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삼한역사

유적과 사적은 일제가 만들어 놓은 모조세트이다.

한부울 2012. 10. 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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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과 사적은 일제가 만들어 놓은 모조세트이다.


글쓴이:한부울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1875-1953内閣総理, 朝鮮總督)

우리는 패했지만 한국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한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朝鮮)의 영광(榮光)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植民敎育)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朝鮮)은 위대했고 찬란(燦爛)했으며 찬영(燦榮)했지만, 현재 한국은 결국은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궁궐이나 유적, 사적들은 일제가 만들어 놓은 역사모조세트란 이야기다.

우린 현재 지나온 역사에서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하는 자료들이 쉼 없이 밝혀지거나 들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든가 믿으려 하지 않는 고질적인 병폐가 있고 그것이 또 다시 변질 되어 잘못된 역사관을 스스로 만들어 버리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강점36년과 그 후유증으로 60년이란 허송세월을 보내버린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역사교육은 100년이란 기나 긴 시간동안 제대로 실체파악도 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거짓의 역사를 판단 할 능력조차 상실케 한 것이다.

그러한 교육은 100년동안 잘못된 역사를 녹음기처럼 가르치고 제자들이 스승을 따르게 하고 그렇게 생성된 지식기득권에서 가짜 역사학자들을 양산 된 것도 모자라 이치에도 없는 아집을 낳고 고집을 만들더니 다시는 치유 할 수 없는 독단을 낳고 옳아매여 결국 치욕의 역사, 오욕의 역사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쇠사슬, 족쇄가 되고 말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판단이 무디어지고 둔감해지며 무감각해지고 만 것이다.

일제 강점시대가 민족에게 주는 고통이 있었다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치유할 수 없게하고 판단을 잃게 한 잘못이 더 크다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실을 판단할 수 없는 불능에 의한 아픔인 것이다.

그 결과 이젠 진짜인지 가짜인지 조차 구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역사학자들이 득실거리고 진실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마는 사학계가 바로 우리 사학계 현실이 되고 만것이다.

분명 그들은 국민의 혈세로 녹을 먹고 또한 연구하며 학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보답, 값어치를 할 수도 하지도 않지만 국민들이 그들이 할 수 있다는 기대조차 망실되고 말았다.

반도사학, 일제식민사학, 사대사학만이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정신나간 사학자

전혀 정립되지 않는 역사환경을 우리의 것이라고 둘러대고 이어가려는 행태가 바로 우리역사학계의 참담함이 아닐 수 없다.

이 기사에서 나온 자료만 가지더라도 한반도에 존재하는 궁궐이나 사적들 모두 한꺼번에 부정할 수 있는 근거로서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누구 한 사람 기존 사학을 부정하거나 바르게 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선해야 하는 민족이나 국가관 진실보다 학연과 기득권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중요하게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목줄이 포도청이라서 그렇다고 우선 이해 할 수 있다.

일제가 1905년 이후 소위 영화세트장을 만들듯이 한반도에 도면을 그리고 그 도면대로 여기는 경북궁, 저기는 창덕궁, 그리고 저곳은 덕수궁이라고 하면서 지정하고 지목하여 만든 것이 오늘날 한반도에 존재하는 유적이고 사적이며 궁궐임에도 그것을 마치 역사와 합당하게 만들고 나서 그것이 진실이고 사실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것이 우리 사학계가 고칠 수 없는 바이러스같은 한심한 작태라는 것이다.

솔직히 누구하나 가감없는 비판이 없다는 사실이 더 분개하게 만든다.

일제의 유물들을 타도할 것처럼 입모양새는 그렇게 하면서 머리로는 일제의 유물을 정신병자처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 분개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기사에서 보도한 이와같은 사실은 처음부터 조선왕조실록에 기록 된 역사사실과 한반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고 근거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음에도 알려하지 않고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학자들을 그저 비판력이 떨어졌다고 치부하고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진단해야만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뿌리가 이처럼 견고하니 미래의 역사 알길이 순탄하지 않겠다는 것을 어느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더 이상 한반도에 조선왕조가 실제로 존재한 것처럼 엮어가는 것은 죄악이다.

결코 바른 역사라고 할 수도 없을 뿐더러 우리의 정신과 혼만 갉아 먹게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절대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세계삼한역사연구:한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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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제 때 제작된 궁궐도면이 무더기로 나와야 하는가?

이것은 한반도 역사가 뿌리채 거부당하거나 부정하게 하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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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제작된 궁궐 도면 무더기 공개

[연합뉴스] 2009년 02월 26일(목) 오후 12:08

 

 

한중연, '근대건축도면집' 발간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궁궐과 가옥들의 설계도 원본 도면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모두 174종에 이르는 이 도면들은 일본통감부와 조선총독부의 직ㆍ간접 통제를 받던 궁내부(宮內府)와 이왕직(李王職)에서 제작한 것들로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藏書閣)은 '근대건축도면집(近代建築圖面集)'을 통해 이 도면들을 선보인다고 26일 밝혔다. 한중연은 '궁궐(宮闕)'(122종), '의례(儀禮)'(19종), '가옥(家屋)'(33종) 등 3가지 키워드로 도면을 분류했다. 궁궐 관련 도면은 주로 1906년부터 1936년까지 창덕궁(昌德宮)(101종), 창경궁(昌慶宮)(11종), 경복궁(景福宮)(5종), 덕수궁(德壽宮)(5종) 등에서 신축(新築) 또는 개축(改築)을 하면서 작성된 것들이다.


도면에 따르면 당시 도면 설계자들은 창덕궁 인정전(仁政殿)과 관련해 주변의 回廊(宮闕, 절 등에서 주요부분을 둘러 싼 지붕이 있는 긴 복도)을 복랑(複廊)에서 전각형태(殿閣形態)로 고치고, 주위에 복도를 신설하여 알현소로 조성했다.


또 순종황제의 침전이었던 대조전(大造殿)일원이 1917년 화재로 소실되자 그 자리에 서양식 침전인 내전양관(內殿洋館)을 지으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창경궁 전체 평면도를 통해서는 창경궁을 動物園. 植物園. 博物園 등 세 영역으로 개조하기 위한 일제의 계획을 엿볼 수 있고,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 창덕궁도서고 도면에서는 근대식 서구건축물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덕수궁 관련 도면 가운데 전체 평면도는 현존하는 덕수궁 평면도(德壽宮 平面圖)중 가장 오래된 자료인데다가 전각의 명칭 또한 거의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어 덕수궁 복원사업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밖에 의례(儀禮)편에서는 고종황제의 홍릉 조성과정을 그린 도면이나, 순종황제의 국장과 관련된 자료가 포함돼 있다.


가옥 편에서는 칸마다 건물명을 명기해 공간의 성격과 기능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한중연은 평가했다.


한중연의 윤진영 연구원은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건축에 나타난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가 크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