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4. 역사지우기와 한반도근대사 연결

한부울 2015. 4. 2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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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지우기와 한반도근대사 연결

 

글쓴이:한부울[韓夫蔚]

 

[대한제국 6]

1) 머리말
2) 순종과 다이쇼왕은 동일인물
3) 실증주의와 끼워넣기한 유럽사
4) 코리안학살
5) 한국인은 문맹이 많고 가난했던가.
6) 한반도는 본래 역사터전인가?
7) 대한제국(COREA)을 증오한 미국(美國)

8) 태프트-가쓰라 밀약은 없었다.

9) 미국국명과 코리아(대한제국)

10) 미서전쟁(美西戰爭)허구와 대한제국

11) 대한제국과 일본(Japan)이란 실체

 

11) 대한제국과 일본(Japan)이란 실체

 

[1]동방:기독교는 태양신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2]황금향 지팡구로 본 쿠바와 시칠리아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
[3]제정의 일본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을 찾아라.-홍국영(洪國榮)과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
[4]열도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치루지 않았다.
[5]정리-1차세계대전 장소는 북아메리카대륙이다

 

[1]동방

주요내용:기독교는 태양신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

 

우리가 진정코 알아야 할 참 역사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의 짐작을 넘어 때에 따라 투명한 살점을 보듯이 뼈속깊이 훤하게 보이는 글쓴이의 눈에는 그토록 의문시 하던 일제(日帝)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사실을 먼저 알리고 싶다.

일본이 일제가 되었다는 것은 마치 어린애 상식처럼 묶었지만 기실 이런 단순함은 함정이다.

일본을 임진왜란에 등장시켜 폭악한 왜구로 인식하게 한 것도 잔악한 일제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삼한역사와 그토록 억지로라도 엮이려고 하고 찐득이처럼 기생하려는 일본에게 느끼는 것은 참으로 거추장 스러운 것이지만 그래도 상념을 통한 숙명적인 연민과 비애가 있다고 하고 싶다.

이것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일까?

관념적으로 우리역사가 실제로 약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우리역사 주체들은 늘 상 그들에게 통큰 아량과 선정을 하늘의 이치아래에서 배풀었음에도 그들은 근본적으로 그들 역사문화에서 열등의식과 자학적인 강박이 있었고 그것에서 스스로 증오를 만들었으며 역사자연순환적인 것을 일방적으로 원한으로 만들고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고한 것이며 실로 안타까운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던 그런 역사자연순환적인 문제들이 그들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것은 한편으론 측은함이 있을 것이고 우리 힘이 너무 강해 그들에게 상처를 주게 한 것이니 만큼 우리가 역사전반에서 통큰 자조에 따른 성찰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실소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렇게라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런 자위를 해보려는 우리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피해의식이 있다는 것일게다.

 

일본이란 역사명은 한마디로 진실의 역사를 먹어치우는 블랙홀(black hole)같은 혼돈(混沌)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일본은 열도일본, 서세합칭의 일본, 서세우두머리일본, 근세기에 해적깡패자본조직체의 일본, 2차세계대전말미에 유대자본이 근사하게 만든 일본, 그리고 구팽한 일본을 경멸, 멸시하는 일본이 있을 것이다.

동양 열도는 '해뜨는 나라'의 지형도 아니고 '해돋는 나라'의 지형도 아니다.

"해뜨는 나라" 이거나 "해돋는 나라"라 할 수 있는 것은 지형적인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것의 시발은 새벽별 여명이 뜨는 오스(Aus:to shine, see aurora) 즉 동방(東方,東邦)이라는 곳을 찾아 나선 선각자들이 지칭한 것에서 찾아야 하는데 바로 북아메리카대륙 동부 13개식민지(Thirteen Colonies)가 자리한 곳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곳은 태고적부터 전통적으로 동방이라 불리었고 삼한역사에서 아사달(阿斯達)이라 하였으며 "아침의 땅"이라 하였고 이것을 조양(朝陽) 또는 조광(朝光)이라 하였으며 동방국가를 동국(東國), 대동(大東), 해동(海東)이라 하여 조일광선(朝日光鮮)이란 의미의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만들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겠으며 우리는 이를 밝히기 위해 그동안 지리학적, 생물학적으로 갖은 노력을 경주했던 것도 사실이고 또한 지금까지 결과 또한 역시 그러했다는 것을 말할 수가 있다.

1620년 서세라고 할 수 있는 청교도(淸敎徒:Puritan)들이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북아메리카대륙 메사츄세츠(Massachusetts)의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한 곳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없으며 그들도 그곳이 해뜨는 땅, 동방이었기때문이며 한편으론 그들의 역사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1602년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가 그렸다고 하는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는 태평양을 소동양(小西洋)이라고 하였고 지금의 대서양을 대동양(大東洋)이라 한 것으로 그들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도착하기 전 이미 지정학적으로 통일시켰던 방향이고 지형이다.

그리고 이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동홍해(東紅海)와 서홍해(西紅海)를 나눔에 있어서도 동홍해가 있는 북아메리카대륙을 동편으로 보았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어 북아메리카대륙의 동부가 동방이 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것을 대동(大東)이라 하였고 최초인류역사 (大東), 신시아사달(神市阿斯達) 동이(東夷)문화가 창출된 곳임을 서세라고 몰랐을리가 없다.

동방박사가 3인이 도착한 곳은 어디 방향이라 해야 할까?

기독교가 말하는 신은 곧 태양신을 말하는 것이라 하였다.

 

[Orpheus crucified :자료찾음 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Plaster cast of an amulet; "Orpheus becomes a Bacchoi", 300 A.D.
Seven stars and a crescent moon hang overhead
Housed in the museum of Berlin but lost during World War II

Christianity is based on the sun-god myth. In fact the whole religion was fabricated after the departure of Jesus. None of these saviors are historical, but only personifications of the sun.

 

위 그림은 오페리우스의 석고 또는 오페리우스의 십자가 등으로 불리는 기원 300년의 석고로서 베들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가 2차세계대전으로 잃어버렸다는 유물 사진이다.

그림 아래 이어지는 설명에서도 알 수 있지만 기독교는 태양신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다고 한 것이다.

태양신을 찾는 것은 동방을 찾는 것이다.

황금(gold), 유향(乳香:frankincense), 몰약(沒藥:myrrh)을 들고 동방박사(東方博士)가 도착한 곳은 동방이어야 한다.
동방박사라고 하니 동방에서 온 박사라고 하는데 동방을 찾았기때문에 동방박사라한 것이다.
그럼에도 베들레헴은 현재 이스라엘 예루살렘 남쪽의 10km에 있는 마을로 지정된다.
그곳은 바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그린 지도에서 서홍해(西紅海)가 있는 땅이니 해가뜨는 곳이 아니라 해가 지는 곳이 아닌가.

예수가 태양의 빛으로 태어난 성인이라면 당연히 동방이 탄생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 같은데 태양이 지는 곳을 동방(東方,東邦)이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근세기에 역사판짜기하면서 서세들은 이러한 행적을 감추려고 동방을 근동이라 하여 어중간하게 만들고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동방이 아닌 신대륙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으며 그것이 원활하지 않자 마침내 인류가 결코 맞이해서는 안될 두 번의 큰 전쟁을 도발하면서까지 동방을 감추고 사라지게 했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왜 동방이 근동(近東)이어야 하고 동아시아대륙이 되어야 하는가?

바로 일본이란 지명 때문이다.

 

[2]황금향 지팡구로 본 쿠바와 시칠리아는 같은 위치에 있었다.

 

송고려, 원고려시대에는 세계 제1의 무역항 자이톤(Zaiton)-플로리다 마이에미(Miami)
루이지에나주(Louisiana)- 점성(占城:Champa)
경사(京師) 항주(杭州) 킨사이(Quinsay)-버지니아의 페테스부르크(Petersburg)
북평(北平)이라고도 하는 대도(大都:Great Capital) 캄발루크(Cambaluc)-워싱톤(Washington, D.C)

 

돌이켜 보면 본래 일본(日本)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는 포르투갈이었으며 네덜란드로 넘어가다가 잉글랜드에 귀속되었으며 이들이 자본으로 결집하자 유대인계 독일인이 조직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그것에서 유대자본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일루미나티가 탄생하여 거대한 금융조직체가 만들었으며 그것의 힘으로 오늘날 서세의 파워 미국을 탄생시킨 것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들의 막판 결집력은 자본주의로 나타났다는 것은 충분하게 이해되는 사실이다.

1.2차세계대전이 발발되기전까지 중앙아메리카대륙과 카리브해, 그리고 남아메리카대륙 브라질을 포함한 동북부를 중심으로 근거하면서 유대자본에 의해 세력을 키워나갔고 결국 1881년 하나의 체제였던 대조선을 감쪽같이 해체할 수 있었을 정도로 막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오늘날까지 그들의 파워부리기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

그것은 전세계국가들이 산업경쟁과 자본경쟁에 따른 물질풍요가 주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는 것이며 이를 따라 하나같이 자본주의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고 결국 유대금융자본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서세들이 세계금융자본을 완전하게 장악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된 2차세계대전발생전까지 북아메리카대륙 마저도 완전하게 서세가 지배한 것이 아님도 알 수가 있다.

그것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여기는 동양땅이라고 불러야 하는 북아메리카대륙 미시시피강 서부와 중앙아메리카대륙 및 남아메리카대륙 서부에는 만국조천(萬國朝天)이라고 하던 대고려(Great Corea)가 스페인부왕령전체를 차지하고 있었기때문이며 서양땅인 아시아유럽대륙전체를 사서명 악라사라고 하고 서세명 그리트 타타르라는 주체가 장악하고 있었기때문이다.

이것을 자본력으로 돌파한 사건이 바로 1.2차세계대전이라 할 수밖에 없다.

 

본래 한자로 일본(日本)을 가르키는 복건어(福建語:Hokkien) 지판국(Jih-pen-kuo)이라는 실체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밝히는 것은 글이 길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무역상의 아들이었으며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Marco Polo:1254-1324)가 쓴 세계 불가사의서(世界不可思議書)가 정식명칭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동방견문록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것에 의해 황금향인 지팡구(Cipangu. Zipangu)란 지명이 비로소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자료에 하나같이 꿰 맞춘 것 같이 등장하는 똑같은 일치된 내용이다.

