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대한민국 천군 박영철 상병 근조!

한부울 2007. 12. 7. 23:58

 

 

 

 

근무 바꾼지 3일만..경찰의 꿈 못 펴고 떠나


(인천=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군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해병대 장교 및 병사 10여명이 고(故) 박영철 상병(1계급 추서)의 영정 앞에 선다.


모두들 비통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없이 서 있다가 선임자의 구령에 맞춰 `필승' 경례로 박 상병과의 작별을 고했다. 빈소 한 켠에서 흐느끼던 박 상병의 어머니 김모(42)씨는 장병들을 보자 아들 생각이 났는지 김씨의 흐느낌은 오열로 변했다.


7일 박 상병의 빈소가 차려진 강화병원 장례식장에는 군 관계자를 포함한 생전의 전우였던 장병 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유족들에 따르면 1남 1녀 중 둘째인 박 상병은 남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에 다니며 경찰의 꿈을 키우다 지난 5월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박 상병은 평소 경찰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며 "제대 후 희망대로 멋진 경찰이 되길 바랐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 상병의 아버지(48)는 "아들도 해병대에 입대하는 것을 원했고 나 역시 몸과 정신을 튼튼히 키울 수 있는 해병대 입대를 반겼다"고 말했다.


특히 박 상병은 자신의 대학 입학으로 자신과 대학생인 누나의 등록금을 동시에 마련해야 했던 부모님을 생각해 대학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한 효자였던 것으로 드러나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지난 6일 박 상병이 괴한으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던 날 섰던 외곽 초소 근무는 부대 근무 조정으로 박 상병이 사건 발생 3일 전부터 근무에 투입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선임병인 임모(21) 상병은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원래 박 상병의 외곽 초소 근무는 자신이 서던 것이었는데 근무 조정으로 박 상병이 변을 당했다며 가슴 아파했다고 해병대 관계자는 전했다.


또 박 상병은 사고 당시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소총과 탄통을 뺏기지 않으려고 버티다 괴한의 흉기에 7차례나 찔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주위를 숙연케했다.


박 상병 빈소 안과 밖에는 김장수 국방부 장관 등 군 관계자를 비롯, 각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로 가득찼으며 빈소 내 조화 맞은편에 앉은 어머니 김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친지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박 상병의 아버지는 오열하는 김씨의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주며 `힘내자'고 다독였지만 아버지의 얼굴에도 자식을 먼저 보낸 비통함이 서려 있었다.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박 상병의 시신은 빈소에서 부모와의 마지막 밤을 보낸 뒤 8일 오전 해병대 2사단에서 영결식을 가진 뒤 전우들을 뒤로하고 정들었던 부대를 떠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