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역사조작국 그러나 자랑스러워하라, 조작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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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경리 선생 유고 ‘일본산고(日本散考)’ 발굴 첫 소개 http://blog.daum.net/han0114/16597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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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엽에 탄생한 신생국 日本
최소 1868년이전까지 일본은 열도에 없었다.
동남아 왜구역사를 열도일본역사로 탈바꿈하기 위한 11단계
1.서세에 의한 세계사를 근거로 대륙역사 파악하기
2.대륙역사지명 파악하기
3.대륙조선과 한반도조선 분리하기
4.대륙지명 한반도로 옮기기
5.대륙역사 한반도로 옮기기
6.한반도역사 정리하기
7.대륙동남아왜구지명 파악하기
8.대륙동남아왜구지명 열도 옮기기
9.열도일본지명 만들기
10.열도일본역사 만들기
11.대륙, 한반도, 열도역사 총정리하기
왜구(왜노)가 무슨 이유로 역사에 그토록 집착하고 조작 날조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올인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명백히 알 필요성이 있다.
왜구는 칼을 차고 다니며 확실한 거류지나 정착지를 마련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아무 곳에서나 강도, 해적질을 하면서 무도한 짓을 가리지 않고 저질렀던 무리들을 총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그래서 현대판 알카에다라고도 한다.
그래서 조선 선각자들은 그들 무리를 상종하지 못할 정도로 근본이 없는 종족이라고 했다.
그러한 말에서 보면 근본이 없는 그들 나름대로의 처지를 심각하게 자학하였을 것이고 문화적으로도 엄청난 열등의식을 가지면서 피해의식과 강박관념에서 심한 갈등을 느끼며 나름대로 큰 한(恨)으로 삭혔을 것이라고 싶게 짐작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도 한 때 그런 심정으로 일제를 원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8년 타계하신 박경리 선생께서 일본의 역사 왜곡은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라고 표현하면서 ‘증오의 근원’이란 글에서는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피로 점철된 그들의 역사, 잔인무도한 그들 행적으로 보며 한반도에서 추방된 흉악한 죄인들이 그들 조상인가보다 하고 뇌까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했다.
물론 박경리 선생의 생각이니 반도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대륙역사를 어찌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또 그는 말하기를 그들 왜구 일본인들이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보다 더 큰 원한을 가슴 밑바닥에 깔고 있었음을 느꼈다고 토로 하였듯이 그것이 바로 왜구 심정을 정확하게 보고 읽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우리민족에게 풀어야 할 소위말하면 맺힌 한(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민족을 보고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 덮어 씌우며 자학하게 만들고 열등의식을 갖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쓴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러한 것은 복잡한 그들의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는 것이어서 심리적 메카니즘에서 나온 피해를 보상받으려는 습관적인 발로가 아닌가 여겨지는 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글대로라면 일찍부터 그들이 그러한 한(恨)때문에 몸서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무도함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근본이 없는 종족
근본이 없기 때문에 문화자체가 보잘 것 없는 못난 종족의 역사,
기회만 되면 남의 나라를 침범하고 도적질하여 연명하는 무도함과 그러한 무도함속에서 숫한 가슴 아픈 피해를 낳고 그로 인하여 원망과 지탄이 난무하는 속에서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야 했던 그들에게 과거 역사는 훈장처럼 문신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도적역사이고, 해적역사이며, 무사집단 살육의 역사뿐이니 어찌 그들의 심정이 온전 할 수 있었겠는가 한다.
언젠가는 번듯한 역사로 탈바꿈시키고자 열망하였고 갈망하였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 한 것이다.
때문에 기회만 되면 그러한 기존역사 틀 전체를 뒤엎고 또는 완전하게 바꿔놓으며 보잘 것 없는 왜구신세에서 벗어 나 일본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발버둥을 쳤을 것이며 왜구가 아닌 일본으로 변신 탈바꿈하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처절하게 궁리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같다면 그들이 그처럼 역사에 몰입하고 올인 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자연스럽게 설명 될 수 있는 것이다.
西勢가 산업혁명으로 근대화된 동력을 가지고 미지의 신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위하여 노도처럼 해양시대를 만들었으며 전 세계 해양을 너도나도 서세들이 경쟁적으로 곳곳을 누 빌 때 중국대륙영역의 해양을 무대로 해적질과 도적질을 하면서 약탈과 살육을 일삼던 왜구무사집단을 西勢가 설득하고 양성화하면서 서구화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西勢(동인도회사) 즉 서구열강들이 大陸朝鮮(中國)을 침탈하기 위하여 해양로(海洋路) 왕래를 안전하게 원활하도록 해야 하는데 해로(海路)가 오늘날 처럼 소말리아 해적처럼 왜구무사집단들에 의하여 여기저기서 막히자 왜구집단을 설득하고 타협하면서 왜구에게 근대화를 이룩 할 수 있게 보장하였을 것이고 그들이 희망하던 새로운 국가를 건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조건을 제시하였거나 왜구쪽에서 요구하였다면 왜구가 일본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어진다.
