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부

中, 발해사 포함 고대사 송두리째 왜곡

한부울 2006. 9. 5. 08:14
 

中, 발해사 포함 고대사 송두리째 왜곡

[연합뉴스] 2006년 09월 05일(화) 오전 01:02


사회과학원, 관련 논문 18편 무더기 발간(베이징=연합뉴스) 박기성 특파원 =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로 우리와 갈등을 빚었던 중국이 이번에는 발해사를 중심으로 한 고대사를 송두리째 왜곡한 내용의 논문을 무더기로 내놓았다.


이번 논문에서는 특히 기자조선을 내세워 한반도의 역사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술하는 등 우리 역사의 뿌리를 흔드는 내용을 담고 있어 역사를 둘러싼 양국간 외교 갈등 재연이 우려된다.


2002년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해 온 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邊疆史地) 연구센터는 최근 웹사이트에 발해국사 등 동북지방의 역사를 정리한 과제논문 27편 중 18권의 내용을 정리한 요악본을 올려 놓았다.


논문 발표 시점이 2005년 9월 21일로 표기돼 있는 점으로 미루어 공개를 보류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해사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에 영향을 받아 한꺼번에 웹사이트에 게재한 것으로 보인다.


논문 중 3편은 각각 발해국사, 발해사론(論), 발해이민의 통치 및 귀속연구로 최근 드라마를 통해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발해에 관한 것들이다.


발해국사편에서는 남북한이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민족적 감성에 사로잡혀 학술연구의 정상궤도에서 벗어났다고 폄하했다.


이어 남북한에 의한 대량의 발표가 중국쪽으로 형성돼 있는 국제여론의 압도적인 우세를 상당 부분 눈가림하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중국의 고대사 연구가 발해에 집중된 배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발해국사는 발해 건국의 주도세력이 고구려인이 아니라 말갈족이며 대조영(大祚榮) 정권이 발해 초기 말갈을 정식국호로 채택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 발해국이 완전한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가 아니라 당나라의 통치범위 안에 든 지방민족정권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발해사론에서는 발해의 분묘형태와 장례의식, 기물(器物)과 도기(陶器), 관혼상제 풍습 등을 고구려의 것과 비교함으로써 둘 상이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발해이민의 통치와 귀속연구에서는 발해가 건국 이래 당나라의 속국으로 당 왕조의 책봉을 받는 중국 역사에서 뗄 수 없는 부분이라고 밝히고 발해 멸망 후 그 이민들이 요(遼)와 금(金)으로 옮겨가 중화민족으로 융화됐다고 밝혔다.


다른 논문들도 고구려가 고대 중국의 지방민족정권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특히 고조선과 부여까지 중국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우리 학계에서는 그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자(箕子)에 대해 '기자와 기자조선 연구'에서는 은(殷)대 갑골문자와 전진(前秦)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서 한반도에 최초의 지방정권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이어 그가 세운 기자조선은 주나라와 진나라의 복속돼 있었고 후에 위만(衛滿)의 정변으로 멸망했다고 밝히고 기자조선이 이후 위만조선과 한4군,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시작점 역할을 했다고 기술했다.


이제는 고구려뿐 아니라 고조선부터 발해, 부여에 이르기까지 고대사를 포괄적으로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이 이번에 책으로 출간된 18권의 논문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