황금향이라 하였으니 황금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이곳을 찾아 물욕에 어두운 많은 사람들이 벌떼깥이 모여들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이 책 한 권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는 말이다.

일본이란 이름은 이렇게 서세들에 의해 물질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으로 또는 부자가 될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상징적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자본주의 본산을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황금을 서세 일본은 그림의 떡이었을 것이고 역사지속적으로 일본을 정치적으로 지배하였던 세계삼한이 "하나의 체제"에서 근원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황금을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법"으로 하여금 원천적으로 생성되는 소유욕을 막았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제도권 밖에 있는 서세집단, 해적이나 범죄집단들에게 이런 구체적인 소문전달은 불에 기름붓듯한 것으로 일시에 굳건하던 체제자체를 흔들 수 있는 기반으로서 충분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온갖 쓰레기같은 자들이 넘쳐나도록 몰렸을 것이 틀림 없다.

966년에 펴낸 아랍의 지리학자 알 마크디시(Muḥammad Ibn Aḥmad al-Maqdisῑ)의 "창세와 역사서"에 황금이 지천으로 널려 있던 곳을 신라땅이라고 한 사실 또한 마르코 폴로보다 이른 시기이며  신라와 지팡구가 중첩이 된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페르시아, 사산왕조가 아랍이라면 신라이고 신라는 아랍을 정복한 세력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고 당연하게 들리는 것도 있다.

생각해보라.

고려가 병합한 신라가 스페인부왕령과 관계하고 그곳에 황금향인 캘리포니아(California)와 콜럼비아(Columbia) 두 지역에 역사적으로 근거하는 것은 신라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근세기에 이 두 지역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황금(黄金)광산지역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검증이 되었다는 것이며 이곳을 마르코폴로나 마크디시가 황금향, 엘도라도라도 하였을 확률이 높고 이를 아랍인들이 신라땅이라고 주장한 사실들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물론 지팡구란 지명이 지협적인 것이라면 신라가 지배하던 땅임도 알 수가 있다.

캘리포니아는 이미 골드러시(gold rush)로 여러면에서 확인 된 곳이지만 콜럼비아에 대한 사서기록은 조선후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나타나는 것에서 알 수 있는데 본 블로그에서 이를 해석하길 故生金较多。黄金本日精。白金本月华。故近赤道之地。多金銀也 '생금이 비교적 많이 나며 황금은 태양처럼 깨끗하고 백금은 달처럼 빛난다. 그곳은 적도 가까운 곳으로서 금과 은이 많이 나는 땅'이라 하였고 《地毬圖》呂宋國多黃金 '여송국은 황금이 많다' 하였으며 《職方外紀》北亞墨利加州內。金加西蠟地。金銀至賤。'북아메리카주내 금가서랍(金加西蠟:Castilia Del oro)은 황국왕국이며 금은이 지천으로 깔렸다'한 것을 참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금가서랍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그린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서 남아메리카대륙 북부 콜럼비아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미 본 블로그 글 "금(金)으로 본 시팡구(Cipangu)와 여송국은 콜롬비아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50421"에서 명확히 확인했던 사실이다.

 

어쩌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란 것은 동방(東方,東邦)을 바꾸려는 서세의 음흉한 계획에 의한 음모의 터널로서 시발점 즉 입구같은 것이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다고 하는 콜롬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역시 이책에 현혹되었다 하여 연결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때문에 그가 반드시 황금향을 향해 동인도제도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필연적인 것으로 서양사학자들이 설명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다분히 신대륙발견이 종교적관념보다 물욕적인 재물탐욕에 의한 인간한계심리가 먼저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쩌면 기독교가 물욕의 상징처럼 의도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세계삼한역사를 탐구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마르코폴로에 이어 콜롬버스마저도 서세가 기획한 역사판짜기에 그저 동원된 인물이라 할 수밖에 없고 가치를 논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인물들이다.

 

마르코폴로가 기록한 황금향이라는 지팡구가 기실 동아시아대륙에는 없었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 캘리포니아와 컬럼비아 처럼 풍부한 황금광산이 없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그들이 숨기려고만 하는 아메리카대륙에는 황금향(黃金鄕), 엘도라도(El Dorado)라고 할 만한 곳은 참으로 지천에 늘려있다는 사실이다.

다들 알다시피 골드러시라고 하면 근세기 1848년 이후에 등장한 용어인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캘리포니아 콜로마(Coloma)에서 가까운 서터스 밀(Sutter"s Mill)이란 지역에서 1848년부터 골드러시(Gold rush)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같지만 아랍인들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966년부터 전해진 소문, 풍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13, 14세기의 마르코폴로, 콜럼버스뿐만아니라 이와 비슷한 물욕에 어두운 자들이 목숨까지 담보하면서까지 그 이전부터 무작정 캘리포니아와 컬럼비아를 향해 무리지어 상륙했던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때문에 그곳은 인구밀집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는 서부가 개척되기 전이니 서세가 함부로 당도할 수 없었던 곳으로 상당기간 보호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엉뚱하게 황금향이 전혀 없는 동아시아대륙을 마르코폴로가 지정했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근세기에 거대한 자본을 손에 쥔 서세들은 결국 기독교 기원지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미 새벽녘부터 시작된 동방역사가 태고적부터 자리잡은 곳을 기존 역사문화가 없는 개척이 필요한 미개한 땅으로 만들고 그곳에는 원시인같은 아메리카인디언들이 물소를 양식으로 생존하던 신대륙이라 하여 그곳을 기독교기원지로 만들어야 했기때문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동방이어야 하는 땅 아메리카대륙을 숨기는 대신 동아시아대륙을 동방이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마르코폴로 같은 거짓말장이가 필요하였으며 콜럼버스같은 어설픈 탐욕장이가 필요했던 것이다.

마르코폴로가 간 곳을 동방이라 굳이 고집하는 것은 지금의 열도를 의식한 것이다.

그곳을"해돋는 땅"인 것처럼 날조하였고 몽고원정이 애초부터 동아시아대륙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현 열도일본을 맞추기 위해 모든 역사를 말도 안되게 엉터리로 맞추었다는 것 이외 다르게 볼 것이 없다.

서북부태평양 정면을 막고 있는 일본열도에 애초부터 피침역사가 없었다는 설정 또한 얼마나 해괴한 말 장난인가 알 수 있는 것은 포르투갈인들이 일본에 상륙하고 예수회만 전파했다고 한다.

다른 곳은 그들이 도착하면 살상하거나 땅을 빼앗고 그곳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인데 유독 일본 나카시키는 예수회신성지같이 보호한다?

그 이전 이미 일본열도는 대고려 그리이트 타타르 땅이라는 것을 여러지도에서도 확인 할 수가 있다.

때문에 지금 일본해가 "SEA OF COREA" 란 사실이 곳곳에 나타난다.

그것이 사실정황이다.

일본열도가 자리 잡은 것은 미국이 2차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역사 려몽일본원정 즉 1차 원군침일전쟁(元軍侵日戰爭)을 잠시한번 보자.

기존역사는 한반도와 열도사이에 대한해협을 지나 쓰시마에서 멀지 않는 후쿠오카 하카타(博多港)만에 갑자기 발생한 소용돌이 태풍을 신풍(神風)이라 하면서 신비하게 만들었던 역사이다.

이상하게 고려군은 보호되고 려몽원정군 중 특히 원군만이 전부 바다에 익사했다고 하여 이것을 가미가제(Kamikaze, 神風)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그들만의 역사소설같은 이야기일뿐이다.

실제로 이와같다면 지금 열도가 아니라 카리브해 근방에서 해마다 6월에서 12월까지 불어오는 하리케인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1차원정을 상황을 [엔하위키]에서 다음같이 설명한다.

1274년 음력 10월 20일과 21일 사이 새벽, 하카타 만에 대폭풍이 몰아쳤고 이는 연합군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함선 900척의 전함중 200척이 하룻밤 사이 침몰했기 때문에 연합국측에서는 철수밖에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은 다음기회에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만 특히 음력10월20.21일은 양력으로 11월 26.27일이므로 11월 하리케인이 어디에서 주로 발생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놀랍게도 쿠바 한폭판을 가르고 있다.

 

 

 

 

려몽일본원정때 일본은 쿠바에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열도학자나, 친일역사학자들이 나서 열도를 일본 본거지라고 침을 팅기겠지만 이 자료 한방에 그러한 주장을 일쇄시킬 수 있는 근거로서 충분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확인 한 것이다.

이렇게 1차원정이 성과 없이 끝나자 다시 고려는 2차 공격하게 되는데 특이한 것은 려몽2차일본원정에서 함선 3500척에 강남군(江南軍)10만명이 참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도대체 강남군이 무엇인가?

현 동아시아대륙 양자강 이남을 강남이라 하는가?

이미 쿠바라고 한 마당에 그것이 통할이야기가 아니다.

이 강남에 대해 본 블로그에서 [1]"강낭콩(菜豆)으로 본 강남(江南) http://blog.daum.net/han0114/17050629", [2]"망강남(望江南:Senna occidentalis)으로 본 강남(江南) http://blog.daum.net/han0114/17050640 ", [3]"강남(江南)을 섬멸하면 조선(朝鮮)은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이다. http://blog.daum.net/han0114/17050634 "에서 이미 중앙아메리카의 후금(後金, 喉衿) 즉 목구멍 내로우넥(Narrow Neck)이라고 하였으니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명명백백한 사실임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가 있다.

 

 

 

이태리 지리학자인 파오로 토스카넬리(Paolo Toscanelli)가 그린 위 지도가 비록 1474년에 재해석된 것이라 할지라도 아메리카대륙을 통째로 빼먹은 것 같지만 중앙 바다를 대서양으로 본다면 거의 정확하게 그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세학자들은 이 바다를 무조건 태평양으로 보려고 한 것이겠지만 바로 대서양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와같은 글쓴이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아메리카대륙에 인도(India)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이다.

