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구들)
한국의 주택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온돌(=구들)이라는 난방장치이다. 온돌은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방바닥 밑의 구들장이 뜨거워지고 이 구들장의 열이 방바닥으로 전달돼 방안 공기가 따뜻해지는 난방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고구려 시대에 처음 발명된 것이라고 하며, 처음에는 쪽구들을 깔았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 조선시대 접어들어 방바닥 전체에 구들을 깔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온돌을 처음 접했던 서양인들은 매우 뛰어난 난방 방식으로 이해했고, 그들이 방문했던 그 어떤 나라보다도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100년 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난방 장치를 가진 나라였다.
농부나 일꾼들이 사는 집이 아무리 누추하다 하더라도 항상 깔끔한 작은 침실이 딸려 있는데, 진한 갈색의 유지가 발라져 있는 구들과 시멘트로 된 방바닥은 하루에 두 번씩 밥을 하느라고 때는 불 때문에 항상 따뜻하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이들은 이웃 나라 사람들보다 더 편하게 산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의 집들은 춥기로 유명하고, 유일한 난방 시스템은 손가락을 따뜻하게 하는데 사용되는 화로가 전부이며, 또 중국의 집들은 아주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한가지 난방 시스템은 북쪽 지방에서 사용되는 식으로 불에 달군 돌 이외에는 집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중부의 가옥들은 매우 추울 경우에도 집이 전혀 따뜻하지 않아 사람들은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그저 옷을 더 껴입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영국인 여행가인 헨리 노먼은 조선을 여행하는 동안 놀랍고 아름다운 이 나라를 매우 칭찬하였으며, 베이징을 방문한 후에 조선의 수도인 서울은 베이징과 비교하면 천국이라고 쓰곤 했다.
(미국의 외교관이자 의사인 알렌의 『조선견문기』 )
주민들이 장작 등 땔감을 아궁이에 집어넣으며 불을 피우는 몸에 밴 능숙한 솜씨를 보면 감탄하게 된다. 추운 겨울철에 따뜻한 방에서 아늑하게 몸을 녹일 수 있는 이처럼 뛰어난 난방 기술을 지닌 민족은 동아시아 전역을 통틀어서 한국인밖에 없다. 중국인들은 실내의 벽 한 구석에 연통 난로를 두고 자면서 짚으로 불을 때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일본인들은 대체로 한국이나 중국 같은 난방법을 모르고 산다. 그저 방안에 작은 화로를 놓고 차가운 손을 덥히는 정도이며 난방까지는 되지 않는 매우 소극적인 난방법이다. 따라서 추운 겨울에 뜨끈하고 훈훈한 온돌방에서 보낼 수 있는 한국인들은 그들의 우수한 난방 기술에 긍지를 가지고 자랑할 만하다.
(독일 기자 지그프리드 겐테의 『한국견문록』, 1901)
한국의 가옥들은 한결같이 나즈막한 단층이며 2층으로 된 서민의 집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 가옥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은 동양에서 오로지 그들만이 고안해 낸 온돌이라는 난방장치를 사용한다는 점인데, 실제로 아주 훌륭하고 독창적인 것이다. 한국의 집은 땅을 파고 기초 공사를 하는 게 아니라 지면 위에 그냥 짓기 때문에 방바닥이 지면보다 약간 높아 온돌이라고 부르는 공간 사이에 나무나 짚 등을 때어 바닥을 덥히면 방안 전체가 훈훈해진다.
(이탈리아 총영사 까를르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 1904)
한국인들은 거의가 초가집에서 살고 있으며 기와집은 200호 중 한 집이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다. 이러한 한국인들이 서양보다도 먼저 난방 장치를 활용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방바닥 밑으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더운 연기가 지나면서 충분한 열기를 만들어 내는데 설치 방법도 간단하다. 이렇게 기막힌 난방법을 세계 속에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 (프랑스 여행가 듀크로끄)
아궁이 밑에서 때는 불의 열기와 연기가 구들장 사이를 지지면서 방바닥을 덥힌다. 이러한 난방은 겨울철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따뜻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연료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확실히 권할 만하다. 사용하는 땔감도 나뭇가지나 통나무 등 저렴한 것이며, 이마저도 없다면 잡초, 나뭇잎 등 어느 것이라도 땔감으로 활용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서민들은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 사람들보다 따뜻한 집에서 살고 있다.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그런데 온돌방은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 차이가 커서 불이라도 많이 땐 날이면 아랫목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100년 전 우리나라를 여행했던 서양인들은 '따뜻함'을 훨씬 뛰어넘은 이 '뜨거움' 때문에 밤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들의 기록에는 '사람을 굽는다'라든가 '사람을 지진다' 또는 '사람을 익힌다'는 표현도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방안의 '냄새'도 그들에게는 고통이었다.
