


지금 유해발굴을 어렵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4계절로 인한 자연훼손에 가속도가 붙고 있고, 또 하나는 6․25에 대한 역사의식과 국민적 관심이 자꾸 왜곡되고, 기억에서 계속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제한된 시간에서 현재의 인력, 장비, 시스템으로 발굴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유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58년 전에 벌어진 전투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도 없고, 당시 전사(戰死) 지역을 추정할 만한 자료도 극히 적다.


‘국가유전자감식원’ 설치, 국가발전과 미래산업으로 활용


그래서 유전자감식, 즉 DNA감식법의 적극적 확대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과학적인 장비와 전문인력을 더욱 보강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발굴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를 유족에게 찾아 주는 것도 어쩌면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규모로나 우수한 과학기술 수준으로 볼 때, 국방부 산하 가칭 ‘국가유전자감식원’을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를 단지 국방부 전속기관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가령 범죄 수사용이나, 군사용 유전과학기술 연구와 병행 활용할 수도 있고, DNA 감식전문 대학과 연구소 등과 함께 첨단 유전공학을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과거에 많은 원조를 받은 수혜국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제는 공적개발원조(ODA :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차원에서 이러한 전문기술과 인력을 후진국이나 분쟁지역에 지원하면,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달성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동안 유해를 찾지 못했거나, 유해를 찾은 보훈대상자도 혼선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6․25 보훈대상자 전 가족과 추정 직계존비속 유전자 채취를 법적으로 의무화하여, ‘6․25전사자관련유전자DB’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6․25전사자유해발굴등에관한법률’이나 시행령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보다 먼저 유해 흔적을 기억하고 있는 80세가 넘은 전국의 참전용사와 지역 노인들을 상대로 기억과 현장채취를 하는 것도 시급하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만주를 포함한 항일 독립군이나 의병 등의 유해발굴도 병행 추진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정신을 대외에 천명(闡明)하는 것도 국가정책 과제로 구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런 제반 상황을 감안할 때, 국방부 유해발굴사업단을 국가 차원의 국무총리 직속 기관으로 격상하여 사업의 효율성과 유해발굴의 가치성을 국민과 지구촌 전역에 고양해 나가야 한다.


차마 얼굴 들 수 없는 유해방치, 국가 무한책임 방기


어쩌면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국가의 국민으로서 58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발굴 관련법을 제정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역사와 순국선열 앞에 낯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과오다.


지난 2월 국회에서 통과된 6.25 전사자 유해발굴의 원활한 ‘조사-발굴-감식-보존-선양’을 위한 ‘6.25전사자유해의발굴등에관한법률’의 핵심은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방치되어 있는 13만 위의 호국영령들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고 찾아내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등 ‘국가무한책임’을 선언한 것이다.


또한 전사자 유해의 훼손과 임의처리를 방지하고, 관계부처와 유기적으로 협의하여 유해매장 예상지역에 대한 조사 및 발굴활동이 제도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군포로, 강제납북, 그리고 대량학살은 앞으로 어떻게?


선진문명 국가란 도덕적 책임과 인권 및 생명을 중시하는 것을 가장 핵심적 가치로 삼는다. 따라서 이제는 당시 북한 인민군이나 중공군 유해까지도 적극 발굴하는 아량과 포용을 보일 필요도 있다. 이를 당사국에게 인계하면서 우리의 평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어쩌면 이로써 국군포로를 억류하고 있는 북한을 명분과 인권적 차원에서 선제(先制)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쟁희생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인간적인 국가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전사자 유해를 가족의 품에 인계할 경우에는 최소한 해당 광역자치단체장과 군 장성 인사가 참석하는 격조 있는 행사로, 유족들의 명에나 자긍심을 적극적으로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


이와는 별도로 앞으로는 6․25 남침 당시 인민군이나 중공군들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조사도 정부차원에서 적극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강제납북 진상규명과 대량학살의 진상을 밝혀 그들에게도 국가예우 차원에서 억울함을 달래 주어야 한다.


´전후납북자특별법´에 이어 전시납북자의 실태조사와 특별법도 인권적 차원에서 입법이 시급하다. 이명박 창조적 실용정부는 각종 자료에서 나타난 약 8만 명 이상의 강제납북자 명예도 회복시켜야 한다.