또한 남부에는 망기(蠻子:蠻夷Mangi)가 있었으며 카스피해 이동쪽 아무다리야, 시르다리야강 두강을 포함하는 옥서스(Oxus)를 서쪽으로 두고 카불, 사마르칸트 도시를 두고 있는 차가타이 칸국(Chagatai Khanate)또는 중국이라고 하던 카타이(Cathay)가 그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송고려, 원고려시대에 세계 제1의 무역항이라는 자이톤(Zaiton)이 플로리다 마이에미(Miami)일 가능성이 있으며 그리고 루이지에나주(Louisiana)가 점성(占城:Champa)일 수 있고 마르코폴로가 방문했다고 하는 경사(京師) 또한 항주(杭州)로서 킨사이(Quinsay)라 하였다면 버지니아의 페테스부르크(Petersburg)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러시아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일 수 있으며 또한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을 접견했다고 하는 북평(北平)이라고도 하는 대도(大都:Great Capital) 캄발루크(Cambaluc)가 워싱톤(Washington, D.C)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모두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이런 글쓴이의 주장에서 무한의 신뢰를 가져도 무방할 것이다.

 

 

                                         [파오로 토스카넬리(Paolo Toscanelli)석고]

 

이렇게 종합할 때 열도일본을 지판국(日本國)이라고 하는 사실자체가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를 명확하게 알 수가 있는 이야기다.

어쨌던 마르코폴로로 부터 시작된 기획에서 출발한 것에서부터 이런 불손한 의도를 가지고 지팡구가 서세에 의해 어정쩡하게 지칭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각적으로 효과를 얻으려 한 것이 바로 유대자본에 의한 수많은 지도로 일본만들기가 시작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근세기에 일본을 동아시아대륙에 넣고 그린 지도들은 모두 이런 의도로 만든 것이라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이에 덧붙인 것이 해적들이 쓴 항해일지이며 그들이 마구잡이로 그린 삽화는 물론이고 온갖 각종의 쓰레기같은 질 낮은 책들을 이런 것을 자료라 하여 인쇄기에 넣고 마구 찍어 냈던 것이 오늘날 무슨무슨 기행물이라는 것이며 이것들에 의해 현재 동아시아대륙사 또는 지명으로 굳혀지게 된 것이다.

때문에 현재 열도 일본은 서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인 비평가들 조차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그가 진실로 체험한 것을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행자들의 말을 듣고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고 하고 있으니 조작, 날조가 의심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러한 조작, 날조가 되었다는 증거들은 본 블로그가 미약하나마 지리, 생물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밝혔고 앞으로도 밝혀야 할 것들이 틀림없다.

우리 한반도인에게 또 하나의 문제작인 네덜란드해적출신의 하멜(Hendrik Hamel:1630-1692)의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 일명 "하멜표류기"역시 이와 똑같이 역사판짜기에 동원된 것으로서 이양선을 타고 코리아 땅에 온 선원(해적)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이런 이유때문에 그가 책을 써 세상에 내놓으면서부터 이미 서세의 역사판짜기에 이용물로 전락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이와같은 서세의 치밀한 기획에 의한 기행물들은 우리주위에 넘쳐날 정도로 현재까지 쌓여있다.

이런 것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인 흐름의 역사가 아닌 갑자기 얼토당토하지 않는 작위적인 역사가 한반도에 심어지게 되면서 한반도 삼한역사가 굳히기가 비정상적으로 고착화되었고 그와 동시에 동아시아대륙사만들기 역시 미국유학파 정치인들의 음모와 함께 진행되었다는 것을 충분하게 알 수가 있는 이야기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동아시아대륙에 이승만박사 같은 미국유학파 정치인들이 제세상 만나것처럼 밀려든 결과는 서세가 지향하는 역사만들기에 일조한 것이 틀림 없다.

이미 다른 주제에서 밝힌 사실이지만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보면 마르코폴로가 실제로 견문을 했다면 북아메라카대륙 서부의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Baja California peninsula)의 부근일 가능성이 높게 나타난다.

착각이니 뭐니 하여 아래같은 지도를 그려놓은 것도 역시 우리의 눈을 흐리려고 한 것이겠지만 따지고 보면 이 역시 지팡구의 모체라 할 수 있는 종족의 근원을 밝히는데 한 몫을 한다..

 

 

 

실제로 마르코폴로 역시 황금향을 찾아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지도는 이태리 지리학자인 파오로 토스카넬리(Paolo Toscanelli)가 그린 것으로 스코틀랜드 지도제작자 존 바솔로뮤(John Bartholomew:1831-1893)가 제작한 아틀랜틱오션[Atlantic Ocean, Toscanelli, 1474]인데 수정된 것이라 한다.

위 지도에서도 알 수 있지만 아메리카대륙은 통째로 빠진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 지도에서 콜럼버스의 계산착오, 착각, 또는 오차를 말하고 있지만 마르코폴로가 말한 지팡구를 정확하게 표시하고 있는 곳은 쿠바와 달리 북아메리카대륙 서부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Baja California peninsula)와 멕시코를 가르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청일전쟁은 고려(高麗)와 서세(西勢日本)의 충돌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7 "에서 언급하였듯이 프랑스 지도제작자 니콜라 상송(Nicolas Sanson:1600–1667)이 1656년 그렸다는 지도에 나타나듯이 물론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는 육지에 붙어 있는 반도가 아니라 떨어져 있는 섬으로 그렸다는 것을 말한바가 있기때문에 지팡구처럼 섬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이곳역시 본 블로그 글 "조선금대화(朝鮮錦帶花)와 발트(Baltic) http://blog.daum.net/han0114/17050718 "와 "청일전쟁은 고려(高麗)와 서세(西勢日本)의 충돌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7"이란 글에서 밝힌 것에서 최초 에스파냐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나타나는 일국(日國)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일국(日國)은 태양의 나라이라고 할 수 있지만 태양이 뜨는 곳의 의미가 아니라 "태양을 섬기는 나라" 즉 태양신(太陽神)을 받드는 나라를 일컫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비교해볼 수 있는 아스카시대(飛鳥時代)의 쇼토쿠태자(Shotoku)의 한문이름이 성덕(聖德)이라 함도 스페인에서 사용하는 성(聖)을 산(san)으로 읽고 덕(德)을 토(to)로 읽는 것과 같이 예수회에서 말하는 세인트 성인(聖人:saint)이라는 명칭임에서 알 수가 있어 이곳을 근원으로 하던 에스파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곳 가까이에 캘리포니아에는 1848년부터 몰려든 골드러시의 땅 금(gold)광산이 지천에 널려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에 복건어 지팡구(Zipangu)라 하는 에스파니아(Hispania)땅일 가능성을 높여놓고 있으며 에스파냐란 어원에서도'태양이 떠 오르는 곳'이 아니라 '태양이 지는 곳(land of the setting sun)' 그리고 대륙 서쪽 끝(western land)가장자리에 있는 토끼의 땅(land of rabbits), 토끼의 섬(Island of rabbits)이라 했다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즉 초기의 에스파냐는 일본이었다고 할 수밖에 업다.

또한 마르코 폴로의 고향이라고 하는 베네치아(Ενετοί)의 어원이 라틴어 베네투스(venetus) 즉 푸른바다(Blue-sea)라는 뜻임을 알 수가 있어 실제로 깊고 푸른 바다(Deep Blue Sea)를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곳 정확한 위치의 지명을 지중해(地中海:Mediterranean Sea)에만 찾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기때문에 베니스가 있어야 할 바다는 아틀랜틱오션, 대서양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인식되며 지형학적으로도 대서양이 지중해보다 실제로 더 깊고 푸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베니스가 동로마제국에서 무역항구로서 콘스탄티노플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동로마라고 할 수 있는 신라땅인 대륙동부에 있어야 할 도시이어야 한다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물의 도시(City of Water)라 한 것인데 이것 역시 현재 베니스(Venice)만의 호칭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의 도시(City of water or Metropolitan Waterfront)는 오히려 더 큰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이라고 하는 거대한 도시를 말하는 것으로 현재도 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있는 뉴욕(New York)을 지칭하고 있음을 볼 때 이러한 관점도 참고해야 할 이야기가 분명하다.

 

일본열도를 이야기하는 마당에서 너무 비약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서세의 특히 일본만들기에서 이처럼 제멋대로 꾸미는 형태를 볼 때 베니스가 있었던 이태리라는 국명역시 조작, 날조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탈리아란 명칭이 생성된 곳도 알고보면 북아메리카대륙의 뉴욕을 점거한 조직인 마피아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란 추측 또한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마피아의 조직체를 보면 서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해적본거지 소굴에서 절대권력자가 있었다는 형태의 조직 종속관계, 그리고 자본력에 의한 조직체와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피아(Mafia)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사용된 것은 1875년 이후라고 하고 있지만 1282년에 '시칠리아 만종사건(Vespiri siciliani)에서 반란인들을 지칭한 이름'이라 하였고 '본래 지주들이 만든 소규모 사병 조직인 마피에(Mafie)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사병인 조직체 즉 현대말로 부르조아용병집단체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를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다시보면 프랑스가 조선역사의 일부라 할 때 미국 세인트루이스지명의 유래가 된 성왕(聖王:saint Louis) 루이9세(Louis IX,1214-1270,재위:1226-1270)의 동생 왕 카를로 1세Charles I:1227-1285)에게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으로서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원고려의 두 차례(1274년.1281년)의 일본원정과 일치하고 있다.

이 사건과 연결하고 보면 쿠바는 당시 시칠리아(Sicilia)라 하였고 그것을 동양사에서는 일본이라 했다는 것은 또한 숨길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도록 확인한 즉 쿠바를 시칠리아라했을 가능성은 넘치고도 넘친다.

이것은 엄청난 이야기다.

미국에 있는 시칠리아 사람 정착지를 보면 쿠바와 멀리 떨어지는 않는 루이지애나(Louisiana)와 텍사스(Texas)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미국동부 뉴욕, 뉴저지, 매사추세츠, 서부의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그리고 남쪽의 몇몇 부분을 포함하는 나라의 주요한 공업중심지들을 포함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은 유럽에서 이민형식을 빌어 대서양을 건넌 것처럼 하지안 기실 다른 주로 옮겼다는 소리이다.

