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왜가 조선 국왕을 보고 황제라 칭했다.

한부울 2007. 1. 30. 23:17
 

왜가 조선 국왕을 보고 황제라 칭했다.

조선왕조의 본 무대가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이었다.

대마도와 유구(오끼나와)는 한반도에서 남쪽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러나 기록에는  동쪽이라고 하였고 바다 건너 아주 먼곳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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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성종 4년 3월 13일

성종 28권, 4년( 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 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日本國京極殿京兆尹佐佐木氏ㆍ三州太守大膳大夫入道生觀遣人來獻土宜。 其書契曰:


일본국(日本國) 경극전(京極殿) 경조윤(京兆尹) 좌좌목씨(佐佐木氏)와 강.기.운 삼주 태수(江岐雲三州太守) 태선 대부(太膳大夫) 입도(入道)2907) 생관(生觀)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皇帝陛下壽聳南山, 德涵東海, 扶桑之水朝宗, 雞林之野盛大, 至禱至禱至祝至祝。 臣先祖以來, 家世士師日域, 猶如范子之於晋國之者, 專司弓馬, 莫墜箕裘之業。 本朝丁亥而降, 中原風塵, 干戈四起, 臣之敝邑, 江入戰圖, 雲接賊壘, 徭玆俗廢農桑, 最乏絺綌。 是故士卒多困墮指之厄, 若被白登之圍。 伏望忝蒙貴國家紬幷木綿之恩惠, 則救凍死於三軍, 仰庇於萬歲之者也。 不腆土宜, 件件具在別幅, 鈞察惟幸。

 

“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부상(扶桑)의 물이 조회하고 계림(雞林)의 들[野]이 성대하기를 빌고 빕니다. 신(臣)은 선조 이래로 대대로 일역(日役)에서 사사(士師)2908) 가 되니, 마치 진(晉)나라의 범자(范子)와 같은 자2909) 이므로, 오로지 궁마(弓馬)를 맡아 부조(父祖)의 업(業)을 실추시키지 않았습니다. 본조(本朝)에서는 정해년2910) 이래로 중원(中原)에 난리[風塵]2911) 가 나서 전쟁이 사방에서 일어나매, 신의 고을도 함께 싸움터 안에 들어가서 적을 많이 대하게 되니, 요역(徭役)에 나가느라 농상(農桑)을 폐기하여 피륙이 가장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사졸(士卒)들이 타지(墮指)2912) 의 재앙에 많이 곤고(困苦)하여 마치 백등(白登)의 포위2913) 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귀국의 명주와 무명의 은혜를 내려 주시면, 삼군(三軍)에서 얼어 죽는 것을 구제하고 황제의 은혜를 만세토록 우러를 것입니다. 변변치 않은 토산물 몇 가지를 별폭(別幅)에 갖추어 적으니, 살펴주시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하였다.

[註 2907]입도(入道) : 불문(佛門)에 출가(出家)한 사람. ☞

[註 2908]사사(士師) : 법령(法令)과 형벌(刑罰)을 맡은 재판관. ☞

[註 2909]범자(范子)와 같은 자 : 진나라 범선자(范宣子)가 법령(法令)을 맡아 형서(刑書)를 지었으므로 이른 말. ☞

[註 2910]정해년 : 1467 세조 13년. ☞

[註 2911]난리[風塵] : 응인(應仁)의 난리를 말함. ☞

[註 2912]타지(墮指) : 추위에 손가락이 얼어 빠짐. ☞

[註 2913]백등(白登)의 포위 : 한고조(漢高祖)가 백등산(白登山)에서 흉노(匈奴)인 묵특(昌頓)에서 포위되었던 것을 말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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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성종 4년 7월 26일

成宗 32卷, 4年( 1473 癸巳 / 명 성화(成化) 9年) 7月 26日 乙卯 2번째 기사

일본국 인백단 삼주 태수 원교풍이 양영서당을 보내어 선물과 글을 올리다


○日本國 三州太守山名殿少弼源敎豐亮瑛西堂來, 獻土宜, 兼獻四書各一件。 其書契曰:


일본국(日本國) 인백단 삼주 태수(因伯丹三州太守) 산명전(山名殿) 소필(少弼) 원교풍(源敎豐)이 양영 서당(亮瑛西堂)을 보내어 와서 토의(土宜)를 바치고, 아울러 사서(四書) 각각 1건(件)씩을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는 이르기를,

 