많은 국민들은 현재 6․25 남침이 역사적․외교적으로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마당에 북한 정권에 쌀과 돈을 퍼주는 것을 찬동하고 있는 이 땅의 친북좌파와 미국의 외교전술까지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정일 21세기 리더십 브랜드 구축?


정당, 정부, 대학, 연구기관, 문화, 종교, 시민단체 전반을 장악한 친북좌파들은 ‘인권-환경-반부패’의 위장 탈을 깊게 눌러쓰고, 더욱 활발하게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정일 21세기 리더십 브랜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동안 엄청난 성과의 축배를 여러 번 밤을 새우며 들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무엇이 역사적 사실의 왜곡일까? 지구촌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천인공노할 6․25 남침의 비참한 교훈을 역사로 바로 알리기 위한 것까지도, 그들은 역사적 사실 왜곡, 햇볕정책 부정 묘사, 시대착오적 편향이라고 호도한다. 반공이고 냉전적 사고이기 때문에 인간의 진실과 가치도 필요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6․25 남침의 비참한 역사적 책임을 전후 세대에게 전쟁의 두려움과 민족상잔의 산 교훈으로 올바르게 각인시켜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그래야 앞으로 건강한 국가안보와 미래역사를 지켜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6․25 비극은 분명하게 북한 공산괴뢰 집단의 불법남침으로 촉발되었다. 인민군과 중공군 피해를 빼고도 약 300만 명의 인명 손실과 전 국토 초토화, 한민족 최대의 아픔이자 인간이 저지른 재앙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남한전복 간첩행위 척결도 무고한 민간인 학살?


물론 국군과 경찰, 유엔군도 일말의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밤만 되면 일상적으로 남한전복 빨갱이 간첩행위를 자행했다. 그래서 이를 척결한 것을 두고, 그들은 무조건적으로 무고한 민간인 학살로 매도했다.


또한 6․25 남침을 김일성도 아니고 스탈린도 아닌, 공산당을 배신한 박헌영의 사주 때문이며, 미국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보도연맹 집단살해 공작 때문이라고 어린 학생들을 선동하여 왔다.


그들은 스탈린의 괴뢰 김일성 야욕과 국제공산주의 간계로 촉발된 6․25 남침을 박헌영의 남로당 무장봉기 실책이라고 호도했다. 결국 김일성은 박헌영 배신과 미국의 밀약설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인민군 패전의 책임 모두를 박헌영에게 전가시켜 미국의 스파이로 몰라 총살하고 말았다.


지난 10년은 종북(從北) 전사들의 찬란한 부활의 잔치판


지난 좌파정부 10년은 일제 강점기부터 암약하던 종북(從北) 전사들이 진보, 좌파, 햇볕정책, 대북지원, 북한구호, 남북경협 등의 기치를 내걸고 찬란하게 부활한 축복의 시기였다.


해방 후 국가보안법에 묶여 소극적 저항인 반유신, 민주, 인권, 환경, 반부패 등으로 암약하던 수 많은 종북(從北) 전사들이 적극적 공세로 돌아 서, 정권과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며 사회 전면에 나섰다. 그들에게 반미는 기본반찬이고 친일매도는 양념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가장 악랄한 친일반역 행위의 표상은 교사, 공무원, 수리조합 등 각종 이권단체, 고등계 형사와 경찰 끄나풀이, 헌병과 그 군속, 민간인 담당 군인, 사회단체 간부 등이었다. 그들은 정말 잘 살았다. 그래서 그 후손들도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왔고, 대부분 해외유학을 다녀왔다.


그런데도 그들은 전부가 자기 부모 직업을 속이거나 감추고 있다. 그러면서 그 약점과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보수우익은 무조건 부패하고 친일파 민족배반 집단이라고 몰아부친다. 그리고 김정일 주도의 연방제통일을 위해 따지지 말고 북한을 먼저 무조건 도와야 하다고 강요한다. 반면에 김일성-김정일을 조금이라도 의심하거나 북한 인권을 언급하면 가차 없이 민족의 역도로 매도해 버렸다.


지난 10년간 국정원은 잡은 간첩도 풀어 주었다. 김정일 파견 자객이 서울 한 복판 아파트 앞에서 사이비 독재정권을 비판한 탈북 권력인사를 칼로 무참히 없애버리고 유유히 사라져도, 대북공안 체계는 한심하게도 지리멸렬(支離滅裂)이었다.


