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

방언연구, 30년 집념결심…한국 ‘사투리지도’ 나왔다

한부울 2008. 3. 27. 14:37
 

방언연구,  30년 집념결심…한국 ‘사투리지도’ 나왔다

[동아일보] 2008년 03월 24일(월) 오전 03:00

 

‘아이들이 밥을 한다, 반찬을 한다며 어른들의 살림 흉내를 내며 노는 것을 무어라 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 지역별로 다른 답이 돌아온다. 소꿉질, 수꿉질, 통굽질, 도꿉놀이, 동드깨미, 반드깨미, 반주까리, 바꿈살이, 새금박질…. 한국의 방언(方言)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역별로 다른 방언을 한눈에 보려면 사용 권역을 표시한 지도를 그리는 게 좋은 방법이다. 최근 출간된 ‘한국 언어지도’(태학사)가 그런 지도집이다.


한국의 첫 언어지도로 꼽히는 이 책은 30년 만에 나왔다.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0개년 프로젝트의 하나로 ‘언어지도’ 그리기에 착수했다. 그러나 예산 부족 때문에 몇 차례 중단됐다가 이제야 빛을 봤다. 참여 학자 중 최명옥(서울대) 교수만 현직에 있을 뿐 이익섭 이병근(이상 서울대) 전광현(단국대) 이광호(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모두 정년퇴직해 명예교수가 되었다.


이익섭 교수는 “한창때 작업을 시작해 눈이 침침해진 지금에야 마무리됐다”며 “선진국에선 일반화된 언어지도를 우리도 갖게 됐으니 출간 사실 자체만으로도 꿈만 같다”고 말했다. 지도에 그려 넣은 단어는 모두 153종. 시군 단위로 전국을 답사하면서 파악한 방언의 지역별 분포의 특징도 설명해 놓았다.


언어지도의 장점은 어렵지 않게 방언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지역별 언어의 차이를 비롯해 사회 정치 문화의 동질성과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말했다.


‘벼’의 경우, 그 방언은 ‘베’로 부르는 계통과 ‘나락’으로 말하는 계통으로 크게 나뉜다. 지도를 보면 ‘베’를 쓰는 경기 강원 충남북과 ‘나락’을 쓰는 전남북 경남북으로 뚜렷하게 갈라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충남 논산, 충북 청원, 강원 영월 등 남북의 접점 지역에선 두 말이 혼용된다는 점도 흥미롭다.


볍씨를 뿌리기 위해 만든 자리인 ‘못자리’는 동서로 갈라진다. 그 차이의 기준은 사이시옷의 있고 없음이다. 경기 충남 전남북은 대부분 ‘못자리’ 계통이고 강원 충북 경남북은 ‘모자리’ 계통이다.


‘고구마’는 방언의 분포가 단순한 경우다. 대부분 ‘고구마’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남 일부, 충남 일부 지역에서만 ‘감자’ ‘무수감자’ ‘감재’ 등의 방언을 사용할 뿐이다. 섬처럼 고립돼 인근 지역과 다른 방언을 쓰는 경우도 있다. ‘서랍’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경상도에선 ‘빼다지’라고 하고 경남 밀양 양산 지역에서는 ‘빼담’으로 부른다.


눈에 띄는 특징은 남쪽으로 갈수록 경음이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채소인 ‘가지’를 경기 강원 충남북 경북은 ‘가지’로, 일부 시군을 제외한 전남북과 경남에서는 ‘까지’로 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언어지도’는 1985년까지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 교수는 “추가 연구를 진행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면서 “하지만 사멸했을지도 모를 방언이 적지 않게 포함됐을 것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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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는 좌우를 나누고 ‘멍석’은 남북을 가른다

[한겨레신문] 2008년 03월 27일(목) 오전 09:25

 


[한겨레] 쌀알을 담고 있는 열매 또는 작물 전체를 가리키는 ‘벼’를 영·호남에서는 ‘나락’이라 하고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대부분 ‘베’라 한다. 그러니까 표준말이 된 벼를 방언으로 쓰는 지방은 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경기도 양주와 포천, 충청북도 중원(충주)과 제천, 강원도 철원, 고성, 명주(강릉), 횡성 정도다.


