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지리

(1)고려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는 대륙의 기록이다.

한부울 2010. 4. 23. 20:39

(2)고려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는 대륙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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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는 양자강을 도강한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란 무엇인가?

中宗이후 세종지리지와 76년 간격을 두고 편찬된 지리역사서이다.

왜 이런 짧은 기간에 또 다시 지리서를 편찬해야만 했을까 의문이 든다.

첫째 세종代와 섞일 수 없는 정체성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둘째 세종代와 현격하게 달라진 영역문제가 존재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태 찾아본 결과로 보았을 때 세종지리지는 중앙아시아와 인도, 동남아가 기반인 것 같으나

중종代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인도와 동남아, 대륙이었던 연결이 끊이질 않는다.

그런데 신증기록은 나라가 확대되었거나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中宗이전 보다 왜소해지거나 오히려 규모면에서도 축소된 느낌이 있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그것도 부족하여 불필요한 附則으로 설명을 붙이고 事由를 첨가하여 史書格을 현저히 떨어뜨린 면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어 결론적으로 온전치 못한 史書라고 할 수 있다.

온전치 못하다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지리서가 본래 가지고 있던 진실 된 부분을 인위적으로 누군가가 삭제하고 주요한 부분을 없애 버린 결과에서 나온 결손이 아닌가 하는 점도 있다. 마치 결손이 없는 正史인 것처럼 만들어진 이 사서 또한 일제 총독부가 관리한 우리의 서글픈 역사의 징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빈곤한 역사자료로 더 이상 역사진실을 파헤칠 수 없는 난감한 형편에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진실에 근접하고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史書로 존재하고 있으며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나마 참고 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스러움이 아닐 수 없다.

오늘 그러한 史書 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그야말로 귀중한 보물하나 발견한다.

 

고려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는 양자강을 도강한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3권 경기(京畿) 풍덕군(豐德郡)[산천]편에

“조강도(祖江渡)란 덕수현에 있다”에서 이규보의 조강부(祖江賦)를 인용하는 글이 있다.

위 조강도의 조강(祖江)은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이 합류하는 곳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럼 이 조강(祖江)이라는 곳을 추정할 수 있는 몇 가지 글을 이규보의 조강부(祖江賦)를 통해 발췌하고 따져보기로 한다.


먼저 ~如涇水...경수와 같다...란  말과 대동소이(大同小異)란 표현에서 우리가 냉정하게 주의하고 바르게 생각함에 있어 본질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은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보통 한문사료에 같다(~如)란 말과 대동소이가 주는 것에서 거의가 대륙과 연관되어 있으며 부칙같은 성격에 설명이 불필요하게 나열되어 있다는 예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는 오류가 바로 반도사를 뒤받침하는 덫인 것이다.

 

주요한 기사를 읽는 우리들을 그 덫에 싶게 빠지도록 만들어 놓은 잘못된 역사 함정인 것이다.


위 짧은 글은 아래 제시하는 이규보(李奎報) 조강부(祖江賦)란 시 첫머리에 등장하는 글인데 시대가 고려이니 반도역사를 적용한다면 대륙의 주인은 바로 송(宋)이고 중국역시 송(宋)이며 경수(涇水)역시 송나라 땅에 있는 경수(涇水)라고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지례 짐작하고 보는 그러한 사실에서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란 시 전체에서보면 그것을 단정지을 만한 어떠한 사실도 찾을 수가 없다란 말이다. 이러함에도 우리는 이글에서 등장하는 모든 지형들을 대륙은 제외하고 한반도에서 찾고 한반도에서 벌어진 글이라고 믿으려 한다.


신증 번역 설명에서 경수(涇水)라 함은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강으로 그 물이 흐리다. 《시경(詩經)》패풍(邶風) 곡풍(谷風)에 “경수는 위수(渭水)를 흐리게 만든다.” 하였다 하여 경수는 한반도가 아닌 대륙에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때문에 같다(~如)라고 하는 설명과 함께 이해하다 보면 어느새 이규보가 넘어야 할 강이 경수와 같이 흐린데 그곳은 한반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결론 내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같다(~如)란 글이 주은 덫이고 함정이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비유할 수 있는 풍광이라면 늘 접하던 것이 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풍경이나 지리적인 문제에서 언제 어디서나 비유 할 수 있는 환경으로서 가깝게 있고 늘 접할 수 있는 곳에 있어 상식적으로 풍광이 머릿속에 각인되거나 기억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야만 글에서 쉽게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고려문신 이규보가 경수를 많이 보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송나라 지형이 아니라 조선 내의 지형경관을 비교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어진다.

