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상해 임정 중문판 독립신문 발굴

한부울 2009. 4. 18. 19:57
 

상해 임정 중문판 독립신문 발굴

[연합뉴스] 2009년 04월 09일(목) 오전 10:06

 


1922년 창간호 포함 3개호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정옥자.국편)는 상해임시정부가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고, 한ㆍ중 연대를 제창하기 위해 1922년 창간한 중문판 '독립신문'(獨立新聞)의 창간호를 비롯한 3개호를 중국에서 찾아냈다고 9일 밝혔다.


국편은 중국 상하이시 당안관에 파견된 김광재 편사연구사가 상하이도서관에서 중문판 독립신문의 창간호(1922.7.20)와 제2호(동년 7.29), 그리고 제6호(동년 9.7)를 발굴했으며, "이 신문들은 그동안 실물이 알려지지 않았던 호수"라고 덧붙였다. 3개 호는 각각 4면이다.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은 1919년 이후 1926년까지 198호를 발간한 국한문판 '독립신문'과 상해 중문판 '독립신문', 그리고 1943-1945년 중경(重慶)에서 7호까지 발행한 중경 중문판 '독립신문' 등 세 종류가 파악되고 있다.


이 중 상해 중문판은 주간으로 발행하다가 나중에는 재정난으로 격주간으로 전환했으며 1924년 초 약 40호를 끝으로 정간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행부수는 1924년 초 1천부를 넘지 않았으며 중국의 전국 관공서ㆍ사회단체ㆍ교육기관 등지에 무료 배포됐다.


국편은 앞서 이 중문판 독립신문 5개호(5호ㆍ11호ㆍ12호ㆍ23호ㆍ36호)를 발굴해 자료집으로 간행한 바 있다.


이번에 새로 발굴한 창간호 등을 분석한 결과, 심각한 자금난에 처했음에도 임시정부가 독립신문 중문판을 발행한 것은 그 활동 근거지가 중국이며, 또 4억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이었다고 국편은 밝혔다.

 

중문판은 김승학(金承學)이 독립신문사 운영을 맡았을 때, 박은식을 주필로 하고 중국인 기자들을 채용, 제작했다.


신문은 논설ㆍ한국정보ㆍ중국통신ㆍ일본소식ㆍ각국 통신ㆍ잡보ㆍ문원(文苑) 등으로 꾸몄다.


이 중 창간호 논설에는 창간사와 워싱턴회의 경과, 일본의 중국 공동관리설 등을 분석했으며 한국정보 및 중국통신란에서는 국내외 한국인의 독립운동, 일본의 침략과 만행ㆍ학정을 집중 소개했다.


각국 통신에는 구미 정세나 인도 및 베트남의 독립운동을 소개했으며 문원에서는 김택영이 집필한 홍범식 열사전기를 연재했다. 독립신문 상해 중문판 창간호에서는 국문판, 중문판 외에도 서문(西文) 즉, 구미권의 독자를 겨냥한 다른 외국어판 발간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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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한자 창간호: 일본은 어디에 있었는가? 

[아시아문화연구회]이태수 09.04.09 19:27


독립신문 한자 창간호


大韓民國 그 아래에 中華民國 11년 7월20일. 서기로는 1922년이다. 단군기원 4255년.


론설: 독립운동의 器具는 무엇인가. 바로 문자, 口傳, 무력이다.


무릇 세계상의 天生의 인류에게는 바로 일종의 천연의 자유 행복이 있는 것으로 결코 타방면(타국)이 그의 자유를 침범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무리하게 타인이 간섭을 한다면(한 글자 해독불가) 그는 반드시 사력을 다하여 저항을 한다(상황 번역). 번역생략. [여기서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자유를 침범했을 때에 반드시 저항하게 된다는 론리를 편 것임] 이는 한 개인이 이러한 것이다. 만약에 나라가 자유를 잃어버렸다면, (번역생략, 해독하기 어려움)


[그 다음은 문자를 이용한 운동을 설명한 것으로 주로 인쇄의 방법이다. 그 다음은 구전으로 입으로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이고 셋째는 무력으로 독립 운동하는 것을 말한다]


독립신문 한자본 1922년 7월 27일.


론설: 일본 이 작은 나라는 본래 침략하여 나라를 세운 력사가 있다. ---에 불과한 것이다. 점점 번식(번영)하여 일어나서, 인구가 많아졌고, 물산 또한 많아졌다. (영인상태가 불량하므로, 상황에 따라 번역해보면) 그(일본)의 出門의 交?은 곧 그가 서로 --하는 渤海와 같은 것임으로 곧 中國韓國이다. 그래서 중국한국이다.(몇 글자를 읽을 수 없으나, 일본의 근본은 발해와 같고, 발해는 중국한국과 같다는 뜻이다.) 그(일본)이 있었던 곳은 亞洲의 東邊이다. 태양은 동방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이것이 하나의 명호가 되어 일본이라고 부른 것이다. 또한 倭寇라고 부른다. --에서 도적이다. (번역생략) --하게 되어 죽은 자가 많았다. 倭人이 基하였다. 至今?此南通州하더니, 일본은 나중에 --하게 되었다. 곧 東大陸의 ---이다. 매년 늘 공물을 바치는 --하는 땅이다. 더불어 ---한 적이 없다. 野心이 있었던 것이다. 中世紀의 시기에 이르러서, 일본의 음모는 나타나게 되었다. 日本在大水中的小島(일본은 大水中의 작은 섬에 있었다). 나라를 세우지 못할 까 두려워하여, ---하면서 땅을 빼앗았다. 東大陸(대륙 동쪽)을 침범하여 倂呑하였다. 다시 서구와 함께 경쟁하였다. 다만 歐美의 여러 나라는 중국 한국의 양 인민이 마비되어 깨어있지 못한 것을 --하지 못했다. 번역생략...


해석: 위 한자본은 한문과 북경어(백화문)가 섞인 것이다. 한문으로 보아도 되지만, 북경어 문법이 들어 있다.


일본은 大水의 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이고, 점차 땅을 빼앗아 나라를 세운 것이다. 大水가 바다를 뜻하는 것일까? 작은 섬이라고 했는데, 일본열도를 작은 섬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또한 아시아주 대륙 동쪽에 있다고 했다. 위에서 渤海가 언급되었는데, 이 당시의 발해를 가리킨 것인지, 본래의 발해를 가리킨 것인지 알수가 없으나, 이 당시의 발해를 가리킨 것으로 보면, 즉 발해라는 바다이름으로 보면, 일본은 산동성에 있었던 것이다. 산동성은 작은 섬이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소설을 쓰듯이 추측을 해보면, 산동성이라는 작은 섬이 일본이었고, 점차 대륙 동쪽 지역을 병탄해갔으며 남쪽까지 침범한 것이다.


영인 상태가 좋은 것을 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위 내용으로만 가지고는 일본의 위치를 확신할 수 없군요.[아시아문화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