恭惟皇帝陛下寶祚紹運, 舊邦維新, 德超之初, 道配之上, 至祝至禱。 臣先祖以來, 家世無不通聘問上國, 故庚寅之秋, 差一菴僧奭都聞等, 而理舊盟且獻土宜之微誠。 幸遇今上皇帝踐祚之初, 染目於漢冠威儀, 濡耳於周詩歌頌, 吁盛哉! 實文武國也, 榮遇莫大焉。 竣, 賜以東歸, 忝賜火爐銅盤一箇ㆍ銅磬一箇, 旣蒙恩惠之厚, 無勝感忭之至矣。 今差萬福寺住持亮瑛西堂等, 航海捧薄幣, 專致皇帝踐祚之拜賀。 臣雖在遙天遼海之際, 而莫不馳心於魏闕之下, 區區丹悃, 伏丐睿察萬幸。 臣封內伯州有古刹, 曰萬福禪寺, 敗顚歲久矣, 將成再造之營, 而嚮求助緣於上國, 未賜恕容。 所希以大王之寬仁, 速行布金之施, 則佛閣、僧房, 一時可復舊觀者也。 然則永奉祝延, 聖壽萬安之一端也。 下情不勝惶懼之至, 不腆方物, 具于別幅。 貳張, 百矢同臺一對, 大刀拾振, 罐子風爐、健茗盆貳枚。


“공경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皇帝陛下)께서 보위(寶位)에 오르시어 천운(天運)을 이어받으시니, 구방(舊邦)이 유신(維新)하며, 덕(德)이 하(夏)나라·은(殷)나라의 초정(初政)보다 뛰어나시고 도(道)가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위에 짝하시니, 지극히 축하하고 지극히 축수합니다. 신은 선조(先祖) 이래로 가세(家世)에서 상국(上國)3198) 에 빙문(聘聞)을 통하지 아니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경인년3199) 가을에 일개 암자승(菴子僧)과 석도문(奭都聞) 등을 차견(差遣)하여서, 옛날의 맹세를 닦으며, 또 토의(土宜)의 미미한 정성을 바쳤습니다. 다행히 금상 황제(今上皇帝)3200) 께서 왕위(王位)를 이어받으시는 초정(初政)을 만나서, 눈으로는 한(漢)나라 관리의 위의(威儀)를 보겠고, 귀로는 주(周)나라 시(詩)의 가송(歌頌)을 듣겠으니, 아아, 성대(盛大)합니다. 실로 문무(文武)의 나라인지라 영우(榮遇)하기가 너무나 크옵니다. 전사(專使)3201) 가 일을 끝마치고 동쪽으로 돌아오게 되매, 화로 동반(火爐銅盤) 1개와 동경(銅磬) 1개를 더하여 내려 주시니, 이미 후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감격하고 기쁜 마음이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만복사(萬福寺)의 주지(住持) 양영 서당(亮瑛西堂) 등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가서 박(薄)한 폐물(幣物)을 바치어 오로지 황제께서 왕위를 이으신 것을 배하(拜賀)하게 합니다. 신은 비록 먼 하늘, 먼 바닷가의 땅에 있어서 위궐(魏闕)3202) 아래에 달려가 마음을 바치지는 못하나, 구구(區區)한 단성(丹誠)3203) 을 엎드려 예찰(睿察)하여 주시기를 빌며, 그리하여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신의 봉지(封地) 안의 백주(伯州)에 만복 선사(萬福禪寺)라고 하는 옛 사찰(寺刹)이 있는데, 허물어져 무너진 지가 세월이 오래 되었으므로 장차 다시 영조(營造)하려고 하여, 저번 때에 상국(上國)에 조연(助緣)3204) 을 구(求)하였으나, 너그러이 용납하여 주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라는 바는 대왕께서 관인(寬仁)으로써 포금(布金)3205) 의 봉시를 속히 행하여 주시면, 불각(佛閣)과 승방(僧房)을 일시에 다시 옛날처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길이 성수(聖壽)가 만안(萬安)하시도록 봉축(奉祝)하는 일단이 될 것입니다. 하정(下情)3206) 은 지극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변변치 않은 방물(方物)을 별폭(別幅)에 갖추었습니다.”

하였는데, 그 별폭에는,

“활[弓] 2장(張), 백시 동대(百矢同臺) 1대(對), 대도(大刀) 10진(振), 관자 풍로(罐子風爐)·건명분(健茗盆) 2매(枚).”이었다.

