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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1.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창평(昌平)

한부울 2011. 3. 16. 13:29

대륙조선 강역이 보인다-벽려(薜荔 : Ficus pumila) http://blog.daum.net/han0114/1705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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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道] 

1.순천부(順天府)는 지금의 창평(昌平)이고,


충청도 순천부(順天府) 대흥(大興)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창평(昌平)


湖南省(領九府。七州。六十四縣)。

○岳州府(名岳陽。領四縣)巴陵(巴邱。附府)臨湘(陸城)華容(安南)平江(昌平)-地輿名目(一十九省)

 

 

 


岳州府沿革

洪武二年(1369年),岳州路改为岳州府,领县四(巴陵县、华容县、临湘县、平江县)。

洪武九年(1376年),岳州府降为岳州,巴陵县省入州。

洪武十四年(1381年),岳州复升为岳州府,恢复巴陵县。

洪武三十年(1397年),将常德府所属的澧州(辖安乡、石门、慈利等县)改属岳州府

雍正七年(1729年),澧州升为为直隶州,割石门县、慈利县、桑植县隶之。岳州府仍领县四。

光绪二十五年(1899年),岳州府开为通商口岸。

民国二年(1913年),废府存县,岳州府废。


岳州   

南朝宋置巴陵郡,梁兼置巴州,隋郡废,改巴州曰岳州,又改罗州,寻曰巴陵郡,唐复置巴州,寻仍曰岳州,又改为巴陵郡,后复曰岳州,

宋曰岳州巴陵郡,元为岳州路,

明改为岳州府

清因之,属湖南省,治巴陵县,

民国废府,改县为岳阳。   


岳州   

州、府、路名。

隋开皇九年(589年)改巴州置州。治巴陵(今岳阳市)。

唐辖今湖南洞庭湖东、南、北沿岸各县地,后略小。

元改为路,

明改为府。1913年废。


昌平历史

昌平历史悠久,早在6000多年前祖先就已在境内雪山、南口等地繁衍生息。

周初属蓟国,后归燕国,西汉时期始设昌平县,故治在今区东南沙河镇辛力庄。

明景泰三年(1425年)迁县治于永安城(现昌平镇)。

明正德元年(1506)县升为州(辖怀柔、密云、顺义三县)。

民国2年(1913)撤州设县。抗日战争、解放战争时期在县西部和北部地区建立中国共产党领导的昌宛、昌延、昌平、昌顺联合县等民主革命政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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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지리지

장흥 도호부◎ 창평현(昌平縣)

영(令)이 1인.

본래 백제의 굴지현(屈支縣)이었는데, 신라에서 기양현(祈陽縣)으로 고쳐서【일명 명평(鳴平)이라고 한다. 】무주(武州)5139) 의 영현(領縣)으로 하였고, 고려에서 창평현(昌平縣)으로 고쳐서 나주(羅州)의 속현(屬縣)으로 하였는데, 본토 사람의 속설에 전하기를, “현리(縣吏) 탁자보(卓自寶)가 남적(南賊)을 제압한 공이 있어서 현령(縣令)으로 승격되었다.”하며, 본조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고속현(古屬縣)이 1이니, 갑향(甲鄕)이요, 부곡(部曲)이 1이니, 장평(長平)이다. 위의 갑향과 장평은 고려 때 본현(本縣)에 속(屬)하였다가 뒤에 나주에 이속(移屬)하였고, 그 뒤에 광주(光州)에 이속(移屬)하였으며, 공양왕(恭讓王) 3년 신미에 부근(附近)으로써 본현에 환속(還屬)하였다.

사방 경계[四境]는 동·북쪽이 담양(潭陽)에 이르는데, 동쪽이 9리, 북쪽이 8리요, 서쪽으로 무진(茂珍)5140) 에 이르기 10리, 남쪽으로 동복(同福)에 이르기 26리다.

호수가 2백 19호요, 인구가 9백 52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34명이요, 영진군이 45명이요, 선군이 1백 38명이다.

