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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박문 사체검안서’ 첫 공개…피격당시 총탄상흔 명확

한부울 2009. 10. 21. 14:55

이등박문 사체검안서’ 첫 공개…피격당시 총탄상흔 명확

[경향신문] 2009년 10월 21일(수) 오전 03:08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직후 의사가 작성

 


오는 26일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0주년’을 앞두고 안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사체검안서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경향신문은 20일 한·일근대사 권위자인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81)으로부터 ‘이등박문 사망진단서’ 사본을 단독입수했다.


이토 히로부미 사체 검안서 정면도. 왼쪽 하단에 ‘이등공작 총창’이라는 설명 옆에 창구(創口·상처난 구멍)와 총환(銃丸·총알)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각각 표시돼 있다.

이 문건은 최 원장이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서 발굴한 것으로 ‘이등공작만주시찰(伊藤公爵滿洲視察) 일건(一件) 별책(청취서) 제1권 명치(明治) 사십이(四十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명치(메이지) 42년은 의거가 일어난 1909년이다. 문건에는 당시 이토의 수행 의사였던 고야마 젠(小山善)에 대한 증인심문조서와 그가 직접 작성한 사체검안서가 포함돼 있다. 특히 이토의 사체검안서 신체부위도에는 안 의사가 쏜 총탄의 상흔이 뚜렷이 표시돼 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 하얼빈역에 내려 열병식을 진행하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이토는 3발의 총탄을 맞고 30분 만에 사망했다. 사체검안서의 신체부위도는 이 같은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면도에는 창구(創口·상처난 구멍)와 총환(銃丸·총알)이 빨간 색과 파란 색으로 각각 표시돼 있다.


그림에 따르면 첫 번째 총알은 오른쪽 팔뚝 위쪽을 관통해 오른쪽 갈빗대 부분을 거쳐 심장 아래에 박혔다. 두 번째 총알은 오른쪽 팔꿈치로 들어가 흉막을 관통해 왼쪽 늑골 아래에 박혔다. 세 번째 총알은 윗배 중앙에서 우측으로 들어가 좌측 복근에 박혔다.


이 같은 사실을 보충설명하는 측면도와 배면도도 있다. 또 당시 함께 피격당한 궁내대신 모리 야스지로와 만주철도 이사 다나카 세이지의 신체부위도도 들어 있다.


최 원장은 “이토 히로부미와 동행했던 일본 의원이 대략적으로 그린 신체부위도가 공개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의사가 직접 작성한 신체부위도를 통해 당시 정황을 확인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김진우기자 경향신문 & 경향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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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의 피격 부위

 


(서울=연합뉴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쏜 총탄 세례를 받고 절명한 이토 히로부미의 총탄 피격도. 당시 일본 귀족원 의원으로 이토를 수행한 무로다 요시아야(室田義文.1847-1938)가 검찰에 진술하면서 첨부한 그림이다. 무로다는 총알 세 발이 모두 위에서 아래로 향했음을 근거로 이들 총알은 안중근이 아니라 제3의 인물이 발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9.10.21 << 문화부 기사참조 >>

taeshik@yna.co.kr/2009-10-21 09:4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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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살 직전 이토 히로부미

 


(서울=연합뉴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 내리는 이토 히로부미. 5번이라는 번호 아래 인물이 이토다. 이 때가 오전 10시20분 무렵이다. 2009.10.21 << 문화부 기사참조 >>

 


(서울=연합뉴스) 1909년 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할 때 안중근이 사용한 권총 3점. '「브라우닝'식 연발 단총과 탄환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개최하는 안중근 특별전에 선보인다. 2009.10.21 << 문화부 기사참조 >>

taeshik@yna.co.kr/2009-10-21 09:5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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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가족사진

 


(서울=연합뉴스) 1909년 10월27일 촬영한 안중근 가족사진. 안 의사가 의거 전 정대호에게 가족을 블라디보스토크로 데리고 오라고 해서 부인 김아려(金亞麗) 여사가 아들 분도(芬道), 준생(俊生)을 데리고 왔는데, 의거 다음날(1909년 10월 27일)에 도착해 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에서 일본 경찰이 찍은 사진이다. 안 의사 통역관 소노키 스에요시(圓木未喜)가 보관하다가 그의 딸이 카노 타쿠미(鹿野琢見) 야요이미술관장에게 줬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이 개최하는 안중근 특별전에 선보인다. 2009.10.21 << 문화부 기사참조 >>

taeshik@yna.co.kr/2009-10-21 09: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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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아들의 친일행적

 


(서울=연합뉴스) 1939년 10월, 중국 상해거주 조선인 14명으로 구성된 '만선시찰단' 고국 방문 당시 안준생의 활동상황을 정리한 '재(在) 상해 조선인 만선시찰단 선내(鮮內.조선 내부) 시찰 정황'이라는 일본 외무성 경찰사 문건. 이에 의하면 안중근의 둘째아들 안준생은 10월15일, 지금의 신라호텔 자리에 있던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인 박문사를 찾아 헌향하고 이튿날 조선호텔에서는 이토의 둘째 아들 이토 분키치를 만나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한다고 말했다. 2009.10.21 << 문화부 기사참조 >>

taeshik@yna.co.kr/2009-10-21 09:35:26/


안중근 아들과 이토 아들

 


(서울=연합뉴스) 1939년 10월16일, 조선호텔에서 안중근 아들 안준생(왼쪽)이 이토 히로부미의 둘째 아들 이토 분키치(오른쪽 첫번째 앞줄)를 만나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한다고 말했다. 뒤에 선 사람은 조선총독부 외사부장 마쓰자와다쓰오(중앙)와 아이바 기요시(오른쪽) 및 통역 촉탁이다. 2009.10.21 << 문화부 기사참조 >>

taeshik@yna.co.kr/2009-10-21 09:3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