[註 3198]상국(上國) : 조선(朝鮮)을 말함. ☞

[註 3199]경인년 : 1470 예종 원년. ☞

[註 3200]금상 황제(今上皇帝) : 성종(成宗)을 말함. ☞

[註 3201]전사(專使) : 특사(特使). ☞

[註 3202]위궐(魏闕) : 임금의 궁궐. ☞

[註 3203]단성(丹誠) :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 ☞

[註 3204]조연(助緣) : 절을 지을 때에 돈이나 재물로 도와주어 인연을 맺는 일. ☞

[註 3205]포금(布金) : 베나 돈. ☞

[註 3206]하정(下情) : 윗사람에게 대하여 자기의 마음이나 뜻을 낮추어 이르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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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성종 5년 7월 27일

成宗 45卷, 5年( 1474 甲午 / 명 성화(成化) 10年) 7月 27日 庚辰 3번째기사

일본국 방장섭천 4주 태수가 사람을 보내 토의를 바치다.


○日本國 四州太守大內別駕多多良政弘遣人來, 獻土宜。 其書契曰:

일본국(日本國) 방장섭천 4주 태수(防長攝泉四州太守) 대내 별가(大內別駕) 다다량 정홍(多多良政弘)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恭惟皇帝陛下仰明德之超乎日月, 祝聖壽之富于春秋, 至禱至祝。 上國與我先祖通好, 至政弘, 二十有六代也。 因上國對州, 未同盟之先, 屢及兵爭矣。 臣之先人, 爲上國遣救之兵, 士卒盡戰死而無一人之歸于國, 而今八十餘歲也。 加之承尊命, 水牛牝牡進之, 然則先人於上國, 其忠不少者歟? 政弘爲其後胤, 壬辰歲初, 以使者修先人之舊好, 寓合違舊而甚無愛惠之趣。 執事其遺忘舊盟歟? 抑又依使者之不肖者歟? 不審不審。 雖然猶依尊命, 卽又重遣使船, 伏聞命者也。 次自琉球國賜麝香一匹, 承尊命可進貢之。 政弘數歲之先, 救山名左金吾之戰而留京師者有年矣。 去歲三月十八日, 金吾已逝去, 同四月二十日細川京兆亦逝去, 因而兩家之子弟, 漸以和睦矣。 於玆我殿下將遣使船於大明國, 臣承命以粧船, 云公云私, 其費鉅多也。 偏仰上國之餘波, 俯垂恩賜, 自今以往, 愈以舊盟抱忠節者也。 其大明國琉球國之於臣也, 恩問尤厚矣, 上國獨似忘舊盟。 交盟若爲無所益者, 依報命以得其心, 伏布腹心。 不腆土宜, 聊表微志耳。


“삼가 황제 폐하(皇帝陛下)4245) 께서 명덕(明德)이 일월(日月)보다 빛나고 성수(聖壽)가 장래에 장구(長久)하시기를 빌고 빕니다. 상국(上國)4246) 과 우리 선조(先祖)가 통호(通好)한 지 정홍(政弘)까지 26대째입니다. 상국과 대주(對州)와 아직 동맹(同盟)하기 전에 자주 전쟁하였는데, 그 때에 신(臣)의 선인(先人)이 상국을 위하여 구원병을 보내어 사졸이 죄다 전사하고 한 사람도 귀국하지 못한 것이 이제 8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게다가 존명(尊命)4247) 을 받들어 수우(水牛) 암수를 바치기도 하였으니, 그렇다면 선인의 상국에 대한 충성이 적지 않았다 하겠습니다. 정홍은 그 후사(後嗣)로서 임진년4248) 에 처음 사자(使者)를 보내어 선인이 맺어 온 구호(舊好)를 닦았는데, 그때 구례(舊例)에 어그러지는 일을 당하여 아껴 주시는 뜻이 매우 없었습니다. 집사(執事)가 옛 맹약(盟約)을 잊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또 사자가 변변치 못하였기 때문입니까?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렇기는 하나 존명에 따라 곧 거듭 사선(使船)을 보내어 명을 받고자 합니다. 따라서 유구국(琉球國)에서 보내 온 사향(麝香) 1필(匹)을 존명을 받들어 바칩니다. 정홍이 몇 해 전부터 산명 좌금오(山名左金吾)의 군사를 돕느라고 경사(京師)에 머문 지가 몇 해 되었는데, 지난해 3월 18일에 금오가 서거(逝去)하고 그달 28일에 세천 경조(細川京兆)도 서거함에 따라 두 집안의 자제들이 점점 화목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전하(殿下)가 대명국(大明國)에 사선(使船)을 보내고자 하매, 신이 명을 받들어 배를 꾸미는데, 공사간(公私間)에 그 비용이 매우 많습니다. 상국의 풍부한 재물의 나머지로 은사(恩賜)를 굽어 내리시기를 바라며 앞으로 갈수록 옛 맹약에 따라 충절(忠節)을 지키고자 합니다. 대명국과 유구국에서는 신에 대하여 은문(恩問)이 더욱 후한데, 상국만이 옛 맹약을 잊으신 듯합니다. 교맹(交盟)이 보탬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보명(報命)에 따라 그 뜻을 알아서 엎드려 진정을 아뢰겠습니다. 변변치 않은 토의(土宜)나마 작은 뜻을 표합니다.”

