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SINA-신중국

철문관(鐵門關)과 우즈베키스탄

한부울 2010. 9. 5.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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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관(鐵門關)과 우즈베키스탄

正音(2008-04-17)

 


철문관(鐵門關)과 우즈베키스탄에 관한 요약


"역사상에 존재하는 철문관(鐵門關)은 현재의 지나 대륙의 신장자치구에 있고, 이 철문관[鐵門關]은 고대에 타림 분지로 들어서는 중요한 길목으로, 진대(晉代 : 265~420)에 이곳에 관문을 설치했다. 당대 시인 잠삼(岑參)의 시 "제철문관루 題鐵門 關樓"는 이곳을 읊은 것이다."-("다음 백과-현재의 학설)


역사상에 자주 등장하는 갈석(渴石)이 있는 지역은 "살마아한(撒馬兒罕)"지역이고, 이 지역에 철문관(鐵門關)있고 이곳의 철문관에 대해 당나라 시인 잠삼이 시(詩)를 읊었다.-(지봉유설)


"14년(태조 16, 1221), 철목진이 복합아(卜哈兒)ㆍ설미사간(薛迷思干) 등의 성을 함락하고 군사를 철문관(鐵門關)에 주둔시키니, 철문관은 살마아국(撒馬兒國)에 있다."-(청장관전서 제23권)


"살마아한(撒馬兒罕)"은 "사마르칸트(Samarkand)의 음역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로,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아강 유역에 있다."-(한국 고전 번역원의 주석)


"서(西)투르키스탄 중앙에 있는 소그디아나와 남쪽 박트리아의 경계 협도(峽道)"이며 "사마르칸트에서 테르메스에 이르는 도로에 있으며 철문이 설치되 있다."

 

7세기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8세기 투르크인의 비문,15세기 에스파냐의 "크라비호의 기행문",명나라 진성의 여행기에서 철문관에 대한 기록을 볼수 있다." -(두산백과)


".........원 태조(元太祖)가 중원(中原)에 들어올 때에 20나라를 멸(滅)하고 서하(西夏)까지 미쳤으며, 하(夏)나라가 망하자 금(金)나라를 침범하였고, 금나라가 망하매 송(宋) 나라를 침범하였사온데, 송나라와 금나라가 채 망하기 전에 친히 서역(西域)을 정벌하여 철문관(鐵門關)에까지 이르고..." -(세종실록 32년)


결론; 역사상에 존재하는 철문관(鐵門關)의 실체는 오늘날의 신장자치구가 아닌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지역이다.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지역의 철문관(鐵門關)이 역사상의 철문관이며 징기스칸 당시의 철문관이다. "세종실록"의 기록처럼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밖의 서쪽지역이 서역방면이며 그 서역방면에 서하(西夏)가 있었으며 금(金)나라가 있었음을 알수있다.


다시말해서 사마르칸트 서쪽지역이 옛날의 만주이며, 요동, 요서지역 이었다. 이 철문관은 서역과 동북아시아(혹은 대륙의 중조)의 경계지점 이었던 것이다.


현 대륙의 역사관에서 철문관이 신장자치구에 있었다는 것은 다분히 과거 서구열강 시대때  서세동점기 시기에 서구인들에 의한 아시아 지배의 정당성 차원에서, 역사를 왜곡하였는데, 왜곡하는 방법론으로 아시아의 역사의 강역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역사의 강역의 이동시켰던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있던 역사를 중앙아시아 동쪽으로 그 중앙아시아의 동쪽에 있었던 역사를 다시 대륙의 본토와 한반도로 이러한 왜곡을 주도한 것은 서구열강과 일본이라는 것이다. 철문관이 우즈베키스탄에 있었다는 기록을 검증하면서 ,고려가 어떻게? 카스피해, 아랄해를  활동강역으로 하는 철륵(鐵勒)을 번국으로 삼고 병력을 징발할 수 있었나?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철문관(鐵門關)과 영평부(永平府)와의 관계


"임성포(林城浦)가 영평부(永平府)에 있다.【병선이 7척이요, 군사가 2백 2명이다."-(세종실록 지리지 함길도)