행정구역 구분과는 어긋나게 전북 익산이 ‘베’를 쓰고, 충남 금산과 충북 보은·옥천·영동이 ‘나락’을 쓴다. 그리고 충남 서산(태안)-청양-논산-대덕(대전)-연기, 충북 청원(청주)-진천-음성, 강원 원성(원주)-영월-삼척(태백, 동해)을 잇는 휘어진 띠모양의 접촉지대에서는 ‘베’와 ‘나락’을 함께 쓰고 있는데, 이럴 경우 보통 쌀을 찧기 전의 낟알 상태를 나락이라 하고 낟알로 떨어내기 전 이삭에 붙은 상태를 베라고 한다.


이처럼 방언은 행정구역이나 영·호남 등의 전통적인 지역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분포상태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익섭, 이병근 서울대 명예교수와 전광현 단국대 교수, 이광호 한국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최명옥 서울대 교수 등 국어국문학자 5명이 30여 년간의 공동작업 끝에 <한국언어지도>(태학사 펴냄)라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출간했다.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기획해 1985년에 현지조사를 마무리하고 1987~95년에 <한국방언자료집> 9권을 차례로 출간한 이래 다시 10여 년의 세월을 들여 방언지도를 완성한 것이다. 책은 방언 분포가 선명하고 의미가 큰 153개의 표준어와 이에 해당하는 각 지역 방언들이 각기 어떻게 분포하는지 여러 형태로 분화된 방언들을 각기 다른 부호로 지도 위에 표시하고 계열별로 색깔까지 넣었다.


그리하여 기호의 모양과 색깔로 방언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같은 계열 방언이 쓰이는 지역들을 같은 바탕색으로 구획하여 분포상황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1881년 독일, 1902~10년의 프랑스 언어지도를 필두로 선진제국에서 언어지도들을 작성했지만, 이처럼 진열지도와 분포지도를 통합한 형식으로는 <한국언어지도>가 독보적이라고 이익섭 교수는 설명했다.


‘벼’ 항목에는 오른편에 조사 당시의 질문과 해당 그림, 그리고 방언 분포현황과 해설이, 왼편에는 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컬러판 언어지도가 배치돼 있다.


다음 항목 ‘벼이삭’의 방언들은 더 세분돼 영남과 호남이 다르다. 중부 이북은 베이삭, 영남은 나락이삭, 호남은 나락모개(모가지)라 한다. ‘볍씨’의 방언들은 중부와 남부를 가르는 경계면이 훨씬 더 북쪽으로 이동하는데 중부 이북이 크게 벱(볍)씨와 베(벼)씨를 쓰는 지역으로 나뉘는데 비해 중부 이남은 거의 예외없이 씬나락(신나락)으로 통일돼 있다.


짚으로 꼬는 ‘새끼’는 동서로 갈리는데 충청·전라에서는 사내끼·사나키가, 나머지 지방에서는 대체로 새끼(일부 새꼬래기)로 통일돼 있다. 하지만 ‘멍석’은 전남·경남, 그리고 전북·경북 남부가 덕석, 나머지 지역이 멍석으로 각각 통일돼 남북으로 갈린다.


방언은 그 다양함으로 언어의 생동하는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거기에 녹아 있는 우리말 역사를 드러내 주며, 각 지역의 독특한 삶의 흔적도 보여준다. 이를 시각화한 언어지도는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나 지역의 역사와 사회문화적 특성을 알고자 할 때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방언 중에서 표준어로 살려 쓸 것을 찾고자 할 때도 결정적인 길잡이 노릇을 한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