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고구려가 돌굴·말갈 등과 연합하여 수나라에 대항

한부울 2009. 5. 21. 21:48
 

고구려가 돌굴·말갈 등과 연합하여 수나라에 대항 

[대륙조선연구회]07.03.25 12:52


우리는 이런 력사를 너무 쉽게 넘겨버리는 것 같다. 즉 "고구려가 돌굴·말갈 등과 련합하여 수나라에 대항하자, 수나라는 고구려를 정벌하게 되었다."고[申採湜,『東洋史槪論』(三英社, 2003), p.294] 하는 말 말이다.

사실 고구려는 수(隋)나라의 위력에 맞섰다. 그런데 그 련합했던 세력이 "돌굴(突厥: Turk)과 말갈(靺鞨: Magyar)이다.

고구려는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한반도 북부 지역이며, 흑룡강 남쪽을 차지했으며, 서쪽으로는 크게 보아야 대흥안령이 그 한계가 된다.

그렇다면 돌굴이니 말갈은 그 활동지역이 어디쯤일까?

언젠가 언급한 바가 있지만, 흑룡강(黑龍江: 完水·額木爾河)을 아무르(Amur)라고 하는데, 이것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고원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아무하(阿姆河: 紀渾河), 즉 아무 다리야(Amu Darya)에서 따온 것이다.

한반도 북쪽에 있는 이름으로서 실위(室韋)·철륵(鐵勒)이 있다. 대개 철륵을 북위 42°∼58°동경 85°∼116°에 있지만, 실은 북위 33°∼47°동경 50°∼90°에 있다. 즉 경도만 말하면 동경 70°±20에서 동경 100°±15로 옮겨진 셈이다.

이런 사실을 여러 사료에서 찾아낼 수 있다.


(1) 鐵勒之先…自西海之東, 依據山谷, 往往不絶. 獨洛河北有僕骨·同羅·韋紇·拔也古·覆羅 號俟斤·蒙陳·吐如紇·斯結·渾·斛薛等諸姓, 勝兵可二萬. 伊吾以西, 焉耆以北, 傍白山卽 契 ·薄洛職·乙 ·蘇婆·那曷·烏 ·紇骨·也 ·於尼 等, 勝兵可二萬. 金山西南有薛延陀· 勒兒·十槃一達契等 一萬餘兵. 康居北傍阿得水 則有訶 ·曷 ·撥忽·比干具海·曷比悉·伺嵯蘇·拔也末渴達等, 有三萬許兵. 得 海東北有蘇路 ·三索咽·蔑促·隆忽等諸姓, 八千餘. 拂 東則有思屈·阿蘭·北褥九離·伏唱昏等 近二萬人. 北海南則都波等. 雖姓氏各別, 總謂爲鐵勒.  無君長, 分屬東西兩突厥.[《隋書》卷84 列傳49 北狄 鐵勒]


여기서 독락하(獨洛河)는 조선사의 독로강(禿魯江)이며, 지금의 중앙아시아의 시르강(錫爾河: Syr Darya)이다. 이말은 전혀 다른 말인 것 같지만, 獨=禿은 발음[독]이고, 이것은 돌[石]의 사투리 [독]이며, 조선사의 석주(石州)인데 지금의 타슈켄트(塔什干: Tashkend)이다. 또 洛=魯는 발음이 [로]이고, 홀소리를 빼면 爾의 소리 [ㄹ][r]과 같다. 그래서 獨洛河=禿魯江=錫爾河=시르 다리야(Syr Darya)이다.

그리고 이 鐵勒은 그 발음이 우리는 [철륵]이라고 하지만, [텰륵]>[투르크: Turk]이다. 이 투르크의 강역은 서해 이동(西海以東), 이오 이서(伊吾以西), 언기 이북(焉耆以北), 알타이 서남(金山西南), 강거 북(康居北), 득억해 동북(得 海東北), 동로마 동(拂 東), 북해 남(北海南)이라 했다.

일단 서쪽 끝은 동로마 동쪽(拂 東)이므로, 지금의 소아시아라는 터키 지역이다. 동쪽 끝은 이오 이서(伊吾以西)이다. 남북쪽은 설명이 불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지역은 역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역의 북쪽 지역에 해당된다. 이 지역이 돌굴(Turk)족의 지역이라고 했다. 물론 이 鐵勒은 突厥과는 똑 같지는 않다. 같은 부류이다.


(2) 突厥: 東自契丹·室韋, 西盡吐谷渾·高昌諸國, 皆臣屬焉, 控弦百餘萬.[『隋書』卷194上 列傳144上 突厥]


[돌굴: 동쪽으로는 글안·실위, 서쪽으로는 토욕혼·고창 지방이다.]

