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끝자락에 피어난 미향(美鄕)
[연합뉴스] 2009년 01월 22일(목) 오전 09:22
여행은 음식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중국 여행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산해진미를 맛보는 과정에 비유된다. 다채로운 풍경과 유적이 산재해 어디로 눈길을 향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중국 동남 연해에 자리한 저장(浙江)성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대륙에서 미향(美鄕)으로 꼽히는 항저우(杭州)와 자싱(嘉興)이 위치해 매년 수많은 발길이 찾아들어 여행의 성찬을 향유한다.
◆아름다움이 일어나는 곳
저장성 여행은 자싱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상하이와 항저우의 중간 지점으로 교통이 편리하고 백범 김구 피난처(避難處), 한ㆍ중 우의가(友誼街) 등이 위치해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여행객의 마음을 흔드는 절경이 풍부한데, 남호(南湖)와 매만가(梅灣街)가 대표적이다.
자싱 남쪽에 자리한 남호는 사계절 경치가 아름다워 저장성 3대 호수의 하나로 꼽힌다. 중국 역대 황제들은 남호 한가운데 조성된 인공 섬 호심도(湖心島)의 정원에서 계절의 변화와 철따라 피고 지는 꽃을 즐겼다. 특히, 녹음이 우거진 섬 중앙의 정면 3칸 2층 팔작지붕 건물인 연우루(烟雨樓)는 청나라 건륭제가 즐겨 찾았다고 전해진다.
18세기 청나라의 전성기를 연 건륭제는 남방을 순행(巡行)하면서 연우루에 8번이나 올랐다고 한다. 황제가 신료 및 환관들을 이끌고 연우루에 머무는 동안 물안개 피어오르는 호심도에선 악기 연주와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부슬비가 내리는 날 연우루에 오르면 그림 같은 호반과 원림(園林)을 만끽할 수 있다. 황제들의 남호 사랑은 지극해 베이징 외곽에 자리한 황실의 여름 별궁인 피서산장에 연우루를 모방한 정원을 만들었을 정도였다.
남호는 오늘날의 중국을 탄생시킨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1921년 7월 중국 공산당의 창당대회 격인 제1기 전국대표대회가 남호에서 열렸다. 당시 중국 내 공산당원은 대륙을 통틀어 50여 명에 불과했다. 그중 13명이 남호의 흔들리는 화방(花舫, 아름답게 장식된 작은 유람선) 안에서 중국 공산당 창당을 선포하고 천두슈(陳獨秀) 당서기 등 지도부를 선출했다. 이를 기려 현재 남호에는 혁명기념관과 함께 최초 전대회(全大會) 당시 이용된 화방이 재현돼 전시되고 있다. 배 지붕과 창문에 금빛 장식이 아로새겨진 작은 배 안에서 이루어진 결정으로 인해 중국은 물론 주변국의 운명이 좌우되었음을 상기하면 많은 상념이 스쳐지나간다. 황제가 주유하던 수면 위에서 공산당 강령이 채택되었다는 사실 또한 기이한 우연으로 다가온다.
남호와 인접한 매만가(梅灣街)는 자싱 시정부가 최근 조성을 마친 일종의 관광 특구이다. 골동품점과 토산품점, 견직물 가게, 주점과 다관(茶館) 등 100여 곳의 상점이 밤늦게까지 문을 연다. 두 마리의 용이 새겨진 패루를 지나 매만가 안으로 들어서면 최근 복원된 옛 건축물이 도열해 있다. 서로 어깨를 걸고 서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 담장과 내림마루가 삐죽 튀어나와 눈길을 끈다. 돌출 부분은 칸막이 역할을 해 화재 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준다고 한다. 거리 맨 안쪽에는 백범이 일제의 눈을 피해 생활하던 김구 피난처가 재현돼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더 각별하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매만가 내 강남영극관도 찾아갈 만하다. 양가죽으로 만든 오색 인형에 빛을 투영시켜 구현하는 중국 전통 그림자 공연인 피영극(皮影劇)을 감상할 수 있다.
