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고려 예성강은 장강(長江)에 있었다.

한부울 2010. 4. 24. 16:25

조선왕조실록에서 말하는 장강(長江)! http://blog.daum.net/han0114/17049756

고시(古詩)로 보는 장강(長江) http://blog.daum.net/han0114/17049758 

목은 이색(李穡)은 대륙사람인가? http://blog.daum.net/han0114/17049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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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예성강은 장강(長江)에 있었다.


문익점이 태어난 년도이기도 한 기사년(1329 충숙왕16년)에 가정 의곡(李穀1298년~1351)은 예성강(禮成江)에 배를 띄웠다가 애를 먹었던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싯귀이다.

여기서 다르게 볼 것은 어디에도 없다.

사실 그대로 느낀 그대로 우리가 해석하고 이해하면 그뿐인 것이다.

아래 싯귀에서 우리가 예성강이라고 알고 있지만 기실 장강이라는 풍광이 강하게 느끼게 하는 몇 가지 문장을 빌어 상기해보고자 한다.


첫째.[5言詩] 첫머리 장강반고창(長江半篙漲) 장강의 물이 상앗대 반쯤 불어났기에 란 문장에서 상앗대는 물가에서 배를 떼거나 언덕에 댈 때 배를 미는 장대인데 장강에 홍수가 있어 상앗대 반쯤정도 물이 불어났다는 이야기다. 장강(長江)이 어딘가? 바로 지금의 양자강이다.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모수당염예(莫愁當灔澦) 염여에 당했다고 걱정할 것 있나 에서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험하다는 장강(長江)구당협(瞿塘峽)의 여울물 이름으로 염여퇴(灩澦堆)라고 한다는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중국어사전에 염여퇴가 아닌 염예퇴로 읽고 예(澦)는 강 이름으로서 단독으로 쓰일 수 없는 단어라고 나온다.


滪 [yù]  

강 이름-예

단독으로 쓰일 수 없으며, ‘滟yàn滪堆’를 구성하는 형태소가 됨.


그렇다면 분명 예성강(禮成江)이란 예가 예도(禮度) 예(禮)가 아니고 바로 강 이름 예(澦)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구당(瞿塘)이란 이름은 일찍부터 있었다고 하여 구(瞿)는 뜻에 부합한다 하지만 당(塘)은 저수지나 못을 나타냄과 동시에 제방이나 뚝을 뜻하는 것이라 흐르는 강과는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염예퇴(滟滪堆)는 장강(长江)구당협(瞿塘峽)협구(峽口)에 큰 바위가 있었다 하여 중공정부가 1958년 수로를 정비하면서 폭파했다는 돌 이름이다. 그냥 놔 두어도 될 것이라고 보이는 것인데 무엇때문에 없애버렸는지 여러가지 면에서 숨은 의도를 의심케 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예(澦)는 예성강을 나타내고 해석하는데 모자람이 없는 단어이다.

고려때 문신 가정 이곡이 배를 띄워 건너기를 시도 한 곳은 바로 장강 구당협(瞿塘峽)이라 보이고 그곳을 제목에 있는 것처럼 예성강이라 한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셋째.해동역사(海東繹史) 산수(山水)편 예성강(禮成江) 저탄(豬灘)을 덧 붙인다 란 기록에서

송사(宋史)고려열전에 예성강은 두 산 사이에 있는데, 돌 협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데, 이것이 이른바 급수문(急水門)으로 몹시 험악하다 라 했으며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급수문은 그 문이 바다 섬과는 닮지 않았으며, 흡사 무협(巫峽)의 강로(江路)와 같았다. 산이 둘러싸고 굴곡을 이루면서 앞뒤로 서로 이어졌는데, 그 양쪽 사이가 바로 물길이다. 수세가 산협에 묶여 놀란 파도가 해안을 치고 구르는 돌이 벼랑을 뚫어, 요란하기가 우레가 울리는 것과 같다하고 있다.

