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상투, 민족의 자존심인가? 구시대의 유물인가

한부울 2008. 3. 20. 17:22
 

상투, 민족의 자존심인가? 구시대의 유물인가?

[노컷뉴스] 2008년 03월 20일(목) 오전 07:47


 


중학교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은 중국근대문학의 아버지 루쉰(魯迅)이 쓴 '아큐정전(阿Q正傳)'이다. 제목부터 아주 이색적인 이 중국소설에서 난데없이 등장하는 알파벳 'Q'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주인공은 청나라 말기에 자기의 정체성도 모르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인생만 살아간 어리석은 중국인인데, 이 'Q'는 중국인들의 변발(辯髮)을 뜻하는 'queue'의 약자이다. 즉, 구시대의 유물인 변발을 한 중국인, 세상이 변하는데 쓰기 힘든 한자를 고수하는 중국인을 비웃는 이야기이다.


한자의 나라 중국에서 소설로 인기를 끈 루쉰이 한자폐지운동에 참가했다는 것을 보면 루쉰이 뜻하는 근대화는 기존의 중국의 문화, 질서를 모두 파괴하고 서양을 본받자는 운동임을 알 수 있다.


상투는 중국인의 길게 딴 변발이 당구채와 같다는 의미로 번역한 'queue'와는 다른 'topknot'이라고 말해야 한다. 머리 꼭대기(top)에 매듭(knot)을 지었기 때문이다. 영어학습에서도 거추장스러운 상투나 변발처럼 따라붙는 것이 있으니 바로 '주어+동사'라는 구문이다. 우리말로 아무리 주어에 올 것도 영어에서는 목적어가 될 수 있다.


옛날영화에 대한 기억 때문에 미래를 보지 못하고 헤매기만 한다는 말을 영어로 옮겨보자. 'Due to your memory on the past prosperity, you will fall into the endless maze(과거의 영화에 대한 기억 때문에 당신은 끝없는 미로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하면 그야말로 당신은 우리말이라는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제대로 된 영어라면 'Your memory on the prosperous past can drag you into the endless maze(영광스러운 과거에 대한 기억이 당신을 끝없는 미로에 빠뜨린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머리에 상투를 하고도 영어를 잘만 하던 개화기의 인사들은 여러 명이다. 이 분들은 상투라는 형식이 아니라 그 속에 든 정신을 이해했고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영어라는 서양문명을 잘 이해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한 것이다.


100년 전 조상들도 한 일을 수많은 영어교재, 원어민 교사를 갖추고도 영어를 못하는 것은 아직도 그 마음의 상투를 잘라내지 못해서일 것이다.


이서규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