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慶尙道]5.사명부(四明府)는 봉화(奉化)

한부울 2011. 3. 16. 14:36

대륙조선 강역이 보인다-벽려(薜荔 : Ficus pumila) http://blog.daum.net/han0114/17050234

*************************************************

[慶尙道]

5.사명부(四明府)는 봉화(奉化)이고,

浙江省 (領十一府。一州七十六縣)。

○寧波府(名四明。領六縣)鄞縣(鄖山)慈谿(句章)奉化(仁湖)鎮海(蛟門)定海(昌國)象山(彭姥)-地輿名目(一十九省)

 

 

 


寧波市

市名沿革傳說夏時,寧波即有「鄞」的稱謂。這一稱謂作為縣名一直延續至今。

公元前473年(周元王三年),勾踐築城於句余,改稱句章,這是今寧波境內最早的城市。

公元前222年(秦王政二十五年)置會稽郡,寧波所屬地域設鄞、鄮、句章三縣。

621年(唐武德四年),句章、鄞、鄮3縣地置鄞州。

625年(唐武德八年),廢鄞州,鄞州屬地隸屬於越州。

738年(唐開元二十六年)分越州立明州,隸屬於江南東道。742年(唐天寶元年),明州改稱餘姚郡,隸屬於越州。

758年(唐乾元元年),復名明州。

1195年(南宋紹熙五年),宋寧宗趙擴即位,賜明州年號慶元,升為慶元府。

1276年(元至元十三年),改慶元府為慶元宣尉司。次年,改為慶元路總管府。1367年(元至正二十七年),改慶元路為明州府。

1381年(明洪武十四年),因明州同國號,且當時明州下轄定海縣(今鎮海區),取海定則波寧之義,始稱寧波。


奉化市在秦汉时属鄞县,晋至隋先后属句章县、鄮县。唐开元二十六年(公元738年)析鄮县置奉化县。县名由来,有三种说法。一说唐代明州的郡颇为奉化郡,以此县名;一说,以“民皆乐于奉承土化”而得名;一说,来源于县东奉化山。   

春秋时今奉化地属越国。

战国时属楚国。

秦王政二十五年(公元前222年),属会稽郡鄞县,县治设白杜里(今奉化白杜村)。

王莽始建国元年(公元9年)改鄞为谨。

东汉建武初年复改为鄞。

隋开皇九年(589年),并余姚、鄞、鄮三县入句章,治小溪。

奉化属句章县。

唐武德四年(621年)析句章为鄞、姚两州,下不设县。奉化属鄞州,州治三江口(今属宁波海曙区)。

唐武德八年(625年)废鄞州为鄮县,治小溪,隶越州。

开元二十六年(738年),江南东道采访使齐浣奏请朝廷析越州鄮县地,置鄮、慈溪、奉化、翁山四县;并置明州;奉化属明州,为上县,治所今市区锦屏街道,境域范围大致与今同。

宋时,奉化为望县。

奉化名由来,有三说:

1.元丰《九域志》:“州曰明,郡曰奉化,以郡名名县。”

2.南宋乡人陈著:“奉化为邑,以民皆乐于奉承王化得名。”

3.明嘉靖《奉化县图志》:“县东南五里,有山特起曰奉化。” 

元元贞元年(1295年)升为州。

明洪武二年(1369年)复为县,属明州府。

明洪武十四年(1381年)明州府改称宁波府。清沿明制,奉化属宁波府。   

1913年(民国二年)属浙江省第四地方。

1914年属会稽道。

1927年废道,直属浙江省。

1928年属鄞县区。

1936年属浙江省第六行政督察区。


四明山,又名句余山,是中国浙江省东北部的一座山脉,为天台山向北延伸的支脉,北接宁绍平原,跨余姚、鄞州、奉化、嵊州、上虞、新昌等县市,山脉整体呈南西-北东走向,为曹娥江和甬江水系的发源地和分水岭。四明山主体高度多在600至800米间,东北部余脉多在100-200米间,主峰金钟山位于嵊州境内,海拔1018米。四明山区主要景点包括四明山国家森林公园、雪窦山、四明湖、丹山赤水等。

*********************************

세종지리지

안동 대도호부◎ 봉화현(奉化縣)

본디 고구려의 고사마현(古斯馬縣)인데, 신라에서 이름을 옥마(玉馬)로 고쳐 내령군(柰靈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현종 무오년에 길주(吉州) 임내(任內)에 붙였다가, 공양왕 2년 경오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별호(別號)는 봉성(鳳城)이다. 소속된 부곡(部曲)이 2이니, 물야(勿也)와 매토(買吐)이다. 본디 안동(安東)에 붙였었는데, 공양왕 신미년에 이에 내속(來屬)시켰다.

진산(鎭山)은 문수산(文殊山)이요, 명산(名山)은 태백산(太白山)이다.【현(縣) 동쪽에 있다. 신라 때에 올려서 북악(北岳)으로 삼고 중사(中祀)에 실었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안동(安東) 임내(任內)인 재산(才山)에 이르기 23리, 서쪽으로 순흥(順興)에 이르기 27리, 남쪽으로 예안(禮安)에 이르기 26리, 북쪽으로 강원도 삼척 경계에 이르기 34리이다.

호수는 2백 43호, 인구가 4백 73명이며,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18명, 진군(鎭軍)이 29명, 선군(船軍)이 59명이다.

