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은 7천만 명을 죽였다”
WILLIAM UNDERHILL 기자
장룽(張戎·53·여)이 런던에 있는 자신의 우아한 화실에 앉아 고문에 대해 차분하게 얘기했다. 고문은 그가 잘 아는 주제다. 중국 문화혁명 때 그의 어머니는 깨진 유리조각들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야 했고, 원추형의 종이 모자(예전에 열등생이나 게으른 학생에게 벌로 씌우던)를 쓴 채 거리에서 끌려다녔다. 아버지는 박해를 못 이겨 정신병자가 됐다. 장룽 역시 많은 동포가 치욕을 겪고 구타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그런 경험이 중국의 한 세대 전체에 큰 정신적 상처를 줬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끔찍한 장면들을 목격했다. 그 장면들은 우리 마음에 새겨져 있다.”
고통스럽든 않든 장룽은 그 기억을 계속 되살리기로 결심했다. 남편인 영국인 역사학자 존 홀리데이와 공동 집필한 전기 ‘마오쩌둥의 숨겨진 얘기’(Mao: The Unknown Story), (조너선 케이프 출판사·814쪽)에서 장룽은 중국의 과거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수정하려 한다.
1990년대 초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그의 작품 ‘대륙의 딸들’(Wild Swans)은 자신의 집안 여성 3대의 삶을 통해 20세기 중국의 비극을 고발했다. 이제 그녀는 중국인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주된 원흉의 실체를 밝히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원흉은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이다. 그는 “나는 우리 가족과 국민 전체에 재앙을 안겨준 그를 목격했다. 하지만 그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아 여전히 악의 없는 존재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장룽의 전기는 선량한 ‘위대한 지도자’ 마오에 관한 신화를 참담할 정도로 속속들이 파헤친다. 책에서 묘사된 마오의 모습은 그 잔혹성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에 견줄 만하다. 한때 서양 좌파 인사들 사이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던 마오는 사실 양심·이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장룽의 계산에 따르면 마오는 평화 시에도 최소한 7000만 중국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역사상 어느 독재자보다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얘기다.
그의 평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책은 낯익은 자료와 함께 많은 독자적인 조사 자료를 제시한다. 중국의 공립 문서 보관소에 대한 접근은 거부됐지만 장룽은 마오 시대의
핵심적 생존자들을 인터뷰했다. ‘대륙의 딸들’의 성공 덕분에 인터뷰 허락을 받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과 이멜다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부인도 인터뷰 대상에 포함됐다.
마오의 끝없는 권력욕은 놀라울 정도다. 마오 신화의 가장 유명한 일화 중 일부는 순진한 서양인들에게 제공된 전체주의 체제의 선전 자료였음이 드러났다. 예컨대 1930년대 마오가 국민당 정부군의 관할 지역을 가로질러 9600㎞를 이동한 대장정 때 정부군은 사실 그들의 탈출을 적극적으로 허용했음을 장룽은 보여 주었다.
그의 사생활 역시 공식적 이미지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마오 정권은 국민에게 내핍을 강조했지만, 호색가인 마오 자신은 방음시설을 갖춘 거실에서 섹스 파티를 즐겼다.
경호원들은 새 신발을 먼저 신어 길들인 다음 마오에게 제공했다. 그가 즐겨먹는 생선은 1000㎞ 밖에서 운반돼 그의 저녁 식탁에 올랐다. 그의 생활 습관은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25년 동안 목욕을 하지 않았고, 늘 뱃속이 좋지 않다며 투덜댔다.더더욱 놀랍게도 마오는 국민의 고통에 무관심했다. 기근이 심할 때도 그는 곡물 수천t을 러시아 등 공산국가에 판매하고 무기를 사들였다. 기근에 대한 마오의 처방은 “농민들이 적게 먹도록 교육시켜라”였다. 농민들은 실제로 적게 먹었다. 4년간의 대약진운동 기간에 3800만 명이 기아와 과로로 사망했다.
마오의 권력 유지 비결은 공포정치와 집단 세뇌로 설명된다. 장룽 자신이 공포와 세뇌 효과의 강력한 증인이다. 한때 마오이즘의 신봉자였던 그녀는 어린 시절 배운 노래 가사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가깝고 어머니도 가깝지만, 마오 주석만큼 가깝지는 않아”라는 내용이다. 그녀의 사춘기는 환멸과 문화혁명의 시기였다. 부모를 고문한 사람들이 집에 들이닥쳤을 때 그녀는 자작시가 적힌 종이를 변기 속에 던져 넣었다. 시는 자유사상을 고취시켜 위험하다고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게 낙원이라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라고 자문했다”고 회상했다.
장룽의 시련에는 농민·철강 노동자·전기기사로 일하던 시절이 포함된다. 그 후 그는 영국으로 탈출해 언어학을 공부했다. 현재 그는 상류층 동네인 노팅힐에서 치장 벽토를 바른 집에서 집에서 산다. 그의 단정한 외모와 완벽한 영어는 부르주아적 안락감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진실을 밝히는 사명에 몰두해 있다. 그 책이 중국에서 출간될 가능성이 희박해도 모든 여가 시간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데 이용한다. 중국에서 『대륙의 딸들』은 아직도 판매금지다.
그의 말대로 중국만큼 그의 책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없다. 그는 마오의 대형 초상화가 베이징 자금성 입구에 걸려 있음을 언급하며 “히틀러 초상화가 아직도 베를린 중심부에 걸려 있다거나 독일 지도자들이 히틀러의 후계자로 자처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과거에 대한 직시만이 미래를 보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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