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변절

10여만명이 굶주린 채 아시아를 떠돌고 있다

한부울 2006. 9. 4. 13:10
 

10여만명이 굶주린 채 아시아를 떠돌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2006년 09월 04일(월) 오전 11:28


북한을 탈출한 후 남한에 정착한 사람(새터민)은 1953년 휴전 직후부터 있어왔지만 과거엔 개인적인 사유가 많았고 극소수였다.

훈련용 비행기를 몰고 남하한 이웅평 대위(1983년),리철수 대위(1996년)가 대표적이다.

탈북이 국제적인 문제로 떠오른 것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로 부르는 1990년대 중반부터다.

1994년 김일성 국가주석의 사망 후 구심점을 잃은 북한은 소위 주체 농법의 실패, 미국과의 관계 악화에다 자연 재해까지 겹치면서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져 배급제를 중단하게 된다.

자유로운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북한에서 배급제 중단은 바로 대기근을 의미했다.

민간단체인 우리민족서로돕기불교운동본부는 1995년부터 3년간 북한에서 발생한아사자 수를 37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 때부터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는 보통 주민들의 '생존형 탈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서가 바다이고 남쪽은 휴전선으로 막힌 북한에서 중국과의 국경선인 압록강과두만강은 유일한 탈출구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초기엔 중국에 정착하거나 주중 한국대사관 혹은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한국행 비행기나 배를 타는 것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탈북자에대한 중국의 감시가 엄해져 중국에 숨어 살거나, 일단 중국을 빠져나와야 한다는것이다.


탈북자들이 그 다음으로 발견한 루트는 중국 남단 윈난성에서 베트남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길은 2004년 7월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집결한 468명의 탈북자를 두번에 나눠 한국으로 데려오면서 노출된 이후 거의 폐쇄된 상태다.

지금은 미얀마나 라오스를 한번 더 거친 후 태국에 모였다가 한국행 비행기를타는 경우가 흔하다.

멀고도 먼 길을 돌아 남한으로 오는 것이다.


중국에서 동남아까지는 돈을 받고 탈북자들을 이동시켜주는 '탈북 기획자'들이있고 일단 동남아에 오면 한인 교회, 비정부 단체, 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받을수도 있다.


북한에서 국경을 넘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탈북자들이 중국 대륙을 관통해 동남아를 여행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중국 내에서는 국제인권단체들이 고발하듯 인권문제, 특히 여성 탈북자들에 대한인신매매와 성적 유린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미얀마와 라오스에서 태국에 이르기까지는 튜브를 타고 메콩강을 떠내려가는 사투를 벌여야 한다.

더구나 불법체류자의 신분상 어떠한 제도적 보호도 받을 수 없다.

제3국들이 나서서 탈북자를 돕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경제적인 부담 때문이다.

북한과 정식 수교를 맺고 있는 중국 태국 베트남은 이들을 정치적 박해나 전쟁, 또는 그에 준하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 북한을 탈출한 '난민'으로 인정해주기를꺼린다.


또 탈북자들을 위해 한번 길을 터줬다간 북한 정권이 붕괴되면 대규모 난민을 떠안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깔려 있다.

난민이 아니면 불법 입국자, 즉 엄격한 의미에서 범법자다.

이 때문에 각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숫자가 적을 때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눈감아 주다가, 이동 규모가 커지고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 제지에 나선다.


탈북자 175명을 연행한 태국 이민국은 "제3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보호하기 위한조치"라고 설명했으나 탈북자들을 돕는 선교사들은 탈북자들의 '불법 입국'에대한 태국 정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태국 루트도 폐쇄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들은 태국이 국경 검문을 강화하기 전에 대체 루트를 찾아야 한다고 조바심을내지만 뾰족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탈북 주민들의 방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북한 정권은 미사일을 쏘는 것외에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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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적 망명...국제적으로 보호


◆ '난민'이란 무엇인가'난민(難民,refugee)'은 주로 인종·종교·사상·정치적 견해 차 등으로 본국에서 박해를 받고 외국으로 도피한 집단적 망명자로서, 본국의 보호를 원치 않는사람을 가리킨다.

통상 정치적 망명자와 흡사하지만 이에 비해선 정치적 신조가 훨씬 희박하다.

난민이 국제문제로 떠오른 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당시 유럽에선 발칸반도분쟁, 러시아 혁명, 터키 혁명과 독일 나치의 등장 등으로 대량 난민이 발생했고,2차 세계대전 중엔 난민 수가 4050만명에 달했다.


근래 들어선 1975년 베트남 패망 이후 이른바 '보트 피플'로 불리는 인도차이나난민과 1998년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로 야기된 코소보 난민에 이어 북한 탈북자가 대표적인 난민 사태로 꼽힌다.

2차대전 직후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본격화돼 UN은 1950년산하에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유엔난민기구,UNHCR)을 설치했다.


1954년엔 26개국이 서명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이 발효됐다.

이 협약은 난민을 통상적인 외국인과는 구별해 권리를 보호해주도록 했다.

체류 국가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난민인정증명서를 발급받아 그 나라에서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취업도 할 수 있다.

1967년에는 난민협약의 시간·지역적 난민 규정 제한(1951년 이전, 유럽으로 한정)을 없앤 난민의정서가 발효됐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가입했고,900여명의 난민 지위 신청자 중 50여명에게 이를 부여했다.



한편 유엔난민기구는 현재 세계 116개국에 사무소(서울사무소 www.unhcr.co.kr)를 두고 1900여만명의 난민을 지원하고 있다.

6월20일은 '세계 난민의 날'이다.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