이태리 지리학자인 파오로 토스카넬리(Paolo Toscanelli)의 석고모습을 보면 머리에 터번을 둘러쓴 것이 서양쪽의 관습과 매우 다른 것이다.

오히려 청일전쟁때 고려군의 모습과 흡사하다.

또한 프랑스를 위해 활동한 이탈리아의 항해가 조반니 다 베라치노(Giovanni da Verrazzano:1485-1528)가 안틸레스제도를 항해했다는 사실과 플로리다에도 당도한 사실을 이야기 할 수가 있지만 콜럼버스와 마찬가지로 이태리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 아니라 전부 남의 나라를 위해 일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 또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와같은 사실들은 이탈리아의 생성까지 우리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루이지애나와 텍사스는 옛 스페인부왕령이며 고려땅이고 그 후 대한제국의 영역이었다.

이 시칠리아에서 사용한 언어 역시 공용어로서 라틴어, 그리스어, 아랍어가 인정되었다는 것은 쿠바가 상업적인 도시들이 많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를 통하여 자본가 부르조아들이 생성될 수 있는 바탕임을 알 수 있으며 시칠리아의 앙주왕가(House of Anjou)는 중세 에스파냐의 왕국에게 병합된다는 사실까지 라틴제국의 고려와 중첩됨을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 글 "어멀리 켐프(Emily Georgiana Kemp)가 방문한 코리아. http://blog.daum.net/han0114/17050676" 에서 1911년에 방문한 어멀리 켐프에 의하면 한국인들의 쓰는 언어는 알파벳이 스물다섯 글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여 한국인들이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임을 암시했다는 것을 알린 바가 있다.

이 주제와 약간의 벗어나는 것이겠지만 또 하나 더 지적할 것은 십자군(十字軍:Crusades)과 연결되는 사실에서 한반도 삼한역사에서 고려(高麗)왕에게 붙인 충(忠)자가 다분히 식민지사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이것은 서세 장난의 대표 상징적인 것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인데 바로 십자군전쟁을 통하여 십자군이 고려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엮어 놓으려는 것으로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며 카톨릭 교황표식인 성(聖:sanit)을 국왕이름 앞에 붙인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 글 "동경반란(東京反亂)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일어난 십자군사건 http://blog.daum.net/han0114/17050494 "에서 동경반란은 고려19대 명종(明宗,1131-1202,재위:1170-1197)시기 1190년 이래 약 15년 간에 걸쳐 전후 6,7차에 걸쳐 일어났으며 이것은 경상도지방의 민란으로 연결되며 민란 중심지가 고려의 동경(東京), 곧 경주(慶州)였고 반란의 기치가 신라재흥(再興)이었으므로 신라부흥운동(新羅復興運動)으로 부르기도 한 이 반란사건이 제4차 십자군전쟁(1198-1204)과 또한 연결되며 이 후 십자군의 활동과 고려를 공격하는 몽골군의 활동이 같다하여 몽골군과 십자군이 같다는 설도 제기한바가 있다.

이 십자군을 지휘한 베네치아(venezia)에 의해 라틴제국(Empire of Romania:1204-1261)이 잠시 50년 남짓 세워졌다는 것을 서양사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몇천년이 이어지는 세계삼한역사에서 50년이란 것은 지배로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저 서양사를 만들기 위해 흔적을 남겨놓고자 한 것이라면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서양사에 의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십자군이 공격한 곳이 바로 이집트라 하였으니 동경(東京:慶州)을 이집트라 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십자군과 몽고가 같게 엮었다는 것은 쿠빌라이가 존재한 대도에 서양역사 십자군 흔적을 남겨 찾으려 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태양신을 받들었던 이집트가 지금의 북아프리카에 있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가 없다.

물론 마피아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지명 시칠리아 역시 삼한역사와 관계설정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시칠리아의 앙주왕가(House of Anjou)역시 부르몽왕가(House of Bourbon)와 같이 붓꽃(Fleur-de-lys)문장을 사용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것으로 라틴제국을 지배한 대고려(大高麗)를 애려사(愛麗絲)라 하여 따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는 표식이다. 

어쨌던 충(忠)을 성(聖)으로 해석하길 바랬다는 것은 일제(日帝)가 얼마나 한반도 역사를 기독교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었는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바로 한반도 역사를 만든 주체가 일제라면 이 일제가 열도일본인가 하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이처럼 역사기술에서 기독교적인 상징이 필요할 정도라면 일제(日帝)는 기독교를 믿지 않는 열도일본인이라고 볼 수 없고 기독교적인 주체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주지케하는 사실이다.

 

일본이란 이름은 고려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명이다.

그렇다면 박경리선생이 말한 일본이 가지고 있는 역사에서 근원적인 한(恨)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일본 즉 "JAPAN"은 서세들에게 상징적인 명칭일 수밖에 없겠으나 열등한 명칭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세계를 장악한 서세가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동서양 나누어 놓은 동양역사에서 열등할 수밖에 없는 열도일본인들에게 물려 준 것이다.

이것이 이 주제 서두에서 말한 구팽(狗烹)한 일본이 오늘날 서세 유럽인이라는 것이다.

측은하게도 남에게 늘 약점을 잡히지 않게 자신 감정을 속여가며 약게굴면서 겉으론 철저한 것 같은 열도일본인들은 숙명적으로 서세의 영원한 노예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열도일본인들이 역사에서 열등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바로 서세들이 역사에서 열등했던 것이다.

장문에 가까운 "대한제국"을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 서세들에게 공통분모라 할 수 있는 것은 해적출신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근원적인 문제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열등 의식정도가 컸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아메리카대륙을 신대륙이라고 하면서까지 그들의 기독교적인 근원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들의 워낙 초라하고 열등한 역사로 인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무도한 해적출신 콜럼버스를 기독교 영웅만들기에 주요인물로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한계가 분명하게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그들은 인물보다 앞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독교 십자깃발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십자군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이러한 열등의식이 발호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근세기 두번의 큰 역사전쟁에서 서세가 승리했다고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열등적인 역사인식은 현재까지도 그들에게 지문처럼 남아 있다는 것이 문제이며 결코 역사승리가 그것들을 완전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역사열등증후군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의 한풀이가 우리를 향해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십자군이란 실체자체를 러시아역사학자 아나톨리 티모페에비치 포멘코(Anatoly Timofeevich Fomenko)는 완강히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예수그리스도( Jesus Christ)역시 12 세기의 인물로 주장하고 콘스탄틴노플(Constantinople)에서 기둥에 묶어세우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刑罰)로 죽었다고 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런 비슷한 내용이 악라사관기(鄂羅斯館記)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악라사관기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벌거벗은 몸에 유혈이 낭자하며,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엄연히 한 죽은 사람이다..."한 것은 십자가에 예수와 같으며 이를 악라사인들은 중국에서 피살된 악라 태자(鄂羅太子)라 하였고 혹은 이를 이마두(利瑪竇)가 피살된 상이라고도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이마두의 또 다른 이름이 예수회 소속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란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대고려시대때 그들이 감히 고려에게 저항하거나 지배하는 상상력을 이처럼 십자군전쟁으로 이미지화하거나 상징화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역사에 대한 열등의식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그들의 역사열등의식에서 그나마 마음을 안정하게 하는 것은 바로 기독교라는 종교라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볼 때 서세들 역시 역사열등의식은 버릴 수 없는 문신 같은 것일게다.

1.2차대전에서 서세연합국이 모두 승리한 사실을 역사전쟁이라 하여 그들은 의미를 찾고 있다.

생각해보면 세계삼한이 지배하던 하나의 체제에서 그들은 양지에 나타날 수도 없고 음지(陰地)에서 해적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처참한 환경을 생각할 때 오히려 근세기 이후 우리민족이 느끼는 역사트라우마보다 그들에게 역사가 주는 심적인 고통이 한층 더 심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강박은 고스란히 루스벨트 악연과도 연결된다는 사실이 다음 5편에 연결된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근대사로 연결된 주요 원인으로 글쓴이가 바라보고 있는 사실의 주요 요체라 할 수가 있다.

[대한제국 5편]서두에서 박경리(朴景利:1926-2008)선생의 유고집 ‘일본산고(日本散考)'에 나타나는 '증오(憎惡)의 근원(根源)'은 기실 열도일본인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세들에게 존재했다는 사실에 대해 심증적인 것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한(限)이 될 수 있었던 것을 하나 더 말하자면 바로 왜(倭)나 왜구(倭寇)라고 하는 호칭이다.

열도일본인들은 서세가 만들어준 일본역사에 많이 적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나, 왜구호칭은 역사사실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하지말아야 할 비하호칭이다.

이러한 호칭들이 근본이 없는 현재 유럽인들과 열도일본인들을 가슴아프게 했다는 것을 충분하게 짐작할 수가 있다.

그들이 잘난척할때 우리는 "왜놈"이라고 한번만 호칭하면 그들의 호기가 깡그리 묻혀버린다.

현재 "japan" 를 "jap" 이라고 하여 유럽인들이 열도일본인들을 비하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것이다.

이것 역시 돌고돌는 역사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서세는 이제 열도일본을 쿠팽할 때 쓴다.

이 호칭의 주인공은 지금까지 열도일본인이겠거니 하였지만 바로 서세(西勢)(音)으로 화(和:Wa)라 하였음인데 이것을 곧 왜(倭)라 한 것임을 알 수가 있고 또한 스스로가 조선인의 양반계급 제도권에서 남반(南班)이라 하였던 것을 보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으로 조선남방(朝鮮南方)에서 왜가 스스로 반(班)을 반(盤)으로 번(番)으로 바꿔 불렀다고 하였으며 근세기에서는 외번(外番)이라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서양 번족이 앵글족(angle) 즉 잉글랜드인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방언에서 왜(倭:Wa)와 웨기(Waggie)라 한 것을 그대로 따른 음(音)이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 유럽인들이 열도일본인들을 잽(jap)라 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잉글랜드와 크게 구별이 되지 않는 네덜란드 사람들 조차 화(和:Wa)라한 것 역시 우리나라 역사기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들이 본래 생업으로 해적질을 일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삼한역사에서 근본이 없다 하였으니 번듯한 역사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그들에게 근본이 없다고 한 삼한역사를 근원적으로 질시했을 것이 뻔하고 그로 인하여 깊은 열등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을 것이며 세계삼한역사를 동강내어 그들 것으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마침내 근세기말 처지가 한순간에 바꼈을 때 세계삼한역사 말살에 칼대기를 망설리지 않고 또한 무자비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우리역사가 이 모양이 된 것은 결국 그들의 도가 넘는 한(限)풀이에 철저하게 당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역사가 교훈적으로 주는 것은 어쟀던 나라가 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많은 거부감이 따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현재 일본 열도인들은 아무리 우리와 연결시켜보아도 사실적인 역사관계설정에서 특별하게 갈등이 있을 소지가 없다.

