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나 뤼순(旅順)이 그 안 의사 유해가 있을 여순이 절대 아니다.
1910년 이후 대륙역사를 한반도역사로 조작할 때 이미 대륙지명도 바꿔치기 한 본말을 밝히지 않으면 풀지 못할 수수께끼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순에서 아무리 안 의사 유해를 찾아본들 무슨 소용이며 결코 찾아지지 않을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괜히 엉뚱한 곳에 유해를 가지고 안 의사라고 하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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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만큼은 절대 우리 만에 힘으로 해결 될 수 없는 그야말로 20세기 초 혼돈의 역사문제이다.
지나뿐만아니라 일제가 남긴 자료를 요구하여 밝혀야 하고 그 당시 일제를 지원하고 있었던 미국의 힘도 빌려야 만이 풀 수 있는 수수께끼이다.
지역적으로 지금 여순은 여순이 아니라는 말이다.
안 의사가 죽음을 당해 묻혔던 곳이 여순 이라면 진짜 여순 지명을 찾아야 하는데 일제가 반도역사를 만들기 위하여 꼭꼭 숨겨둔 지명이기 때문에 먼저 그 비밀을 풀어야하고 또한 일제가 숨겨 둔 지명을 지나가 덩달아 밀봉하고 있는 실정을 먼저 낱낱이 밝혀야 만이 근원적으로 풀릴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애석하지만 처음부터 안 의사가 묻혔던 곳과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그동안 수고 한 꼴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우리가 찾으려고 하는 모든 역사가 이런 혼돈과 비밀에 갇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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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해발굴단 일단 귀국…아직 성과無
[연합뉴스] 2008년 04월 02일(수) 오전 11:44
(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지난 26일부터 중국 뤼순(旅順)에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위한 1단계 발굴작업을 벌였던 발굴조사단 13명이 2일 오후 다롄(大連)을 통해 일단 귀국할 예정이다. 주선양(瀋陽) 총영사관 관계자는 이날 "조사단이 2단계 발굴작업 준비를 위해 오늘 일단 귀국할 예정"이라며 "현재까지 기대했던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일단 귀국한 뒤 1단계 발굴작업을 통해 획득한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조사단을 구성해 내주 중 일정을 정해 다시 뤼순으로 들어온다는 계획이다. 1단계 발굴작업은 당초 열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계획보다 이틀 빠른 8일만에 마무리됐다.
조사단은 이번 작업기간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감옥 뒤편 유해매장 추정지에서 일부 구획을 정해 실제로 굴착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뚜렷한 성과는 올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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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유해발굴 이번엔 이뤄질까
[연합뉴스] 2008년 03월 26일(수) 오전 10:38
지금까지 남.북한 별도로 3차례…모두 실패
(다롄=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26일부터 중국 뤼순(旅順)에서 본격 시작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로운 유해 매장 추정지를 찾아내지 못하는 한 사실상 이번이 마지막 시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안 의사 유해발굴은 이번을 포함해 모두 4차례 시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해발굴을 처음 시도한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1970년대 뤼순으로 발굴팀을 보내 뤼순감옥 일대에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으려 시도했다.
