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석봉천자문. 유충렬전 방각본 목판 발굴

한부울 2008. 2. 28. 19:27

  

석봉천자문. 유충렬전 방각본 목판 발굴

[연합뉴스] 2008년 02월 27일(수) 오후 03:25

 

 

일본식 화로. 분첩 재료로 훼손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구한말인 1899년(광무 3년)에 전북 완산(전주)에서 상업적 출판을 위한 '방각본'으로 제작한 한석봉 초서 천자문의 목판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 목판은 그러나 온전한 원래 모습이 아니라 '이로리'로 불리는 일본식 화로의 장식품으로 '재활용'된 모습으로 발굴됐다.


비슷한 시기 같은 완산 지역에서 한글소설 '유충렬전'을 방각본으로 찍어내기 위해 제작된 목판도 발견됐다. 이 역시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일본식 분첩의 뚜껑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강원도 원주의 태고종 계열 사찰인 명주사 소속 '고판화박물관'의 한선학 관장(스님)은 27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에 새로 수집한 고판화 실물들을 공개했다.

한 관장은 "이로리 화로 상자(41×41×34㎝)는 지난해 9월 국내 고미술상을 통해 구입했으며, 분첩(10.5×10.5×2.5㎝)은 일본에서 입수했다"고 말했다.


화로상자는 전서와 초서로 새겨 쓴 한석봉 천자문 목판 4장을 각각 가운데를 잘라 8장으로 만든 다음 사각형 화로 외곽 각 측면을 장식했다.  유충렬전 방각본 목판은 둥근 분첩의 뚜껑으로 쓰기 위해 해당 부분을 둥글게 잘라내 한석봉 천자문 목판보다 훼손이 더 심각한 형태로 발견됐다.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이태영 교수는 이 목판을 감정, 조웅전과 더불어 한글 고전소설의 쌍벽을 이루는 유충렬전 목판임을 확인했다고 한 관장은 덧붙였다.


한 관장은 지난 2005년 '오륜행실도 목판'을 입수해 공개한 경험이 밑바탕이 돼 이번 목판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오륜행실도 목판이 이로리를 제작할 때 재료로 재활용된 점에 주목, 다른 목판들도 이런 형태로 훼손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국내외에서 이런 유물들을 수소문한 결과 한석봉 천자문과 유충렬전 목판본을 입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유물들을 감정한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서예사와 판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이 목판들이 일제강점기때 호사가들에 의해 완상용(玩賞用)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 관장은 전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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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능욕에 살아남은 문화유산

[서울신문] 2008년 02월 28일(목) 오전 03:45


[서울신문]치악산 고판화박물관이 27일 일제강점기에 수난을 겪은 두 점의 문화재를 공개했다. 하지만 수난을 겪었기에 그나마 일부라도 보존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문화재 보호란 무엇인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한선학 고판화박물관장이 내보인 자료는 19세기 후반 한글 방각본 소설 ‘유충열전’을 찍어낸 목판으로 만든 일본식 분첩과 1899년판 한석봉 초서 천자문의 목판으로 만든 일본식 화로 상자였다. 두 목판은 모두 전주에서 만들어진 완판(完板)이다. 앞서 고판화박물관은 2005년에도 ‘오륜행실도’ 목판으로 만든 일본식 화로 상자를 공개하기도 했다. 방각본은 조선 후기에 크게 유행한 상업적인 민간 출판 도서를 가리킨다. 전국의 서당에서 광범위하게 교재로 쓰였을 한석봉 천자문 역시 방각본이다.‘유충열전’은 필마단기로 적진에 뛰어들어 수만 대군을 격퇴하고 위기에 빠진 황제를 구한다는 내용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었다.


고판화박물관이 충북 충주의 한 고미술상에서 구입했다는 화로 상자(41×41×34㎝)는 한석봉 초서 천자문의 목판 4장으로 만들었다. 양면에 글자가 새겨진 목판의 가운데를 갈라 8장으로 만든 뒤 화로 상자의 바깥에 장식용으로 붙여놓았다.


일본 도쿄에서 입수했다는 분첩(10.5×10.5×2.5㎝)은 ‘유충열전’의 목판을 둥글게 오려낸 다음 뒷면을 파서 뚜껑을 만들었다. 나전칠기 전문가들은 분첩의 옻칠이 ‘마현전칠기법’으로 일본에서는 주로 작은 생활용기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설명한다.


‘유충열전’의 원본 목판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글 소설의 목판을 통틀어도 남아 있는 것은 ‘삼국지’ 목판 1점이 유일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서 출판이 대량으로 이루어진 만큼 일제강점기만 해도 방각본의 목판은 너무도 흔해서인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상업 출판에 쓰이고 난 목판은 심지어 땔감이 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는 사이 목판은 일본식 화로 상자도 되고 일본여인들이 쓰는 분첩도 되었을 것이다. 우리 문화재가 일종의 능욕을 당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남아 있는 ‘유충열전’ 목판이 이것밖에 없다면 오히려 일본인들이 분첩으로 만든 것이 방각본의 목판을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꼴이 된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선학 관장은 “우리 조상의 삶을 위로해 주던 한글 소설의 목판 원판이 처참하게 오려져 생활도구로 전락한 모습을 두고 일본인들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면서 “우리 자신이 얼마나 문화재를 사랑하고 있는지 뒤돌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서울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