"......풍윤현에는 아골산(鴉鶻山)ㆍ영응산(靈應山)의 두 산은 서북에 있고, 진궁산(陳宮山)은 북에 있고, 애아구산(崖兒口山)은 동북에 있고, 마두산(馬頭山)ㆍ명월산(明月山)ㆍ요대산(腰帶山) 세 산은 동에 있었는데 아골산만이 성에 가깝게 있었습니다. 신 등은 또 임성포(林城鋪)를 지나서 의풍역(義豐驛)에 이르렀습니다." -(표해록(漂海錄) 제3권)


".....풍윤(豐潤)은......옹정(雍正) 연간에 고쳐서 영평부(永平府)에 예속시켰다...."-(연행기(燕行紀) 제4권)


"고죽산(孤竹山)은 부성의 서쪽 20리에 있다. 《수경(水經)》의 주(注)에 ‘고죽사(孤竹祠)는 산상(山上)에 있고, 고죽국 성(孤竹國城)은 산의 곁에 있는데, 일명 동산(洞山)이라고도 한다.’ 하였다.....(중략)......난하는 영평부성의 서쪽 5리 남짓한 곳에 있는데, 그 근원이 독석구(獨石口) 밖 동북쪽에서 나온다. 옛날의 개평(開平) 땅을 지나서 700리를 흘러 구류하(九流河)가 되어 희봉구(喜峯口) 밖에 이른다. 유하(柳河), 관하(寬河), 철문관(鐵門關)의 물이 있어 모두 여기에 흘러든다."-(연행기(燕行紀) 제4권)


"백이(伯夷)ㆍ숙제(叔齊)의 나라는 북해(北海) 가에 있었는데, 고죽국(孤竹國)이라 이름한 것은 무슨 의의이며.."-(다산시문집 제9권 책문)


"해가 뜰 무렵에 길을 나서 진자점(榛子店)에 이르러 점심 식사를 하고, 칠가령(七家嶺)에 이르러, 길가에 세우고 말하기를, ‘난주서편지경[灤州西境]’이라 하였으니, 열하(熱河)를 또 난하(灤河)라 일컫는지라. 대개 난하물이 북으로 흘러 열하에 이르러 합하여 흐르기 때문에 열하를 또한 난하라 함이더라."-(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제6권)


"난하(灤河)-하북성 북부의 몽골고원 남부에서 발원하여, 많은 지류와 합류하며, 남동쪽으로 흘러내린다."-(두산백과)


결론;"다산시문집"에서는 백이, 숙제의 나라인 고죽국이 북해(北海)가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북해는 막연한 글이 아니다. 왜냐하면 서역과 대륙의 중조의 경계선인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의 철문관을 기점으로 보면, 그 경계선상의 서북쪽방향인 아랄해 또는 카스피해를 가리킨다고 본다. 여기서 영평부와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를 언급하는 이유는 철문관 때문이다. 역사상의 진정한 철문관은 우즈베키스탄에 있기 때문이다.


연행기 4권의 기록처럼 대륙 영평부의 난하(灤河)의 물줄기에 합류되는 물줄기 중에 철문관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있다. 역사상의 진정한 철문관은 우즈베키스탄의 철문관 이므로 이곳의 물줄기에 해당되는 강은 "아무다리아강"이다. 이 강이 영평부에서 발원하는 난하(灤河)에 합류된다. 난하의 별칭은 열하(熱河)이다. 아마도 그 일대가 무덥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일 것이다.


대륙의 지명이나 하천의 위치 비정이 잘못된 대표적인 것은 난하라고 본다. 현재의 대륙의 난하는 가짜라고 본다. 왜냐하면 "두산백과"를 보면 현재의 난하는 남동쪽으로 흐른다고 하지만, 옛날의 조선의 기록인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에서는 "난하가 북쪽으로 흘러 열하에 합류된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서 현재의 난하와는 엄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대륙의 영평부의 위치를 왜곡된 조작된 것으로 본다. 우즈베키스탄의 철문관의 물줄기인 "아무다리아강"이 흘러서 난하에 합류되다고 하는데 진정한 난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지역 그 주변 강역의 하천이 진정한 난하가 있을 것이다.