문이나 창문만 열어 놓지 않으면 오랫동안 보온이 되어 상당히 편리했으나 겨울에 방 안에는 신선한 공기가 너무 결핍되어 있는 것 같았다. 코레아 사람들은 실외에서는 옷을 아주 따뜻하게 입었고, 밤에는 펄펄 끓는 방바닥 위에서 빵처럼 구워지는 게 아주 습관이 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불편한 잠자리였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자 일어나 문을 열어 젖혔으나 얼마 후 추워서 다시 닫을 수밖에 없었고, 오분 후에 똑같은 짓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아무리 신선한 공기가 많이 들어와도 방안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마늘과 오물 냄새는 방 안에 아주 배어 있었다. 이 냄새가 순간적으로 심해질 때가 있어 그럴 때에는 속이 뒤집히려 했다.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의 <코레아 코레아 > 중 )
방은 보통 가로 2.5미터, 세로 1.8미터 가량 되는 조그마한 것이다. 그 곳은 열기와 벌레들, 빨래할 더러운 옷가지들과 '메주'라고 하는 간장을 만들기 위해 발효시키는 콩, 그리고 다른 저장물들로 가득 차 있어 누워 잘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은 남겨두고 있다. 밤이면 뜰에 밝혀진 너덜너덜한 등롱과 방의 등잔불이 손으로 더듬거리며 활동할 수 있을 정도의 조명을 제공한다. 조랑말의 말린 똥까지 때는 여관의 방은 언제나 과도하게 따뜻하다. 섭씨 33도 정도가 평균 온도이며, 자주 35.5도로 올라간다. 나는 어느 끔찍한 밤을 방문 앞에 앉은 채로 새운 적이 있는데 그때 방안의 온도는 섭씨 39도였다. 지친 몸을 거의 지지다시피 덥혀주는 이 정도의 온도를 한국의 길손들은 아주 좋아한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1897 )
조선집은 나지막하고 방의 크기는 약 6척 높이에 넓이는 8척쯤이다. 이 나라에서는 나무를 아껴 써야 하는데도, 밖의 기온이 영하 15∼20도로 수은주가 내려가면 사람들은 방이 뜨끈뜨끈하게 불을 땐다. 온돌방 밑에 네 골을 만들고 그 위에 얇고 넓다란 돌을 덮어서 그 위에 다시 흙을 바르고 맨 위에 기름에 절인 종이를 바른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방바닥은 우리 서양 사람들이 빵을 구어 낼만큼 뜨겁지는 않아도, 방바닥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경험해보지 않은 여행자는 까딱하다가는 엉덩이 살을 지지기에 꼭 알맞다. 이 곳 사람들이야 수백 년간 습관이 들었기 때문에 이 뜨거운 방바닥에서도 한편으로 돌아누운 채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잘다.
(1902년 애쏜 써드의 『서울 견문록』중에서)
전통적인 온돌은 지금에 와서 스팀 보일러 등 새로운 난방 기술이 도입되고 연료가 개발되면서 점차 사라지고 변형됐다. 구들장을 깔고 위에 흙으로 덮었던 예전의 온돌에서 지금은 구들장 대신 보일러에 연결된 파이프를 깔고 그 위를 시멘트로 덮는 개량 온돌로 바뀌었다. 이 온돌은 중앙 보일러에서 데워진 온수에 의해 따듯해진다. 또한 연료도 나무에서 가스나 기름, 연탄, 태양열 등으로 대체됐다. 온돌은 이렇게 변형된 행태로 현재의 가옥 구조에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90년대 들어 독일, 일본 등에서는 최근 전기온돌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했고, 서양에서 그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서양에서 일고 있는 이스트 터닝(동양회귀) 현상으로 일터에서는 바쁘게 돌아가다가도 집에 들면 구두를 벗고 바닥에 보다 많은 육체를 접촉시켜 휴식하고자 하는 정적 지향이 늘어가고 있는 추세와 관련이 있다. 뒤늦게 우리나라의 관계 학자들도 온돌의 세계화를 내다보고 1996년 한국 구들학회를 발족시켰는데, 어떤 일들을 해 낼지 그 귀추를 주목할 일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억압기제는 모든 문명이 탄생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사실 수평적 자세는 수직 자세보다 더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서양에서 자라난 나는 의자, 소파, 벤치 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그 기능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었다. 의자 덕에 서 있는 것과 누워 있는 것 사이의 어중간한 행복을 누렸다. 아시아에 온 지도 어느덧 몇 년이 흘렀다. 이제는 의자가 소위 더 '높은' 문명의 인공적인 상징물로만 여겨진다. 높은 탁자와 침대 등 온갖 종류의 서양식 가구라는 게 사실은 서양 사회가 '더러운' 저 맨 땅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떨어져 높이높이 올라가려는 의지의 산물이 아닌가. 의자는 인간 신체를 직각의 지그재그 모양으로 거북하게 일으켜 세우고 있지 않은가. 이제 나에게 있어 의자란 인간에게서 생기를 앗아 신체를 얼게 만드는 딱한 시도로 보일 뿐이다. 서 있는 것도 아니요, 정말로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갈등이 생기고 애매하며, 한편으론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끊임없이 상승시키려는 부질없는 물리적 노력이란 점에서 형이상학적이기까지 하다. 이러다 보니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면 동정심이 든다. 특히 내가 따뜻한 온돌방에서 허리를 지지고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온돌 위에 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방은 커다랗고 훤하고 편안하다. 의자나 소파 같은 것은 쓸데없이 방만 번잡하게 할 것 같아 두지 않았다... 의자에 앉으면 보통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온돌 위에 앉으면 사람 사이에 더 친밀하고 격의 없는 분위기가 생긴다. 나는 점점 선방같이 단순하고 검소한 내 방에 만족을 느끼게 되었고, 지금은 이런 생활 방식이 너무도 편안하다. 그 덕에 자연스럽고 수평적인 삶의 방식을 누릴 수 있는 공간과 여유를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바닥에 앉는 생활 방식이 한국만의 독특함은 아니지만, 한국만이 그것을 친밀하고도 조화롭게 난방기술과 연계시켰다. 온돌은 진짜 기막히다.
그처럼 오랫동안 따뜻하게 지내려는 인류의 탐구활동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해답이 바로 온돌인 것이다.(스콧 버거슨, 『맥시멈 코리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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