[註 4245]황제 폐하(皇帝陛下) : 조선 국왕을 가리킴. ☞

[註 4246]상국(上國) : 조선을 가리킴. ☞

[註 4247]존명(尊命) : 조선황제의 명을 일본 국왕이 받들어 내리는 명을 가리킴. ☞

[註 4248]임진년 : 1472 성종 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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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성종 5년 10월 6일

成宗 48卷, 5年( 1474 甲午 / 명 성화(成化) 10年) 10月 6日 戊子 3번째기사

일본국 대마주 태수 종정국이 특별히 종무승을 보내 토의를 바치다


○日本國對馬州太守宗貞國特遣宗茂勝來, 獻土宜。 其書契曰:


일본국(日本國) 대마주 태수(對馬州太守) 종정국(宗貞國)이 특별히 종무승(宗茂勝)을 보내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共惟皇帝陛下聖帝之巍巍也, 愈固愈堅, 聖壽之緜綿也, 可久可長, 至祝至祝。 宗出羽守貞秀每歲遣一船, 以令致肅拜, 實聖恩之鴻者也。 頃年以來, 以其爲人惇重而屢練于事, 特拔于諸宗而委以政柄, 臣今主畫諾而已。 大凡對馬一州, 無非貴國之臣, 故所蒙之恩顧, 所遣之船數, 各有差品。 伏庶幾自今以往, 彼使船之數, 倍于諸宗所容每歲遣十船者, 何幸過之乎? 彼已許命于臣, 豈其爲貴國不竭忠乎? 因差兵部少輔茂勝、大護軍皮古汝文以遣之, 口實婁陳者也, 又三浦刷還之事, 兩回已致然諾。 雖然數歲之間, 自上都下邑, 不遑軍事。 以是因循于今, 頗似食言, 不任慙汗。 今已遣茂勝等委悉, 以承尊命, 而致刷還于不日, 肯以書奏不備。


“공손히 생각건대 황제 폐하(皇帝陛下)는 거룩한 지위의 높음이 더욱 튼튼하시고, 거룩한 수명의 길기가 더욱 장구하시기를 극진히 축원하옵니다. 출우수(出羽守) 종정수(宗貞秀)에게 매양 해마다 한 척의 배를 보내도록 하여 숙배(肅拜)를 하게 하시니, 실로 성은(聖恩)이 매우 큽니다. 근년 이래로 그 사람됨이 순후하고 신중하여 다년간 일에 숙련하였기 때문에 저희 제종(諸宗)에서 뽑아 정병(政柄)4481) 을 맡기고 신(臣)은 이제 주로 획락(畫諾)4482) 만 할 따름입니다. 대저 대마도(對馬島) 한 주(州)가 귀국(貴國)의 신하(臣下)가 아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입은 은혜와 보내는 배[船]의 수효도 각각 차등이 있었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지금부터 이후로는 일본사선(使船)의 수가 저희 제종(諸宗)이 소유하고 있는 것의 배(倍)가 되어 매년 10척의 배를 보내게 해주는 것은 얼마나 지나친 다행이겠습니까? 이미 신에게 허명(許命)하셨으니, 어찌 귀국(貴國)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인하여 병부 소보(兵部少輔) 종무승(宗茂勝)과 대호군(大護軍) 피고 여문(皮古汝文)을 올려 보내어 구두로 거듭 개진(開陳)하게 하였으며, 또 삼포(三浦)의 쇄환(刷還)4483) 하는 일은 두 번에 걸쳐 이미 연락(然諾)을 드렸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수년 동안 상도(上都)로부터 하읍(下邑)에 이르기까지 군사 일로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전과 같이 시행하게 되어 마치 식언(食言)을 한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이제 이미 종무승 등을 보내어 자세히 말씀드리니, 존명(尊命)을 받들어서 며칠 내로 쇄환이 이루어지게 하겠으므로 감히 글로써 아뢰옵고 다 갖추지 못합니다.”