오히려 잘못된 역사로 인하여 그들이 잘못된 상식으로 마치 서세가 만들어놓은 거짓 역사놀름에 빠져버린 것이 오늘날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이 탈아입구 또는 서세를 지향하는 정신적인 자세가 동양적이지 않고 서양지향적임을 알 때 철저하게 유대자본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이고 서양인들의 똥이 최고라고 알고 있는 것이 그들의 병폐라면 병폐이다.

물론 일제 망령에 의해 놀아나는 양아치 정치집단들은 논할 대상이 아니다.

참으로 한심한 것은 그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바르게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3]제정의 일본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을 찾아라.

홍국영(洪國榮)과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

 

본래 일본인들의 활동근거지가 위에서 밝혀 본 것처럼 쿠바가 본거지이다.

좀 더 넓게 보면 미서전쟁이 발발된 곳을 깃점으로 카리브해의 안틸레스섬(Antilles)과 최근까지 네덜란드가 동인도(東印度)라고 하고 지금까지 점령하였던 곳이라고 우기는 곳도 실제로 아시아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미국이 근세기에 점령하였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이곳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이제 명확하게 알 수가 있다.

미국과 네덜란드를 동일하게 보는 이유도 뉴욕과 뉴저지지역에는 오래전부터 네덜란드인들이 구축한 도시라고 알려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뉴네덜란드라는 곳이 근대 미국정치경제사회구축의 정점으로서 시초장소가 된 현재 뉴욕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할 것이다.

또한 본 블로그 글 "오리엔탈역사문화의 인도(印度)지명이 아메리카에 있어야 할 이유 http://blog.daum.net/han0114/17049532"에서 언급하였듯이 1942년 일본은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고 난 후 네덜란드 인디즈의 일본정부(Netherlands Indies De Japansche Regeering)가 발행한 화폐를 통용하였다는 사실에서 총칼을 앞세우며 당장이라도 서세(西勢)를 타도하겠다고 대동아권을 주장하고 나선 무소불위에 있던 일본제국정부가 인도네시아땅을 점령하면서까지 굳이 네덜란드어화폐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다.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점령했다는 일본은 지금의 열도일본이 아니다.

당시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은 바로 네덜란드와 동일한 미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곳을 안틸레스섬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네덜란드(和蘭)가 일본(Japan)이라는 것이며 미국(美國)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대사가 혼란스럽다는 것은 일본이 하나의 국가이름이 아니라 이렇듯 알 수 없도록 이렇게 저렇게 혼용하였다는 문제가 있으니 용빼는 재주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일본(Japan)을 서세들의 전부 합친 것이 할 때 일제(日帝)는 제정군주제(帝政君主制)나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일본(Japan)이라고 최종 정리가 된다.

 

생물분류학적으로도 열도일본을 보면 근원적으로 일본역사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세기 분류체계에서 학명을 보면 "japonica, japonensis, japonicum"처럼 정말 다양할 뿐만아니라 그 폭 범위가 지구전체를 포괄하였을 정도로 넓게 포진한 것으로 나타나고 때문에 생물학계 전체에 주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세계삼한역사가 가지고 있던 것을 전부 열도일본이 차지한 것과 거의 같게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것은 일본이라는 것이 열도일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포르투갈 근세기에 일본과 연계될 수 있는 모든 서세들이 생물분류학 체계에서 몰아 준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이다.

이것 역시 서세의 총칭이라는 의미가 가미가 "japan" 에 밀집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왜곡된 현상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사실이지만 재팬(Japan)의 정체성은 일국이라고 하는 태양신을 받드는 해적집단조직체로서 현재 마피아같은 조직체 형태로 공존했다는 것도 알 수 있으며 이것을 열도일본인들에게 모방심리가 발동하여 마피아와 비슷한 야쿠자를 만든 것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재야고지도연구가인 아니안(anian)선생이 밝힌 북아메리카대륙 알래스카에 자포노이스(japonois)가 있었다는 것은 바로 허드슨베이회사(Hudson's Bay Company:1670-1869)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이 회사는 북아메리카대륙 북부 캐나다지역 지명 허드슨 베이에서부터 그 주위를 범위로 활동한 세력으로서 알래스카까지 진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1670년 5월에 설립된 잉글랜드의 칙허회사(特許企業:Chartered company)이자 국책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어 곧 잉글랜드가 재팬(japan)이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한 셈이다.

영국동인도 회사나 네덜란드동인도 회사등 회사(會社)라는 것은 요즘 회사개념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서 당시 웬만한 유럽국가들을 뛰어넘는 육군 및 해군병력을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비록 하나의 체제에서 활동을 하지 못했던 세력이라고 하겠지만 근세기에 자본이 중시되면서부터 충분히 국가로 행세를 하였을 가능성이 높고 이와같은 일본명칭의 혼란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근세사의 모순은 나라가 아니면서도 마치 긴 역사가 있는 나라인 것처럼 포장하고 날조하면서 사실전부를 조작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국가들의 이름이며 이들이 포진한 영역이다.

현재 유럽국가 이름이 생성된 것은 바로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서 부터이며 미국에서는 1차세계대전을 유럽전쟁(European War)이라고 한 사실에서도 그럴 가능성을 예단하게 하지만 오히려 미국에서 유럽인들끼리 충돌하여 발생된 것을 숨기려고 유럽전쟁 운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게 한다.

솔직히 어느 것인지 실체를 밝히기가 당장은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쨌던 글쓴이의 판단을 우선 일부 여기에 가미한다면 1차세계대전 개전은 처음 중앙아메리카의 소수국가에서 나타나 남미 동북부로 진전되면서 전세가 북상하였고 북아메리카대륙 남부로 진행되다가 점차 동부까지 여러유럽세력들끼리 치열하게 치고받고 진행되었을 것이란 짐작을 하게 하며 유대자본이 만든 황색여론에 떠밀려 우왕좌왕할 때 결국 대한제국은 대동아공영권인 아시아대륙 동부만을 고집하는 바람에 서세들의 각축이 악라사의 서부 한계의 땅인 유럽땅으로 확대되고 악라사(鄂羅斯)서쪽영토가 서세 유럽인들에 의해 크게 잠식(蠶食)되었을 가능성을 이미 예단한 바가 있다.

물론 이것은 글쓴이의 추측이다.

 

1차세계대전은 유대자본이 전쟁전체를 지배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2차세계대전 결과에 대해 역사비평가들도 주장하는 것이지만 대체로 유대자본이 시작하고 유대자본이 핵무기를 개발한 끝에 끝낸 전쟁이라 하고 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은 오늘날 유럽대륙은 물론이고 아시아전체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국가 경계선을 완성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를 바꿔치기 하면서 소련을 밀어주게 된 역사기간이라고 하는 설정이 가능하다.

이 기간에 악라사인 65,000,000 명이 홀로코스트 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유대자본은 세계삼한역사말살의 주역인 셈이다.

현재 북아메리카대륙을 누가 차지하고 있는가?

미국이 아닌가.

그곳은 본래 삼한역사의 터전이다.

그렇다면 대한제국도 일제도 그곳에 있어야 한다.

미국은 유대자본이 장악한 세력의 집합체라는 것을 앞 글에서 이미 충분하게 설명하였다.

앵글로색슨족(Anglo-Saxons)이라고 하던 잉글랜드가 북아메리카대륙 동부를 차지하고 있었던 사실에서 잉글랜드라고도 하겠지만 실제로 영국이라고 단언 할 수 없는 문제가 대조선(대고려)과 공존했다는 사실이다.

1881년 대조선이 해체되고 난 후 1900년까지 미시시피강 동부지역은 일루미나티가 경제자본력으로 확실하게 점령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고 이들에 떠밀려 고려는 하는 수없이 서부쪽에 웅지를 틀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서세들의 어떤 국가도 국명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국독립전쟁에서 시발이 된 지역, 미국인들이 거주하던 동부13개주를 식민지 한 세력이 바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1707-1801)이라 하지만 브리튼이란 명칭은 잉글랜드라고 단언할 수 없는 문제가 복잡하게 나타는 것은 물론이고 최소한 북아메리카대륙에는 현재 유럽제국들의 구성원들이 난립한 상태로 서로 기득권을 주장했을 것이 틀림없으며 이것을 정리, 정돈한 것이 바로 1차세계대전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 정리정돈의 주체가 독일인지 영국인지 알 수 없지만 나중에 미국이 평정한다.

이와같은 사실과 함께 세계삼한역사관점에서 볼 때 대조선(大朝鮮)이 건재하던 시기에서 참으로 희한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정조(正祖,1752-1800,재위:1776-1800)재위 시작년도와 미국독립전쟁 시작년도가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미국을 지속적으로 지배하고 조종한 바이에른 일루미나티(光明會,Bavarian Illuminati)의 등장년도와도 흡사할 정도 하나같이 똑같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1777년 홍술해, 홍상범에 의해 반정모의로 정조가 암살당할뻔하였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한 사람이 바로 본관 풍산(豊山)인 홍국영(洪國榮:1748-1781)이라 하였는데 희한하게도 이는 일루미나티(Illuminati)의 시조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1748–1830)와 태생년도 똑같다는 사실을 충격적인 이야기에 더 추가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정조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 미국생성과 이미지를 맞출 수 있으며 풍산(豊山)은 바이에른(Bayern)을 말하는 것과 홍국영이 유대인이라고 한다면 정조대 이후부터 자본주의 시대가 시작된 것과 같게 볼 수밖에 없다.