영평부와 우즈베키스탄의 관련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또한 조선의 세종실록 지리지 영평부 기록과 관련짓는 이유 또한 철문관 때문이다. 조선의 철관이 있는 지역은 함길도 이다. 함길도는 조선의 북방 강역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함길도에 없는 행정지명인 "영평부(永平府)"를 언급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함길도 영평부에 대한 전거가 없다. 기록상의 오류로 보기에는 조선의 영평부 관련 기록이 너무도 상세하다. 조선의 영평부에 속한 임성포(林城浦)는 대륙의 대한 기록에서 찾을수 있었다.(표해록(漂海錄) 제3권) 이것은 기록상의 오류가 아닌 역사조작의 흔적이다. 역사 조작자가 조선에 속한 영평부를 삭제하는 과정에서 세종실록 지리지의 함길도 총론에 대한 부분을 간과했기 때문에 나타난 실수였던 것이다. 영평부는 본래 함길도에 속한 행정지명이었으며, 함길도의 철관지역은 대륙의 영평부에 속한지역이 아니면 그 근방의 지역일 것이며, 함길도의 철관이 우즈베키스탄의 철문관과 동일한 지명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한반도와 지나 대륙에 대한 이질적인 기록>


"해가 뜰 무렵에 길을 나서 진자점(榛子店)에 이르러 점심 식사를 하고, 칠가령(七家嶺)에 이르러, 길가에 세우고 말하기를, ‘난주서편지경[灤州西境]’이라 하였으니, 열하(熱河)를 또 난하(灤河)라 일컫는지라. 대개 난하물이 북으로 흘러 열하에 이르러 합하여 흐르기 때문에 열하를 또한 난하라 함이더라."-(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제6권)


"난하(灤河)-하북성 북부의 몽골고원 남부에서 발원하여, 많은 지류와 합류하며, 남동쪽으로 흘러내린다."-(두산백과)


압록강을 건너서 북경에 이르기까지는 땅이 모두 모래이고, 요동들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왕래하는 거마가 더욱 많고 모래는 더욱 미세해서 바람만 불면 휘날려서 마치 연기나 안개가 낀 것과 같다. 관내(關內)로 들어가면서 더욱 심해서 비록 바람이 없는 날이라도 수레바퀴, 말발굽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것이 마치 횟가루가 날듯 해서 사람의 옷과 모자에 붙는다. 교자(轎子) 안에서는 사(紗)를 내려서 막지만 워낙 미세하기 때문에 새어 들어오기가 더욱 쉬워서 잠깐 사이에도 언덕처럼 쌓인다.-(경자연행잡지(庚子燕行雜識)


영평부(永平府)-서쪽으로 연경이 500리 떨어져 있다.


사하역(沙河驛)-이곳에서는 길이 모래돌 가운데로 나 있는데 모래가 말 배까지 묻힌다. 만약에 바람을 만나게 되면 먼지가 하늘을 덮어 사람은 길을 가지 못한다. 연(燕) 땅의 길 중에서 가장 괴로운 곳인데, 모래 길이 수십 리나 된다. 역 마을에는 역시 무너진 성이 있다.-(계산기정(薊山紀程) 제2권)