 

又書契曰:

于前乃而浦富山浦民屋相繼, 以罹于鬱攸之, 悉爲灰燼, 於玆忝遣官使, 具酒餚以相勞餉, 加焉家散官穀, 以至相賑濟。 雖爲吾民, 以海隔地異, 不得救急緩, 今感聖恩之重, 而竊抱愧羞, 不任激切屛營之至。 去歲貴國漂流到五島者, 隨得而送之于貴國, 報賜尤厚, 件件無不奇珍。 特所賜驌驦, 逸群絶足, 如龍之脫水。 ‘昔一馬已去而冀北空其群’, 今此馬已來, 而吾一州又空其群者也。 喜懼交幷, 不堪謝忱之至。

  

하고, 또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요전에 내이포(乃而浦)와 부산포(富山浦)의 주민의 가옥이 서로 연접하여 화재를 만나 모두 잿더미가 되었는데, 이에 황송스럽게도 관원을 보내시어 술과 안주를 갖추어 서로 위로하면서 먹게 하시고 거기다가 관곡(官穀)까지 더하여 서로 진제(賑濟)4484) 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우리 백성이라도 바다가 막히고 땅이 달라서 완급(緩急)을 구원(救援)할 수가 없는데, 이제 성은(聖恩)의 지중함을 실감하고 그윽이 부끄러움을 품었으나 너무도 절실하고 황송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지난해에 귀국의 중[僧]으로서 표류(漂流)하여 오도(五島)에 이른 자를 만난 즉시에 귀국으로 보냈더니, 보답으로 하사(下賜)하신 것이 더욱 후하여서 건건(件件)이 진기(珍奇)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내려 주신 숙상(驌驦)4485)모든 말 중에 특출하고 빠르기가 월등하여 용(龍)이 물을 벗어난 것 같았습니다. 옛말에 ‘말 한 마리가 나가고 나니 기북(冀北)에 말이 없다.’란 말이 있는데, 이제 이 말이 오고서는 우리 한 고을[對馬州]에 또한 말다운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기쁘고 섭섭함을 아울러 느끼며 감사하는 정성이 지극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하였다.

[註 4481]정병(政柄) : 정권. ☞

[註 4482]획락(畫諾) : 문서에 서명하여 결재하는 일. ☞

[註 4483]쇄환(刷還) : 외국에서 유랑하는 동포를 데리고 돌아오는 것을 말함. ☞

[註 4484]진제(賑濟) : 진휼하고 구제함. ☞

[註 4485]숙상(驌驦) : 준마(駿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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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중종 17년 6월 11일

중종 45권, 17년( 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6월 11일 병술 2번째기사

세견선 허용에 관한 일본 사신의 상소문


○禮曺啓曰: “日本使臣, 欲親詣闕庭呈疏。 客人上疏違例, 不可啓達敢稟。” 傳曰: “他國使臣上疏, 無例, 防之可也。” 其疏云:

日本國王殿僧大原, 頓首頓首百拜言。 聖文神武今。 上皇帝陛下卽祚以來, 萬物如意, 曰雨而雨, 曰暘而暘。 臣, 苟有所存, 恐懼言上, 謹詣光化門, 捧疏以聞, 伏乞 聖旨。


예조가 아뢰기를,

“일본 사신들이 친히 대궐에 나아가 상소하고 싶어 하는데, 객인(客人)이 상소를 함은 사례에 어긋나는 것이라 계달(啓達)할 수 없는 것이기에 감히 품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다른 나라의 사신이 상소하는 예가 없었으니, 막아야 한다.”

