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장례후 자결한 퇴계 이황 후손 부부 유서 공개
[쿠키뉴스] 2009년 02월 25일(수) 오후 05:45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고종 황제의 장례기간이 끝나자마자 퇴계 이황의 후손 부부가 자결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유서가 공개됐다. 대구에 사는 이일환(74)씨는 25일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아가 조부(이명우·1872∼1920)와 조모(권성·1868∼1920)가 자결 직전에 쓴 유서를 공개했다.
퇴계 14대 손인 이씨의 조부는 안동에서 출생, 1894년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진사가 된 유학자였다. 이 진사 부부의 죽음은 안동 지역에 구전돼 왔는데, 최근 이일환씨가 집안의 고문서들을 정리하다가 유서를 발견, 구전돼온 조부모의 의분 자결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 진사는 명성황후 시해를 접하고 1910년 대한제국 패망 때 자결하려 했다가 부모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뜻을 접었다. 이 진사 부부는 모친상 직후인 1918년 12월 고종 황제 서거 소식을 접하고 머리를 풀고 아침 저녁으로 망곡(望哭)하며 2년간 황제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고종의 장례가 끝나던 1920년 12월20일 저녁에 조용히 영면에 들었다.
나란히 눈 감은 이 진사 부부의 머리맡에는 약사발과 함께 비통한 마음과 후손 및 백성에게 전하는 당부가 담긴 유서가 남아 있었다. 이 진사는 유서에서 "나라 잃고 10여년 세월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忠義)의 길을 가겠다"라고 적었다. 부인 권씨 또한 아들 삼형제와 며느리, 시어른 등에게 보내는 한글 유서를 통해 "충의의 길을 따르는 남편을 따라가겠다"라는 간곡한 심정을 나타냈다.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관장은 "이 자료는 나라를 잃은 뒤 부부가 함께 자결순국한 유일한 사례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며 "특히 권씨 부인은 일제강점기 자결순국한 유일한 여성으로 한글 유서 또한 독립운동사와 국문학 연구에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안동=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재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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