해동역사는 중국 것이라고 인용을 하면서 이상하게 스스로 반도사의 첨병인 것처럼 기록이 매우 헷갈리는 면이 많다. 비슷하다거나 같다란 표현이 거의 설명에 장식을 하고 있어 정확한 진의를 파악할 수 없도록 축약하는 느낌을 주는 기록이다. 때문에 무협(巫峽) 강로(江路)와 같았다는 것은 무협과 구당협은 다르다는 것을 표현 한 것이라고 보인다.


[2]임하필기(林下筆記) 제13권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물의 조종(祖宗) 열둘  


예성강(禮成江)인데 그 근원이 수안(遂安)의 언진산(彦眞山)에서 발원하며, 남쪽으로 흘러서 흑석탄(黑石灘)이 되고 성천(成川)을 지나 미라산(彌羅山) 동방포(東方浦)에 이르러서 벽란도(碧瀾渡)가 되는데, 수룡산(秀龍山), 성거산(聖居山), 천마산(天磨山)의 서쪽 지방과 총수산(葱秀山), 멸악산(滅惡山), 운달산(雲達山) 이동 지방의 모든 산의 물이 이 강으로 흘러든다.


中國古代地名大詞典: 

黑石灘: 在四川奉節縣東三十裡,《吳船錄》瞿唐峽中有黑石灘,最號險惡。


네째.[2]항에 보듯이 임하필기 예성강 기록에서 근원을 언진산(彦眞山)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흑석탄(黑石灘)이 되고 성천(成川)을 지나.....에서 중국고대지명대사전(中國古代地名大詞典)에 흑석탄(黑石灘)을 대륙사천(四川) 중경시(重庆市) 봉절현(奉節縣) 동쪽 30리에 있고 구당협중유흑석탄(瞿唐峽中有黑石灘)즉 구당협 중간에 흑석탄이 있으며 최고로 험악한 곳으로 불려진다라는 설명이다.

  

 

 


다섯째.종욕도봉래(終欲到蓬萊) 끝내는 봉래에 이르고 말 텐데 뭘...

봉래(蓬萊)는 우리 고서에서 금강산(金剛山)의 이명(異名)이라고 하였다.

한반도 예성강은 동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무심하게 강 흐름을 따라 가면 어디로 가겠는가? 서쪽 하류 서해바다일 것이다.

그러나 위 문장에서는 바로 봉래(蓬萊) 금강산으로 갈 텐데 뭘,,,걱정하느냐 하면서 동시에 자연의 이치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예성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는 강을 말하는 것이고 그 강 하류에는 서해가 아니라 봉래(蓬萊) 금강산이 나온다는 말이다.

때문에 이 문장은 한반도 예성강을 두고 한 표현이 분명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섯째.[7言詩]하해동류상우공(河海東流想禹功)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것은 생각건대 우의 공이다...란 글에서

이 시 전체에서 직접적으로 비유하지는 않았지만 이곡은 장강(長江)즉 예성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설명도 그렇지만 예성강(禮成江)에서 배를 띄웠다가 강어귀에서 바람에 막히다 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장강은 하나라 시조 우(禹)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 하여 강이 범람하지 않도록 한 것으로서 자연의 이치에 따라 동쪽바다로 흐르게 한 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 예성강은 어디로 흐르는가?

동해(東海)가 아닌 서해(西海)쪽으로 흐르고 동(東)쪽이 아닌 서(西)쪽으로 흐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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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집 제15권

고려 말기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 이곡(李穀1298~1351호:가정)의 시문집. 아들 색(穡)이 편집하고 사위 박상충(朴尙衷)이 간행하였으나 고려말 조선의 건국과정에서 소실되었다.

