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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이야기 못 배우게 하겠다” 용감했던 모녀 이야기

한부울 2007. 1. 23. 17:59
 

“요코이야기 못 배우게 하겠다” 용감했던 모녀 이야기

[동아일보 2007.01.23 02:53:51]


[동아일보]
《“우리 아이 학교 영어 교사 책상 위에는 지금도 금색 프레임의 액자가 놓여 있어요. 요코가 직접 한자로 ‘나의 절친한 친구에게’라는 문구를 써 넣은 엽서 그림이 들어 있지요.” 일제 패망 당시의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소설 ‘요코 이야기(원제 So Far from the Bamboo Grove)’를 학교 교재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요구를 공식 제기해 처음으로 관철한 수잔나 박(46) 씨.》

■ “美교재 제외” 관철한 수잔나 박 씨-허보은 양

어릴 때 이민을 와 뉴저지 주의 웨스트체스트 카운티에 사는 주부 박 씨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

“6학년이던 딸이 7학년(한국의 중1년) 영어시간에 배울 교재 목록을 가져왔는데 거기에 ‘요코 이야기’가 들어 있더군요.”

재미 일본인 작가인 요코 가와시마 잡킨슨(73) 씨가 1986년 자전적 실화소설이라며 출간한 이 책은 박 씨의 딸 허보은(미국명 알렉산드리아 허) 양이 다니는 학교에서 7학년 아이들이 의무적으로 읽어야 하는 영어 수업용 도서 5권 중 하나였다. 같은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동생이 학교 측에 얘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9월이 됐는데도 교재목록엔 변화가 없었다.

“학교에 물어보니 13년 전부터 교재로 사용해 왔다고 하더군요. 요코는 교사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였죠. 기모노에 게다 차림으로 미국 학교들을 순례하며 자기 책을 소개하는 강연을 해 왔다고 하더군요. 딸아이 학교에도 지난해 11월에 올 예정이었죠.”

딸에게 일단 책을 읽어 보고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해 줬다. 딸은 책을 읽은 뒤 역사적으로 틀린 내용의 책으로 수업을 받을 수 없다는 에세이를 썼다. 에세이를 학교에 가져갔지만 반응이 없었다. 이틀 뒤 아이가 학교에서 전화를 걸어와 요코 이야기 수업이 시작됐으니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박 씨는 밤을 새우면서 인터넷을 검색해 요코가 누구인지 자료를 찾았다. ‘가와시마’란 이름으로 뜨는 검색 결과를 좁혀 가다 보니 요코의 부친이 일본군 731부대 전범이었다는 의심을 뒷받침해 주는 여러 자료가 나왔다.

“자료를 추려서 교장을 찾아가 설명했더니 역사 교사 출신인 교장도 눈이 둥그레지면서 ‘알겠다’고 하더군요. 다음 날 교재 목록에서 제외하겠다는 연락이 왔어요.”

등교 거부 1주일 만이었다. 정원 800명의 사립학교인 이 학교에서 한국계는 2명으로 일본계 10명보다 적다. 보스턴의 한인 학부모들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그러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한국 아이들의 가슴앓이 사연이 하나둘 드러났다.

“지난해 보스턴의 한 한국 아이는 학교에서 책을 읽다가 사라졌어요. 찾아보니 도서실 책상 밑에 숨어서 울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시카고도서관협회에 따르면 그동안 이 책과 관련해 공식적인 항의 접수가 4차례나 있었다고 하네요. 일부 영어 교사들은 여전히 ‘요코는 평화를 주장하는 작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코가 평화주의자로 행세하는 동안 많은 한국인 아이와 학부모는 가슴앓이를 해 온 겁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