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관인원행은 조선이 대륙에 있었음을 증거한다.
[지구조선사연구회]지명선 09.04.13 18:02
관인원행(官人遠行)
[의의]
관인원행 원님이 산길을 넘고 있는 모습으로 단원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관인원행을 이고 가는 가마가 단서이다. 산을 오르는데 쓰이는 가마, 앞 뒤 두 사람이 어깨에 매고 손님을 끌고 간다. 이것이 대조선의 생활상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등산할 때 이런 가마를 본 일이 없다. 최근 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등산용 가마꾼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대륙에서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대륙 호남성의 장가계 에서이다. 그곳은 지금도 관광 상품으로 등산로 입구에서 신청을 받고 있다. 일정량의 돈을 계약하고 등반을 대신한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은 처음 가마를 타기 전에 계약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가마꾼들이 손님을 태우고 나서 정상에 오를 때 딴 얘기들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큰소리가 오간다. 금액이 맞지 않다. 비싸다. 계약위반이다. 그런 이야기들이다, 중국어로 떠드니까 잘 안들리지만 그런 내용들이다.
하지만 김홍도 관인원행(官人遠行)가마꾼 그림을 보면 진작 있어야 할 한반도에는 이러한 가마 풍경모습을 볼 수 없다. 어떻게 된 것인가?
김홍도의 가마꾼그림은 조선이 바로 대륙에 있었다는 중요한 증거품인 것이다. 대륙은 옛 조선의 조상들이 해왔던 풍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라는 대륙과 한반도로 갈라졌지만, 대조선때는 같은 나라로, 그 잔재가 그곳에 남아있었다.
관인원행(官人遠行)
김홍도의 관인원행(官人遠行)
(1795년작, 국립중앙박물관 보관)
심심산골을 넘어가는 고을원의 부임 행차 광경이라 생각된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는데 산길은 자꾸 깊어만 가니 여러 날 걸리는 노정인 모양이다. 주인공은 갓 쓰고 도포 쓴 차림으로 가마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넘는데 뒤로 한 명의 관속이 뒤돌아보는 얼굴을 하고 있으며, 하변에는 벙거지 쓴 인물이 평지를 갈 때 이용했던 준마 한 필을 이끌고 뒤따른다.
다시 주인공의 앞쪽을 보면 갓에 깃을 두 개씩 꽃은 사령 둘이 저만큼 앞서 가고 있으며, 그보다 더 앞쪽으로는 일산 같은 것을 든 인물이 막 언덕 꼭대기를 넘으려는 참이다. 깊은 산 구불구불한 길을 농담이 적당한 나무들의 배치로 재치 있게 처리하고 있다. 특히 말 뒷 편으로 보이는 크고 곧바른 나무로서 산길의 가파름이 효과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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