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한국환상곡 (韓國幻想曲) Symphonic Fantagia KOREA

한부울 2009. 3. 24. 16:43

 

한국환상곡 (韓國幻想曲)-Symphonic Fantagia KOREA


민족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유구한 역사 속에서 외적의 침략에 항거하여 독립을 쟁취한다는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애국가》 가락이 중심이 된 합창부분이 있다. 안익태(安益泰) 작곡의 합창단·관현악·관악기를 위한 환상곡. 《코리아 판타지》라고도 한다. 1940년 무렵 작곡되어 1958년 할리우드에서 초연되었다. 연주시간 약 30분 정도의 웅장한 작품으로 독일 후기 낭만파양식이 기조를 이룬다. 한국에서는 1961년 당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의 합동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에서 초연되었고 그 뒤 국가의 경축기념일 등에 자주 연주되고 있다.


작곡  :  안익태

종류  :  교향적 환상곡

제작연도  :  1936년


단군의 개국을 알리는 서정적인 선율로부터 시작하여 도중 외적의 침략으로 한때 나라를 잃기도 하나 항쟁 끝에 끝내는 광복을 맞이하고 다시 6·25라는 민족적인 비극을 겪는다는 교향적인 대서사시로 되었다. 특히 후반부의 합창부분에는 《애국가》의 선율이 흐르고 있어 매우 감동적이고도 인상적이다.

1936년 작곡되고 1938년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더블린의 아일랜드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작품은 독일 후기낭만파의 양식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대작.  안익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한국에서는 1961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 합동으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초연되었다.


코리아 환상곡(한국 환상곡)에 대해서


애국가로 더 잘 알려진 한국환상곡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망향의 설움과 조국의 웅대한 비상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애국가를 부르는 한 영원히 잊지 못할 작곡가 안익태는 우리나라 음악인들이 세계무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세계적인 대가들에게 작곡과 지휘를 배웠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무대에 선 ‘한국음악의 선구자’였다.


일본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안익태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교회에서 <올드 랭 사인> 선율의 애국가를 듣는 순간 그는 빼앗긴 조국을 회상하며 <애국가>를 작곡하려는 결심을 했다. 신시내티 음악원과 필라델피아 음대, 커티스 음악원을 거치면서 작곡과 지휘에 눈을 돌린 그는 마침내 뉴욕 카네기홀이 주최하는 작곡 콩쿠르에 응모하기 위해 애국가 부분이 없는 <한국환상곡>을 작곡해, 이 콩쿠르에서 입선했다.


1936년 다시 유럽으로 유학을 오르게 되어 베를린에 도착해 그 해 6월 귓가를 스쳐가는 멜로디에 잠을 깬 안익태는 이 선율을 오선지에 적었는데, 두 번 다시 수정하거나 재검토하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위대한 애국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안익태는 이 악보를 정리해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한국민회 앞으로 보냈으며, 자신의 미완성인 <한국환상곡>의 마지막 악장으로 사용하였다. 2년 후인 1938년에 이 곡은 안익태가 지휘하는 더블린의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작품해설


<한국환상곡>은 이처럼 애국가를 끝악장으로 해서 제3부로 나누어 나오다가 6ㆍ25전쟁 이후에 다시 제4부가 추가되었다.


1부는 한국의 민족음악을 토대로 한 서정적인 부분으로서 아름다운 조국의 강산을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관현악의 장대한 울림은 우리나라의 탄생을 알리고, 호른의 서정적인 멜로디는 아름다운 강산을 표현하며, 이어 플루트와 금관악기군이 대화풍으로 민요가락을 노래하고 타령조의 멜로디가 섞이면서 농민들의 춤사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2부는 일제하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암울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진혼곡의 멜로디가 무겁고 침통한 선율로 이어진다.


3부는 광복의 기쁨을 맞는 애국가의 합창부분으로서 애국가는 전조를 되풀이하며 감격적인 합창으로 진행한다.


4부는 6ㆍ25 전쟁의 처절함을 묘사했다. 전통 아악의 정취가 울려퍼진 뒤에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 나의 사랑아’의 만세 소리와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