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수퍼컴' 한국인이 연다
[중앙일보] 2007년 01월 25일(목) 오전 04:29
[중앙일보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컴퓨터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기술이 한국인 과학자가 주도한 연구팀에 의해 개발됐다. 핵심 부품인 기억용 칩에 정보를 쌓는 기술을 현재보다 100배 이상 늘려 캐비닛 크기의 수퍼 컴퓨터를 손바닥만 하게 줄일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25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칼텍) 박사 과정의 최장욱(32.사진)씨가 주도한 연구팀이 지금의 D램에 들어가는 칩과 크기는 같지만 100배 이상 많은 정보를 저장하는 초고집적 칩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했다. 최씨는 논문을 작성한 두 명의 공동 주 저자 중 한 명이다.
논문에 따르면 칼텍 팀은 현재의 D램 칩과 동일한 면적에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정보 저장 공간을 최대한 작게 만들고, 내부 회로용 전선을 극도로 가늘게 했다. 또 정보를 저장하는 물질로 실리콘 대신 유기물질을 써 전기 소모가 크고 열이 많이 나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원리는 이렇다. 칩 안의 정보를 저장하는 방을 연결하는 전선 폭(線幅)을 15나노m로 줄인 뒤 현미경으로 봐야 할 정도의 간격(33나노m)을 두고 전선을 배열했다. 현미경으로 보면 빗살무늬 같다. 거기에 유기화합 물질인 '로택사인'을 붙여 나갔다.
그림 참조칼텍 팀은 이런 방식으로 좁쌀 크기의 면적에 16만 비트를 집적할 수 있었다. 이는 D램 칩 1㎠ 면적에 1000억 비트(100기가비트)를 저장할 수 있는 수준이다.
삼성전자에서 지난해 상용화한 초고집적 D램의 선폭은 50나노m였다. 삼성전자 측은 "15나노 기술이라면 현재 기술 수준보다 2세대 이상 앞섰다고 볼 수 있지만 상용화 가능성은 논문 내용을 좀더 들여다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칼텍 팀이 개발한 초고집적 반도체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극복할 지평을 연 의미가 있다.
물론 상용화까지 해결 과제가 많다. 최씨는"지금 개발한 칩을 1000번까지 작동해 본 결과 정상적으로 정보를 읽고 쓰는 것을 확인했다"며 "그러나 기존 D램처럼 수만 번 이상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게 유기물의 성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실용화까지 적어도 5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최장욱씨=그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제1회 '삼성 이건희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유학을 간 지 5년 만에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냈다. 최씨는 서울대 응용화학부를 학점 4.3 만점에 4.02로 졸업한 우등생이다. 대학 3학년 때는 미 풀브라이트 재단과 GE가 뽑는 장학생에 선발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최경원씨의 장남이다.
그는 올 여름 박사학위를 받으면 박사 후 연구과정을 미국에서 밟으면서 암 조기 진단용 바이오 센서 개발 분야를 연구할 계획이다. 최씨는 "이번 D램 개발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회로를 가늘게 만들고 배열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나노(nano)=나노는 그리스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 나노m는 10억분의 1(10-9승)m를 말한다.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8만분의 1 정도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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