◆황제가 노닐던 물길 위에서
용정차(龍井茶)의 고향 항저우는 자싱과 함께 저장성을 대표한다. 2007년 2월 유엔 세계관광기구(UN WTO)가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관광도시로 선정했다.
항저우의 역사는 춘추전국시대가 막을 내리던 진(秦)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나라가 현을 설치하면서 도시가 형성됐는데, 토질이 좋고 기후가 온화해 인구가 급증했다. 항저우가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수(隋) 양제의 대운하 건설이었다. 7세기 초 대공사 끝에 베이징에서 항저우를 잇는 약 1천764㎞ 길이의 세계 최장 운하가 탄생했다. 징항(京杭) 대운하는 창장(長江), 하이허(海河), 화이허(淮河), 첸탕강(錢塘江)을 관통하며 강남의 도시들을 실핏줄처럼 이었다.
항저우는 12세기 초 남송(南宋)의 수도가 되면서 역사의 중심무대로 부상한다. 송나라는 북방 민족이 세운 금나라에 밀려 남쪽으로 천도하면서 임안(臨安, 항저우의 옛 이름)을 새 도읍으로 정했다. 항저우는 이후 대운하의 한 축에 해당되는 지리적 장점과 견직물 산업 활성화로 인해 물류 및 상업 중심지로 번창했다. 남송이 원나라에 멸망되기 전까지 비단 장수들이 세계 최초의 지폐를 들고 활개 치던 대륙의 중심으로 군림한다.
서호(西湖)는 항저우의 어제와 오늘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항저우 서쪽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으로 중국 각지의 수많은 서호 중 으뜸으로 통한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안개 자욱한 날이나 달 밝은 밤 또는 일출 때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서호 주변에는 다과를 즐기며 호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많은데 오산(吳山)이 대표적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오(吳)나라 왕 손권이 진을 쳤던 산으로 항저우 번화가인 연안로(延安路) 남쪽에 위치한다. 오산 정상에 세워진 성황각(城隍閣)에 오르면 다관이나 전망대에서 서호 풍경과 함께 항저우 시내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41.6m 높이의 7층 건축물로 남송과 원대 건축양식을 따랐는데 황학루, 등왕각, 악양루와 함께 강남 4대 누각으로 꼽힌다.
성황각은 단순한 전망대 이상의 볼거리를 품고 있다. 1층에 남송 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조소 작품 '남송항성풍정도(南宋杭城風情圖)'가 전시돼 있다. 길이 31.5m, 높이 3.65m의 대작으로 1천여 채의 가옥과 3천여 명의 인물 군상이 묘사돼 있다. 항저우 공예연구소를 중심으로 1만여 명이 참여해 장장 2년에 걸쳐 완성시킨 작품이다. 또 2층에는 소동파, 백거이 등 항저우와 관련된 28명의 조각상과 항저우의 주요 역사를 묘사한 11개의 조각상이 설치돼 있다.
성황각이 남송 시대의 미니어처라면 송성(宋城)은 남송의 문화를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항저우 외곽에 위치한 송나라 테마파크로 남송 시대 성곽과 건축물이 재현돼 있다. 시장에선 송나라 시대 복식을 갖춘 장사치들이 음식을 팔고 꼭두각시 인형극과 차력공연이 열린다. 특히 항저우 패키지 여행상품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가무극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이 매일 밤 무대에 오른다.
송성천고정은 300여 명의 배우가 출연하는 대형 공연으로 항저우의 전설과 역사를 줄거리 삼아 화려한 무대가 펼쳐진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남송 시대 영웅 악비(岳飛) 장군의 전투 장면인데 객석에서 무대를 향해 대표가 발사되는 등 다양한 특수효과가 구현된다. 마지막 장에선 한복 입은 여배우들이 등장해 부채춤과 장구춤을 추고 풍물패가 수십m 길이의 상모를 돌린다. 최근 수년간 급증하는 한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구성으로 저장성 여행의 대미를 장식한다.
사진/이진욱 기자 글/장성배 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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