5,000리나 떨어진 먼 나라에서 그곳에 살지도 않았고 단지 국무로 몇 번 왔다 갔다 하여 알뿐인데 그러한 지식으로 어디 어느 곳을 비유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꾸며진 넌 센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바로 조선이 대륙에 존재하여 그곳에 조선사람들이 왔다갔다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수를 대륙에서 경수와 또 다른 어느 강과 비유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500년 역사를 가진 고려가 300년 남짓한 역사의 송을 그처럼 머릴 조아리며 따라야 했던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늘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만 반도사는 신라, 고려, 조선관리들을 하나같이 줏대없고 쓸개조차 없는 바보천치같은 사람들도 만들었고 그것도 일반백성들이 아니라 최고위급 관리들인데 스스로 나라를 추스리도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로 폄하시킨 것에서 보면 일찌감치 사대주의에 빠져 망실의 역사를 스스로 쓰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고 비굴한 역사란 것을 쉽게 결론을 내리겠금 만든 역사일 뿐인 것이다.

 

반도사는 일제 침탈세력들이 조작한 것으로서 이러니 망할 수밖에 더 있겠나...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겠금 단편적으로 만든 역사 인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인가?


한반도 한강과 양자강(長江)으로 흘러들어가며 대륙무한(武漢)을 끼고 도는 한강!

여기도 한강(漢江)이고 저기도 한강(漢江)이다.

헷갈린다.

조작 역사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한반도한강과 양자강에 흘러드는 한강을 둘러 최단거리로 계산한다 하더라도 약 2000㎞(5,000里)가 넘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사이에 존재한다.

무엇때문에 한반도에서 귀양가듯 좌천되어 가는 길에서까지 대륙지형을 사이사이 넣어 감흥에 젖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바로 신증이 주는 모순이고 오류이며 온전하지 못하다는 이유이다.

대륙조선을 숨기고자 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사대하는 것은 신라, 고려, 조선의 상층 구성원들이 모두 허접하고 무능해서인가?

절대 그렇지 않고 사대한 것처럼 꾸며 조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팍스아메리카를 모토로 미국이 국제경찰국으로서 모든 나라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한국이 미국의 지형이나 본 따고 제도만을 따라 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당시에도 신라, 고려, 조선은 일제가 말하는 사대하고 당파싸움이나 하던 허접하고 나약한 나라가 아니라 본래 독창적인 문화를 가지고 문화적으로도 굉장한 우월감에 젖어 긍지가 넘쳐나던 민족이고 나라였으며 언제나 지도국 위치에서 다민족을 지배하던 대단한 역사이었음을 우리는 분명코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와같은 사실을 전부 말살하고 반도사가 남긴것은 사대하고 따라가는 치욕의 역사뿐이다.

역사기록이나 작품에서 대륙과 비슷하거나 똑 같아 보이면 바로 모방했다거나 배겼다고 스스로 폄하하고 축소하였으며 개인이력 또한 대륙과 연결하여 유학파 또는 대륙파로 둔갑시켜 대국에 귀속된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그와 같은 사실에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만약 한반도가 아니라 삼한의 역사가 대륙에서 이루어졌다면 신라, 고려, 조선이란 나라의 구성원 모두가 자연스럽게 대륙과 인적, 지형적, 환경적으로 연계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특권층인 관리뿐만아리라 일반백성은 물론이고 하층계급인 머슴이나 노비조차도 대륙과 연계되지 않을 수 없어 반도사에 따른다면 그들 역시 대륙파, 유학파가 되어야 옳다.


신라나 고려 이어 조선까지 이처럼 모든 것에서 내 것 하나 없이 사대만 하고 줏대 없이  따라 갔다면 어찌 신라가 BC57년부터 AD935년까지 56대 992년 동안 존속하고, 고려가 918년부터 1392년까지 474년간 34대에 걸쳐 존속하였으며, 조선 또한 1392년부터 1871년까지 479년간 26대 걸쳐 존속 할 수 있었는지 이치적으로 따져 보아도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다.


기원전부터 근세기까지 따져 2,000년이란 긴 역사 기간동안 끊김도 없이 신라, 고려, 조선이란 단 세 나라 소위 삼한이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 만들어 나갔다는 사실은 세계사에서도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유일하고 독보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그야말로 귀중한 역사이다.


만약 정말 일제가 주장하고 반도사가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사대하고 대국을 무조건 섬기는 허접한 민족이었다면 아니 역사였다면 지금 우리민족이나 역사는 볼품없이 소개(疏開)되었거나 아예 존재조차 찾을 수 없이 되었을 것이고 삼한이란 이름마저 벌써 역사기록에서 깡그리 사라지고 없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대륙 모든 세력들을 포괄하여 지배하면서 신라, 고려, 조선 삼한이 전통적으로 바톤을 이어오면서 대륙을 통치하고 다스렸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와 민족이 아직 살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위치에서 삼한은 서로서로 문화를 공유하였고 혹은 비유하고 또는 기본으로 삼기도 하면서 서로 서로 보완 참고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이러한 근본 원칙을 바탕으로 다음 고려문신 이규보(李奎報)의 조강부(祖江賦)가 대륙양자강 조강(祖江)을 도강한 기록인지 아니면 한반도에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조강(祖江)을 도강한 것인지 냉정하게 판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계속) http://blog.daum.net/han0114/17049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