간사하고 음흉한 그들은 대 동양문화권속에서 언제든지 배반하는 것은 물론이고 유리한 쪽으로 탈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서구화가 왜구근대화를 이루게 하였고 급속도로 힘이 비축되면서 왜구의 탈을 벗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1870년경부터 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어 대 동양문화권속에서 자연스럽게 이탈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소위 일본인이 말하는 탈아(脫亞)론인 것이다.
바로 명치정권이 태동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서세를 등에 업은 한껏 오만해진 왜구는 대륙역사에 존재하는 일본으로 순식간에 변신 둔갑하면서 대륙조선의 대임자리까지 넘보게 되었으며 한발 더 나아가 대륙정복까지 꿈꾸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서구열강들에게 엄청난 파워가 실린 어퍼컷을 맞아 대내외적으로 힘을 잃고 비틀거리는 대륙조선을 호시탐탐하던 왜구는 근대화된 힘으로 농단하면서 열도를 대륙조선으로부터 탈취하게 된다.
바로 에도막부가 붕괴되는 시점 오늘날 명치라고 하는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인 1868년경일 것이라고 보지만 신일본이란 국가를 새롭게 새우는 일이기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시점이라고 보면 1872년경 아니면 바로 청일전쟁에서 승전하여 시모노세키조약을 치루고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여 청조(대륙조선)로부터 받았을 때가 1895년경이라고 보면 그 시점이 아니겠는가 예측된다.
최소한 명치시대 이전 강호시대 에도막부 때는 대륙복건성과 절강성 해안 또는 인도네시아, 동남아시아, 필리핀해안지역을 大陸朝鮮(中國)의 눈을 피해 일시점령 혹은 점거, 산재하여 온갖 침탈과 악행을 일삼던 왜구무사집단(倭寇武士集團)들은 종족생성이후 처음으로 독자적인 고유영토를 갖게 되었고 정착하게 되면서 마침내 모든 구성원(무사집단)이 신생국 영토인 열도로 자연스럽게 이동하였고 일본이란 국명을 가지고 들어가면서 이때부터 대륙조선인 중국이 아닌 서세로부터 전폭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때부터 열도에 일본이라고 표시됨은 물론이고 조선해(corea sea)를 일본해라고 고쳐 명기한 지도가 서구제국 여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발행이 되면서 국제적 공식적인 명칭으로 굳어지게 된다.
하지만 열도는 대륙조선관할지였으므로 기존에 원주민인 대륙조선 토착민과 대대적인 전쟁에 이어 대량살육과 회유가 동시에 있었다고 볼 수 있고 관동대지진도 이후 발생하며 조선인 살육이 계속되지만 어쨌던 크고 작은 열도식민지 전쟁을 치루면서 왜구가 결국 완전 장악하면서 영토화하게 된다.
비로소 왜구신세에서 신생국 일본으로 탈바꿈하면서 꿈을 이루는 순간이다.
그러한 순간을 그 당시 대륙언론들은 새롭게 일어난 일본제국이라 했다 한다.
대륙조선을 발판으로 그들의 역사가 새롭게 변신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시기가 1895년에서 러일전쟁 전인 1904년까지라고 본다.
새로운 영토 열도에 대륙에서 존재하던 일본지명을 재빨리 오려붙이기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역사조작, 날조가 시작되었고 러일전쟁 승리로 기세가 하늘을 찔러 대륙조선 역사 말살기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아시아 전체 역사를 농단하면서 거듭 강도가 높아지는 징기스칸 만들기 부터 시작하여 조작, 날조, 편집, 제작까지하면서 끝내 그들이 열망하고 꿈꾸던 역사 완결편을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그들의 과욕이 너무나도 엄청나고 무도하여 하늘로부터 천벌을 받았지만 우리입장에서 보면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과정들이 아닐 수 없다.
어쨌던 이와같은 과정속에서 오늘날 현대판 알케에다라고 불리우던 그들이 왜구(왜노)문화열등의식에서 벗어 날 수 있었으며 신생국 일본만들기에 이어 일본사(日本史)만들기가 완벽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반도를 근거로 반도사를 만들어 그들의 영역인 열도를 확실하게 확립하고 서세의 인정 받는 것으로 최종 마침표를 찍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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