한반도 역사는 이러한 것을 단순하게 처리하였을뿐이다.

특히 정조는 이와같은 미국의 역사실체와 프랑스라는 역사주체 말미상황과 뒤 섞여 하나의 체제 공존역사를 더하여 상징화하였으며 제정이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제국주의가 생성되는 상징성을 더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눈에 띤다.

정조(正祖)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세도정치에 의한 삼정문란(三政紊亂)과 경제질서가 무너지면서 사회정치적인 혼란이 가속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위기의식이 팽배하던 시점에서 정조는 수원 화성(華城)을 축성(築城)하였으며 그곳에 천도(遷都)를 계획하였지만 프랑스 루이16세(Louis XVI,1754-1793 재위:1774-1793)의 처형 예를 보면 실패한 것으로 짐작되게 하는 것이다.

물론 한반도역사에서도 정조의 죽음에 대해서 수은중독설 등 독살설이 없지 않지만 조용하게 처리한 이면에는 재정적인 혼란이 극대화되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정조 3년 기해(1779,건륭 44) 8월3일 (갑인)

남한산성에 행행하여 백성과 군대의 상태를 살피다

我東以蕞爾鰈域, 粗知禮義之方, 世有中華之稱。 而今則, 人心漸至狃安, 大義轉益湮晦, 北走之皮幣, 看作常事, 不以爲恥。 思之及此, 寧不心寒?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나라는 손바닥같이 표할 수 있는 접역(鰈域)으로서 예의를 대강 아는 지역이므로 세상에서 중화(中華)라는 일컬음이 있었으나, 이제는 인심은 점점 안일에 길들게 되고 대의(大義)는 점점 더욱 자취를 감추어, 북으로 가는 예물(禮物)을 예사로 여기고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본 블로그 글 "가자미(鰈)가 우리에게 주는 역사성 접역(鰈域)? http://blog.daum.net/han0114/17049902"에서 접역(鰈域)이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이라는 사실을 알렸던 것으로서 조선을 세상에서 중화(中華)라는 하였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중화는 세계의 중앙에 위치한 가장 문명한 나라라는 뜻인데 정조가 분명코 중화라 하였지만 반도역사학자들은 이를 소중화라고 오히려 의미를 보잘 것 없게 만들려 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이야긴가.

그런데 위 기록에서도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조선에서 이 때 재정악화에 따른 귀족들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는 삼부회(三部會:Etats-Generaux)와 비슷한 만인소(萬人疏)가 소집되었고, 특히 위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본유출이 만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것들이 도화선이 되어 재정악화와 따른 왕권이 무너지는 형상과 함께 시민혁명(bourgeois revolution)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고 제3신분 자본가 부르조아(bourgeoisie)가 득세하면서 민의에 의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괴물이 이런 와중에서 탄생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가 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홍국영이 바로 일루미나티란 괴물의 수장,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로 나타나고 비록 1781년에 홍국영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였지만 사후 1830년까지 그의 행적과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효명세자와 혼합되어 일치하게 나타난다.

결국 조선시민혁명의 중심, 시민이라는 주체는 자본을 축적한 장사꾼들의 자본가의 조직으로서 하층계급인 일반 서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으며 때문에 시민혁명의 주역은 일반서민이 아닌 부자들이 돈으로 군중들을 모집하고 다수의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조선의 제정군주제체제를 뿌리부터 흔들었다는 것을 추측 또한 가능하다.

이후 어쨌던 부르몽왕가(House of Bourbon)의 정조시대가 단순하게 지나는 것 같지만 세계역사적으로 엄청난 변고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안동김씨(安東金氏)라고 판단되는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1714-1901)가 부르몽왕가 대신에 등장하게 되지만 조선(朝鮮) 순조(純祖:1790-1834,재위1800-1834)대에서는 1800년부터 1803년까지 본관이 경주김씨(慶州金氏)인 정순왕후(貞純王后)가 섭정을 하였고 1803년부터 1804년까지 본관이 신안동(新安東金氏)인 노론(老論)시파(時派)인 장인 김조순(金祖淳)이 섭정을 하였으며 1804년부터 1827년까지 순조가 직접 친정하였지만 1827년부터 1830년까지 아들 효명세자(孝明世子)가 대리청정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1830년 아들 효명세자가 훙서(薨逝)하자 다시 순조가 친정하였고 그 친정체제는 1834년 붕어(崩御)할 때까지 실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자본주의가 한차례 위기가 오지 않았는가 한다.

바로 홍국영의 사후행적이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aupt)사망 시점 1830년까지 이어지는 것 중에 효명세자와도 연결되는 문제까지 연결시켜 보게 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서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에서 자본주의 상징은 아담 바이스하우프트와 연결되고 있는 홍국영 더하기 효명세자라는 사실을 그릴 수가 있다.

조선은 이때부터 군주국인 제정국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제국주의로 변모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최소한 입헌군주제가 실시되었을 것이다.

결국 순조(純祖)는 하노버왕가(House of Hanover:1714-1901)의 마지막왕인 윌리엄 4세(William IV,1765-1837,재위1830-1837)와 같고 계승할 아들이 없었다는 사실도 순조와 똑 같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1707-1801)과 엮여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아래에 나타나는 또 잉글랜드는 무엇인가?

 

이러한 사실들을 볼 때 잉글랜드가 근세기 잉글랜드로 부각된 실체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잉글랜드도 장미전쟁, 임진왜란 시기의 잉글랜드와 19세기의 빅토리아여왕 잉글랜드와 같이 볼 수가 없는 문제가 생긴다.

두 개 이상의 영국, 또는 잉글랜드가 혼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본 블로그의 글"청일전쟁은 고려(高麗)가 서세를 혼내주는 전쟁  http://blog.daum.net/han0114/17050727 "에서 밝혔듯이 일본에서 벌어진 오닌의 난(應仁-亂:1467-1477)이 곧 잉글랜드 장미전쟁(薔薇戰爭:1455-1485)과 연결되어 역사장소가 중앙아메리카대륙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한바가 있다.

본 블로글 "믿을 수 없는 근대사 http://blog.daum.net/han0114/17050697 "에서 풍신수길이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1540-1596)라고 한 사실에서도 그들의 활동지역이 카리브해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있으며 1832년의 영길리국표선기(英吉利國漂船記)에서 서세들의 본거지를 서인도제도(西印度諸島)라고 보면 그 제도에서 강(江)을 타는 수로(水路) 또는 바다를 건너는 해로(海路)로 두 달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게 되면 그곳에 구라파가 있다 한 것은 바로 아마존강을 말하는 것으로 브라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본 블로그 글 "파딩게일(farthingale)과 여송국여인 http://blog.daum.net/han0114/17050737"에서 임하필기 제39권 이역죽지사(異域竹枝詞)편에 영길리국(英吉利國)의 여자들이 출행할 적에는 금루합(金縷合)에 비연(鼻煙)을 담아 가지고 다녔다 하는 것에서 이런 형태의 끽연행위는 브라질 토착인(indigenous populations of Brazil)들이 시초였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잉글랜드인들이 브라질 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며 이에 더하여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 국의 빅토리아여왕(Victoria,1819-1901,재위 :1876-1901)이 1876년부터 무굴제국을 점령하고 인도의 여제(印度女皇:Emperor of India)가 되어 인도를 지배했다고 한 것에서 본 블로그 글 "암리차르 학살사건과 제암리 학살사건 http://blog.daum.net/han0114/17050741"에서 살펴보았고 본 블로그 글 "캘리컷(Calicut:古里)이 있었던 곳 브라질 쿠리치바 http://blog.daum.net/han0114/17050739"에서 실제 인도지명인 킬리컷이 있었던 곳은 바로 브라질 쿠리치바(古里提巴:Curitiba)였다는 사실까지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아메리카대륙 동부에 있었던 잉글랜드과 중앙아메리카과 카리브해를 무대로한 1455년 부터 있었던 장미전쟁의 잉글랜드, 그리고 1832년부터 남아메리카대륙 브라질을 장악하고 점차 영토를 넓혀 간 잉글랜드 모두를 동일하게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영국과 독일이 충돌한 것이 1차세계대전이다.

독일이란 존재도 프로이센이라 하여 마치 독일을 통일하였다고 하여 대표성을 가지는 이름이라 하였지만 분명한 것은 발트족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북아메리카대륙 허든슨베이 쪽의 북부지역을 의미한다.

아마도 발트에 독일 즉 프레이센이 있었다면 기존 허드슨베이를 구축한 잉글랜드와 부딪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때 영국이 잉글랜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잉글랜드는 일본이다.

즉 고지도연구가인 아니안(anian)선생이 이야기한 알래스카위치에서 찾은 일본이라는 것이다.

이런식이 아니면 1차세계대전의 구도를 맞출 수가 없다.

물론 프로이센은 1.2차대전 독일제국과 혼용되었다는 사실이 존재하기때문에 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며 한 때 이 프로이센은 일본 즉 네덜라드 또는 잉글랜드를 점령하여 군대를 파견한 사실도 있기때문에 햇갈린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대조선을 대입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1707-1801)은 위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남아메리카대륙 동북부의 잉글랜드와 달리 볼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홍국영은 영조가 "내 손자"라고 부르며 총애했다 하고 정조의 우익(右翼)이라 하였으나 결국 조선을 자본주의 국가로 만든 장본인 것으로 나타난다.

우익은 자본주의가 아닌가?

 

[4]열도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치루지 않았다.

 

전편에서 '태프트가쓰라밀약'이 일제(日帝)에 의해 날조되었을 가능성을 충분할 정도로 검정했다.

물론 이 일제(日帝)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일본을 말하는 것이다.

일제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하나의 소제목의 글이 아니라 이미 긴 글이 되어버렸다.

대한제국을 정확하게 말하려면 글이 길어지더라도 일제를 확실하게 개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열도일본의 재정적 한계를 이야기 했고 상대국인 러시아가 현재 소련이 말하는 러시아가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비록 대조선이 1881년에 해체된 상태라 하여도 "하나의 체제"가 주는 영향력이 계속 서세들에게 압박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미움같은 대상은 분명"대한제국"에게 향했을 것이란 판단이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미국이란 국명아래 최고분기점이라고 할 정도의 프런티어적인 1898년 사건 미서전쟁(美西戰爭)자체가 허구라 사실이 밝혀진 이상 미국이 대한제국에 대해 온갖 잘못된 역사를 꾸밀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결코 2차세계대전 당시까지 미서전쟁에서 시발이 된 쿠바를 미국이 완전하게 점령하지 못했다는 가설이 등장한다.