율시(律詩)

천력(天曆) 기사년(1329)에 예성강(禮成江)에서 배를 띄웠다가 강어귀에서 바람에 막히다 2수


[5言詩]

長江半篙漲 장강의 물이 상앗대 반쯤 불어났기에

淸曉片帆開 맑은 새벽에 띄운 조각배 한 척

風伯知誰怒 풍백이 도대체 누구에게 노했는지

天公不我哀 천공도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봐

靑蘋纔吐氣 청빈이 기운을 내뿜자마자

白浪已成堆 벌써 산더미 같은 흰 물결

雨脚橫空遠 공중 저 멀리 빗발이 비끼자

濤聲捲地廻 땅을 말면서 휘도는 파도 소리

畏途連海岳 바다와 산악에 이어진 무시무시한 길

屯象値雲雷 구름과 우레의 둔의 상을 만났군 그래

利涉思前訓 건너는 게 이롭다는 옛 가르침 생각하며

徐行戒後來 천천히 갈 것을 후배들에게 당부하노라

莫愁當灔澦 염여에 당했다고 걱정할 것 있나

終欲到蓬萊 끝내는 봉래에 이르고 말 텐데 뭘

只爲庭闈念 다만 고향의 어버이 생각 때문에

歸心日夜催 돌아가고픈 마음 밤낮으로 쫓길 따름


[7言詩]

河海東流想禹功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것은 생각건대 우의 공

南檣北楫遠相通 남쪽 돛 북쪽 노가 멀리 서로 통하게 됐네

何人睡足連江雨 강 가득 자욱한 빗속에서 누구는 실컷 잠을 자고

有客愁深盡日風 온종일 부는 바람 속에서 객은 시름이 하 깊도다

一葉簸掀冥晦裏 어둠 속에 가랑잎처럼 나부끼는 조각배요

群山出沒有無中 아무 것도 없는 속에 출몰하는 산들이라

敢希魯國乘桴叟 뗏목을 탄 노나라의 어른을 감히 본뜨리오

擬向磻溪問釣翁 반계에 가서 조옹의 소식 물어보려 함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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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7권  

칠언고시(七言古詩)

천력 기사년 6월에 예성강에 배 띄워 남으로 한산으로 가려다 강어귀에서 바람에 막히다

[天曆己巳六月舟發禮成江南往韓山江口阻風]이곡(李穀1298~1351)


驚風動地東南黑 놀란 바람이 땅을 울리며 동남쪽이 새까맣더니

四山低昻船尾側 사방 산이 배 꼬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하네

蒼茫一葉浪花中 창망한 일엽편주 물결 속에서

性命只憑管蒯力 생명은 밧줄에 의지했을 뿐

雨聲颼颼濕篷底 빗소리 쏴하면서 선창 밑바닥을 적시는데

三日一雲猶向北 사흘째 구름이 모두 북으로만 가네

但令元氣不傷和 다만 천지의 원기가 화평을 잃지 않으면

達順於人互得失 역과 순이 사람에게 서로 득실이 되리라

何時風雨占十五 언제나 바람과 비가 열흘만에, 닷새만에, 때 맞추어

爲驅萬國歸皇極 만국을 몰아 황극(중정)에로 돌아가게 할꼬


염여(灩澦) : 염여퇴(灩澦堆)의 준말로,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험하다는 장강(長江) 구당협(瞿塘峽)의 여울물 이름인데, 가정이 벼슬길의 난관에 봉착했다는 뜻으로 인용하였다.

봉래(蓬萊) : 선인(仙人)이 사는 곳으로, 여기서는 임금이 있는 도성의 대궐을 가리킨다.

강물이……공(功) :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한 우(禹)와 같은 인물 덕분에 강물이 범람하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서 바다로 빠지게 되었다는 말인데, 《시경》〈대아(大雅) 문왕유성(文王有聲)〉에“풍수가 동쪽으로 흐르게 된 것은 생각하면 우의 공이로다.〔豐水東注 維禹之績”라는 말이 나온다.[한국고전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