특히 당시 북한 조사단은 유해봉환까지 염두에 뒀을 정도로 큰 기대를 걸고 대대적인 조사를 벌였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1998년 4월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었던 후진타오(胡錦渡)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안 의사 유해발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국회 문광위원장이었던 이세기 의원(현 한중친선협회장)은 후 부주석과의 면담에서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요청했고 그해 5월 중국을 방문해 후 부주석을 다시 면담한 자리에서 협조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다롄(大連)시 문화국이 자체적으로 조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할 진전이 없었던 유해발굴 노력은 남북이 2006년 6월 공동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년 4월 뤼순 감옥 뒤편의 야산과 공터를 유해매장 추정지로 확정하면서 탄력을 받는 듯 했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지나도록 본격 발굴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채 현장은 방치됐고 최근 유해매장 추정지가 아파트 부지공사로 훼손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더이상 발굴작업을 미룰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남북 양측은 공동발굴 문제를 놓고 협의를 벌였지만 북측이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이번 발국작업은 남측 단독으로 진행된다. 2개월로 예정된 조사발굴 작업이 끝나면 현장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사실상 이번 조사가 마지막 시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번 조사는 유해발굴 전문가들이 다수 참가하고 있고 현장에서 정밀 물리탐사를 벌여 그 탐사결과를 토대로 실제 발굴작업까지 진행할 계획이라는 점에서 이전 발굴조사와는 차별성을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뤼순감옥 뒤편의 현장에서도 유해 매장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추정되는 교회 부근 공터와 철거가 진행 중인 낡은 주택가 일부는 다행히 부지공사에 따른 훼손 정도가 야산과 송전탑 주변보다는 덜한 것으로 알려져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와 관련, 국군 유해발굴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자문교수로 참여했던 박선규 충북대 교수는 "이번에 발굴장비로 물리탐사기, 분석용 컴퓨터, 촬영장비 등을 갖고 들어왔으며 최선을 다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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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나선다
[조선일보]2005.08.20 04:35 50
광복되면 고국에 묻어 달라, 유언 이루어지나
뤼순감옥 주변 빠르게 개발중… 中, 협조 의사
이르면 연내 공동발굴…“이번이 마지막 기회
통일부는 19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 명의로 북측에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사업을 위해 접촉을 갖자는 전통문을 보냈다”고 발표했다. 남북은 이미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한다는 원칙에는 합의한 바 있다. 이제 구체적 논의에 들어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이 안 의사 유해 발굴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유해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중국 뤼순 감옥 주변에서 빠른 속도로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계자들은 “여러 가지 조건이 좋아 이번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안 의사는 사형 집행 전 최후 진술에서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나를 고국 땅에 묻어 달라”는 내용의 유언을 남겼다.
▲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당시 거사를 도왔던 독립운동가 유동하씨가 표시했다는 안 의사의 묘 위치. 안 의사는 뤼순 감옥에 정치?사상범들을 따로 매장한 묘에 묻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영광 전 의원은 당시 목격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감옥 우측 약 700m 떨어진 산자락에 위치한 총 3개열의 무덤 중 두번째 열 맨 오른쪽이 안 의사의 묘라고 말했다. 이 지도는 유씨의 외조카가 보관하다 지난 3월 김 전 의원에게 제공했다./자료=김영광 전 의원 제공
①새로운 정보 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후 6개월 만인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사형 당했다. 안 의사 유해는 집행 당일 밤 감옥 뒤편 언덕에 묻힌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본인 교도관들이 매장해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안 의사 묘소 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영광 전 국회의원은 “올 3월 뤼순에서 안 의사의 거사에 동참했던 독립운동가 유동하씨가 작성해 집안 대대로 물려주던 묘소 지도를 받았다”고 말했다.〈지도 참조〉
김 전 의원은 또 당시 뤼순 지역에 살았던 동포·중국인을 상대로 탐문한 결과 안 의사 매장 후 ‘안중근지(之)묘’라고 하는 팻말이 붙은 묘소에 참배했다는 사람을 10년 전쯤 만났다고 밝혔다. 그 사람은 감옥 우측 약 500m 떨어진 산자락 끝에 묘지가 있었고, 묘지 3개 열 중 두 번째 열 맨 오른쪽이 안 의사의 묘라는 증언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림 참조〉
정동영 장관은 “안 의사 처형 당시 교도소장 딸의 증언을 통해 안 의사가 뤼순 감옥 뒤편 언덕에 묻혀 있다는 매장 추정지는 확인한 상태”라고 말한 바 있다.
②남북 공동 추진, 중국 협조
그동안 중국은 우리 정부의 협조 요청에도 북한 눈치를 보아 왔다. 안 의사 고향이 황해도 해주이고, 북한에 안 의사의 조카 등이 살고 있어 북한도 안 의사의 연고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중국 당국의 전폭적 지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③과거 경험 축적
안 의사 유해 발굴 노력은 해방 직후부터 있었다. 북한도 1970년대와 1986년 중국 정부의 협조로 뤼순 감옥터와 그 주변에서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1992년 한·중 국교 수립 이후엔 한국 정부와 민간 학자들, 안 의사 추모 단체들에서 여러 차례 발굴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발굴 경험이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협상 등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연내 발굴 착수도 가능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민철기자 안용균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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