토성(土姓)이 4이니, 정(鄭)·금(琴)·석(石)·몽(蒙)이며, 속성(續姓)이 1이니, 권(權)이요,【안동에서 왔다. 지금 향리가 되었다. 】두 부곡(部曲)의 성이 각각 1이니, 모두 윤(尹)이다. 인물(人物)은 문하 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영렬공(英烈公) 금의(琴儀)이다.【고려 고종 때 사람이다. 】

땅이 메마르고, 기후는 추우며, 간전(墾田)이 1천 6결이다.【논이 10분의 3이 못된다. 】토의(土宜)는 벼·기장·조·보리·왕골이요, 토공(土貢)은 꿀·밀[黃蠟]·여우가죽·노루가죽·산달피(山獺皮)·돼지털·자리[席]·칠·잣이며, 약재(藥材)는 웅담(熊膽)·인삼·백복령이요, 토산(土産)은 신감초(辛甘草)·송이버섯·은구어이다.

역(驛)이 1이니, 도심(道深)이요, 봉화(烽火)가 1곳이니, 서산(西山)으로, 현 서쪽에 있다.【서쪽으로 안동 임내인 내성현(柰城縣) 봉화점(烽火岾)에 응한다. 지방이 궁벽하여 서로 응할 곳이 없고, 본현에서 변경(邊警)을 스스로 알 뿐이다. 】

월경처(越境處)는 안동 임내 춘양현(春陽縣) 소라 부곡(召羅部曲)이 의인(宜仁) 경계를 넘어 현(縣)의 동촌(東村)으로 들어왔고, 영천(榮川)의 동촌(東村) 상거탄(上居呑) 등의 마을이 예안(禮安) 경계를 넘어 현(縣)의 남촌(南村)으로 들어왔으며, 순흥(順興)의 동촌(東村)인 와단(臥丹)·두곡(豆谷) 등의 마을이 물야(勿也) 경계를 넘어 현(縣)의 동북촌(東北村)으로 들어왔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지

봉화현(奉化縣) 

동쪽으로 안동부(安東府) 경계에 이르기까지 31리, 서쪽으로 안동부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12리, 남쪽으로 예안현(禮安縣) 경계에 이르기까지 25리, 북쪽으로 강원도(江原道) 삼척부(三陟府) 경계에 이르기까지 74리, 서울에서의 거리는 4백 85리이다.

[건치연혁]본래 고구려 고사마현(古斯馬縣)이다.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옥마(玉馬)로 고치고 나령군(奈靈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에서 지금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顯宗)은 안동부(安東府)에 예속시키고, 공양왕(恭讓王)은 감무(監務)를 두었다. 본조 태종(太宗) 임금 때, 예에 따라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세조(世祖) 3년에 순흥(順興) 문수산(文殊山)의 물 동쪽의 땅을 떼어서 예속시켰다.

[풍속]절약ㆍ검소를 숭상하며, 누에치기ㆍ뽕나무 가꾸기에 힘쓴다 관풍안(觀風案)에 있다.

[산천]금륜봉(金輪峯) 현 북쪽 2리에 있으며 진산(鎭山)이다. 문수산(文殊山) 현 북쪽 30리에 있다. 태백산(太白山) 현 북쪽 73리에 있다. 고려 최선(崔詵)의 예안(禮安) 용수사(龍壽寺) 기(記)에, “천하의 명산(名山)은 삼한(三韓)에 많고, 삼한(三韓)의 명승(名勝)은 동남(東南)이 가장 뛰어나다. 동남의 거산(巨山)은 태백(太白)이 우두머리가 된다.” 하였다. 태자산(太子山) 현 남쪽 35리에 있다. 용점산(龍岾山) 현 서쪽 13리에 있다. 파탄암현(破呑巖峴) 태백산의 남쪽에 있으며 험한 곳이다. 강원도(江原道) 삼척부(三陟府)와의 경계이다. 신라현(新羅峴) 현 남쪽 15리에 있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라 왕의 태자(太子)가 내령군(奈靈郡)에서 놀다가, 군리(郡吏)의 딸을 사랑하게 되었다. 오래되니 고을 사람에게 부끄러워 살며시 돌아와 여기서 머물렀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매토천(買吐川) 매토부곡(買吐部曲)에 있다. 근원이 태백산의 황지(黃池)에서 나오는데, 바로 예안현(禮安縣)의 나화석(羅火石) 상류(上流)이다. 물야계(勿也溪) 현 북쪽 18리에 있다. 근원이 문수산에서 나와, 내성현(奈城縣)을 지나, 영천군(榮川郡)의 동쪽에 이르러서 임천(臨川)이 된다. 도미천(道美川) 현 동쪽 15리에 있다. 그 근원은 태백산에서 나오고, 매토천으로 들어간다. 『신증』 망일봉(望日峯) 현 서쪽 2리에 있다. 용연(龍淵) 태백산 아래 있다. 가물 때 기우(祈雨)하면 응험이 있다.

[토산]잣[海松子]ㆍ석이버섯[石蕈]ㆍ인삼(人蔘)ㆍ수달(水獺)ㆍ산무애뱀[白花蛇]ㆍ석청[石淸蜜]ㆍ송이[松蕈]ㆍ은어[銀口魚]

[불우] 태자사(太子寺) 태자산(太子山)에 있다. 신라 병부 시랑(兵部侍郞) 최인연(崔仁渷)이 지은 승랑공탑명(僧朗空塔銘)과 고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 김심언(金審言)이 지은 승통지납명(僧通眞塔銘)이 있다. 지림사(智林寺)ㆍ금정암(金鼎菴) 모두 문수산(文殊山)에 있다. 남화사(覽華寺) 태백산에 있다.

[고적]물야부곡(勿也部曲) 별호는 모산(冒山)이다. 현 북쪽 10리에 있다. 양곡부곡(良谷部曲) 현 서북쪽 7리에 있다. 매토부곡(買吐部曲) 별호는 청둔(靑芚)이다. 본래 안동부(安東府)에 속해 있었는데, 고려 공양왕(恭讓王) 3년에 여기로 귀속되었다. 현 동쪽 14리에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