‘김일성 대원수 인류 태양’이 ‘헌법 제1조’로 둔갑


그들은 촛불광기를 주도하며, “김일성 대원수는 인류의 태양이다”는 황당무계한 구호를 촛불시위 주제가 “헌법 제1조”로 둔갑시키며, 선전선동에 악용했다. 공산화 통일을 이룬다는 전략적 수단으로 ‘이명박 정부 다우너’ 상징인 ‘국민토성’을 열심히 쌓고, 열심히 노래했다.


또한 그들은 이미 ‘미인계 조작사건’ 실패로 끝난 햇볕정책을 “6․15 이행 위한 투쟁으로 외세공조 분쇄하자.”를 외치며, 있지도 않은 쇠고기 광우병 괴담을 조작했다.


그러면서 우리민족끼리만 외치며, 친미사대, 반북 대결책동을 획책하는 ‘이명박 정부’를 일거에 타도하자고 지금도 외치고 있다. 민족공조가 ‘애국애족’이고 외세공조는 ‘매국배족’ 행위라고 어린 학생들까지 유혹선동하여 정신적으로 파탄시키고 있다.


그렇게 ‘인권-환경-반부패’가 중요하다면, 북한 정권의 사이비 교주 세습독재와 인권파괴, 민둥산 국토모독, 김정일 부정부패의 촛불은 왜 켜지 않는가? 적어도 아둔한 촛불 값을 모아 굶어죽는 북한동포를 위해 먼저 보내야 논리에 맞지 않은가?


공산주의 허상은 이미 20세가 말에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도 우리의 시대정신이 과거 냉전시대적인 반공과 멸공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나쁜 대한민국과 나쁜 역사라고 선동한다.


세습독재, 인권파탄, 민둥산 국토모독, 김정일 부패 촛불은?


무수한 정권파탄 교란간첩 만행을 진상규명 명예회복으로 호도하고, DJ 이전 대통령은 모두가 나쁜 대통령, 기존 보수우익 체제는 친일반민족 약탈과 부패집단, 기업과 재벌은 모두가 노동자와 민중의 피를 빤 악질반동, 반미투쟁과 미군철수는 무조건 민주와 자주의 민족항쟁, 6․25 남침은 미국과 이승만의 간계로 이루어진 북침의 위장, 맥아더는 한반도 민중의 집단도살자, 민족분단의 아픔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광명성 김정일 지도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의 올바른 국가관 정립은 정부와 어른들의 잘못된 시대착오적인 사대매국, 미국의 민주주의는 한국의 군사독재, 광주사태를 일으킨 남한은 북한보다 더 못한 한심하고 악랄한 족속, 6․25 인민군은 민간인을 도와주고, 국군이 오히려 민간인을 학살하고 괴롭힌 나쁜 군대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한국의 보수우익은 생명과 인권보다 사형과 돈만 밝히는 부패하고 파렴치한 집단, 무고한 북한동포를 재판 없이 총살하고 굶겨 죽이는 김정일 숭배만이 박정희 인권 탄압과 이승만 독재의 악몽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라며, 아주 노골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6․25 남침이 ´진실의 무덤´ 속에 있다면, 만약 그 무덤을 지금이라도 파헤치면, 미국과 이승만이 한통속이 되어 죄 없는 민간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파렴치한 반인륜적, 반인권적, 평화를 짓밟은 무자비한 6․25 북침의 진실이 나올까?


인륜과 책임을 외면한 우리가 과연 인간인가?


그래서 6.25 남침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당연히 우리의 의식 속에 진실과 양심, 인륜적 차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이 아픔을 끝내기 위해서는 13만 위의 6․25 전사자 유해를 모두 발굴하고, 북에도 남아 있는 6․25 전사자 유해와 국군포로, 강제납북 만행, 그리고 인민군과 중공군에 의한 저질러진 대량학살의 진상도 모두 밝혀져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6월의 정신이란 이런 역사적인 실체적 진실이 빨리 규명되는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 생명으로 헌신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희생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6월의 정신은 국민적 책무 이전에 인간 개개인의 본질적 도리이자 인간의 염치, 변할 수 없는 양심적 가치문제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조국 산천을 떠도는 13만 위의 유해영령들에게 진정으로 맹세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는, 조국은 절대로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6․25 남침의 교훈을 지키지 못한 반성으로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또한 오늘 우리 대한민국을 있게 한 유엔 참전국 전사자와 희생자들에게도 깊은 감사와 글로벌 보훈의 가슴을 열어야 한다.


[데일리안 박재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