쿠바는 위에서 밝혔듯이 고려일본원정시에 일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부황령' 및 '라틴제국'을 기반으로 하던 대고려의 후신 '대한제국'은 북양정부(北洋政府:北京政府,Republic of China:1912-1928)를 위시하여 일본이 세웠다고 하는 중앙아메리카의 만주국(滿洲國:Manchukuo:1934-1945)을 포함하면서 2차세계대전 말엽까지 건재했었다는 사실을 충분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실이 아닐 수가 없다.

이건 모순덩어리 근대사처럼 잘 짜여진 픽션이 아니라 진짜 역사사실이다.

때문에 동아시아대륙의 열도 일본은 결코 일제가 될 수 없다는 최종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장장 "대한제국 6편"이란 글이 필요했다.

본래 대한제국 지배하에서 피지배국일 수밖에 없는 일본이 대한제국의 지시를 받아야 할 처지이지만 마치 1차세계대전에서 멕시코가 독일을 반하고 미국에게 돌아서 독일에게 세계여론이 불리해지도록 만든 것처럼 대한제국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는 개체로서 존재했을 가능성과 당시 미국에게 유리하도록 여론을 자극하기 방법으로 태평양전쟁의 시발이라고 하는 1941년12월 7일 진주만기습을 감행을 함으로서 세계여론을 엉뚱하게 대한제국이 불리하겠금 만들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할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주만기습이라는 군사도발행위가 성공할 수 없을 때의 확고한 대책도 없이 그냥 한번 찔러보는 정도로 시작된 사건이기에 이러한 일본군사지휘관들의 이상한 사고판단자체가 이상하게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런 진주만기습은 멕시코같은 찔러보기 또는 확대하기, 사주받기등으로 나타나 결코 열도일본세력이 미국을 상대로 한 대동아전쟁이란 이름으로 전쟁전체를 책임지고 수행했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것의 증거로는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일본을 전범국으로 처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대동아전쟁에서 미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치룬 상대가 열도일본이 아니라 바로 대한제국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때문에 불필요한 처분을 한반도인들이 받았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게 한다는 점이다.

이것에 대한 것은 다음 마지막 편에 루스벨트 악연에서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열도일본(japan)이 태평양전쟁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글쓴이가 확신하는지 설명하겠다.

재팬(japan)이라고 하는 열도일본은 미국과 태평양을 주 무대로 치열하게 전쟁을 하였다 하더라도 넓은 태평양에서 함선끼리 충돌하면 침몰 함선이 다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인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1941년 진주만기습사태이후 1945년 8월 6일과 9일 열도일본이 미국에게 원자폭탄을 맞을 때까지 약 4년동안 통계자료에 재팬이란 이름으로 피해함선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재팬이란 이름의 국가가 전쟁을 하면서 함선들은 전부 피해가 없도록 꼭꼭숨겨놓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도대체가 말이 되는 이야긴가.

아래 2차세계대전 피해통계자료에서 재팬(japan)이란 일본은 통째로 빠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전쟁 주요국가의 각국 사망수 통계조차도 나타나지 않으며  주요참전 국가 각국 함선 침몰한 숫자통계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2차세계대전 당시 재팬(japan)은 유령국가와 마찬가지다.

 

World War 2 -Death Count Per Country

 

 

 

 

실제로 그러했는지 자료를 찾아보았다.

정말 전쟁을 하기위해 수많은 함공모함과 전함을 만들어놓고 침몰되는 것이 두려워 참전하지 않고 숨겨만 두었던 것인가?

그러나 위키자료에는 이렇게 나타난다.

미국의 필리핀탈환작전으로 필리핀해전(Battle of the Philippine Sea) 또는 일본명은 마리아나 해전(Mariana and Palau Islands campaign)이라는 전투가 벌어졌고 이 전투에서 승무원 1,660명과 함재기(艦載機)72대를 싣고 운항하던 일본함모 쇼카쿠(翔鶴:Shōkaku:32,105톤)가 1944년 6월 19일 미국 잠수함 카발라(SS-244:Cavalla)의 어뢰에 피격을 당해 대화재가 발생하였으며 분명히 침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항모 시나노(信濃:Shinano)역시 본시 전함(戰艦:Battleship)을 항공모함으로 변형시킨 것으로 미완성상태에서 단한번도 실전에 사용한바가 없이 미국 발라오(Balao)급 잠수함 아처피시(USS Archerfish:SS-311)에게 1944년 11월에 폭침당했다는 기록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위 통계자료에 아예 주요 3국 추축국 중에 하나라 하던 재팬(japan)이 나타나질 않는다는 사실은 무엇인가 일본 즉 재팬과 동일한 주체가 있었고 이것을 대체할 역사가 있었지만 빠뜨렸다는 것이다.

아니면 완전히 삭제했다는 것이다.

이 자료들은 물론 미국 CIA 가 주관이 되어 작성한 수치일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세계 모든 통계를 CIA 가 주관하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재팬(japan)이란 이름으로 위키자료에 등장하는 모든 육해공 전체 무기들은 열도일본의 소유가 아니라 기록만 그렇게 남겨놓았을 뿐 실체가 없으며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일제에 의해 감쪽같이 사라진 "대한제국"의 막강했던 무기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진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하였지만 대동아공영권지역을 지배한 세력이 바로 대고려 후신인 대한제국일 수밖에 없는 역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없이 막연하게 이런 주장을 하게 되면 미친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대한제국을 글쓴이가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 이런 결론까지 얻게 된 것이니 사실과 다를 것이 없다.

연기처럼 사라진 대한제국이 일제식민지국가로 전락한 것은 누구의 작품인가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서세는 아예 대한제국 전함들을 통계에 나타내고 싶어도 나타낼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일본항공모함 중 유황(硫黃:sulfur)과 관계 되는 지명 시나노(信濃:Shinano)란 항모의 이름도 그렇지만 "학이 난다는 뜻"의 상학(翔鶴)은 임진왜란 때 한산도(閑山島)앞바다 전투에서 조선수군이 사용한 해진으로 결코 열도일본인들이 사용할 명칭이 아님이 들어난다.

그외 당시 일본이 소유하고 있었던 전함들도 꽤 많이 나타나지만 실체가 전혀없다는 사실이다.

이 전함들을 전부 한꺼번에 수장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의 이력이 기록이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실체를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잠수함으로만 공격을 하였다는 것은 마치 독일이 U보트(U-boat)로 영국을 공격하듯한 것과 같고 마치 서양에서는 독일이 영국을 공격하는 형식이 동양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공격한 것인냥 글쓴이에 이상하게 비치는 것이 비정상적인 생각인가?

침몰했다면 찾을 수가 있는가?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대동아전쟁에서 독일같은 짓을 수없이 하였지만 어쨌던 역사시록에는 빠졌다.

결국 미국은 대한제국을 넘어섰고 그 역할을 일본에게 떠 넘긴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으며 마침내 미국은 아무런 비난없이 대한제국의 온전하게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온전하다는 것 표현속에는 홀로코스트와 전쟁의 이름을 빌어 인간청소, 역사청소가 가능했다는 말이다.

일본은 2차세계대전에서 추축국(樞軸國:Axis Powers)으로 1936년 나치독일과 이탈리아왕국, 일본제국 세 나라 사이의 우호조약삼국동맹조약(三國同盟條約)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며 이 조약을 보면 일본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유럽의 새로운 질서 확립을 주도하는 것을 존중하고 이를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독일과 이탈리아 역시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 확립을 주도하는 것을 존중하고 이를 인정한다라고 되어 있으나 이것은 일본과 미국이 주장하는 것일 뿐 위 히틀러와 뭇솔리니는 죽음과 함께 악귀가 되었듯이 두 나라 역사주체들이 모두 사라진 마당에서 이에 대한 사실여부를 알 길이 없다.

다만 지금까지 글쓴이가 밝힌 사실은 "Japan"이 아닌 다른 이름의 전쟁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밖에 생각 해 볼 수 있는 것은 일본이 곧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이 유나이트 스테이트 아메리카라 한 마당에 일본(JAPAN)이 들어 갈 자리가 없다.

대신 미국은 대한제국을 차지한 것이니 일본이란 실체가 두 개가 있을 수가 없어 이를 동양열도 일본을 일본과 일제로 둔갑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실제로 일본과 미국은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사라진 대한제국 코리아!

그 위용은 이미 본 블로그 글 "1886년의 조선해군력(朝鮮海軍力)  [1]http://blog.daum.net/han0114/17050732, [2]http://blog.daum.net/han0114/17050733, [3]http://blog.daum.net/han0114/17050735" 에서 충분하게 그 능력을 확인한 바가 있다.

이제 열도일본은 어느정도 정리가 된 것 같지 않는가.

 

[5]정리

1차세계대전 장소는 북아메리카대륙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제 일제(日帝)를 최종 정리해보자.

서세들은 대한제국 이름의 실체를 숨기려만 했고 대한제국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모조리 열도일본이 한 것처럼 조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그러한 발상은 실질 소유적인 문제가 세계에서 걸쳐 방대했을 것이란 추측과 함께 실리를 얻은 미국은 열도일본에게 '태프트가쓰라밀약'과 상응한 각서를 교환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1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유대인들은 모두 독일계 유대인이었고 아일랜드계 및 스칸디나비아계 미국인들은 제정(帝政)러시아(악라사 또는 대한제국)에게 한결같은 반감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고 당시 미국이 제정러시아를 돕는데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고 나타난다.

 

이와같은 여론은 미국내 유대인들이 주도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제정러시아와 독일의 주요인사들을 테러로 숨지게한 세력이 바로 유대인들이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넘어간 유대인세력인 일루미나티의 활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전체 여론을 좌지우지했다는 것과 미국은 유대인들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 제정(帝政)러시아에 대한 다음 편에 다시 이야기 하겠지만 두말할 것도 없이 악라사라고 보며 고려후신으로서 최후 1897년에 아관파천을 통해 건립된 대한제국(大韓帝國)임을 알 수가 있다.

