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룡제 교서, 후위 안주安州-영주營州, 당 영주도독부는 모두 교치(僑治)로 허구
[우리역사의비밀]솟대 (2009-02-22 21:39:53)
후위後魏 안주安州-영주營州, 당唐 영주도독부 모두 가짜 - 교치(僑治)의 허구성
한사군이 전한 한무제때 설치된 적이 없었던 것은 사서의 원문을 보면 이미 잘 알려져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나의 왕조들은 자신들의 내지안에 이런 허구의 존재하지 않는 행정구역과 치소를 만들어 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현재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에 실상은 관할하지도 못하는 북한땅의 이북오도를 수복하여 관할할 때를 기다리며 만들어둔 이북오도청처럼 말이지요.
자신들의 영토내에 존재하지 않고 뺏지도 못하며 상대의 땅에 대한 아무런 영향력조차도 없음에도 자신들이 상상속에서나마 실제로 남의 땅을 관할하고 통치한 것처럼 만든 허위의 행정기구를 지나인들은 교치(僑治)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대해 적나라하게 스스로 폭로한 것이 바로 청 건룡제가 승덕주(承德州)를 설치한 이력과 이를 부로 승격하고 6청을 두도록 내린 상유上諭<왕이 내린 말씀>를 옮겨 적은 조선의 연행사신의 남긴 연행기입니다.
과거의 강역에 대한 언급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후위後魏의 안주安州와 영주營州, 당唐의 영주도독부營州都督府를 구체적으로 실례로 들면서 이들이 실제로는 다른 나라나 민족의 땅이어서 자신들이 접근도 불가능하지만 마치 실제로 빼앗아온 것처럼 자신들의 내지안의 다른 행정기구내에 만들어 놓은 허구의 관청인 교치(僑治)들임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습니다.
교치(僑治)의 어의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즉, 다른 관할 행정단위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행정기구였던 것입니다. 이런 실제로는 허구의 존재하지도 않는 행정지역에 대한 가짜 관할 기구는 지나인들의 사료에서 수없이 등장하며 이것은 후대에는 자신들이 마치 다른 민족이나 나라를 정복하거나 통치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에 이릅니다.
유명한 작가 루쉰이 지은 <아큐정전>에 나오는 '아큐'와 같은 인물이 근대의 지나인들의 모습이 아니라 먼 고대부터 그들에게 있어 흔해빠진 인간유형들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항상 현실을 부정하고 반대되는 망상이 현실인 것으로 착각하는 아큐들이 지나사가들의 모습이 아닌지요. 그들의 역사조작의 연원과 수법은 정말로 다양하다는...
1) 僑더부살이 교/높을 교
㉠더부살이 ㉡임시 거처(居處) ㉢우거하다(寓居--: 남의 집이나 타향에서 임시로 몸을 붙여 살다) ㉣타관살이하다
2) 治다스릴 치, 강 이름 이
㉠다스리다 ㉡다스려지다, (질서가)바로 잡히다 ㉢치소
● 연행기(燕行紀) 제2권 <서호수>
열하에서 원명원까지[起熱河至圓明園] ○ 경술년(1790, 정조 14) 7월[16일-26일] 20일(무술)
대성문(大成門) 밖 동쪽 벽에 건륭(乾隆) 43년(1778, 정조 2)의 상유(上諭)가 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경기(京畿) 동북 400리에 있는 열하(熱河)는 고북구(古北口) 북쪽에 있으니 곧 우공(禹貢)의 기주(冀州)의 변방이요, 우(虞)와 은(殷), 주(周) 때에는 유주(幽州)의 지경이었다. 진(秦), 한(漢) 이래로 판도(版圖)에 들어오지 않았다가, 원위(元魏 후위(後魏)의 별칭) 때는 안(安), 영(營) 2주(州)를 두었으며, 당(唐) 나라 때에는 영주도독부(營州都督府)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지(內地)에 교치(僑治 남의 경내에 붙어 있는 치소(治所))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고, 요(遼), 금(金)과 원(元) 나라 때 비로소 그 이름대로 향유(享有)하였다. 그러나 옛터는 곧 황폐해졌고, 명(明) 나라에서는 대령(大寧)을 마치 딴 지역(地域)처럼 버려 두었다.
전번에 승덕주(承德州)를 설치하였으니, 이제는 마땅히 승격시켜 부(府)로 해야 하겠다. 그래서 곧 동지(同知 부(府)의 관명(官名))로 개설(改設)한다.
그 나머지 6청(廳)을 , 객라둔청(喀喇屯廳)은 고쳐 난평현(灤平縣) 등을 만들고, 사기청(四旗廳)은 고쳐서 풍녕현(豐寧縣)을 만들고, 팔구청(八溝廳)은 그 땅이 비교적 넓으니 고쳐 평천주(平泉州)로 만들고, 오란합달청(烏蘭哈達廳)은 고쳐 적봉현(赤峯縣)을 만들며, 탑자구청(塔子溝廳)은 고쳐 건창현(建昌縣)을 만들고, 삼좌탑청(三座塔廳)은 고쳐 조양현(朝陽縣)을 만들어, 모두 승덕부(承德府)의 관할에 예속시킨다.”
[사료원문]
○大成門外東壁。有乾隆四十三年。上諭曰。京畿東北四百里。熱河方在於古北口以北。卽禹貢冀州邊末。而虞及殷,周幽州之境也。秦,漢以來。未入版圖。元,魏建安營二州。唐有營州都督府。然不過僑治於內地。遼金及元始薌其名。而故址旋荒。明棄大寧視爲別域。向曾設承德州。今宜陞爲府。卽仁知改設。其餘六廳。如喀喇屯廳。改爲灤平縣等。四旗廳。改爲豐寧縣。八溝廳其地較廣。改爲平泉州。烏蘭哈達廳。改爲赤峯縣。墖子溝廳。改爲建昌縣。三座墖廳。改爲朝陽縣。並屬承德府統割。
※《연행기(燕行紀)》 해제(解題) 부분발췌
이이화(李離和)《연행기(燕行紀)》는 1790년(정조 14) 건륭 황제(乾隆皇帝)의 만수절(萬壽節)에, 사은 부사(謝恩副使)로 청(淸) 나라에 다녀온 서호수(徐浩修)의 사행 기록(使行記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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