"무릇 이 지방 토질은 요동에서 북경까지가 모두 곱고 부드러우면서도 찰져서 해동(解凍) 때나 장마 때는 바퀴에 붙어 지나가기 어렵고, 또 집 벽에다 바르면 빗물이 스며들 걱정이 없다. 그런데 곱고 부드러운 이 흙은 다 모래여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마치 연무(煙霧)처럼 먼지가 인다. 그래서 아무리 큰 눈이 쏟아져도 이 먼지와 뒤범벅이 되어 버리면 이내 눈발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는데 그중에도 사하역(沙河驛)이 제일 심하다. 산해관 안쪽은 왕래하는 거마(車馬)가 더욱 많아서 밤낮으로 먼지를 일으키어 아주 바람이 없는 때라도 꼭 잿가루가 날리는 것같이 분분하다. 이것이 사람의 의복이나 모자에 붙으면 잠깐 사이에 모습을 변화시켜서 동행자끼리도 언뜻 보면 누가 누군지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 된다. 머리카락이나 수염에 붙으면 닦아도 떨어지지 않고, 입속으로 들어간 것을 씹으면 사각사각 소리가 나기도 한다.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이 먼지가 종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이불 위에 쌓여 있다. 심지어는 겹겹으로 된 장롱이나, 두세 겹씩 봉해 놓은 병 속에까지 뚫고 들어가니 참으로 괴상한 일이다. 저자 가게나 인가에 벌여 놓은 기물들은 닭털로 된 털이개를 가지고 끊임없이 털어 내는데, 잠시라도 멈추면 또다시 쌓이곤 한다. 바람이 불면 길 가는 사람은 눈을 뜨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북경이 가장 심한데, 이곳은 석탄(石炭) 앙금으로 된 지방으로서 가루가 쌓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옛날 문자의 ‘치진(緇塵 세상 풍진 속에 분주하여 의복이 더럽혀짐)’이란 것이 곧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연원직지(燕轅直指) 제6권)


위에서 상술한 것처럼 난하 관련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과 두산백과의 내용을 보면, 현재의 난하(灤河)가 옛 기록과 옛날의 난하가 아니라는 것이 알 수 있습니다.


경자연행록의 기록을 보면 한반도의 압록강의 주변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집니다. 압록강을 건너 북경까지 모두 모래이며 미세한 바람에 연기나 안개가 낀것 같으며 관내로 들어오면 더욱 심하며, 교자안에서 모래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도 잠깐 사이에 모래가 언덕처럼 쌓인다는 기록을 보면 여기의 상황은 사막을 말하는 겁니다. 그것도 어설픈 지역이 아닌 완전한 사막을 말합니다. 그 사막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전개된다는 기록 입니다. 오늘날의 황사현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겁니다. 왜냐하면 압록강을 건너면 땅 자체가 모두 모래이며 요동으로 가면 더욱더 심하다는 기록 때문 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나오는 사막 관련 기록의 사막은 단순히 비유적인 기록이 아닌 진짜 사막을 말하는 것을 증명하는 기록입니다. 계산기정의 기록은 영평부에 머믄 당시의 기록인데,서쪽으로 연경이 500리 떨어진 지역인 사하역은 사막의 표본적인 아니 엄청난 사막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래가 말 배에 까지 묻히고 바람이 불면 먼지가 하늘을 덮어 길을 가지도 못하며 이 땅은 옛날 연(燕)의 땅이며, 그 모래길이 수십리나 된다는 기록 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한반도를 기점으로 본다면 과연 이치에 타당한 기록일까요?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사막이 전개된다는 이 기록은 조선 후기 조선의 기록입니다. 단순히 사막이 있다는 글만이 있는게 아니라 조선에서 청나라의 연경까지의 기행에서 사막에서 겪은 일들을 기록했는데 조선에서 연경까지의 기행 중에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사막이 전개되고 또한 이렇게 많다는 기록입니다. 단순히 모래먼지만 부는 지역이 아닌 말의 배까지 차오르는 사막지역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연경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막을 통과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막이 있는 지역에 영평부가 있었습니다. 또한 옛날의 연(燕)또한 사막을 끼고 있었음임 증명된 겁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함경도, 영안도가 사막을 접한 지역이라는 기록과 함경도가 막북의 춥고 괴로운 지역이라 기록한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연원직지의 기록 또한 사막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산해관 지역도 사막지대임을 알 수 있고, 북경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북경 또한 사막기후와 같은 현상을 말하고 있고, 북경쪽이 아주 심한 지역이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북경은 석탄앙금으로 된 지역 이어서 더욱 그렇다는 기록 입니다. 다시 말해서 북경지역이 탄광지역이라는 기록으로도 볼 수 있다고 봅니다. 오늘날의 북경이 석탄앙금으로 된 탄광지역인지 아닌지 저도 알 수가 없지만 석탄탄광지역이 아니라면 오늘날의 북경이 완전 가짜임이 증명된다고 봅니다.[우리역사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