앞에서 일제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의한 체제라 하였다.

예를 들어 일본이 러일전쟁 하나만으로 유대자본에 종속되어버려 허수아비에 불과했다는 것을 이미 전편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러한 처지를 알 수 있는 것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종(純宗,1874-1926,재위:1907-1910)과 열도일본의 다이쇼왕(大正,1879-1926,재위:1912-1926)이 식민지 선후관계로 연결되는 것처럼 엮여있지만 분명한 것은 동일인물이라는 대한제국(1)편 의혹제기에서 두 왕 모두가 날조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동양계 허수아비 제정 왕으로 나타날 뿐인 것이다.

이것은 일루미나티가 세우려고 하는 자본에 의한 제국주의로 세계를 다스려는 것과 사뭇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일루미나티세력들이 결코 열도일본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님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이렇다면 자본력을 가진 것은 열도일본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최종정리된다.

현재 열도일본왕은 미국이 2차세계대전 후 세운 제정의 왕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상징적인 왕이라 할 수밖에 없다.

아마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지만 이를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의 왕이라고 하고 같은 일본이름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국(잉글랜드)과 똑같이 일루미나티의 목적에 따른 것이 아닌가 한다.

아시다시피 신라와 고려를 전통적으로 서세의 합스부르크왕가와 신성로마제국과도 연결시켰다는 것은 곧 스페인과도 연결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도 할 수가 있다.

어쨌거나 유럽은 독립적인 역사가 존재하여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조선은 부르몽왕가와도 연결되었으며 또한 정조대에서는 미국과도 연결됨도 알 수가 있었다.

근세기에 자본력을 가진 서세(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동아시아대륙사는 같은 인물들을 따로 나누어놓고 힘을 빼버렸고 하나의 역사체제에서 파생된 것이기에 아무리 발광을 쳐도 독자적인 역사를 도저히 세울 수가 없도록 만든 것이다.

즉 의도가 되었던 아니던 간에 유럽사에 조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것 역시 서세가 기획한 결과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역사도 엄밀하게 따지면 콜럼버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순종을 한반도역사에 넣고 다이쇼를 열도역사로 동일인물을 나누어 기술하면서 하나는 피지배국의 대한제국의 제정(帝政)황제(나약한)로 만들 수 있고 하나는 지배국의 열도일본 제국(帝國)천왕(강한)으로 만들 수 있는 틀이 생기는 것이다.

한반도 삼한사(三韓史)와 열도 일본사기(日本史記)가 아무리 바른 역사라고 우겨도 한마디로 서세가 기획한 짬뽕역사라할 수밖에 없고 두 나라 역사 모두가 서세에게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으로서 우리끼리만의 역사로 취급되게 하였을뿐 세계사에 미세하게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근덕지를 아예 삭제하고 없애 버린 것들이다.

때문에 서세들은 지금까지 한반도역사나 일본사서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물론 동아시아대륙사도 그렇다.

열도일본은 서세가 세상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세계삼한역사를 대적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만든 조작물에 불과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구도틀에서 잘 짜여진 역사라 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박사가 1918년 1차세계대전 미국징집지원서에 자신의 국적을"japan"이라 한 사실에서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보면 1901년까지 하노버왕가가 끝나고 그 이후 독일계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House of Saxe-Coburg and Gotha)의 에드워드 7세(Edward VII,재위1901-1910)와 조지 5세(George V,재위1910-1936)가 즉위하는 것에서 1918년까지 세계삼한역사관점으로 영국왕실을 "Japan" 이라 했을 것임을 생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재펜을 당시 미국을 지칭한 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승만이 미국에 생활하면서 1차세계대전 징집지원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은 1차세계대전에서 늦은 시기 1917년 4월 6일에 가서야 비로소 윌슨의 선전포고를 의회가 승인했고 1917년 4월 6일 대(對)독일 참전을 개시하였으며 1917년 5월 8일 징병법(Selective Service Act)이 통과되었고 이 법에 의해 20세에서 30세까지, 나중에는 18세에서 45세에 이르는 모든 남성들이 지역 징병위원회에 등록해야 했으며 이렇게 모집한 인원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미군이 6월 26일 프랑스에 상륙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동시에 지원을 막는 세력을 차단하기 위해 1917년 6월 15일 방첩법(Espionage Act)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엔 입대를 거부하거나 타인의 입대를 제지할 경우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던 것이다.
특히 이민자들에게 압박을 주게 되는데 황색언론을 매개로 하여 "당신은 100% 미국인인가? 그렇다면 입증하시오!(Are You 100% American? Prove It!)”라고 외쳤다고 하니 나이 44세의 이승만박사가 징집지원서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가 "japan" 이란 한 것은 미국이 선호했던 국명임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이 재펜이 미국 국명인지는 아직 확인할 수가 없다.

영국을 잉글랜드라고 해야하는지 아니면 브리튼 왕국이라 해야하는지 헷갈리지만 당시 미국정치적인들의 영국에 대한 호감을 보면 참고자료[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소리드림]에 내용에서 알 수 있다.

"당시 미국의 독립혁명을 주제로 하여 식민지 주민에 대한 영국의 잔학 행위를 묘사한 영화 <1776년의 정신>이 로스앤젤레스에서 상영되었고 영화를 제작한 사람은 위 1917년 6월 15일에 제정된 방첩법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며 이에 재판관은 그 영화가 “우리의 신뢰하는 연합국인 대영제국을 문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10년형을 언도했다"는 사실에서 1차세계대전때 영국은 미국의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미국독립전쟁때의 상대국인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1707-1801)과 어떻게 보면 다를 수 있다는 판단과 가정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즉 1776년 시기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은 고려이거나 대조선일 가능성이 매우높게 나타나기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 대로 일제(日帝)는 근본적으로 제정이 아니라 제국이어야 한다는 사실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당시 자본주의열강(資本主義列强:powers of capitalism)에 속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제국주의(帝國主義)는 독점기업과 금융자본의 지배가 이루어지고 자본의 수출을 중요시하는 것과 같이 영토 확장주의(imperialism)는 자본주의의 독점적 단계라고 보았을 때 당시 열도일본인들이 이처럼 자본주의 독점적인 위치에 있었지 않았다.

보도에 보면 미국이 당시 일본을 경제적으로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입에 젖꼭지를 물리는 삽화가 눈에 뜨이는 것이 있기때문이다.

이를 열도일본으로는 볼 수 없고 영국인지 멕시코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북아메리카대륙 뉴욕을 포함한 동부가 자본독점지역이라 할 때 이곳을 근원적으로 지배한 것은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1707-1801)으로 제정체제이고 이와같은 영국식민지(Colonial)형태를 일본이 가질 수가 없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했다고 하는 것에서 한반도는 결코 산업자본독점지역이 아니라는 말이다.

본 블로그에서 지적했듯이 미국이 사주하고 일루미나티에 의해 재정장악을 당한 일본을 일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유대자본에게 종속되었기 때문에 결코 일제가 될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일제는 누가가 되어야 하는가?

최종결론을 내리면 1.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유대자본의 국가조직체라 할 수 있다.

이 소제 끝으로 또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미국의 1차세계대전 참전하게 된 어설픈 동기이다.

2차세계대전에서도 죽 관망만하다가 열도일본의 무뇌한에 의한 불장난같은 한방에 의해 미국내 여론을 조성시키고 이어 참전하였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미국 윌슨대통령(Thomas Woodrow Wilson,1856-1924,재임:1913-1921)은 처음 1차세계대전에 참가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그런데 전쟁 막바지에 난데없이 멕시코의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그런체제가 될 수 없는 것으로 혁명의 지도자들 중에 한사람인 베누스티아노 카란사(Venustiano Carranza de la Garza,1859-1920)가 공개한 프로이센제국의 외무장관 아르투르 짐머만(Arthur Zimmerman:1864-1940)의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1917년 1월 16일자 전문때문에 미국내의 여론이 들끓게 만들었고 마침내 미국은 그것도 독일을 상대로 하여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독일이 무엇인가?

바로 독일제국을 통일했다고 하는 발트어계 프로이센인의 이름을 따 명명한 프로이센제국(普魯士:Preußen,Deutsches Reich:1871-1918)이라고 하였지만 앞에서 이를 허드슨베이지역에 있었던 발트족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때 독일은 유럽대륙이 아니라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미국과 거의 가까운 곳에 있었던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로 추측하였지만 북쪽 영국잉글랜드와 충돌한 세력으로 본 것이다.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유럽에서 영국과 전쟁을 하던 독일이 기어코 멕시코와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했을까?

이것은 다분히 픽션이 가미된 내용이라 할 수밖에 없다.

전보내용을 보면'멕시코가 텍사스와 뉴멕시코, 그리고 애리조나에서 상실했던 영토를 재점령하는 것을 독일이 양해한다'는 것과 '멕시코는 즉각 일본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것인데 도대체 정식적인 국가도 아니고 고려를 상대한 멕시코 반란군입장에서 고려를 쳐야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인데 미국이 이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것이 가당한 이야긴가?

대한제국이란 실체를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이미 미국과 관계가 아닌 별개문제로 미국은 이와 비슷한 또 다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는 사실을 추증할 수가 있다.

아마도 기득권을 주장하고 나설 각 유럽미완성국가들의 요구가 급증하고 그것을 통제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항목이다.

물론 이것과 강도가 비슷한 것이 전보로 인해 발발될 수 있는 소지가 미국에게 있었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독일이 내건 조건으로 열도일본을 멕시코가 동맹할 것은 주문한 것은 후일 픽션처럼 만든 것이 열도일본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도 한다.

그것은 열도일본이 아니라 당시 일본은 쿠바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감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독일은 왜 이런 멍청한 전문을 보내 미국내 여론을 자극했을까?

그렇다면 1차세계대전은 어디에서 벌어진 전쟁인가?

바로 북아메리카대륙이다.

즉 미국이 1차세계대전은 유럽전쟁이라고 강조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 계속 12. 유학파와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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