토성(土姓)이 6이니, 안(安)·조(曺)·신(辛)·정(丁)·김(金)·탁(卓)이요, 경래성(京來姓)이 3이니, 이(李)·함(咸)·정(鄭)이요, 속성(續姓)이 1이니, 문(文)이다.【개성(開城)에서 왔는데, 향리(鄕吏)이다. 】장평(長平)의 성이 4이니, 신(辛)·현(玄)·김(金)·원(元)이요, 망성(亡姓)이 1이니, 박(朴)이요, 갑향(甲鄕)의 성이 2이니, 진(陳)·승(昇)이다.

땅이 기름진 것이 10분의 4가 되며, 간전(墾田)이 2천 5백 77결이요,【논이 조금 많다. 】토의(土宜)가 오곡·뽕나무·삼[麻]·목화이다. 토공(土貢)이 여우가죽·삵괭이가죽·족제비털[黃毛]·잘·가뢰[斑猫]·꿀·밀[黃蠟]·칠(漆)·대추·감·생모시·잇[紅花]이요, 약재가 녹각상(鹿角霜)·겨우살이풀뿌리[麥門冬]·난향(蘭香)이요, 토산(土産)이 가는 대·왕대이다. 철장(鐵場)【현의 남쪽 심곡리동(深谷里洞)에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 지리지

창평현(昌平縣) 

동쪽은 옥과현(玉果縣) 경계까지 25리, 담양부(潭陽府) 경계까지 11리, 북쪽은 담양부(潭陽府) 경계까지 11리, 남쪽은 동복현(同福縣) 경계까지 34리, 서쪽으로 광산현(光山縣) 경계까지 11리이며, 서울에서는 7백 52리 떨어져 있다.

[건치연혁]본래는 백제의 굴지현(屈支縣)이다. 신라 때 기양현(祈陽縣)으로 고쳐 무주(武州)에 부속시켰고, 고려 때에는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어 일명 명평(鳴平). 나주(羅州)에 부속시켰다. 전하는 이야기에, 현의 아전 탁자보(卓自寶)가 남적(南賊)을 막은 공이 있어 현령으로 승진되었다. 공양왕(恭讓王) 3년에 장평갑향 권농사(長平甲鄕 勸農使)를 겸하게 되었고, 본조에서도 이에 따랐다. 성종(成宗) 5년 현인(縣人) 강구연(姜九淵)이 현령 전순도(全順道)를 능욕한 일로 광주에 예속시켰다가 10년 만에 다시 전대로 하였다.

[산천]고산(高山) 현의 동쪽 5리에 있다. 진산(鎭山)이다. 무등산(無等山)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광산(光山) 조에 자세히 나온다. 진압산(鎭壓山) 현의 동쪽 5리에 있다. 반룡산(盤龍山) 현의 동쪽 15리에 있다. 몽선산(夢仙山) 현의 서쪽 30리에 있다. 용구산(龍龜山) 현의 북쪽 5리에 있다. 목맥산(木麥山) 현의 북쪽 5리에 있다. 고산천 고산(高山)에서 나왔다. 현의 북쪽 3리에 있다. 죽록천(竹錄川) 무등산에서 나와 용담대(龍潭臺) 아래를 지나 북쪽으로 흘러 고산천(高山川)과 합하여 담양부의 원율천(原栗川)으로 들어간다. 『신증』 경지(境地) 현의 서쪽 5리에 있다.

[토산]대[竹]ㆍ감ㆍ석류ㆍ대추. 철 철은 무등산에서 나온다. 옻ㆍ자연동(自然銅).

[불우]서봉사(瑞峯寺) 무등산에 있다. 고산사(高山寺) 진압산(鎭壓山)에 있다. 월령사(月影寺) 반룡산(盤龍山)에 있다. 사원사(上院寺) 몽선산(夢仙山)에 있다.

[고적]장평 부곡(長平部曲)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 갑향(甲鄕)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 고려 때에 나주(羅州)에 이속(移屬)시켰다가 다시 광주(光州)에 부속시켰고, 공양왕(恭讓王) 3년에 다시 내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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