이 돌굴의 서쪽 끝은 고창(高昌) 즉 동경 91°라 하여 우리가 아는 지역의 범위로는 역시 동쪽으로 당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3) 契丹居潢水之南, 黃龍之北, 鮮卑之故地, 在京城東北五千三百里. 東與高麗隣, 西與爰國接, 南至營州, 北至室韋. 冷 山在其國南, 與爰西山相崎, 地方二千里.[『舊唐書』卷199下 列傳149下 北狄 契丹]

[글안(키타이): 황수의 남쪽이며, 황룡의 북쪽, 선비의 옛 땅이다. 경성에서 동북쪽으로 5300리에 있고, 동쪽으로 가까이에 고려, 서쪽으로 원국과 붙어있고, 남쪽으로 영주에 이르며, 북쪽으로 실위에 이른다. 랭형산이 글안의 남쪽에 있고, 원국의 서산과 마주하고 있다.]


여기서 경성(京城)이 어디를 가리키는가? 그곳에서 동북쪽에 있는 곳이 글안이라고 했으니, 이는 마치 한반도 서북쪽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 기준이 되는 점인 "京城"이 고유명사인가? 그곳이 과연 "장안"인가? "낙양"인가? 어떤 다른 곳은 없는가?

황수(潢水)는 시라무렌(Sira-muren)이며, 이 글자대로는 "黃河/黃水"이며, 물색깔이 "누런 강"이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강이다. 가장 동쪽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동경 120도 선상에 있고, 서쪽으로 옮겨보면, 동경 112도 선상에도 있으며, 그보다 더 서쪽으로는 동경 105도 선상에도 있으며, 그보다 더 서쪽으로는 동경 60도 선상에도 있다.

그래서 이런 말로써는 "어디가 어디다"라고 말할 수 없다. 많은 정황과 사료의 내용으로 그 의미가 통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4) 爰國…所居亦鮮卑故地, 卽東胡之界也, 在京師東北四千餘里. 東接契丹, 西至突厥, 南拒白狼河, 北至 國. 自營川西北饒樂水以至其國.[위의 책, 爰國]


(5) 室韋…其國在京師東北七千里. 東至黑水靺鞨, 西至突厥, 南接契丹, 北至于海.[위의 책, 室韋]


(6) 靺鞨…勿吉, 在京師東北六千餘里, 東至於海, 西接突厥, 南界高麗, 北隣室韋.[위의 책, 靺鞨]


여기서도 원국·실위·말갈 등이 "서울[京師]"에서 한결같이 "동북쪽"에 있다. 그런데 (6)에서 말갈(=물길)의 위치를 말하면서 그 서쪽에 "돌굴(Turk)"가 붙어 있고, 남쪽 경계에 "고려"가 있다. 그래서 대개 한반도를 고려라고 하고, 그 서쪽, 요즘의 료동 및 하북 지역에다 "돌굴"지역이라고 말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5)에서 "실위"가 동쪽에 "흑수말갈"이 있고, 서쪽에 "돌굴"이 있고, 남쪽에 "글안"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서쪽 지역에 어쨌든 "돌굴(Turk)"이 있고, 그 남쪽에 "글안"이 있다는 말이다.

자! 여기서 지리적으로 지명들을 살펴보자. 돌굴은 서쪽에 있는 소아시아가 있는, 지중해 동쪽 연안의 "터키제국"에서부터 동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이 있고, 더 동쪽으로 당겨보면 위구르 자치구까지이다.

그렇다면 고려가 어디에 있겠는가?


(7) 突厥之先…世居金山, 工於鐵作. 金山狀如兜 , 俗呼兜 爲突厥, 國以爲號. 或云 其先國於西海之上, 爲隣國所滅, 男女無少長盡殺之.[위의 책, 北狄突厥]


이 역시 돌굴은 알타이산[金山]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부족들의 활동지역은 위의 (1)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돌굴(Turk)이니, 글안(Kitai)이니, 하는 말들은, 북위 44도 선상에서, 거의 모두 동경 60도±20도의 범위에 드는 지역이며, 그 남쪽에 "고려"가 있었으며, 동쪽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서울[京師]"라는 말과 그 "방위"를 옳다고 보면, 그 방위의 역은 "서남쪽"이므로, 그 중심지 "서울"은 "바그다드(Bagdad)" 내지는 "박다란(Bactaran)"이 될 것이다. 이런 지명이 조선사의 "서울"이 될 수 있는 지는 앞으로 더 조사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고대조선의 "아사달/박달산"이 "박다란"이라고 전에 한번 그 가능성을 밝힌 바가 있다.

그렇다면 이제 주제와 함께 다루어보자.

고구려는 바로 고려가 있다는 북쪽 지역에 있었다. 말갈과 돌굴이 고구려의 서쪽에 있었다. 그렇다면 수나라는 어디에서 와야 하겠는가? 결국 고구려 땅의 안에서 일어났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고구려는 그곳에 있는 말갈과 돌굴족들을 데리고 수나라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지리적 중심지는(위도 생략) 동경 125도 선상이 아니라, 동경 60도 선상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말갈과 돌굴을 찾는 어리석음에서 이제는 깨어나자. 그리고 수나라가 하남성 장안에서 한반도까지 100만 대군을 거느리고 왔다는 그런 어리석은 전략가는 되지 말자.  [대륙조선연구회]최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