하였다. 그의 상소에는,


日本國王殿僧大原, 頓首頓首百拜言。 聖文神武今。 上皇帝陛下卽祚以來, 萬物如意, 曰雨而雨, 曰暘而暘。 臣, 苟有所存, 恐懼言上, 謹詣光化門, 捧疏以聞, 伏乞 聖旨。

其辭曰: “歌林鐘律, 爰依司法之禮曺, 隨槐廳陰, 幸憑補袞之宰相, 請憐今東僧。 都見達于南面, 聽尙求益, 正與必有得矣, 至祝至祝。 今上皇帝陛下, 居三王上, 令萬國淳, 遠來荷朝鮮國恩, 添結老臣義。 雖然, 辱日本之君命, 在失使者功。 此云是, 彼云非, 甲之可, 乙之否。 信先王好則, 賜二十五船于弸中, 棄新王言乎? 損二今條者, 某甲欲行, 車無輗軌, 非罪道絶紀綱。 臣某, 禿丁歷年, 矮子過水, 聽太平鼓, 再登瑠璃閣中。 有續命刀待出慈悲庫內, 億歲二國, 以化餘齡, 一得生還至禱至禱。”


“일본 국왕전(日本國王殿)의 중[僧] 대원(大原)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고 백 번 절하며 말씀드립니다. 우리 성문 신무(聖文神武)하신 금상황제 폐하(今上皇帝陞下)께서 즉위하신 이래 만물(萬物)들이 제 스스로 뜻하는 대로 되어지며, 비가 와야겠다 하면 비오게 되고 볕이 나야겠다 하면 볕이 나게 되었습니다. 신이 진실로 간직한 바가 있어, 공구(恐懼)스럽지만 말씀드리고 싶기에 삼가 광화문(光化門)에 나아가 소(疏)를 올려 주문(奏聞)하오며 삼가 성지(聖旨)가 내리기를 바랍니다.”

했고, 그의 사(辭)에는,

“임종(林鍾)11018) 의 음률(音律) 속에 예법(禮法) 맡은 예조의 안내를 받아, 괴청(槐廳)11019) 의 그늘로 해서 다행히 보필(輔弼) 맡은 재상들을 접하게 되었으니, 지금 동쪽에서 온 중을 가엾이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을 임금께 주달하여 들어주게 되고, 더욱 유익할 길을 강구(講求)하여 정히 서로 소득이 있게 되기를 거듭거듭 지극하게 빕니다.

금상황제 폐하께서는 삼왕(三王)의 위에 있으며 만국(萬國)을 순박해지게 하시므로, 멀리 조선 나라에 와서 국은(國恩)을 입었고, 노성한 대신들과도 의를 맺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일본의 왕명(王命)을 욕되게 하고 있어, 사신으로서의 공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되나 저 일은 안 된다 하시고 이것은 가하나 저것은 부(否)타 하시는데, 진실로 선왕(先王)과 화호(和好)할 무렵 붕중(弸中)이 왔을 적에는 세견선(歲遣船)을 25척까지 승락해 주셨으면서, 신왕(新王)의 말은 버리시려는 것입니까? 지금 약조(約條) 중에서 두 가지 사항을 감하려 함은 어느 조항만 시행하시려는 것인데, 마치 수레에 예(輗)와 월(軏)11020) 이 없는 것과 같은 격으로서, 죄지은 내력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리게 되는 일입니다.

사신 승려 모(某)는 독정(禿丁)11021) 이 된 지 여러 해인데, 조잔한 몸으로 바다를 건너와 태평고(太平鼓) 소리를 들으며 유리각(瑠璃閣)에 오른 것이 두 차례나 됩니다. 간직하고 있는 속명도(續命刀)11022) 를 자비고(慈悲庫)에서 내오기 기다리고 있사오니, 억만년(億萬年)의 두 나라가 저의 남은 나이를 살게 해 주시어 모두 살아서 돌아가게 되기를 거듭거듭 지극하게 바랍니다.”하였다.

[註 11018]임종(林鍾) : 12율(律) 중의 첫째 음률(音律)의 명칭. 여기서는 곧 주악(奏樂)을 말한다. ☞

[註 11019]괴청(槐廳) : 의정부(議政府)를 뜻한다. ☞

[註 11020]예(輗)와 월(軏) : 예는 큰 수레의 멍에 끝에 달린 소를 매는 장치. 월은 작은 수레의 멍에 끝에 달린 말을 매는 장치.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사람으로서 신의(信義)가 없어도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큰 수레에 예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이 없다면 어떻게 운행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 대문의 뜻을 인용한 것이다. ☞

[註 11021]독정(禿丁) : 중 노릇을 말한다. ☞

[註 11022]속명도(續命刀) : 자살을 뜻하는 말이다. ☞

 

[우리역사의 비밀 - 김태균 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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